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여검사들 '역할 모델'되고파여성검사 사회의 신기록 제조기…선구자인 만큼 책임감도 커

[대한민국 여검사] '여성1호 부장' 조희진 검사
후배 여검사들 '역할 모델'되고파
여성검사 사회의 신기록 제조기…선구자인 만큼 책임감도 커


“ 첫 여성 부장검사가 된 것도 영광스럽지만, 실무자로서 아래에서부터 차근 차근 단계를 밟아 중간 관리자의 기회를 갖게 돼 더 기쁩니다. 일선 검사들이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새로 맡은 형사부를 이끌어 가겠습니다.” 6월 7일, 검찰 정기 인사에서 사상 첫 여성부장 검사가 된 조희진(41ㆍ사시 29회) 신임 의정부지검 형사 4부장.

사흘 뒤, 법무부 검찰국 연구검사실에서 만난 그는 “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점에서 감회가 남다르지만, 그만큼 책임감도 무겁다”며 소감을 밝혔다.

1990년 검찰에 첫 발을 내디딘 조 신임 부장은 진작부터 여성 검사 사회의 ‘ 신기록 제조기’로 통했다. 가는 길마다 이목이 집중됐다. 90년 임관 이후 92년 첫 여성 공판 검사가 된 데 이어, 98년에는 법무부 초대 여성정책 담당관을 지냈으며, 2002년은 첫 간부급 여검사인 서울고검 검사로 부임하기도 했다.

강한 남성적 이미지의 검사 사회에서 그처럼 ‘ 금녀의 벽’을 깨느라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을 법하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그의 생각은 이와 다르다. 그는 “ 최초의 여성이라는 이유로 조직에서 특별 배려를 받은 측면이 있다”며 어설픈 추측을 물리쳤다. “ 혼자니까 더 도와주고 배려해 주는 경우가 많았어요. 근래 들어 여검사 수가 100명을 넘어설 정도로 늘면서 그 같은 희소성은 줄었지만, 경쟁력은 커진 것 같아요. 저는 혼자라서 가능한 제 목소리를 덜 내고 조직에 융화하기 위해 애썼던 반면, 요즈음 후배들은 다방면에서 서로의 개성을 표출하기 위해 악착스럽게 일하는 것이 달라진 점이죠.”


- 초창기엔 조직의 배려 받기도

현직 여검사로서는 최고참이지만, 역대 국내 여검사로는 3호. 조배숙 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44, 사시 22회)과 임숙경 변호사(52, 사시 22회)가 82년 동시에 부임했지만 과중한 업무를 견디지 못해 86년과 87년 각각 판사로 전관했다. 이후 끊어진 여검사의 맥을 홀로 묵묵히 지켜왔던 것.

“ 여자 검사의 역할 모델이 되고 싶어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으려고 하는 조 신임 부장이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인터뷰에 응한 이유이기도 하다. 남성이 절대다수인 조직 사회에서 여성들이 소외감을 이겨내고, 자신있게 활동하기를 기대하는 바람을 그는 에둘러 표현했다. 그는 여자 검사로서의 강점에 대해 “ 수집된 증거를 철저하게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한 업무의 특성상, 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꼼꼼한 성격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106명의 현직 여검사들의 모임인 ‘ 대한민국 여자검사회’의 회장이라는 무게가 실려 있다.

또 다른 여검사의 모델, 강금실 법무장관(사시 23회)에 대한 평에서도 그 무게가 감지된다. “ 언뜻 차가와 보이지만 인권을 몸소 실천하는 분이예요. 몸이 부서지게 일하는 걸 최고로 아는 여타 공직자들과는 달리, 충분한 휴식이 있을 때 국민들에게 진정한 봉사를 펼칠 수 있다는 지론에 공감 갈 때가 많죠. 곁에서 보면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돼죠.”

조 신임 부장에게도 ‘ 살인의 추억’이 있다. 2001년 서울지검 동부지청에서 재직시 사건이다. “ 필리핀 여성 근로자가 한국인 사장에게 강간 당하고 C경찰서에 고소한 사건이었어요. 경찰은 사건 당시 함께 있었다며 알리바이를 입증해 준 사장 친구의 말을 듣고 무혐의 처리했는데, 그 여성의 진술이 진실이라는 직감이 들었죠. 휴대폰 발신 추적결과 사장과 친구가 전혀 동떨어진 장소에 있었다는 걸 밝혀내고 사장의 자백을 받아냈죠.” 대부분 강간 사건을 쉽게 화간으로 단정하는 경향이 있는 남성들과 달리, 여성으로서 여성의 섬세한 심리를 읽어낸 성과였다. 꼈?중심 사고를 무너뜨린 여성의 힘을 보여준 일례다.

그는 하지만 섣부른 성 비교 우위론은 지양한다. 그는 “ 남자도 얼마든지 섬세할 수 있지 않느냐”며 “ 성 역할을 구분 짓기보다, 상대방 성을 존중하면서 실력으로 겨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고려대 법대 81학번.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렵다는 사법고시에 도전했을 때 주변에서는 ‘ 시집도 못 가고, 노처녀 되기 십상’이라고 뜯어 말렸고, 더욱이 ‘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검사가 되겠다는 대목에서는 우려가 만만찮았다. 그럼에도 굳이 험한 길을 선택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 갖가지 사연 접하는 데 큰 매력

“ 범죄인들을 코 앞에 앉혀 두고 갖가지 사연을 접할 수 있다는 데 강한 매력을 느꼈어요. 사건을 풀어 가는 열쇠를 쥔다는 지위도 좋았지요. 또 범죄인들이 남성에게 적합한 일만 골라가며 저지르는 것도 아닌데 여자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말마따나 격무에 시달리는 것은 남녀 검사의 구별이 따로 없다. 밤 11~12시가 되서야 퇴근하는 생활이 밥 먹듯 이어지고, 그것도 모자라 퇴근길은 반찬 거리 대신 업무 보따리를 한 짐 지고 가는 날이 부지기수다. 한창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11)의 숙제며, 준비물 등을 봐주지 못하는 마음도 편할 리 없다. 그는 “ 업무에 매달리다 보면 집안 일에 소홀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 마음의 갈등을 겪었고, 바깥 일에만 전념할 수 있는 남자들이 부러웠던 적도 있었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 부장검사 자리까지 오르는 데 가장 큰 버팀목은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해준 가족들”이라며 공을 돌렸다.

후배 여성 검사나 예비 법조인에게 거는 기대가 각별하다. “ 법조인이 되는 것이 곧 최고의 성공으로 통하던 시절은 지났어요.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 비해 보수나 근무 여건도 좋지 않을 수 있지요. 하지만 안정성이 있고, 전문 역량을 발휘할 기회도 많아 적극적으로 도전해 볼 분야라고 봐요.” 그래서 여성 법조인이란 힘들지만, 그만큼 보람 있는 직업이라는 것.

먼 장래의 목표가 궁금하다. 답변은 의외로 담백하기만 하다. “정직하고 바른 검사의 모습이고 싶어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선배로 기억된다면 좋겠어요.” 바로 저 책임감과 역사 의식으로 조 검사는 현재까지 왔고,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화려한 외피에 얽매이지 않고, 신임 검사 시절의 초심으로 맡은 바 업무에 충실하겠다는 조 신임 부장. 여성스럽고 후덕해보이는 그의 모습에서 강한 신뢰감이 느껴지는 것은 결코 우연만은 아닌 듯 했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4-06-16 10:28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