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 경제대국 중 가장 높은 성장 잠재력, 국내 대기업 러시아 진출 러시풍부한 지하자원·세계최고의 기술력, 2050년 세계 6대 경제대국 등극 예상

[러시아 러시] '기회의 땅' 러시아를 연다
신흥 경제대국 중 가장 높은 성장 잠재력, 국내 대기업 러시아 진출 러시
풍부한 지하자원·세계최고의 기술력, 2050년 세계 6대 경제대국 등극 예상


모스크바에서 열린 2004 삼성 모바일 로드쇼에서 관람객들이 한국가수로부터 사인을 받고 있다.

간단한 국제상식 문제 하나. 최근 수년간 고도 성장을 지속하고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세계 최대의 원유 수출국 자리를 다투고, 동시에 한반도 주변 4강중 하나인 나라는? 정답은 러시아다.

철의 장막을 걷어낸 후 10여년간 자본주의 학습의 긴 혼란기를 거친 ‘북극 곰’ 러시아가 마침내 숨겨졌던 저력을 과시하며 세계 경제의 주요 축으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안보 외교에 주로 치우쳤던 대러시아 관계에서 벗어나 경제 협력 및 교류의 폭을 더욱 확대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의 급부상이 새삼 지구촌의 관심사로 대두된 것은 지난해 세계적인 투자증권사 골드만삭스가 브라질(Brazil), 러시아(Russia), 인도(India), 중국(China) 등 이른바 ‘브릭스(BRICs)’ 국가를 신흥 경제대국으로 지목한 보고서를 내면서부터. 골드만삭스는 세계 경제의 침체 속에도 유독 이들 국가만 성장 속도가 눈부신 데다 자원, 인구 등 잠재력 역시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중시했다.


- 외국인 직접투자 폭등세, 바이 러시아 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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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만삭스의 보고서는 특히 이들 4개국 중 러시아의 잠재 성장력이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교육 수준이 높은 1억4,500만 명의 인구, 석유와 천연가스 등 풍부한 지하자원, 우주ㆍ항공ㆍ통신 분야 등에서 보유한 높은 기술력 등을 감안하면 러시아가 일류 국가로 올라서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라는 전망이다. 향후 연평균 4%대의 경제성장률을 전제로 하기는 했지만, 러시아가 2050년 무렵엔 1인당 GDP 5만 달러의 세계 6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게 골드만삭스의 결론이다.

미래에 대한 장미빛 전망과 별개로, 이미 러시아가 실질적인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는 분석도 있다. 세계은행의 자료를 인용한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의 7월19일자 보도에 따르면, 각국의 물가 차이 등을 감안해 실질 구매력 기준으로 환산한 러시아의 지난해 GDP(국내총생산)가 세계 10위라는 것이다.

이처럼 러시아 경제에 대한 지구촌의 최근 시선은 사뭇 긍정적이다. 불과 수년 전인 1998년 모라토리엄(국가 채무 지불유예)을 선언하며 심각한 경제위기에 시달렸던 러시아는 이제 온데 간데 없다.

러시아의 놀라운 변신은 1999년부터 지금껏 이어진 국제 유가 상승세라는 대외적 행운에다, 2000년 취임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강력한 개혁 정책이라는 대내적 노력이 맞물린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실제 러시아의 각종 경제지표는 달라진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다. GDP 성장률은 1999년 이후 2003년까지 5년 연속 플러스를 기록중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7.3%라는 높은 성장률을 보인 데다 올해 역시 국제 고유가의 덕으로 당초 목표보다 높은 6%대의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원유 수출로 벌어들인 ‘오일 머니’는 내수 시장에도 신바람을 불어 넣고 있다. 주머니가 두둑해진 중산층이 소비를 이끌고 기업들은 신규 투자에 나서고 있다. 공업 생산, 건설 물량, 교통량, 소매 거래량, 실질 임금 등 경제 성장과 관련된 다른 지표들도 거의 모두 가파른 동반 상승세다.

