민주당 살면 우리당 죽고, 민주당

[민심은 지금] 총선 판도, 호남표에 물어봐
민주당 살면 우리당 죽고, 민주당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햄릿의 독백이 아니다. 4ㆍ15 총선을 눈앞에 둔 한나라 민주 열린우리당의 얽히고 설킨 ‘고민’이다. 민주당이 살면, 열린우리당이 죽는 대신 한나라당이 살고, 그 반대면 열린우리당이 살고 한나라당이 죽는 게 이번 선거판이다. 민주당에 총선이 달렸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분당후 남은 민주당이 그동안 호남 거주자 또는 출신자 일부 계층으로부터 지지를 받아왔다는 점에서 호남표심에 따라 총선 판도가 결정된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 민주, 탄핵공조로 호남민심 대거 이탈

민주당은 3ㆍ12 탄핵을 전후해 전혀 다른 운명에 놓였다. 분당과 대선자금 수사에도 불구하고 호남 민심을 바탕으로 나름의 입지를 구축해 왔으나 탄핵을 계기로 호남표가 등을 돌리면서 지지율이 곤두박질했다. 거기에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싸움으로 당의 존재마저 위태로울 지경이 됐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전국적인 탄핵 반대 열풍에다 민주당 지지 호남표가 대거 몰리면서 단숨에 정당 지지율이 50%대까지 치고 올라갔다.

한국일보-미디어리서치가 3월30일 전국의 만20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탄핵안 가결 이후 열린우리당으로 옮겨간 지지층 가운데 호남권(31.1%)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YTN-포커스리서치가 3월28~30일 전국의 만20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탄핵을 전후해 민주당 지지자의 53.1%, 한나라당 지지자의 24.0%가 열린우리당으로 옮겨 간 것으로 나타나 열린우리당 독주의 1등공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와 관련,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은 “민주당은 근본적으로 한나라당에 대한 대항마로서 정치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한나라당과의 탄핵 공조와 세력의 약화로 더 이상 호남을 비롯한 오랜 지지층의 기대에 부응하기 힘들게 되자, 수도권을 중심으로 지지기반은 더욱 줄어드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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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표의 이동에 따른 민주당의 몰락은 열린우리당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한나라당은 총선을 한나라ㆍ민주ㆍ열린우리당이 겨루는 3자 구도로 형성해 제1당을 사수하겠다는 총선 전략(3자 필승론)이 물건너 갔고, 탄핵 후폭풍까지 덮쳐 침몰 위기에 몰린 것이다.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진영에서 총선 전략을 수립했던 한 인사는 “수도권에서 민주당이 호남표를 13~15%만 가져가도 총선 승리가 가능했는데 호남표가 빠지면서 모든 게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3자 필승론’을 떠받쳤던 호남표가 이탈하면서 총선 지형이 급격히 ‘양강 구도’로 재편돼 한나라당에 불리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과거 90%이상 몰려다녔던 호남표를 민주당이 어느 정도 확보하지 못하면 열린우리당의 총선 제1당은 확실시 된다. 그것은 곧 호남표가 열린우리당으로 쏠림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고, 앞으로는 호남 지역에서 내심 우리당이라고 생각하는 정당이 기호 2번 민주당에서 기호 3번 열린우리당으로 바뀐다는 뜻이다.

- 지지정당 우리당으로 선회

한국사회여론연구소 김 소장은 “DJ 이후 호남권의 가장 큰 여론 흐름은 대선 당시의 반 이회창, 또는 대선 이후 반 한나라당 정서라고 볼 수 있는데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공조해 대통령을 탄핵하자 호남 거주자 또는 호남 출신들이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열린우리당으로 옮겨갈 명분을 얻었다”며 “민주당에 대한 호남 유권자의 배신감과 분노는 ‘유동층화’의 과정없이 바로 열린우리당으로 건너갈 정도로 강력해 다시 돌아오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국민일보-월드리서치의 여론조사결과 호남권에서 열린우리당의 지지율(60.0%)이 민주당 지지율(8.1%)보다 압도적으로 높았고, 선거일까지 지지후보를 바꾸지 않겠다는 응답도 호남권(67.0%)에서 가장 높게 나와 그 같은 전망을 뒷받침했다.

여론조사기관 폴앤폴의 조용휴 대표는 탄핵 정국후 여론 추이를 전제로 “호남표가 민주당 자체에 미치는 영향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 미치는 효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 여론대로라면 민주당은 교섭단체를 구성하기 어려울 것이나 민주당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호남표를 얼마나 얻느냐에 따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희비가 엇갈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이번 총선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자체 전력못지 않게 민주당의 전력에 달린 셈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의 전력은 앞으로 강화될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현대리서치 염동훈 이사는 “민주당이 추미애 선대위원장 체제의 등장 이후 당권파와의 갈등으로 상황이 더 악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추 위원장이 DJ사람들을 앞세우고 광주에서 ‘3보1배’의 고행으로 호남 표심을 파고 들고 있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염 이사는 “호남에서 추 위원장의 읍소 전략이 일정 부분 먹혀드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그러나 총선까지 시간이 너무 부족해 호남표 전체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총선이 임박하면서 광주의 강운태(남구)ㆍ전갑길(광산구) 의원, 전남의 한화갑(무안ㆍ신안)ㆍ이낙연(함평ㆍ영광)ㆍ김효석(담양ㆍ곡성ㆍ장성) 의원, 수도권의 추미애(서울 광진구)ㆍ김영환(경기 안산상록) 의원 등의 지역에서 호남표가 결집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 추미애 읍소전략 등이 막판 변수될 듯

또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노인 비하 발언으로 ‘정풍(鄭風, 정동영 바람)’이 비틀거리는 동안, ‘추풍(秋風, 추미애 바람)’ 이 완만한 상승 곡선을 그리면서 일부 호남표가 민주당으로 되돌아 갔다는 얘기도 호남권에서 들린다. 민주당 광주시지부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을 살리기 위해 고행을 자처한 추미애 의원에 대한 동정 여론이 일면서 민주당을 다시 보는 분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반겼다.

광주의 한 중견 언론인은 “호남인들이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것은 민주당이 부패한 한나라당과 공조한 것에 대한 배신감과 미래를 맡길 수 없는 ‘불임정당’이란 인식에 기반한 것”이라면서 “그러나 총선을 앞두고 지역주의가 기승할 경우 호남표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양분될 가능성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이런 전망들이 사실이라면 민주당에겐 희망이, 한나라당은 망외소득의 기쁨이, 열린우리당에겐 ‘적신호’가 아닐 수 없다.

4ㆍ15 격전지 마다 여야 3당이 ‘호남표의 힘’에 일희일비하는 게 요즘이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4-06 16:54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