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중심, 40대는 꿈을 잃지 않는다건강한 에너지로 충만, 피해의식 떨치고 정체성 혼란 벗어나야

[한국의 40대-특별좌담] 한국의 40대의 정체성
한국사회의 중심, 40대는 꿈을 잃지 않는다
건강한 에너지로 충만, 피해의식 떨치고 정체성 혼란 벗어나야


국내 시사주간지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주간한국이 창간 40주년을 맞아 특별 좌담회를 가졌다. 주제는 주간한국의 40년 역사에 즈음해, 한국 사회의 중심 동력을 형성하고 있는 40대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취지에서 '한국의 40대의 정체성'으로 삼았다. 한국의 40대는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에 출생한 세대로 유신 독재와 고도 경제 성장,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5공 시대를 거쳐, IMF 경제위기를 겪은 '굴곡의 세대'로 향후 한국호의 행로를 결정할 주체다. 특별 좌담을 통해 한국의 40대의 좌표와 희망, 고민 등을 들여다 봤다.

일 시 : 2004년 10월8일
장 소 : 한국일보사
참 석 : 강헌(42, 대중음악평론가), 엄을순(48, '이프(if)'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정국헌(46, 배재대 교수), 전현희(40, 변호사), 홍성국(42, 대우증권 투자분석부 부장), 사회 : 박종진 기자

◎ 사회 : 오늘 주제가 '한국의 40대의 정체성'인데, 먼저 '40대'라는 연령이 주는 상징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개인적 내지 보편적 차원에서 말씀해 주시죠.

- 40대는 한국사회를 결정짓는 세대

▲ 강 헌 : 학부를 국문과를 나오고 대학원에서 음악을 전공한 후 사회 활동을 할 때 7년 가까이 함께 생활한 선배가 "40대 이후를 설계하지 말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1960년대 서구의 이른바 자유주의 문화가 들어올 당시 "Don't trust of thirty"라는 유명한 슬로건이 있었는데 30대가 되면 현실과 타협하고, 부패하고, 썩기 때문에 30대를 믿지 말라는 의미였죠. 서구의 30대는 한국의 40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저에겐 40대가 안 올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저에게도 2002년에 40대가 찾아 왔고, 그때 몸이 안 좋아 처음으로 쓰러져 우울한 40대를 맞았는데, 그 해 대통령 선거에서 40대의 반란으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고 새삼 40대의 힘을 느꼈어요. 결국 한국 사회를 결정짓는 세대가 40대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래서 내가 40대가 된 2002년을 의미 있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전현희 : 나는 작년까지 40대를 부인하다 올해 사실로 인정하고 받아들였어요. 원래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진로를 바꿨는데 제 인생 40년 동안 공부만 하면서 자신을 혹사하다시피 생활을 해 와 한번도 여유를 가져본 적이 없어요. 막상 40대를 생각하니 늙는다는 것인지 새로운 발전을 위한 좋은 현상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나 자신, 그리고 사회에 기여하면서 '행복한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요. 나에게 40대란 자신을 돌아 보고 인생의 여유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 홍성국 : 40대라면 55년부터 65년생까지 출생한 이른바 베이비 붐 세대죠. 바로 윗 세대가 일제말엽에 태어나 6ㆍ25 당시에도 초ㆍ중학교를 다니고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중반에 사회에 진출해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와 경제 제일주의로 취직도 잘 돼 사회적 지위와 부(富)를 가질 수 있었던 그런대로 편안한 삶이었다면, 40대는 세대간에 사회적 역할 부담이 가장 크면서도 경제적 위기와 바로 아래 세대의 도전을 받는 끼어 있는 전환기 세대로 우울한 세대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이러한 40대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도 마찬가지죠.


- 40대때 제2의 인생을 여는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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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을순 : 개인적으로 40대는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대학 졸업하고 결혼과 함께 남편과 미국으로 건너가 남편과 아이 뒷바라지 하면서 내 일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미국에서 인테리어 전문과정을 다니고 부동산 컨설턴트 공부를 했는데 이것이 나의 미래를 보상해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선 확신이 서질 않았어요. 그러다가 찾은 것이 '사진'인데 서울로 돌아온 40세때 전문대 사진과에 입학했어요. 졸업 후에 사진을 찍다 보니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여성 문제는 개인이 풀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페미니즘 잡지와 恝Ю?갖게 ?耭楮? 나에게 40대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출발점인 셈이죠. 오늘 이 자리에서도 40대 여성을 대변하는 얘기를 많이 할 생각이예요.

