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군 주민들 "공시지가 보상만으로는 살길 막막" 울상주변지역은 땅값 상승에 고무, 투기 세력들 벌써 진 치기도

[신행정수도를 가다] 후보지 안은 사색, 밖은 화색
연기군 주민들 "공시지가 보상만으로는 살길 막막" 울상
주변지역은 땅값 상승에 고무, 투기 세력들 벌써 진 치기도


신행정수도 후보지에 포함된 충남 연기군 남면 주민들이 부동산 중개소 앞에 모여 있다. 임재범 기자

7월 5일 신행정수도 후보지로 충남 연기ㆍ공주가 사실상 확정되면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정치권에선 수도 이전 공방이 가열되고 국민 여론도 시시각각 찬반으로 나뉘는 등 전역에 행정 수도 신드롬이 확산되고 있는 것. 그러나 해당 지역인 충청권에선 자치 단체와 주변 지역 주민들이 수도 이전에 일제히 환영을 나타낸 반면, 후보지 내 주민들은 이주와 보상에 대한 걱정으로 반발을 하는 양면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유가 뭘까. 서울을 벗어나 충청권에 들어서면 그에 대한 의문은 서서히 풀린다. 충남 천안ㆍ남공주를 거치는 동안 행정 수도 이전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즐비하지만 막상 후보지로 지정된 연기(남면ㆍ금남면ㆍ동면)와 공주(장기면)에는 한두 개의 축하 현수막이 불안하게 걸려있을 뿐 들뜬 분위기는 좀처럼 감지되지 않는다. 후보지의 안과 밖이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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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군 남면은 신행정 수도가 들어설 경우 중앙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이다. 지난 8일, 남면 종촌리의 한 음식점을 찾았을 때 이 곳에서도 화제는 단연 행정 수도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반응은 싸늘함을 넘어 분노마저 띠었다. 남면 번영회 김관수 회장(63ㆍ농업)은 “ 나라에서 균형 발전을 위해 행정 수도를 옮긴다는데, 누가 반대하겠어요. 그러나 원주민들이 살 수 있게끔 대책을 마련해 줘야죠. 공시지가 보상으로 농사만 짓던 사람들이 어디에서 살 수 있겠어요”라며 언성을 높였다. 김 회장은 “ 고향은 천금을 주고도 못산다”면서 “ 자자손손 이어 온 역사가 무너지는 것은 어떻게 보상하겠느냐”며 따졌다.


- 대대로 이어온 마을 역사는 어쩌나

옆에 있던 주민자치위원회 임창철 위원장(52ㆍ자영업)은 “ 마을 앞에 전국으로 통하는 도로가 뚫려 대전ㆍ천안이 발전하면 저절로 발전할 수 있었는데 행정 수도로 땅을 팔게 되면 보상을 받더라도 빚을 갚고 나면 살 길이 막막하다”고 거들었다. 남면 이장단 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임만수씨(58ㆍ농업)는 또 다른 측면에서 행정 수도 이전에 반대 논리를 폈다. 임씨에 따르면 연기군 남면ㆍ동면, 공주시 장기면 일대는 600여년의 역사를 지닌 부안 임씨 집성촌이 있는데, 행정 수도가 들어서게 되면 부안 임씨의 역사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 임씨는 “ 보상 방법도 문제지만 조상의 묘가 더 걱정된다”고 말했다.

충남 연기군 외곽지역인 조치원의 푸르지오 아파트 분양일인 8일 타지역에서 온 사람들과 일명 떳다방이 몰렸다. 임재범 기자

반면 남면 종촌리 입구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S공인중개사 이길수씨(56)는 “ 행정 수도 후보지로 지정된 후 거래가 거의 없는 상태”라면서 “ 그러나 주민들이 수도가 옮겨 오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씨는 “ 남면 지역 땅값은 2002년 대선당시 행정 수도 이전 얘기가 나왔을 때 이미 올랐고 현재 땅값에 반영돼 있다”며 “ 이곳 주민들이 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땅값 상승이 막힌 데 대한 박탈감, 소외감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충분한 보상이 보장되면 반대 여론도 수그러들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 양회리ㆍ송담리처럼 땅 소유가 많은 부촌(富村)은 수도 이전에 찬성하는데 반해 땅이 적은 사람들은 고향을 잃을까봐 반대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남면 신촌리에서 만난 한 농민(48)은 “ 현재 800여평의 논농사를 짓고 있는데 올해 1월 1일 공시지가 안내서(m²당 1만2,000원)에 따른 보상을 받게 되면 약 3,400만원”이라며 “ 이 돈으로는 도시에서 전세도 못 얻고 농사를 지을려고 해도 땅값이 올라 거지 되기 쉽상”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수도 후보値?지정된 지역의 주민들이 이주와 보상 문제로 고민을 하는 것과는 달리, 주변 지역은 땅값 상승에 고무돼 있는 분위기다. 공주시 의당면에서 자영업을 한다는 권모씨(52)는 “ 작년 행정 수도 얘기가 나올 때부터 땅값이 올랐는데 후보지가 확정된 뒤로 더 뛰고 있다”고 말했다. 권씨는 “ 농지를 알아보려는 외지인들이 최근 들어 자주 눈에 띤다”고 덧붙였다.


