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혐오의 끝없는 업그레이드, 사회 병리현상으로 고착화

[엽기사회] 엽기… 세상을 휘젓다
잔혹·혐오의 끝없는 업그레이드, 사회 병리현상으로 고착화

노인과 부녀자 20여명을 연쇄살해한 유영철(34)의 엽기적인 범행이 국민을 경악시킨 가운데 인터넷상에 유씨의 펜카페가 등장, 또한번 충격을 주었다. ‘살해짱 유영철씨 팬카페’라는 제목의 한 인터텟 카페는 공지의 글을 통해 “멋진 유영철씨 팬클럽이 되었으면 합니다. 즐거운 시간이 되어요”라며 유씨를 옹호했고, ‘영철씨 닉네임 공모’라는 별도의 코너를 만들기도 했다.

이 카페를 방문한 대부분의 네티즌은 비난하는 글을 올리고 카페 문을 닫을 요구했지만 일부 네티즌은 동조 내지 두둔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 네티즌은 “20명이나 10개월 동안 살해하면서 안잡히는게 쉬운 일입니까? 대단한 일 아닙니까? 더구나 부자ㆍ창녀만 죽인건데요”라며 유씨를 옹호했다. 또다른 네티즌은 닉네임 공모 코너에 호응해 ‘살해짱 영철스’라는 별명을 붙이는 등 살인자를 미화하기도 했다.

‘유영철 쇼크’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여러 포털사이트에 ‘엽기살인 유영철 19명’ ‘연쇄살인*검거’ 등의 카페가 등장, 희대의 연쇄살인범과 엽기적인 살인행각을 다룬 글이 올라오는가 하면 잔혹한 살해 장면의 사진과 동영상들이 급속히 퍼져 사회적인 충격을 증폭시켰다.

지난 6월말에는 가나무역의 김선일씨가 이라크에서 피살되었을 때 국민적 공분과 도덕적 호소에도 불구하고 김씨를 살해하는 끔찍한 장면의 동영상이 미국의 잔혹사이트를 통해 국내에 확산돼 이를 본 네티즌 일부가 실신하거나 구토를 하는 등 사회적인 충격이 적지않았다.

비난받아 마땅한 범죄행위가 미화ㆍ옹호되는 식으로 굴절되거나 잔혹하고 혐오스런 영상물이 거리낌없이 유포되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히려 더 자극적이고 기괴한 소스를 찾는 현상은 점차 확산되고 있고, 온라인상에서 현실로 뛰쳐나와 실제화 또는 범죄화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한마디로 일상성과 상식을 뒤집고 비웃는 ‘엽기(獵奇) 현상’이 사회 구조적으로 고착화ㆍ병리화하고 있는 양상이다.