▲ 강 헌 : 엄 선생의 얘기에 공감을 하는데요. 집사람이 서른 다섯으로 공부도 할만큼 했는데 남편, 아이 생각하고 정작 자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했을 때 일이 없어 대입을 준비하는 고등학교 1학년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 엄을순 : 과감하게 행위로 옮겨야죠. 전문대 사진과에 다닐 때 주위에서 "미쳤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아마 한국에서만 40대까지 살았으면 힘들었을 지 몰라요. 한국에선 40대 여성과 남성의 라이프 시계가 달라요. 남성의 라이프 시계가 중간에 고장이 나도 계속 가는데 반해, 여성의 라이프 시계는 40대까지 거의 멈춰 있어요. 도전이 필요한데 한국 여성의 40대가 안타까워요.

점심시간을 이용해 세종문화회관 야외에서 열리는 공연을 관람하는 직장인들. 고도 경제 성장기를 지나온 한국의 40대는 문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 홍성국 : 오늘 참석하신 분들이 대개 전문직에 있는 엘리트들이신데, 보통 사람을 기준으로 얘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을 포함해 대부분의 중산층은 제 2의 인생을 자식을 보며 대리 만족을 느끼고 아이들이 크면 그때 가서 자신들의 인생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성이 40대가 되면서 모임이 많아지는 것은 그런 이유죠.

● 엄을순 : 조금 전에 남성의 라이프 시계와 여성의 라이프 시계가 다르다고 했는데, 남성은 40대 때 정체성에 혼돈이 생기지만 여성은 40대 때 정체성을 찾기 시작해요. 그런데도 한국에서 40대의 여성은 여성도 남성도 아닌 '제3의 성'에 머물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소외되는 경우가 많아요. 얼마 전 집에만 있던 친구를 과감하게 끌어들여 함께 일하고 있는데 처음엔 "자신이 없다"고 했다가 막상 일을 하면서 밤을 새우는 등 20대보다 열심히 일하는 경우를 보게 됐죠. 우리 사회가 40대 여성들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고, 여성 스스로도 자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봐요.

▲ 정국헌 : 77학번인데 유신 말기와 5ㆍ18을 거쳐 유학을 갔다 와 보니, 40대에 들어서 어떻게 40대 초반까지 달려왔는지 모르겠어요. 40대 후반에 내가 '현재 어디에 서있는가'를 생각하곤 합니다.

◎ 사회 : 40대를 불혹(不惑)이라고 하지만 요즘은 미혹(迷惑)이 적절하다고 할 정도로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고 하는데, 한국 40대의 '정체성의 위기'를 어떻게 보십니까.


- 사회·경제적 주도권 빼앗긴 40대

▲ 정국헌 : 40대 후반에서 지나온 날과 앞으로를 생각할 때 시간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20ㆍ30대가 빠르게 좇아오고 40대가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지 못하고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인상이죠. 40대 후반 같은 경우는 선배 세대와 후배 세대 사이에 '낀 세대'로, 정확하게 말하면 자기가 서 있는 자리가 인지가 안 돼 있고, 지금 자기 자신이 어디에 서獵째?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 강 헌 : 나는 생각이 다른데, 지금 한국의 40대는 가장 역동적인 세대라고 봅니다. 한국에서 최초로 자본주의적 욕망을 체감한 세대이고 자본주의적 가치를 알면서 혁명적인 욕망이 양립하고 있는 세대지요. 이에 반해 20ㆍ30대는 그런 에너지가 없어요, 그래서 후배들한테 "속도가 왜 그렇게 느리냐, 재미가 없다"고 농담을 하기도 합니다. 한국의 40대는 70년대 혁명적 낭만주의와 80년대 전투적 낭만주의를 거친 세대로, 현실 순응적인 20ㆍ30대를 만나면 싸움만 할 것 같애요. 물론 경제 때문에 비굴한 타협이 있기도 하지만, 40대의 정신은 20ㆍ30대보다 건강하고 에너지를 내재하고 있다고 봅니다.

▲ 정국헌 : 정체성 위기라는 것 자체가 사안에 따라 나눠질 수 있죠. 정치적으로는 개혁적 마인드를 가졌으면서도, 경제적으로 일단 살아야 한다는 매커니즘에 도태되니까 자본주의와 타협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40대 초반과 후반 사이에도 갭(gap)이 있어, 정체성 위기도 차이가 있죠.

