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내 막강 파워 '트로이카' 체제 구축, 신기남 당·천정배 국회·정동영 장관 구도

[커버 스토리] 천·신·정 야망과 도전
여권 내 막강 파워 '트로이카' 체제 구축, 신기남 당·천정배 국회·정동영 장관 구도

“천(정배)ㆍ신(기남)ㆍ정(동영) 시대가 열렸다”. 열린우리당 새 원내대표에 천정배 의원이 선출되고 정 의장이 입각을 전제로 사퇴하고 당헌에 따라 신 의원이 당 의장직을 승계하면 여권은 ‘신기남 당 의장 – 천정배 원내대표 – 정동영 장관’ 구도로 변한다. 당의 양축인 의장과 원내대표가 정동영-천정배에서 신기남-천정배로 바뀌지만 천ㆍ신ㆍ정 ‘트로이카’의 영향력은 여전하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천ㆍ신ㆍ정 시대’란 의미는 단순히 이들 3인이 당과 내각의 요직을 차지한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천ㆍ신ㆍ정’이라는 정치 브랜드에 내재한 다양한 함의가 주목 대상이다. 그 중에서도 4ㆍ15 총선 결과에 따른 정치 지형의 변화와 탄핵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 2기 국면에서 천ㆍ신ㆍ정 트로이카가 갖는 정치적 영향력과 향후 거취 및 행보가 최대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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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의 이름으로 뭉쳤다

정치적 영향력 면에서 트로이카 체제는 종래 ‘정동영 당 의장 - 김근태 원내대표’구도를 거치면서 더욱 탄탄해졌다는 평이다. 물론 이들에게 미치는 노무현 대통령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고, 신기남ㆍ천정배 투톱 체제에 대한 당내 불만 세력이 존재하지만 천ㆍ신ㆍ정 각 개인의 역량 증대와 3인의 결속이 여전해 당 안팎에서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갖추었다는 평이다.

세 사람이 처음부터 '천ㆍ신ㆍ정'이라는 브랜드 파워를 가진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오히려 당 안팎에서 이단아, 또는 분열주의자로 취급받아 권력의 주변에 머물렀다. 천ㆍ신ㆍ정이란 호칭은 2000년 8월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서 정동영 전 의장이 최연소 최고위원이 되고, 당 쇄신운동 과정에서 동교동 구파에 맞서 같은 행보를 취하면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해 12월, 정 전 의장이 청와대 만찬에서 '권노갑 퇴진'을 주장한 것을 계기로 정풍운동이 확산되면서 천ㆍ신ㆍ정의 결속이 강화됐다. 세 사람은 이듬해인 2001년 5월,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모임을 갖고 "정치를 해도 함께 하고, 그만둘 때도 함께 그만두자"는 맹세를 했다. 그해 8월 강원도 산행에서는 "우리는 피를 나누지 않았지만 의형제나 마찬가지다. 죽을 때까지 배신하지 말자"는 '도원결의'까지 맺었다고 한다.

이후 세 사람은 단결된 행동으로 당내 개혁세력의 구심점이 되면서 천ㆍ신ㆍ정이라는 정치 브랜드를 얻기에 이르렀다. 특히 재작년 대선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 흔들기’에 나선 민주당 후단협(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에 맞서 노 대통령의 버팀목을 자처하고, 대선 후 신당 창당을 주도함으로써 그 파워를 대내외에 확실히 각인시켰다. 특히 민주당 분열과 신당 창당 과정에서 세 사람에게 붙여진 ‘탈레반’이라는 별칭은 역설적으로 원칙을 고수하는 강경개혁파에게 헌사된 훈장과 같은 것이 됐다.