- 농지 알아보는 외지인들 발길 늘어

행정 수도 배후 지역에는 ‘ 투기’ 열기가 가득했다. 연기군 조치원읍에서 분양한 대우건설 푸르지오 아파트 모델하우스에는 서울은 물론, 부산ㆍ전북 등 지방에서 온 ‘ 떴다방’(이동중개업자) 200여명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8일 오전에 합동 단속반이 다녀갔지만 허사였다. 현장 관계자는 아파트 802세대 경쟁률이 10대 1을 넘었고 프리미엄이 평수에 따라 1,500~3,000만원이 올랐다고 귀띔했다.

대전에서 왔다는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 외지인들이 절반은 되는 것 같다”면서 “ 행정 수도 후보지가 결정되기 전인 3월에 있던 현대ㆍ대동건설 아파트 분양 때보다 P(프리미엄)가 1,000만원은 더 올랐다”고 말했다. 33평형에 당첨됐다는 한 주부(28)는 “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계약을 했는데 프리미엄이 1,800만원 붙었다”면서 “ 더 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 팔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논 열마지기 팔아 한마지기 못사"
- 공주시 장기면 이순기 노인

“ 대통령 말은 법이여. 대통령이 함부로 말하면 안돼지유”. 행정 수도가 들어설 공주시 장기면 도계리에 사는 이순기(72ㆍ농업) 노인은 행정 수도 이전에 대해 묻자 대뜸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비판부터 했다. 공시지가 보상을 언급한 노 대통령에 대한 힐책이었다. “공시지가로 논 열마지기 값이면 밖에서 한마지기 땅도 사기 힘들다”는 것. “평생 농사만 지어온 사람들이 무얼 하고 살겠시유? 농민들이 죽건 살건 관심이나 있시유?”

이씨는 7대째 장기면에서 살아온 토박이로 은용리에서 20년 가까이 이장을 하기도 했다. 지역 일대에서는 풍수가로도 유명해 지역의 크고 작은 일에 이씨의 ‘ 말발’이 컸다는 게 주민들의 얘기다. 이씨는 인생 대부분을 농업에 종사한 농민으로 행정 수도가 고향 마을에 들어오는 것에 이중적인 심리를 내보였다. “ 나라에서 결정하고 고향에 수도가 들어선다는 데 자부심도 없지 않지만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온 늙은이가 고향ㆍ인생 다 잃는 것 같아 썩 내키지 않어”.

이씨는 그러나 행정 수도 이전에 따른 정부의 보상 방침에 대해서는 무척 화를 냈다. 현실성이 없는 공시 지가 보상은 농민을 죽이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씨는 “ 계룡대(충남 논산시) 개발때 보상을 받은 주민이 주변 지역의 땅값 상승으로 거주할 수 없어 장기면으로 이주해 온 경우가 있다”면서 “ 고향 인근에 대토(代土)를 해 주거나 현실 보상을 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풍수가 입장에서 정부가 연기군 남면 전월산 부근을 행정수도 중심지로 삼겠다고 한 것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지역이 과거 늪지대여서 큰 건물이 들어설 수 없다는 것이다. “ 박정희 대통령 땐 땅을 살피는 데만 3년이 걸렸어. 급하게 일을 하니 엉뚱한데 터를 잡는 거여”. 이씨는 “ 박 전 대통령이 수도 이전을 추진할 당시 땅을 보러 온 정부 고위 인사를 통해 청와대를 국사봉에서 가까운 공주시 의당면 산아래 세우려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연기ㆍ공주=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7-15 14:15


연기ㆍ공주=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