● 엄을순 : 나는 잡지사 경영을 하면서 페미니스트 저널로 젊은 직원들이 래디칼한 내용을 담고자 했을 때 수위를 놓고 직원들과 싸우기도 하는데, 구매자와 경영을 고려해 현실과 타협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있어요.

왼쪽 부터, ▲ 강헌 ▲ 엄을순 ▲ 전현희

△ 전현희 : 요즘 정체성의 혼란이 오는데, 어릴 때는 개인적으로 어른이 되서도 순수한 생각을 갖고 정의로운 일을 실천하겠다는 일종의 신조 같은 것이 변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어요. 학생 운동을 하던 대학 시절이나 사회에 나와서도 무엇을 얻기 위해 싸워 왔는데, 40대가 돼 주류 자리에 들어 서면서는 저항하고 부정하던 정체성이 자기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 정국헌 : 40대가 우리나라의 메인스트림(main stream)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20ㆍ30대에 밀려 주류로서의 역할이 줄어 들고 있죠. 경제적으로도 CEO 개념이 벤처 사업의 등장과 함께 일반화됐는데, 벤처 사업 회장이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부의 재분배 면에서도 30대에게 주도권을 빼앗기는 바람에 소외감과 상대적 박탈감이 심화되면서 40대의 정체성의 위기도 가속화 된 것이 아닌 가 생각합니다.

● 엄을순 : 정체성 위기에서 여성과 남성 간에 차이가 있어요. 남성 40대는 쫓아 오는 30대와 싸워야 하는 데 반해, 한국의 라이프 사이클에서 여성 40대에게는 20ㆍ30대가 좇아 오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여성 운동에서 30대가 드문 것도 그 때문이죠.

▲ 정국헌 : 엄 선생은 외국에 오래 나가 있어 육체적 나이만 40대이지 정신적으로는 20대이신데, 한국에서 계속 살았다면 '일상화'돼 가는 과정에서 저항한다고 해도 삶에 묻혀 버릴 수도 있었을 겁니다. 사회 메커니즘이 고착화되면 우리가 바꾸려고 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어요.

◆ 홍성국 : 나는 좀 생각이 다른데 한국 40대의 정체성 위기는 일종의 '피해 의식'이라고 봐요. 우리 세대(40대)가 회사에 들어 왔을 때 50대는 40대 때문에 밀려난다고 생각하고 30대는 우리로 인해 언제 잘릴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데, 상대적으로 40대는 심리적 안정감이 있죠. 40대는 현실주의자인 30대보다 더 혁명적이지만 경제 문제 때문에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죠. 또 40대가 되면 부모 한두분이 돌아 가시는 경우가 있어 죽음에 대한 공포로 심정적으로 우울한 세대입니다. 정체성 위기를 논하는 것은 우리 사회 시스템의 기본 가정을 성장과 팽창이라는 인플레이션적 시각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디플레이션적 시각에서 보면 큰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정체성 문제는 40대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50대, 60대가 되도 마찬가지로 부과될 것입니다.


◎ 사회 : 지난 대선에서 40대는 노무현 정부의 탄생에 결정적인 힘을 보탰고, 그 어느 때보다 세대 갈등이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간(허리)세대 입장에서 세대 갈등을 진단해주시겠습니까.