그렇다면 천ㆍ신ㆍ정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무엇이며 언제까지 동반자의 길을 갈 것인가? “우리 사이는 순수해요. 정치적 입장에 차이가 있더라도 개혁과 대?앞에선 양보하고 물러설 줄 아는 양식과 페어플레이 정신이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암묵적인 믿음이 바탕에 있는 셈이죠”. 최근 기자와 만난 신기남 의장은 세 사람의 관계를 ‘인간적 신뢰와 연대’로 표현했다. 대권 도전 가능성에 대해 묻자 신 의장은 “정치인이라면 그(대권)에 대한 야망이 있겠죠. 그러나 억지로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기회가 주어지면 그때 가서 받아들일 생각입니다”고 말해 대권 의지가 있음을 나타냈다.

- ‘포스트 노’ 겨냥한 경쟁 불가피

정동영 전 의장은 ‘차기’ 검증 차원에서 입각하고, 신기남ㆍ천정배 투톱이 열린우리당을 이끌게 되면 정 전 의장은 정부를, 신 의장은 당을, 천 원내대표는 국회를 나눠 맡는 셈이다. 절묘한 트로이카 체제다. 15대 국회(96년)에 함께 들어가 8년 가까이 한 울타리에서 활동했던 세 사람은 이제 각자의 영역에서 노무현 정부를 뒷받침하면서 ‘새로운 경쟁’을 펼치는 것이다. 당장은 각자의 역할을 얼마만큼 성공적으로 수행하느냐 하는 ‘역할 경쟁’이 관건이지만 멀리는 ‘대권 경쟁’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세 사람의 속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이들이 ‘포스트 盧’를 겨냥, 나름대로 대권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 전 의장은 오래 전부터 큰 꿈을 꿔왔고, 천 원내대표도 총선 과정에서 '차기 도전'의사를 내비친 적이 있다. 5ㆍ11 원내대표의 경선을 지켜본 의원들은 "실무형으로만 알았던 천 의원이 대권주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선거"라고 평가해 천 원내대표의 '내공'이 간단치 않음이 드러났다. 신 의장 또한 최근 보좌진의 정무기능을 대폭 강화하는 등 대권 준비에 돌입했다. 결국 천ㆍ신ㆍ정 세 사람은 여권에서 유력한 잠재적 대권 후보이면서 경쟁자인 셈이다.

여론분석가를 겸하고 있는 한 중견 정치평론가는 “세 사람이 재작년 대선 이후 보인 행보 중엔 대권 의지와 연결시킬 수 있는 대목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 사람이 대선 직후 ‘민주당의 발전적 해체’를 주장하면서 신당의 목표를 ‘지역 구도 타파를 위한 전국정당 창당’으로 설정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당 로드맵 속엔 일단 신당 창당을 통해 구 주류에 대한 인적 청산을 단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차기 대권을 겨냥한다는 전략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즉 정동영 전 의장은 차기 대권 후보로 거론되고 있지만 정치권의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노 대통령처럼 기득권층의 저항에 부딪힐 수 있고, 신 의장과 천 원내대표는 신당 창당을 통한 정계개편으로 정치권의 주도 세력으로 부상하지 않을 경우 차기 후보군에서 밀려날 수 있어 세 사람의 이해가 일치했다는 해석이다. 이들이 지역구도 타파를 강조한 것도 세 사람 모두 호남 출신이란 지역적 한계를 갖고 있어 영호남을 가리지 않고 지지받는 전국정당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대권’경쟁은 원내대표 선출과는 그 속성이 전혀 다르다. 최종 권력게임이기에 이번 원내대표 경선처럼 타인에게 양보하고, 어느 후보를 미는 식의 미덕(?)이 용납되지 않는다. 대권 의지가 있는 천ㆍ신ㆍ정 3인에게도 이런 ‘룰’은 똑같이 적용된다. 차기 예비전에서 후보가 결정되기까지 세 사람은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한다는 의미다.

