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과의 전쟁] '비만' 한 맺힌 절규 "살아, 가라!"


“뚱뚱하면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또래의 젊은 아이들이 누리는 그 행복을 갖게 해 주고 싶어서 비만 치료를 권했던 것일 뿐인데….” 최근 신종 비만치료 시술법인 위 절제술(베리아트릭)을 받은 뒤 세상을 떠난 진모(25ㆍ여)씨의 언니가 내뱉은 절규다.

161cm의 키에 몸무게 94kg의 고도 비만으로 고민하던 진씨는 지난 2월9일, 서울 강남의 한 개인 외과병원에서 이 수술을 받았다.

국내 최초로 그 수술법을 도입해 이미 160여명에게 시술한 병원이라는 입소문을 달랑 믿고 수술 을 결행했으나, 그녀에게 돌아 온 것은 복통, 어지럼증, 호흡 곤란 등의 부작용뿐이었다. 숨지기까지 20일 동안은 후회와 고통의 나날이었다. ‘얼마나 비만에 한이 맺혔으면 1,500만여원의 돈을 주면서까지 위를 자를 생각까지 했을까….’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낸 일부 사람도 없지 않았을 터이다.

진씨의 죽음은 목숨을 담보로 하면서까지 비만 전쟁을 벌이는 세태에 경종을 울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노출의 계절이 다가오면서, ‘살아 남은’ 이들이 벌일 살과의 전쟁은 또 다시 가열차게 벌어질 태세다. 늘씬한 몸이란 징표가 거부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인 양 추앙 받는 요즈음,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는 각종 체중 감량술은 현대인을 무차별 유혹한다. 살만 빠지면 그 동안의 모든 고통과 불행을 온전히 보상 받을 수 있다며 그 유혹은 달콤한 미끼를 던진다.

비만 노이로제로 다이어트에 집착

대한비만학회가 제시한 객관적 기준에 따르면, 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신체질량지수(BMI)가 25를 넘으면 비만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160cm의 키에는 64kg가 넘으면 비만이다. 그러나 수 많은 사람들은 실제의 체중과 상관없이 왜곡된 자가 비만 진단을 내리고 살과의 전쟁에 돌입한다.

서울 백병원 가정의학과 이성희 교수팀은 지난해 발표한 ‘직장인 비만체형 인식정도’ 설문 조사에서 “남성 10명 중 8명이 정상 체형의 여성을 비만으로 잘못 알고 있다”며 결과를 소개했다. 여자의 신체 외형도에 대해 남자의 81.7%, 여자의 49.1%가, 남자의 신체 외형도에 대해서는 남자의 47.7%, 여자의 29.3%가 각각 정상 체중을 비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듯 정상 체중의 성인을 ‘뚱뚱하다’고 잘못 보고, 다이어트에 집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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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신체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더욱 당혹스럽다. 같은 병원 소아과 박미정 교수팀이 서울시내 초ㆍ중ㆍ고 학생 3,382엿?1,724명, 여 1,65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우리 나라 초ㆍ중ㆍ고 학생 2명 중 1명 꼴(남자 39.9%, 여자 54.5%)로 자신의 몸무게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체중이 정상이 남학생의 4.4%, 여학생의 5.6%가 체중 조절을 위한 특수 치료(체중 조절제, 한약, 비만클리닉 등)을 받고 있었다. 이처럼 정상 체형을 비만으로 인식하고 뛰어든 무리한 다이어트에는 신체적ㆍ정신적으로 심각한 후유증이 따를 수 밖에 없다.

강남베스트클리닉 이승남 (가정의학과) 원장은 "무리한 다이어트는 월경 불순이나 불임, 저혈압 등을 유발하는 요인"이라며 "특히 일부 근육까지 소실되는 저체중에 이른 경우 성인병에 걸릴 확률이 최고 84배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팜트리클리닉 김선재 원장은 "신체에 대한 왜곡으로 인해 열등감이나 우울증에 시달리고, 식이 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다이어트에 대한 환상을 좀처럼 깨려 하지 않는다. 살만 빠지면 입고 싶은 예쁜 옷을 뭐든 입을 수 있고, 멋진 이성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으며, 삶을 한층 낭만적으로 즐기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고행을 고집한다. 과연 그럴까.

대학을 갓 졸업한 이모(24)씨는 지난 1년 동안 가슴 성형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아야 했다. 1년 전 키 163cm에 몸무게 60kg의 다소 통통한 몸매라 좀 처지고 큰 가슴이 부담스러워 ‘가슴 축소 수술’을 받았는데, 근래 들어 무려 10kg을 감량한 뒤 너무나 볼품 없어진 빈약한 가슴에 또 울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이번에는 가슴 확대 수술을 받은 이씨는 “살을 뺀 것은 좋지만, 여성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더 소중한 것을 잃을 뻔 했다”고 안타까워 했다.

엔제림 성형외과 심형보 원장은 “과거에는 원래 빈약한 가슴을 가진 여성들이 가슴 확대 수술을 받았다면, 요즘에는 다이어트 후유증으로 수술을 원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며 “몸짱 열풍 이후, 이 같은 이유로 확대 수술을 받은 환자가 10~15%가 된다”고 전했다. 급격한 체중 조절로 ‘피부 미인’의 꿈이 깨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얼마 전 서른 살의 주부 최모씨는 거울을 바라보다 깜짝 놀랐다. 최근 두 달여 6kg을 감량했더니, 얼굴이 공기 빠진 풍선처럼 쭈글쭈글하고 십 년은 더 나이 들어 보이면서 외출을 두려워 할 정도다.

몸매 망치고 생명까지 위협

아름다운 나라(피부과) 장가연 원장은 "몸무게가 3~4kg만 줄어도 눈에 띄게 탄력이 저하되거나 주름살이 늘어나 보이는 게 일반적인데, 이렇게 한 번 잃은 탄력은 다시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심지어 무분별한 다이어트 때문에 머리카락이 뭉턱 뭉턱 빠지는 탈모 증세로 고통 받는 경우도 있다. 현대가정의원 박정훈 원장은 "다이어트를 오래 했거나 다이어트 식품을 오용해 여성 호르몬이 감소하고 저체중 상태에 이르면 머리털이 빠지는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이제 살과의 전쟁을 ‘미용’ 개념에서가 아니라 ‘건강’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학적으로 문제가 되는 비만과 몸매 관리는 구별되어야 한다. 비만은 체형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질병 치료이라는 시각에서 접근돼야 할 문제이다.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내분비내과) 홍은경 교수는 “비만은 그 자체보다 다른 질환을 동반한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인 질병”이라며 “당뇨ㆍ고혈압 등 위험 요소가 있는 과체중(BMI 23 이상)의 경우에는 체중 조절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4-04-27 16:30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