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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선일씨 피살 쇼크] 증발된 ‘악몽의 23일’…과연 몰랐나
한국 : 전화 받은 실무자가 뭉갰다.
미국 : 한국의 추가파병 위해 감췄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6월26일 이라크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와 부모 품에 안긴 고(故) 김선일씨는 ‘악몽의 23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살고 싶다”고 절규했던 방송화면만 남아 있을 뿐이다. 지난 5월31일 납치돼 피살되기까지 김씨와 그 주변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우리 정부는 김씨의 납치를 진짜 몰랐을까?





#의혹1 정부는 피랍사실 언제 알았나

6월25일 AP통신이 우리 외교부에 한국인 피랍 여부를 묻는 전화를 했다는 폭로가 사실로 확인되면서 우리 정부의 재외국민 보호 능력이 도마에 올랐다. 지금까지 알려진 게 사실이라면, 이라크 주재 한국대사관은 물론 나라 전체가 알 자지라 방송에 살해 위협 방송이 나간 21일 오전까지 3주동안 김씨의 납치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밝힌 공식 피랍시점보다 훨씬 이른 지난 6월3일 AP통신이 외교부측에 김씨의 피랍 여부에 대해 문의한 것으로 밝혀져 은폐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외교부는 25일 브리핑에서 “외교부 자체 조사 결과 외무관 2명이 외신기자로 추정되는 사람으로부터 한국인 실종여부에 대한 간단한 문의전화를 받은 기억이 있다”고 시인했으나 “실무자가 문의를 묵살하고 상부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전화 받은 실무자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김씨가 근무한 가나무역의 김천호 사장이 김씨의 납치일로부터 알 자지라 방송을 통해 납치 사실이 알려진 지난 20일까지 3주 동안 대사관을 4차례나 방문한 것으로 밝혔다. 김 사장은 왜 대사관을 찾았을까?

물론 우리 정부는 김 사장이 대사관에 와서 피랍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그렇다면 모술 지역을 방문하는 등 사업에도 바쁜 그가 왜 3번씩이나 대사관을 찾았는지 궁금하다. 당시 이라크 한국 교민 사이에서는 한국인 피랍설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고 한다. 김선일씨는 당시 대사관이 파악 중인 67명의 명단에 들어 있었다.


#의혹 2 미국은 정말 몰랐나

가나무역의 원청업체는 미군 서비스업체인 AAFES사다. AAFES는 경영진과 이사회 대부분이 현역 미군 장성과 장교들로 구성돼 있어 미군이 이 사건을 사전에 인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천호 사장은 지난 2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군측으로부터 첫 통보를 받았으며 20일에는 미군으로부터 빨리 좀 보자는 연락을 받고 모술에서 대책을 협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불과 하루 만에 말을 바꿔, ‘정신이 없어 착각했다’는 식의 해명을 하고 있으나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착각’이라는 단어를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미군이 고의로 숨겨온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든다. 우리 나라가 이라크 추가 파병에 대해 설왕설래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씨의 피랍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원청업자인 미국의 모 회사에 이를 통보한 만큼 자연스럽게 미군에 통보됐을 것으로 믿었다”는 김 사장의 말은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의혹 3 김천호 사장 행적의 진실은

‘3주 동안의 김씨 미스터리’ 열쇠는 사실상 김천호 사장이 쥐고 있다. 김 사장은 최종 진술서에서 “6월 4일부터 팔루자 인근 경찰서와 병원 등을 수소문해 김선일씨 관련 정보를 수집했으며 10일에는 원청업체인 미 AAFES사에 김씨 억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했다고 말했다. 자체 협상팀을 꾸려 대응했으나 무위로 돌아갔고, 그 과정에서 갑자기 알 자지라 방송에 나와버려 대사관측에는 미처 알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일관성을 잃었다. 납치시점을 ‘17일-15일-5월 31일’로 바꾸는 등 오락가락했고, 미군측으로부터의 통보 여부도 무엇이 진실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김씨 피살에 따른 충격을 감안하더라도 왜 거짓 진술을 반복했는지에 관심이 쏠린다. 잦은 번복은 미군의 사전 인지설과 연계돼 의혹을 낳고 있다.