- 인터넷은 엽기의 바다로 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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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처음 문화코드로 등장했던 ‘엽기’는 인터넷을 비롯해 만화, 영화, 소설, 사진 등 대중 매체를 통해 반인륜적 행위의 주제로 다뤄지면서 죄의식 없는 폭력, 살인 등 범죄행위의 주요 동인이 되고 있다. 나아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면서 엽기의 강도를 높여 웬만한 자극에는 충격을 받지않는 ‘자극 인플레이션 증후군’을 낳고 있다. 유영철이 거주하던 원룸에서 연쇄살인을 다룬 ‘공공의 적’, ‘베리 배드 씽’ 등의 DVD가 발견되고 영화속 살해 동기나 수법이 실제 유씨의 그것과 유사성을 띤 점은 주목할만하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엽기 신드롬’의 배후는 단연 인터넷이다.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이 ‘엽기의 바다’로 변질暄퓻逾품?있는 셈이다. 음란사이트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고, 심지어 자살ㆍ폭력ㆍ마약ㆍ폭탄제조 사이트 등 반사회적인 사이트만해도 국뼁?각각 30~50개에 이른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한 95년부터 올해 6월까지 불법ㆍ청소년유해사이트를 심의한 결과 10년 가까이 심의 건수가 20배 가까이 증가(2,032건®39, 784건)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명호 심의조정 1팀장은 “유해 사이트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도 문제이지만 그 내용의 변화 추세가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변태ㆍ잔혹ㆍ황당 등 ‘엽기적’ 내용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보통신윤리위가 올해 1월부터 6월말까지 심의한 건수는 모두 3만9,784건으로 이 가운데 ‘음란’ 기준에 걸린 것이 3만1,617건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한 팀장은 “과거 일반적인 음란사이트에서 동물과의 수간(獸姦)ㆍ아동 포르노ㆍSM(새디즘과 매저키즘 성희)ㆍ노예사이트 등 변태ㆍ가학적인 성을 다루는 사이트로 집중되는 추세고, 미국ㆍ일본 사이트의 엽기적 내용을 모방해 국내에서 제작한 엽기 사이트도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엽기토끼로 유명한 ‘마시마로’의 눈과 머리를 화살이나 총으로 쏴 파괴시키는 식의 살인ㆍ폭력을 게임과 접목시킨 사이트가 부쩍 늘어난 것도 최근의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의 보급이 확산되면서 ‘노란 국물’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젊은 여인이 목구멍에 손을 집어 넣어 노란 구토물을 그릇에 게워내고 다시 먹는 지극히 혐오스러운 동영상으로 충격과 함께 엽기물의 대명사로 네티즌 사이에 크게 회자됐다.

‘노란 국물’처럼 혐오스런 장면이나 고 김선일씨를 살해하는 모습 같은 잔혹한 장면을 동영상으로 보여주는 스너프 필름(Snuff Film)은 그 자체로서 충격적이지만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거나 최근엔 포르노 사이트와 연결돼 네티즌들을 비이성적ㆍ비합리적 집단 최면상태로 몰아가 사회의 도덕적 기반을 마비시키고 있다.


- 도덕적 기반 무너져

이러한 엽기 잔혹 사이트는 특히 이성적 판단 능력이 뒤떨어지는 청소년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범죄로 현실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난 2001년 3월 광주에서는 중학생 양모군(14ㆍ중3)이 잠자던 친동생(11ㆍ초등4)을 흉기로 마구 찔러 숨지게 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당시 양군은 경찰 진술에서 “살인을 하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어 아무 이유없이 동생을 살해했다”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했는데 경찰에 따르면 양군은 인터넷 엽기 사이트에 자주 드나들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양군을 수사했던 광주동부경찰서 강철구 형사는 “양군은 범행 1년전부터 폭력적인 컴퓨터게임에 몰두해 게임에 나오는 등산용 도끼를 구입하고 ‘좀비’라는 홈페이지엔 ‘살인’을 암시하는 글을 올리곤 했는데 폭력적인 게임에 심취해 있다가 자신도 모르는 와중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안다”며 “평소에 닭의 뼈다귀를 모으는 취미가 있던 것을 보면 엽기적인 사이트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군 사건에 한달 앞선 2001년 2월 부산에서는 고교생인 최모군(19ㆍ고3)이 엽기 사이트의 영향을 받아 친할머니를 난자해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최군을 수사한 부산금정경찰서 김상현 형사는 “최군이 귀신ㆍ유령이 나오는 호러물 엽기 사이트를 자주 봤고, 그 사이트에 나온 귀신이 할머니 몸으로 들어가 범행을 저지르게 됐다고 진술해 엽기 사이트와 범행 간에 상관 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엽기 인터넷이 범죄의 온상, 또는 통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자살 사이트와 폭탄제조 사이트 등이 대표적. ‘아나키 파일’이란 책을 번역한 것으로 알려진 폭탄제조 사이트는 강력한 단속으로 거의 자취를 감췄으나 자살 사이트는 국내서 운영되는 것만 30~40개에 이르고 실제 현실로 이어진 경우가 여러 차례 있다. 지난 4월 전북 무주 산장에서 동반자살을 시도한 남녀 5명(3명 사망)은 자살사이트가 매개체가 됐다. 사건을 담당했던 무주경찰서 이연재 형사는 “혼자 죽는 것이 두려웠던 이들은 자살 사이트를 통해 5명이 모이자 자살을 감행했는데 살아남은 사람 얘기를 들어보면 군중심리 때문에 따라 죽은 측면이 있다”면서 “자살 사이트가 없었다면 자살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해 엽기(자살) 사이트가 자살의 매개체가 됐음을 분명히 했다.

