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가 낳은 최고의 색채 마술사슬라브족 특유의 환상성과 신비함 접목시킨 독특한 화풍의 거장

[色의 幻-샤갈展] 샤갈은 누구인가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색채 마술사
슬라브족 특유의 환상성과 신비함 접목시킨 독특한 화풍의 거장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색채 화가 마르크 샤갈(1887~1985)은 러시아 비테프스크(현 벨로루시) 출생의 유대인이다. 20대 초반부터 그는 고향과는 멀리 떨어진 파리, 미국에서 활동하며 예술가로서의 성공을 거뒀다. 이렇게 유대인이면서 러시아인이라는 점, 그리고 생애의 거의 대부분을 서구에서 이방인으로 활동했다는 점, 바로 여기에 샤갈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정체성의 문제가 있다.

샤갈의 위대성은 20세기 세계 화단을 풍미했던 입체주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등 다양한 아방가르드 미술의 흐름을 두루 소화해내되 이 모두를 넘어선 독창적 작품 세계를 이룩했다는 점에 있다. 샤갈의 생애에는 인종 박해, 이념 분쟁, 전쟁으로 점철된 20세기의 세계사가 그대로 굴곡 지워져 있다. 결코 그의 그림들에 나타나는 환상적 세계처럼 화려하지도 달콤하지도 않았던 생애, 하지만 그 생을 버텨냈기에 자신만의 독창성을 확보할 수 있었고, 나아가 세계인의 보편적 정서에 공감을 일으키고 짙은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샤갈의 본명은 모이셰 세갈. 1906년 유대인 화가 예후다 펜의 작업실에서 미술 수업을 시작한 그는 이듬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진 수정 작업실의 조수로 일하면서 간판 화가 훈련을 받는다. 여기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1910년 파리로 건너가 앙데팡당 전에 출품하는 등 4년간 생활하다 1914년 베를린에서 최초의 개인전을 열었다. 이듬해 3개월 예정으로 고향으로 가 첫 부인 벨라와 결혼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파리로 돌아오지 못한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샤갈은 고향 비테프스크에 미술 학교를 열고, 1920년에는 모스크바 국립 유대인극장의 패널화를 제작한다. 1922년 다시 러시아를 떠난 그는 1924년 파리 바르바장주 - 오데베르 미술관 회고전을 계기로 앙드레 말로와 친교를 맺는다. 앙드레 말로는 이후 샤갈의 그림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시절, 샤갈은 특유의 환상적 화풍으로 초현실주의 미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면서 파리 화단의 유력한 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치의 유대인 박해가 격화되자 샤갈은 다시 1941년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한다. 2차대전 종전 후 1947년 파리로 돌아와 1950년부터는 프랑스 남부 생폴드방스에 영구 정착했다. 1973년 고향을 떠난 지 51년만에 구 소련을 방문해 모스크바 트레티아코프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이 해 프랑스 니스에 국립샤갈미술관이 개관된다. 1977년에는 프랑스 레종도뇌르 훈장을 받고 루브르 박물관에서 회고전이 열린다. 1985년 그는 생폴드방스에서 20세기와 함께 했던 98년의 긴 생애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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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브 지역 특유의 환상성과 유대인의 신비성을 결합시킨 독특한 화풍, 하늘을 나는 연인 등 소박한 동화의 세계 같은 화폭…. 샤갈의 자유로운 공상, 화려하면서도 따스한 색채는 시공을 넘어 보는 이의 마음을 정화시킨다. 인간의 원초적 감정인 향수와 동경, 사랑과 낭만 등 우리 삶이 갖는 밝은 측면을 샤갈 만큼 긍정한 작가도 드물다. 그것이 샤갈을 20세기에 명멸한 수많은 화가들 가운데서도 여전히 가장 사랑받는 화가로 남게 한 이유일 것이다.

하종오기자


입력시간 : 2004-08-05 15:31


하종오기자 joh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