현지 사업 경험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라크 강경 무장세력과 사적으로 접촉해 김씨를 구출하려고 한 행적도 의심스럽다. 미군 서비스업체, 이라크인 변호사 등과 함께 김씨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면서도 우리 정부에는 왜 납치 사실조차 보고하지 않았는지 미스拷??


#의혹 4 피?목적과 납치 단체는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김씨를 납치한 단체는 처음부터 살해할 목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라크 추가 파병에 강경 항의하기 위한 ‘기획 살해’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씨를 납치한 이라크 무장단체가 왜 그를 3주간이나 억류하면서도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추가 파병을 결정하자마자 ‘24시간 내 파병 철회’라는 무리한 요구조건을 내걸었을까? 이라크 파병 철회가 목적이었다면 확정하기 전에 요구조건을 내걸어 협박하는 것이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음에도 왜 뒷북을 쳤는지 의문이 남는다.

그래서 김씨를 납치한 조직과 살해한 조직이 다를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온다. 또 AP가 공개한 비디오 테이프와 알 자지라 방송이 방영한 테이프를 비교하면 그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AP에 등장한 김씨는 “진짜 테러리스트는 부시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등 다소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알 자지라 방송에 나온 김씨는 “나는 살고 싶다”고 울부짖으며 극도의 공포에 질려 있었다.

김씨 심문 내용이 전달된 장소도 의문이다. 통상 중동지역에서 납치 관련 동영상은 알 자지라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공개됐으나, 김씨를 처음 납치한 조직은 AP통신의 영상파트인 APTN 바그다드 지국에 관련 동영상을 전달했다. 상황을 두루 꿰맞춰 보면 인질 몸값을 노린 세력이 협상이 꼬이자 다른 무장단체에 신병을 넘긴 게 아니냐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의혹 5 막판까지 전한 낙관론의 진실은

김씨 피랍 후 독자적으로 석방 교섭을 벌인 경호업체 NKTS는 22일 오후 7시 “납치단체와 접촉했으며 김씨는 살아 있다”고 알려왔다. 그러나 김씨는 이미 10시간쯤 전에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NKTS의 현지 대리인 모하메드 알 오베이디씨가 진짜 석방 교섭을 벌여왔을까?

당시 알 아라비야 아랍위성 TV가 “납치범들이 요구시한을 연장했다”는 보도를 내보낸 경위도 미스터리다. 현지에서 알 자지라에 버금가는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는 알 아라비야 방송의 보도는 어떤 근거에서 나온 것이며, 그 정보를 제공한 세력은 누구일까.

김씨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끝이 없다. 감사원이 정밀 조사에 들어갔고, 여야는 조만간 국회 국정조사를 실시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국민은 이제라도 의문점이 속 시원하게 풀려지길 바라고 있다. 그것이 만리타국에서 비명 횡사한 김씨의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제2ㆍ제3의 희생자 발생을 막는 길이다.

■ 사건일지

- 2004.5.31 김선일씨, 팔루자 리나라가 지역 지나던 중 이라크인 1명과 함께 피랍
- 2004.6.21 오전 4시 알자지라 방송, 김선일씨 피랍 사실 공개
- 2004.6.21 오전 10시 최영진 외교차관 "피랍 불구, 파병 원칙 변함없다"천명
- 2004.6.22 오전 협상대표단 현지 도착, 알 자르카위측과 협상시도
- 2004.6.22 오후 6시 알 아라비야 방송, 한국인 억류 납치범 요구시한 연장 보도
- 2004.6.22 오후 10시20분 바그다드 팔루자 방향 35km지역에서 시신 발견
- 2004.6.23 새벽 0시45분 주 이라크 대사관, 이메일로 송부된 사진 김선일씨로 확인
- 2004.6.23 새벽 2시 알자지라 방송, 김선일씨 참수 관련 비디오 테이프 방영




배현정 기자 hjbae@hk.co.kr


입력시간 : 2004-07-01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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