대선이 있던 2002년 초, 정 전 의장은 신 의장과 천 원내대표가 주축인 민주당 개혁세력을 대표하는 ‘바른정치모임’의 베트남 역사기행에 동참했다. 대권 도전의 뜻을 전하고 지지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도원결의까지 한 신ㆍ천 두 사람은 그해 3월초 ‘노무현 지지’를 선언해 정 전 의장에게 충격을 준 적이 있다. 권력의 냉엄함을 상징하는 사례로 세 사람이 끝까지 길을 같이 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 盧와의 관계설정이 변수

천ㆍ신ㆍ정과 노 대통령과의 관계도 세 사람의 거취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다. 대권 주자의 힘과 대통령의 영향력은 반비례 관계다. 천ㆍ신ㆍ정의 대권 의지가 강하고 현실적 힘이 강화될수록 노 대통령의 힘은 빠지고 레임덕이 빨라진다. 노 대통령이 대권 후보 선두 주자인 정동영 전 의장을 입각시키고, 당은 신기남 의장에, 국회와의 관계는 천정배 원내대표에게 맡기는 소위 ‘견제와 균형을 통한 국정운영’ 방식도 그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권 안팎에서는 탄핵에서 돌아온 노 대통령이 아직은 주도적 입장에서 세 잠룡(潛龍)들을 컨트롤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2~3년 후 대권 레이스가 본격화되면 잠룡들이 노 대통령의 컨트롤 타워에 의해 조정될 지는 미지수다. 또 천ㆍ신ㆍ정의 ‘도원결의’가 대권 전쟁 중에 온전히 지켜질 지도 궁금하다.

노 대통령의 복귀와 함께 새로 판을 짠 열린우리당의 지도체제 아래 천ㆍ신ㆍ정 트로이카의 야망과 도전은 이미 시작됐다.

따로 똑같은 트로이카
   
천ㆍ신ㆍ정 세 사람에게는 3가지 공통점이 있다. 15대 국회 때 함께 입성했고, 모두 호남(정동영-순창, 신기남-남원, 천정배-목포) 출신으로 잠재적 차기 대권 후보라는 점이다. 모두 한 살 터울의 서울대 선후배이기도 하다. 정동영 전 의장이 비례대표 후보에서 물러나지 않았다면 세 사람이 3선 의원이라는 공통점이 추가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천ㆍ신ㆍ정을 특징짓는 것은 '소신파'라는 것이다.

나이는 신기남(52) 의장이 제일 많지만, 정계 입문은 막내 격인 천정배(50) 원내대표가 가장 빨랐다. 94년 재야출신들이 김근태 의원을 중심으로 만든 '통일시대 민주주의 국민회의'의 사무총장을 맡은 것이 계기가 됐다. 정동영(51) 전 의장은 96년 이해찬 의원의 권유로, 신 의장은 같은 해 경기고 선배인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에 의해 정계에 들어섰다.

대학생활의 차이는 정치에??나타났다. 목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인문계열에 수석 합격한 천 원내대표는 대학생활 중 공부에 전념, 76년 졸업과 함께 사법고시에 합격해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는데 타협없는 '원칙주의'성향은 정치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반면 신 의장은 딱딱한 법대생활에 흥미를 못 느껴 법대 안에 태권도부와 야구부를 만들었다. 이처럼 참지 못하고 앞장 서는 스타일은 지난해 중순 신당 창당이 지지부진하자 정 전 의장과 천 원내대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선도탈당론'을 강행하려 한 데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정 전 의장은 대학(국사학과)에서 학생운동에 열성적이었는데, 당시의 친화력과 조직력은 정치권에서도 활용돼 '정동영 그룹'은 당내에 최대 인맥을 이루고 있다.

천ㆍ신ㆍ정 세 사람과 특별한 인연을 가진 임종인 당선자(경기 안산 상록을)는 전주고 선배인 정 전 의장에 대해 '흡인력(대중성)'을, 92년 해마루 법무법인 창립멤버인 천 원내대표에 대해선 '비상한 두뇌와 원칙주의'를, 인권변호사 활동을 함께 한 신 의장에 대해서는 '추진력'을 높게 평가했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5-18 22:31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