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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선일씨 피살 쇼크] 제 말 씹고, 미국에 씹히고
김선일씨의 절규는 레임덕 조기 출현의 경고로
국가 관리 시스템의 와해인가, 도덕성 붕괴인가


"…this is your mistake…”(이건 당신의 실수입니다).

이라크에서 피살된 김선일씨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낸 유언의 일부다. 김씨가 실수로 규정한 이라크 추가 파병에 대한 찬반 논란을 떠나, 노무현 정부는 ‘ 있어서는 안될’ 실수로 집권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23일 침통한 표정으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외교부는 AP통신의 전화 통화를 은폐했다가 국가 망신에다 국민의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관련 부처의 안이한 대응과 보고 라인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면서 노 정권을 ‘거짓말 정부’로 폄훼하는 분위기가 고조돼 집권 2기 국정 운영은 초반부터 브레이크가 걸렸다. 노 정권을 이끌고 뒷받침 해 온 정치적 자산인 ‘도덕성’이 무너진 것이다.

노 대통령은 위기때마다 도덕성을 앞세워 국민을 상대로 정면 승부를 해 왔다. 지난해 10월, 측근인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대선자금 비리 때 꺼낸 ‘재신임’ 카드와 올 3월 ‘탄핵 승부’가 대표적이다. 노 대통령은 승리했고, 그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최근 논란이 된 ‘신행정 수도 이전’문제에 대해서도 승부수(MBC ‘100분 토론’ 출연)를 띄우려 했다.

그러나 김선일씨 사건으로 노 정권의 정치적 기반은 뿌리부터 흔들려 ‘ 국민의 지지’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정가 일각에선 노 정부의 레임덕(임기말 권력 누수 현상)이 훨씬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선일씨 사건은 노 정부의 내적 기반(도덕성) 뿐만 아니라 외적 기반에도 회의를 품게 했다.


- 국가 관리 시스템 와해 노출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 초기부터 이전 정부와의 차별화를 내세우며 ‘시스템 통치’를 강조했다. 각종 사건ㆍ사고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며 ‘국가위기관리시스템’도 만들었다. 그러나 김씨 사건에서 드러난 외교부, 국가정보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 외교ㆍ안보 관련 기관의 일 처리와 정보력ㆍ협상력 부재는 ‘시스템 통치’ 의 허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더욱이 이들 기관이 국내외 주요 정책의 입안ㆍ관리, 국민의 안전, 국가 기능의 바탕이 되는 정보를 총괄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하다. 특히 노 정부 들어 막강한 힘이 부여된 NSC의 정보 취합과 부처간 협조시스템에서 드러난 허점은 고스란히 노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정치권에선 벌써부터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시스템의 개조를 요구하며 노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이 실시하기로 한 국정조사도 노 정부에 적지않은 부담이다. 국정조사 자체만으로 노 정부의 집권2기 정치적 이니셔티브는 이미 물 건너 갔다. 이번 국정조사에서는 △외교부의 AP통신 실종확인 묵살 또는 은폐 여부 △대통령의 사전 인지 및 허위보고 접수 여부 △한ㆍ미공조 이상 △교민관리시스템 부실 여부 등을 다룰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이 과정에서 노 정부에 치명타를 가할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경우 정권 퇴진 압력도 배제할 수 없다.

생전의 고 김선일씨.(비디오 화면)

한미관계의 이상 기류도 노 정부를 위협하는 단초가 되고 있다. 한미 군사관계에 정통한 한 정보관계자(재미 한국인)는 “ 한미관계가 계속 악화될 경우 노 정부의 위기지수도 함께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 김선일씨 사건에서 나타난 한미 공조의 이상은 오히려 사소한 일”이라고 평했다. 대다수 정보관계자들도 “(이라크)현지 미군이 초기부터 김선일씨 피랍 사실을 알았으리라는 것은 ‘상식’”이라며 “ 미국이 노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들 논리대로라면 지난 6월 22일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원이 “ 미국이 피랍 사실을 알고도 그 사실을 우리 정부에 통보해 주지 않았다면 한미동맹에 심각한 문제"라고 한 것은 순진한(?) 항변인 셈이다.


- “미국의 불신이 김씨 사건 야기”

미군 소속의 한 정보관계자는 “ 노 정부가 이라크 추가 파병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일 때 미국은 주한미군 전체를 이라크로 보내거나 철수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노 정부를 압박한 일이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그는 주한미군 재배치와 용산기지 협상을 둘러싼 한미간의 갈등을 예로 들면서 “ 한미동맹의 불신은 단순히 군사 문제에 그치지 않고 경제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에 위기 상황이 고조돼 외국 자본이 빠져나갈 경우, IMF사태 때보다 훨씬 심각한 경제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경기도 파주에 설립키로 한 세계적인 LG필립스 LCD 단지는 주한 미군 재배치로 한반도 위기 상황이 점증했을 당시 중국 상하이 이전설이 불거져 외국 자본이 대거 중국으로 이탈할 것이라는 소문의 진원지가 되기도 했다.

김선일씨 피살 이후 추가 파병 논란과 파병부대의 안전이 노 정부의 복병으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 6월 18일 이라크 추가 파병안이 최종 결정됐지만, 그 직후 여야 50명 의원의 서명으로 ‘ 추가 파병 중단 및 재검토 결의안’이 제출됐다. 게다가 김선일씨 피살로 추가 파병에 대한 여론이 양극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만일 반대론이 과반을 넘게 되면 정치권은 이를 외면하기 어렵게 되고, 결국 노 정부를 압박하는 쪽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자이툰부대가 주둔하는 곳이 알려진 것과 달리 매우 위험한 지역인 것도 노 정부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파병 지역은 처음 나자프 등 중남부 4개 지역이 거론되다가 북부 키르쿠크 지역으로 결정됐지만 다시 안전을 이유로 북부 아르빌 주로 최종 확정됐다. 그러나 아르빌에선 지난 2월 쿠르드 자치당 건물 등에 대한 자살 폭탄 테러로 109명 사망자를 포함해 25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정도로 치안 상태가 불안하고, 쿠르드족 자치 지역으로 이라크와는 상극 관계여서 항상 저항 세력의 표적이 되고 있다. 종족간, 종파간 갈등이 심해 내전이 끊이지 않는 것도 자이툰 부대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다. 만일 자이툰 부대원 중 ‘ 제2의 테러’ 대상자가 나온다면 철군론과 함께 노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할 것은 자명하다.

노 대통령은 김선일씨 피살이 알려진 직후인 6월 23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테러 행위를 강력히 규탄하면서도 파병의 불가피성과 일관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노 정부는 내부적으로 국민의 불신과 이라크 현지의 위험성이 점증하는 외부적 악재에 직면해 있다.

김선일씨가 절규한 노 대통령의 ‘실수’(추가 파병)가 어떠한 반향으로 되돌아 올 지 국내외 상황은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고 있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


입력시간 : 2004-07-0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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