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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선일씨 피살 쇼크] 죽음의 납치 행렬…‘제2 김선일’ 경고등
알 카에다 조직 산재한 중동 전역 추가 테러위험 고스란히 노출
'표적 된' 한국 교민안전 발등의 불, 정부 확실한 대응책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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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서 피살된 고 김선일씨가 고국으로 돌아오던 날 민주노동당과 외교부 간에 또 다른 ‘은폐’ 논란이 일었다. 민노당 권영길 의원은 6월 26일 김씨의 시신이 안치된 부산의료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10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체류 중인 태권도 사범 김모(33)씨를 아랍인 2명이 납치하려 했으나 실패하는 등 (김선일씨 외에) 아랍권 현지 교민들의 피해사례가 더 있었다”며 “우리 대사관이 이를 알고도 은폐한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다음날 “아랍인 2명이 김씨의 인적사항 등을 문의했었다는 신고를 받고, 김 사범에게 당분간 거처를 옮겨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것을 권유했다”며 “은폐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양측은 서희ㆍ제마 부대의 이라크 파병 이후 총 5건의 교민 피랍 혹은 신변 위협 사건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김선일씨 피살 사건을 계기로 ‘교민보호’ 문제가 우리 사회의 현안으로 부각된 것이다.

그러나 김선일씨의 피살에서 드러났듯 지금과 같은 국내외 관련 기관의 처신과 역량으로는 교민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어서 제2, 제3의 김선일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 수많은 경고신호에 허술한 대응





김선일씨 피살 사건은 그동안 수많은 ‘경고 신호’를 간과한데서 비롯된 비극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지난해 11월 30일 이라크에서 오무전기 직원 2명이 사망하고 2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사건을 시작으로 지난 4월에는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던 민간인 2명(4일)과 7명의 목사(8일)가 무장세력에 의해 납치됐다가 풀려나는 일이 일어났다.

그러나 교민 안전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책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지난 4월부터 세계 각 지역을 신변 안전 위험 정도에 따라 4단계로 구분하는 ‘여행경보공지제도’를 시행한 게 고작이다. 이 제도에 따르면 이라크는 긴급한 용무가 아니면 귀국을 권고하는 여행을 자제해야 하는 3단계에 해당한다.

또 이라크내 테러 세력은 미국 민간인과 이탈리안 군인을 참수하면서 파병을 추진하는 한국에 대해 여러 차례 경고를 보내왔다. 그러나 이라크 파병과 교민보호 등을 지휘해온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비롯해 관계 당국과 해외 공관은 체계적인 대책을 마련하는데 소홀했다. 김선일씨 사건은 그 해결 과정에서 정부의 무능력과 함께 사전 대책이 전혀 떱천프?않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바그다드에서 활동 중인 프리랜서 PD 김영미씨는 6월 22일 파병 강행 발표가 나오자 제2, 제3의 한국인 납치ㆍ살해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김선일씨가 피살된 직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한국대사관 직원을 통해 김씨가 5월 31일에 납치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김선일씨의 피랍 시점과 관련, 충격을 던졌다. 그는 김선일씨 피살 사건을 계기로 교포나 외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들의 신변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며 정부의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교민보호 대책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4월 기준으로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중동지역 20여국에 거주하는 교포는 7,000명 가량이다. 일시 거주민까지 합치면 1만명 정도. 이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 교민이 1,100여명으로 가장 많고, 리비아 1,010여명, 아랍에미리트 980여명, 이집트 650여명, 요르단 180여명 등이다. 이라크 교민은 대사관 직원과 교민, 상사원 등 70명 정도에 이른다.


- 잔류 선택한 교민 상당수

김선일씨 피살을 계기로 이라크 교민 대다수가 귀국을 서두르고 있지만 20여명의 교민은 그대로 남아있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의 다른 국가 교민들도 일부만이 귀국할 뿐 대부분은 현지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김선일씨를 살해한 테러 단체와 유聆?알 카에다 추종 단체가 30여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데다 각종 모방범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신변에 대한 교민들의 위기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특히 이라크전 이후 대규모 반미테러가 잇따르는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등은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교민의 위기는 중동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알 카에다를 비롯한 무장세력들이 이슬람을 매개로 연계, 종교와 지역을 초월해 테러위협을 확산해 나가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이슬람 테러단체의 활동이 없는 태국에서 정부의 이라크 파병 방침 철회를 요구하는 협박편지가 한국 대사관에 배달돼 전세계 어느 곳에서도 한국인의 신변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정부가 테러세력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추가 파병을 강행하고, 이라크 주권 이양에 따른 테러가 빈발하면서 교민들의 신변 위험은 이제 최고 수위에 도달했다. 외국어대 이란어과 유달승 교수는 “이라크 주권 이양을 앞두고 각 계파간 헤게모니 쟁탈전이 가속화 돼 추가 테러 가능성이 높다”며 “미국과 동맹국이 주된 표적이어서 중동 전역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한 테러가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한양대 이희수 교수(문화인류학과)는 “후세인 체제 붕괴후 이라크는 테러세력의 무풍지대가 됐다”면서 “이들이 민간인을 표적으로 하는 것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으로 ‘제2의 김선일’은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교민 보호에 대해 우리 정부는 확실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중동지역 교민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존의 것과 구분되는 특별한 보호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해 고민의 단면을 드러냈다. 단 김선일씨 사건을 교훈삼아 정보력을 강화하고 관련 국가와의 협조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일본의 전례에서 배워라

외국어대 중동연구소의 김정명 교수는 “일본은 자위대를 파견하기에 앞서 이라크 지역 종교지도자를 비롯해 영향력 있는 인사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인접국가들과 협조체제도 유지했다”면서 “1년 전에 파병을 한 한국은 교민안전에 대해 준비를 한 게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지금부터라도 민간 차원의 교류를 통해 교민을 보호할 수 있는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알 자지라’와 같은 영향력 있는 언론매체를 통해 한국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꾸준히 홍보해나가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라크의 대내외 사정을 고려할 때 한국 입장에선 테러와의 전쟁이 아닌 테러에 대한 사전 대책이 ‘제2의 김선일’을 막는 현명한 선택인 셈이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


입력시간 : 2004-07-01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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