엽기 문화는 네티즌들이 ‘엽기동호회’를 구성, 엽기물을 다양화ㆍ집적화ㆍ자극화 하고 있고, 서버를 국내 단속이 미치지 않는 외국에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아 더욱 확산되고 있다. 한 포털업체의 커뮤니티 코너에 엽기동호회가 운영하는 사이트는 상상을 초월하는 ‘엽기성’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시체를 토막내 살인하는 장면, 권총으로 머리를 쏴 자살하는 장면,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진 알몸시체, 심지어 부검이나 성전환 梔珦躍浴沮?등장한다.


- "사회적 소회감 가상세계에 의존" 분석

정보통신윤리위의 한명호 팀장은 “국내 엽기 사이트는 70% 가량 시정되지만 외국에 서버를 둘 경우는 통제할 방법이 없다”면서 “외국의 엽기 사이트도 문제이지만 외국에 서버를 둔 국내 사이트 운영자들의 실태가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준호 교수는 엽기 풍조가 확산되고 있는 것에 대해 “사회 구조의 부조리, 즉 소외자,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ㆍ가지지 못한 자들이 합리적 대우를 받지 못하고 부당함을 해결해줄 통로가 없을 경우 가상 세계에 의탁하거나 기존 사회체제를 부인하는 행태로 나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공간에서 ‘엽기성’은 극한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엽기 문화의 폐해를 막고 확산을 방지하는 최선책은 인터넷 자체보다는 사회 구조를 개선하는데 있다”면서 “특히 10대 네티즌들이 엽기 사이트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것은 대입위주의 소수자를 위한 교육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기획수사팀
   

"자극·엽기적 사이버범죄 증가일로"

경찰청 수사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95년 해커수사대로 출발, 2000년 7월 현재 명칭이 부여됐다. 인터넷이 사회 생활의 중요 기반이 되면서 해킹과 바이러스 유포 등 정보화의 역기능에 따른 사이버 공간의 위협을 막고 사이버 치안을 유지하는 데 주목적이 있다.

그러나 자체적으로 수사를 하지는 않고 수사 의뢰가 들어오면 법률검토를 거쳐 지방청에 수사지시를 내리는 일을 한다. 기획수사팀의 송병일 팀장은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서 수상한 점이 보이면 관할 경찰서에 그 사실을 통보한다”면서 “네티즌들이 사용하는 최신 용어를 추적하는 게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이 바닥에선 ‘자살’이란 단어가 금칙어로 돼있어 ‘비사회적인간’으로, 마약은 ‘주사기’, ‘증류수’ 등으로 표기한다.

사이버 범죄는 증가일로에 있는데 박찬엽 기획수사팀원은 “2000년 대비 2003년의 경우 전체 사이버 범죄 건수는 13배 늘었는데 청년실업이 심화하면서 청년층의 범죄가 두드러져 무려 25배나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엽기 사이트에 중독된 청소년들이 가상세계와 현실을 혼동해 범행을 저지른 경우가 있어 사이버 치안을 유지하는데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 팀장은 “사이버 문화가 확산되면서 온갖 엽기물들이 문화와 시대 트렌드에 맞춰 생성되고 있다”면서 “특히 패러디가 더 자극적, 엽기적, 말초적인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과 맞닿아 왜곡되는 있다”고 지적했다.

박종진 기자

정민승 인턴기자


입력시간 : 2004-07-29 14:21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