- 갈등구조 조정자 역할을 기대한다

▲ 강 헌 : 1980년대는 공장의 노동자들도 엄청나게 의식화 해 대학을 나온 엘리트와 지적인 공감대를 형성했는데 IMF가 오면서 경제주체인 40대가 밀려나고 그 자리를 30대가 차지하면서 현실과 타협했고, 노동계층도 분열 -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오늘날 40대는 상당 부분 보수화 됐습니다. 문제는 70~80년대는 진보, 보수 상관없이 인문주의에 대한 신뢰, 환상 같은 것이 있었는데 웹, 칼라TV 멀티미디어 등의 등장으로 세대간에 문화적 공감대가 축소되거나 사라지면서 접점이 불투명해지고 갈등의 골도 깊어졌어요. 40대 중에는 무장해제하고 20ㆍ30대에 편승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40대도 많습니다. 인문주의의 종말과 함께 40대의 고립감과 위기감이 파생됐고, 세대 갈등의 중요한 원인이 됐다고 봅니다. 다행히 희망적인 것은 월드컵때 붉은악마, 노사모, 촛불시위 등에서 세대간 벽이 무너졌는데, 세대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 홍성국 : 민주화가 정착되고 이념 갈등이 축소되면서 오히려 세대 간 갈등이 커지고 있는 게 현실인데, 이것은 신자유주의 체제하의 전세계에서 동일한 현상이기 때문에 한국을 비하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갈등의 주된 원인이 사회적 계급이 고착화되는 것에 따른 것이고, 과거 민주화 투쟁이나 생존권적 노동 운동과 달리 위험이 훨씬 크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이죠. 현재 한국 사회의 갈등은 공평한 분배 문제를 중심으로, 연령 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식 세대 간의 갈등으로까지 심화되고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경제행위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누군가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데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주로 40遺遮?점에서 40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문화적 정체성을 얘기하면 끝이 없고 40대도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지만, 그래도 40대가 중심을 유지하고 잡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엄을순 : 홍 선생의 얘기에 전적으로 동의하는데, 나는 잡지사를 경영하면서 직원들이 오전 9시에 나와서 오후 5시에 퇴근하기를 기대했지만 20대 직원들은 "늦게 나오더라도 완벽하게 끝내면 되지 않느냐"고 해 갈등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밤 10시에 회사에 들렀을 때 직원들이 일하는 것을 보고 직원들 뜻대로 했는데,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는 문화적 코드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사회 :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해결하는데 40대의 역할이 있을까요.

▲ 정국헌(왼쪽) ▲ 홍성국

▲ 강 헌 : 40대의 역할과 관련해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대학을 나왔거나 블루 칼라이거나 문화적 헤게모니를 충분히 잡을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겁니다. 현재 미국이 세계 문화를 리드하는 것은 미국이 강대국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60년대 정치 실험은 실패했지만 문화를 확고히 지켰기 때문이죠. 오늘날 미국 음악은 60년대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일본만 해도 50대가 젊은 세대한테 대접을 받고 있어요.

한국의 경우 80년대 공장이건 학교건, 주류건 비주류건 현재의 40대가 문화의 주류를 형성했는데, 당시 문화 수요를 창출하지 못 해 20ㆍ30대에게 자리를 넘겨 주고 문화적 헤게모니도 빼앗겨 버렸죠. 40대가 자신들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이를 지켜가지 못 해 정체성마저 위협받게 된 것입니다. 40대가 한국 사회의 갈등을 조절할 수 있느냐 했는데, 나는 사회 자체의 역동성이 워낙 강한데다 40대가 조정자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힘을 잃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 홍성국 : 미국의 베이비 붐 세대는 한국보다 같은 세대보다 10년 정도 빠른데 IMF는 한국의 세대 교체를 10년 정도 앞당겼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 건 40대가 아이를 키우고 경제를 이끌어 가는데 한국의 갈등 구조가 워낙 복잡해 40대만이 조정자 역할을 하기는 어렵지만 그나마 가장 기대할 세대가 아닌가 해요.

◎ 사회 : 여야 정치권을 넘어 국민적 관심사가 된 과거사ㆍ국가보안법 논쟁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서도 평가해주시죠.

▲ 정국헌 : 과거사 청산이나 국가보안법 개폐가 중요한 문제인 것은 사실이지만 시기적으로 적절한가에 대해선 의문입니다. 과거사를 정리할 경우 어느 범위까지 할 것인가 불분명하고 정치적 목적도 있는 듯한 인상입니다. 국가보안법 논쟁도 정작 법을 다루기보다는 소모적 논쟁으로 흘러 국론분열을 조장하고 있는데 문제가 있는 조항을 개정하면 되지 않겠어요.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났듯 방향설정과 우선 순위에서 잘못이 있지 않나 생각해요. 자주 정치적 논쟁을 촉발시키는 것은 ‘경제부터 살려야 한다’는 민심과도 괴리가 있다고 봅니다.

▲ 강 헌 : 국가보안법은 당연히 페지해야 하고 과거사 문제도 원칙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국민이 여당에게 과반수 넘는 의석을 준 것은 한나라당 눈치 보지 말고 소신껏 개혁을 추진하라는 요구인데 여당이 주저하는 것은 권력에 안주하려는 부패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삐그덕거린 면이 있지만 참여정부 본래의 모습은 유지하고 있다고 봅니다. 특히 수도권 이전을 포함한 지방분권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 역대 어느 정권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경제를 앞세워 노 정부의 국정운영을 비판하는데 경제정책에 따라 한국 경제가 한순간에 바뀌는 것도 아니고 개혁으로 피해를 보는 기득권층이 발목을 잡는 측면이 있어요.