에너지 부문을 중심으로 한 외국 기업들의 대러시아 직접 투자 역시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영국과 미국의 메이저 석유 회사들은 러시아의 막대한 원유 저장고를 노리고 합작투자 등의 형태로 현지 진출에 소매를 걷고 나섰다. 현지의 비자 카드 발행사를 인수해 소비자 금융 부문 공략에 나선 미국의 GE사처럼 러시아 내수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외국 기업도 부쩍 늘고 있다.

이 같은 ‘바이 러시아’ 붐에 힘입어 2003년 대러시아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전년에 비해 70%나 늘어나는 폭등세를 보였다. 지난해 10월 러시아의 국가 신용등급을 두 단계 올려 투자적격 등급인 ‘Baa3’으로 상향 조정한 국제 신용평가기관 무디스의 조치도 청신호가 켜진 러시아 경제 상황을 적극 반영한 것에 다름 아니다.


- 한·러 교역 규모 惻??42억 달러

현대자동차의 모스크바 모터쇼에서 러시아 모델들이 투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래사진은 러시아 베스트 브랜드상을 받고 있는 삼성전자.

우리나라와 러시아의 경제 협력도 서서히 늘고 있다. 양국간 교역 규모는 1993년 16억 달러에서 10년 만인 2003년 42억 달러까지 올라왔다. 연 평균 10.2%의 높은 신장세다. 지난 7월 말 기준으로 대러시아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54.3%, 대러시아 수입은 56.9%나 늘어났다. 러시아의 경제 호황 덕에 자동차, 무선통신 기기 등 고가의 소비재 수출이 호조를 보였다는 게 한국무역협회의 분석이다.

특히 자동차는 올해 1~7월 중 240%가 넘는 눈부신 수출 증가세를 보였는데, 현대자동차는 러시아 수입차 시장에서 1위 자리를 놓고 일본 도요타와 엎치락뒤치락 할 정도로 선전하고 있다. 동유럽 지역본부를 아예 러시아로 옮긴 현대자동차는 신흥시장으로 부상중인 러시아와 동유럽을 적극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다른 국내 대기업들도 러시아에서 크게 환영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양대 가전회사는 지난 3월 열린 ‘2004년 러시아 국민 브랜드’ 시상식에서 인증 대상 7개 품목 중 6개 부문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두 회사는 일찍부터 현지에 밀착된 마케팅 활동을 벌여 러시아인들에게 일류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심어 왔다. 유통 부문에 일가견을 가진 롯데그룹은 현재 모스크바 중심가에 백화점과 호텔, 쇼핑몰 등을 함께 갖춘 대규모의 복합 빌딩을 건설중이다. 롯데그룹은 2007년께 이 빌딩이 완공되면 모스크바를 대표하는 새로운 명소가 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 "현지 진출·투자 늘려야"

이밖에도 적지 않은 국내 대기업들이 러시아 특수를 누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이 요즘 재계의 모습이다. 삼성, LG 등 재벌그룹의 CEO들은 러시아의 변화상을 직접 점검하기 위해 모스크바 등지를 자주 찾는다. 특히 9월로 예정된 노무현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은 재계에 러시아 붐을 촉발시킬 전망이다.

전문가들도 브릭스 국가 가운데 중국에 유달리 편중돼 있는 우리나라의 경제 교류 현실을 지적하며, 러시아를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러시아 직접 투자는 고작 2억 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정여천 연구위원은 “러시아의 정치 경제 상황이 불안했던 점은 있지만, 그럼에도 한국 기업들의 러시아 진출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던 게 사실”이라며 “이제는 급성장하고 있는 러시아의 잠재력에 주목해서 현지 진출과 투자를 보다 늘려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계기로 한ㆍ러 경제 교류가 보다 큰 걸음을 내딛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4-09-02 15:08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