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 정상회담, 철도·우주개발 등 경협논의가 핵심남북문제 등 외교 현안 이해폭 넓히기에 주력

[러시아 러시] 철의 실크로드에 북핵·에너지 싣는다
한·러 정상회담, 철도·우주개발 등 경협논의가 핵심
남북문제 등 외교 현안 이해폭 넓히기에 주력


지난해 10월 21일 방콕 APEC 정상회담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한러 정상회담을 갖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 오대근 기자

러시아는 기회의 땅이 될 것인가.

9월 말 노무현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한ㆍ러 정상회담은 그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를 위해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5월 말 러시아를 방문, 양국 정상회담에서 논의할 아젠다(agenda)를 조율하고 돌아왔다.

한ㆍ러 관계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당시 양국 고위 관계자는 정상회담의 핵심 아젠다로 △한ㆍ러 무역 및 투자 증대 방안 △한반도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연결 △이르쿠츠크 및 사할린 가스전 개발 등 에너지 협력 △우주과학기술 협력 등 4가지를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철도와 에너지 문제는 북핵 해결과 남북한, 러시아 3국의 공동 발전과 직접 연계된 분야로 정상회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해법을 모색할 계획이라는 전언이다.

‘무역 및 투자 증대 방안’과 관련, 러시아는 현재 중국에 비해 10분의 1도 안되는 한ㆍ러 무역에 불만을 가져왔는데 정상회담에서 한국측의 적극적인 교역과 투자를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국은 러시아측의 교역 조건과 절차가 까다롭다는 것을 지적하고 무역과 투자 장벽을 제거하거나 문턱을 낮추라는 주문을 할 것으로 전해진다.


- 러시아 우주선 한국인 탑승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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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땅' 러시아를 연다

‘우주과학기술 협력’에 대해서는 지난 7월 3일 한ㆍ러 외무장관 회담에서도 거론됐는데 2007년 러시아 우주선에 한국 우주인을 탑승시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또한 과학기술부는 2007년 러시아와 합작으로 발사체(KSLV-1. 로켓)를 개발, 본격적인 우주전쟁에 나선다는 계획도 있다. 이같은 스타워즈 프로젝트는 노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해 ‘한-러 우주개발협력협정(IGA)’에 서명하면 급물살을 타게 될 전망인데 2015년 독자적인 유인우주선 개발, 2020년 미국 주도의 달 기지 건설 참여에도 탄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유인 우주선’계획이 정부 차원의 프로젝트라면 국내 기업 중엔 정부와 연계, 스타워즈 프로젝트를 새로운 시장 개척과 성장 동력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S기업의 경우 러시아의 우주개발에 거액을 투자하는 대신 러시아 통신시장 진출과 향후 신(新)에너지로 주목받는 헬륨(H3) 개발계획에 참여한다는 복안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ㆍ러 정상회담의 최대 의제는 단연 에너지와 철도 문제다. 특히 푸틴 대통령이 노 대통령을 만난 직후인 10월 북한을 疫?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핵 문제 및 TKRㆍTSR 연결을 의제로 정상회담을 할 것으로 알려져 더욱 관심사가 되고 있다. 게다가 한ㆍ러간 에너지와 철도 문제는 양국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북한, 나아가 미국과 중국의 이해까지 얽혀 있어 노 정부에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던져놓고 있다.

러시아 에너지의 경우 북핵 해법의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중국과 일본에게는 자국 산업의 ‘생명줄’과도 같은 존재고 미국이 호시탐탐 중국 견제용으로 활용하려고 하는 등 복잡한 함수가 내재돼 있다.

노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일찍이 러시아 에너지를 통한 북한 문제(북핵, 에너지 난등) 해결에 교감을 나눈 적이 있다. 푸틴 대통령은 노 대통령 취임식 때 측근 인사인 알렉세이 밀러 가즈프롬 사장을 경축사절로 파견해 그 같은 입장을 밝혔던 것. 가즈프롬은 러시아 정부에 의해 극동ㆍ시베리아 지역의 에너지 개발을 위한 사업조정자로 임명된 업체로 노 대통령은 취임식 다음날인 2월26일 밀러 사장과 이례적인 단독면담을 갖고 북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러시아가 일정부분 기여해줬으면 한다는 희망을 피력했었다. 또 경축사절로 푸틴 대통령의 친서를 갖고 온 세르게이 미로노프 상원의장에게는 TKRㆍTSR과 에너지 개발문제를 언급해 러시아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나타내기도 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블라디보스토크의 러시아 극동함대 사령부를 방문, 함정을 둘러보고 있다.

그러나 수월하게 진행되던 한ㆍ러 관계는 노무현 정부가 지난해 7월 러시아 방문 약속을 깨고 중국을 먼저 방문하면서 어긋나기 시작해 러시아 에너지 활용, TKRㆍTSR 연결 논의도 물거품이 됐다. 따라서 이번 한ㆍ러 정상회담은 1년여의 진통 끝에 예전의 방문 약속을 복원시킨 셈이다.

러시아 에너지의 활용 방안과 관련, 한ㆍ러간에 기본틀에서는 큰 차이가 없지만 활용 대상 가스전과 용도, 절차 등에 있어서는 이견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다. 가스전의 경우 이르쿠츠크와 사할린 가스전이 거론되는데 일장일단이 있는데다 외생 변수들이 많아 넘어야 할 고비가 적지 않다. 북한을 비롯해 메이저 에너지사의 이해와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 한ㆍ일 해저터널을 추진하면서 TSR까지 넘보는 일본 등은 사할린 가스전을 선호하고 있는데 반해 국내 관계자들 사이에선 견해가 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르쿠츠크 가스전은 경제성에 약점이 있고, 사할린 가스전은 북한을 관통할 경우 북한에 대한 제어 방안이 선결과제라는 것이다.


- 철도문제, 남·북·러 조율에 논의

철도(TKRㆍTSR) 문제는 향후 중국과 일본과의 물류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남북한에 직결된 사안으로 에너지 문제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러나 철도에 대한 남ㆍ북ㆍ러 3국의 접근 방식이 달라 아직 별다른 진척이 없는데 지난 4월말 TKR과 TSR 연결 사업을 논의하기 위해 모스크바에서 가진 첫 3자회담은 그러한 입장 차이를 드러낸 채 끝났다. 러시아는 한국이 제의한 공동연구와 컨테이너 시험 운행 등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등 적극성을 나타낸 반면, 북한은 철도 개방이 가져올 정치적 파장을 우려해 재원 마련도 러시아의 단독투자를 요구하고 평양을 통과하지 않는 동해선을 연결 노선으로 선택하는 등 소극적이었다. 한국은 사업 타당성부터 따져봐야 한다는 경제논리에 비중을 뒀다.

극동문제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한ㆍ러 정상회담을 기화로 “TKR을 쥐고 있는 북한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에너지라는 당근과 러시아를 앞세운 채찍이 필요하며, TSR은 러시아가 아쉬워하는 부분을 우리쪽에서 채워주고 활용하는 윈-윈 전략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경남대 병설 극동문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TKR의 경우 북한 군부가 걸림돌인데 러시아를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고,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이 ‘강력한 러시아’ 를 표방하면서 극동ㆍ시베리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므로 이 지역에 기업 뿐만 아니라 정부, 민간 차원에서의 진출과 투자를 통해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ㆍ러 정상회담이 남북한이 안고 있는 과제를 풀 수 있는 하나의 기회를 제공할 뿐 해결책은 우리의 외교역량에 달려 있다고 충고한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9-02 15:18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