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안되면 밥도 못먹어요"마을은 온통 영어세상, 외국 생활 체험할 수 있는 '한국 속의 영어 섬'

[체험열풍] 영어마을 안산캠프
"영어 안되면 밥도 못먹어요"
마을은 온통 영어세상, 외국 생활 체험할 수 있는 '한국 속의 영어 섬'


9월 6일 오전 10시. 5대의 버스가 경기 안산시 선감동 ‘경기도영어문화원 안산영어마을’로든다. ‘쉬~이잇’ 전기밥솥 김빠지는 소리와 함께 버스는 영어마을 대문을 200여m 지난 출입구의 입국장(immigration) 관문 앞에서 멈춘다. 도착과 동시에 곧장 손님들이 향하는 곳은 입국심사대.

“Where are you from?”, “Can I see your passport?”, “What’s the purpose of your visit?”, “How long are you going to stay here?” 벽안의 심사관으로부터 교과서 영어 발음으로 쉴새 없이 질문들이 쏟아진다. 몇 년을 갈고 닦았다는 영어에다 교과서 발음이라지만, 시원한 대답을 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 ‘클래스 잉글리쉬’의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붉은 얼굴로 대답을 대신하는 이들이지만 가까스로 입국카드(arrival card)에 스탬프 하나씩 찍힌다. “Accept.”


- 식사예절 등 실제 생활영어 습득의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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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졸이며 심사대를 통과, 안도의 한숨 소리도 여기 저기서 들린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은행. 일주일 동안 캠프 생활을 하면서 잡화점(general store)에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EV(English Village) 머니’를 지급 받는 곳이다. 개인별 30달러(EV달러)씩 지급되게 돼 있지만, 줘도 못 받아가는 이도 있다. ‘영어가 안되면 여기서는 굶는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어.’ 도착 순간부터 영어 학습에 대한 강력한 동기가 부여되는 셈이다.

이들의 다음 행선지는 호텔의 프론트 데스크. 5박 6일 동안 묵을 방의 열쇠를 받는 곳이다. 물론 모든 절차는 영어로 진행되고 최종적으로 확인이 된 뒤에야 방 열쇠가 지급된다. 이날 손님들은 오산 운암중학교과 수원 정천중학교 두 학교 180명의 학생. 8월 말 문을 연 경기 영어마을 안산캠프 3기생들이다.

둘만 모여도 시끌벅적할 아이들이 너무 조용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입국(입소) 순간부터 이곳을 떠날 때까지 한국어는 한 마디도 허용되지 않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인솔하는 선생님들이 지시와 강의는 물론, 일체 시설물들의 안내 표지가 영어로 표기돼 있다. 한국의 여느 곳에서는 구경조차 하기 힘든 색상의 인테리어며 창가에 드리워진 차양막, 카페테리아의 의자, 교실의 책상 등등 모든 것이 이국적이다. 언어는 물론 모든 가구들이 낯설다. 가끔 보이는 환경 미화원 아저씨, 앞치마를 두른 식당의 아줌마 등이 유일한 위안일까. 이곳이 ‘한국 속의 영어 섬’임을 깨닫게 해 줄 뿐이다.

이튿날 정오. ‘Formal Dining Room’에는 성대한 만찬이 준비됐다. 입국심사장 – 은행 - 호텔 등 체험 학습의 연장선상에 놓인 학습이다. 수없이 외국을 드나들더라도 제대로 한번 익히기 어려운 만찬석상의 식사 예절과 영어를 실제 분위기와 상황을 연출해 가며 배운다. “학교 교과?? ‘Dialogue’를 완벽하게 소화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쓰려고 하니 실제와 다른 부분도 있는데다 알고 있던 것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김수진(14ㆍ오산 운암중)양. “실제 상황에서 한번 써먹은 표현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며 만족스러움을 감추지 않는다. “짧은 시간이지만 학생들은 공식 만찬석상에서 필요한 모든 영어와 예절은 여기서 다 배우고 나가는 셈입니다.” 전직 무역업자, 이갑돈 교육운영팀장의 말에는 영어로 허송한 세월이 담겨져 있다.

비슷한 시각의 또 다른 교실. ‘Egyptian Candy(이집트 캔디)’를 만들고 있는 쿠킹 클래스다. 원어민 교사가 영어로 된 조리법을 설명하고 그 설명에 따라 학생들이 직접 캔디를 만들어 보는 시간이다. 갖가지 재료를 용기에 넣고 버무릴 차례다. “Mix with your hands(손으로 섞으세요)”, 교사의 지시가 떨어지자 약속이나 한 듯 이구동성으로 되돌아 오는 소리. “Hands?(손으로요?)” 너무나 자연스럽다. “영어를 아무 거리낌없이 자연스럽게 쓸 수 있어 제일 좋아요.” 황지현(15ㆍ수원 정천중)양의 말마따나 영어를 쓰면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영어 마을 성공 비결 중의 하나다.


- 영어에 자신감 불어 넣는 교육방법

현재 경기 영어마을(www.english-village.or.kr) 안산 캠프에서는 도내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5박 6일 과정의 프로그램만을 운영하고 있다. 아침 7시부터 하루 일과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의 수업은 물론, 모든 일상생활을 영어로만 한다. 학생들은 전공과목으로 드라마, 아트, 사이언스, 뮤직 중 하나를 택해 집중적으로 듣고 1인당 참가비는 8만원. 여기에는 5박 6일 동안의 숙식비와 수업료, 교재비 등 일체의 비용이 포함돼 있다. 문을 연지 3주도 채 지나지 않은 캠프지만, 학교 관계자들은 물론, 학부모들의 입 소문을 타고 영어마을의 명성은 널리 알려진 상태. 벌써 내년 2월까지 예약 완료됐다.

건평 4,000평, 5만평 부지의 경기도공무원수련원을 리모델링 한 안산캠프의 호조에 힘입어 경기도는 2006년에 파주 통일공원에, 2008년에 양평에 각각 영어마을을 추가 개원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다. 각 자치단체서도 안산 캠프를 벤치마킹하고 영어캠프를 열기 위해 분주한 움직임이다. 또 주말을 이용한 가족단위의 1박 2일짜리 프로그램도 계획돼 있다. 이번 10월 초부터 진행될 이 프로그램은 경기도민의 경우 1인당 3만원, 타도민의 경우 6만원 정도가 될 예정이다.

어느덧 입소 5일째, 금요일의 로보틱스(Roboticsㆍ로봇 공학) 클래스. 영어로 된 지시를 보며 로봇을 만든 뒤, 영어로 만든 컴퓨터 프로그램을 입력해 프로그램대로 로봇을 움직여 보는 수업이다. 수업 분위기는 월요일과 화요일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변해 있었다. “Teacher! Teacher! Teacher!” 쉴 새 없이 선생님을 부르고, “Help me!, Help us!”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에 아랑곳 않는 교사에게 더러는 생떼쓰는 장면도 목격된다. 학교와 학교, 교사와 학생간의 벽은 이미 허물어진 터였다. 결국 영어를 말하는 데 있어서 상당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곳의 주중 프로그램에 예약된 학교는 대부분 오산, 평택, 안성 등 인근의 군소 도시에 있는 학교다. 영어에 대한 자신감은 학생들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수확물이다. “상대적으로 소외 받는 학생들이 5박 6일간의 영어마을 체험 덕에 가져 갈 ‘자신감’은 최고의 소득이죠.” 캐나다 출신으로 대만 등지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던 데어런(37)이 활짝 웃으며 하는 말이다.

정민승 인턴기자


입력시간 : 2004-09-15 15:13


정민승 인턴기자 prufrock@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