● 엄을순 : 과거사 논쟁은 ‘복수극’으로 변질되고 있고, 거론된 당사자에 국한해야 할 일을 자식들에게까지 마녀사냥식으로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국가보안법은 폐지해도 된다고 봅니다. 변화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 있어서 주저하는듯한데 호주제가 폐지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봐요.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중 다른 부분은 차치하고라도 초기에는 여성의 능력을 인정하고 강금실 법무부장관 등 여러명의 여성을 기용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여성 등용을 줄이고 기존의 여성 각료도 자리에서 물러나는 등 실망이 커요.

△ 전현희 : 과거사 문제는 청산할 기회가 왔을 때 실현해야 한다고 보고요. 국가보안법은 폐지해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선 이견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잘 하고 있다고 봐요. 경제정책에 대해 비판이 있는데 실제 효과를 거두는 부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폄하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 홍성국 : 국정운영에 대해 말한다면 여러 차례 거론되기도 했지만 개혁이라는 큰 틀은 옳았지만 구체적인 방향 설정과 순서 등에 있어서는 좀 더 고민을 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사회 : 끝으로 현재 관심을 두고 있거나 두고자 하는 부분, 그리고 40대로서 가장 큰 고민은 무엇입니까.

- 40대에 걸맞는 역할 하고 싶다

◆ 홍성국 : 가장 큰 관심은 나와 내가 속한 여러 공동체에서 어떻게 역할을 잘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나와 내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중간의 경계를 유지하면서 등산이나 문학, 여행 등 자아 실현을 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는 공동체에 기여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한국 40대의 90% 이상이 나와 같을텐데, 한국은 미국과 같은 개인주의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은 40대 중심으로 흘러 가면서 끝까지 희생을 요구할 것 같습니다.

△ 전현희 : 40대 이전에는 나 자신의 발전을 위해 일, 공부를 해 왔는데 나이 들면서 바뀌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타인에게 고용돼 내 일만 하면 됐지만 이제는 직원을 거느린 책임 있는 자리에 서게 돼 직원들을 챙겨줘야 하고 여타 사회 활동에도 참여하면서 최선을 다 하려고 해요. 요즘도 거의 매일 밤 12시에 귀가를 해 최소한의 아내, 엄마 역할을 하고 있는데 남편과 가족의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하죠. 언제 어깨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 지 알 수 없지만 요즘은 편안한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 엄을순 : 40대 여성을 포함해 한국의 여성들이 당당하게 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고, 여성들에 대한 한국 남성과 사회의 편견을 바꿔놓는 게 주된 관심사죠. '40대 여성은 이러 이러 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바꾸겠어요. 고민이라면 일 자체가 고민거리죠.

▲ 강 헌 : 건강이 안 좋아 죽음 근처까지 갔다 오고 나니, 요즘 건강이 최대 관심사입니다. 이 달 말 수술하기까지 술, 담배, 집필도 안하고 있는데, 몸이 나아지면 우리 세대가 잃어버린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새로운 인문주의가 내 인생과 내가 속한 이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고민하면서 인문주의 부활에 힘을 쏟을까 합니다.

● 엄을순 : 앓고 나니 60대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 같네요(웃음)

▲ 정국헌 :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 지, 앞으로 어느 정도의 보폭을 할 수 있을 지가 관심사인데 기본적인 틀은 보입니다. 기본을 넘어 설 가능성과 틀의 한계 사이에서 어떻게 몸을 움직일 것인가가 고민인데, 교수 역할부터 제대로 하면서 고민을 풀어갈 생각입니다.

◎ 사회 :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 좌담이 우리의 40대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강훈> 1962년생, 서울대 국문과 졸업, 단국대 교수,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연구소 소장
<엄을순> 1956년생, 이화여대 과학교육과 졸업, UCLA. 인테리어 전문과정 수료, 신구전문대 사진과 졸업, 여성운동 계간지 ‘이프(if)’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현희> 1964년생, 서울대 치의예과 졸업, 전 치과의사, 38회 사법시험 합격, 변리사, 대외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정국헌> 1958년생, 연세대 졸업, 프랑크프르트대 정치학 박사, 배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홍성국> 1962년생,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대우증권 투자분석부 부장, 저서 <디플레이션 속으로-장신화는 끝났다> 출간

입력시간 : 2004-10-14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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