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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 길 위의 직장인들…'잡 노마드'시대
"인정받기 위해" 새로운 일자리 찾아 끊임없는 노크
개인의 가치실현 풍조로 확산, 조직내 불화도 주요 원인


필리핀의 세부섬. 최근 직항로가 개통되면서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해외 휴양지의 하나로 떠오른 곳이다. 또 오랫동안 영어를 공용어로 써오고 있는 현지의 특성 덕분에, 세부는 국내의 학생과 직장인들에게 영어 연수의 대안 코스로도 제법 인기를 끌고 있다.

이곳에서 영어 학원을 운영중인 김현수(가명ㆍ36)씨. 그는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IT 관련 벤처기업에서 일하는 평균적인 직장인이었다. 1995년 국내 굴지의 전자 업체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 사내 벤처팀에 동참한 것이 계기가 되어 벤처업계에 자리를 잡았던 것.

그런 그가 자신의 ‘인생 2막’을 열기로 작정한 것은 지난 겨울.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영업과 마케팅 업무에 지친 나머지, 재충전을 위해 앞뒤 재지 않고 사표를 던진 몇 달 뒤였다. 김씨의 말. “ 직장을 옮겨 다니며 뭔가 더 높고 나은 것을 추구했다. 그런데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 속에 빠져들다 보니 내 자신을 잃어버렸고 내 갈 길이 뭔지도 모르게 됐다. 다니던 직장에 과감히 사표를 던졌던 것도 날 찾기 위해서 였다.”

휴식도 취하고 녹슨 영어 실력도 회복할 겸, 필리핀의 세부를 찾았던 김씨. 그는 뜻밖에도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여기서 발견하게 됐다. 바로 사업가의 인생이었다. 그래서 정해진 첫번째 사업 아이템이 영어 학원.

사업을 시작하기 전 김씨가 월급쟁이로서 거친 직장은 모두 네 곳. 월급 꼬박 꼬박 나오고 타인에게 명함 건넬 때도 꿀릴 게 없는 회사들이었지만, 그 어느 곳도 진정한 만족감을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김씨는 창업 초기의 시행착오와 어려움 가운데서도 삶의 보람을 느끼며 즐겁게 살고 있다. “ 사실 지금은 아무 것도 이룬 게 없다. 적은 자본과 부족한 일손으로 사업을 시작하다 보니, 몸도 고되다. 신경 쓸 것도 한 두 가지가 아니더라. 그래도 이 일을 하며 좋은 것은 진정한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다.”

- "이직 반드시 필요" 일상적 현상으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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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직장에 진득하게 붙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곳을 찾아 나서는 이직자들, 이른바 ‘ 잡 노마드’(Job Nomadㆍ직업 유목민)족의 행렬이 늘고 있다. IMF 이후 평생 직장의 신화가 무너지고 고용 불안정이 심화되면서 직장인들이 더 이상 한 직장에 얽매이거나 충성하지 않게 된 데다, 개인의 가치 실현을 점점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등이 그 배경으로 지적된다.

불과 10년 만에 네 곳의 직장을 거치고 창업 대열에 들어 선 김씨의 사례도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다. 이제 우리 사회의 고용 구조에서 이직이란 일상적인 현상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최근 온라인 리크루팅 업체 ‘ 잡코리아’가 직장인 75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는 요즘 직장인들의 의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 조사에서 ‘ 직장 생활을 하는 데 이직이 꼭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무려 43.6%가 ‘ 반드시 필요하다’고 답변해 눈길을 끌었다.

이직이 필요한 이유로는 ‘ 역량을 인정받기 위해서’(60.7%)가 가장 많았으며, 이어 ‘ 다양한 업계의 경험을 쌓기 위해서’(21.0%), ‘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일정 시기가 되면 근무 환경을 바꿔줘야 한다’(17.1%)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한 직장에서 경력을 쌓기에 적합한 기간에 대해서는 3년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30.8%로 가장 많았고, 2년이라고 답한 경우도 28.4%에 이르러 높아진 이직 경향을 반증했다.

평생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근무하게 될 업체 수에 대한 답변도 관심을 끌었다. 이 질문에서 응답자의 29.8%는 평생 동안 총 3개 업체에서 근무할 것이라고 내다 봤고, 이어 6개 업체(22.1%), 5개 업체(13.8%), 4개 업체(11.6%) 등의 순으로 전망했다. 이에 비해 1개 업체에서 직장 생활을 끝낼 것이라고 본 응답자는 고작 2.3%였고, 2개 업체라는 답변도 불과 10.4%에 그쳤다.

대형 증권사에서 애널리스트로 근무중인 이남진(가명ㆍ33)씨. 그는 8년 남짓한 기간 동안 세 곳의 직장을 거쳐 지금은 네 번째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한 직장에서 평균 2년 정도 일했다는 계산이다.

첫 직장이었던 은행에서 기업 대출과 관련한 현지 실사 업무를 주로 맡았던 이 씨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증권사 애널리스트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다. 기업 내부를 들여다 보고 분석하는 업무와 유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는 애널리스트가 된 후로도 두 차례 더 직장을 옮겼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더 많은 몸값을 받는다는 것이 거의 유일한 이직의 이유였다.

그는 억대 연봉을 받는 지금도 언제든 다른 직장으로 옮겨 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유학파 출신들과의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비싼 수강료를 지불하면서 영어 개인교습을 받는 한편, 자신이 분석하는 업종에 대한 공부에도 여념이 없는 것.

“ 현재 다니는 회사에 대해 미련이나 애착은 별로 없다. 다만 현재 직장에서 성과를 내야 업계의 인정을 받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는 것일 뿐이다. 다른 회사에서 ‘ 러브 콜’이 오면 언제든 또 이직을 할 생각이다.” 이 씨의 솔직한 고백이다.

- 치밀한 준비로 진정한 보람 찾아야

지난해 말 취업 전문 업체 ‘ 스카우트’가 직장인 4,38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에서도 이직에 대해 크게 달라진 직장인들의 인식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6.9%가 스스로를 ‘ 잡 노마드’족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잡 노마드족에 해당된다고 답한 1,617명이 밝힌 이유로서는 71.1%의 응답자가 ‘ 한 조직이나 공간에 매여 있기 싫어서’, ‘ 새로운 직업에 대한 호기심이 강해서’ 라는 답변을 내 놓았다. 반면 ‘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12.4%), ‘ 분야별 전문가가 될 역량이 부족해서’(5.9%) 등 어쩔 수 없이 잡 노마드족이 된 경우는 비교적 소수에 그쳤다.

이처럼 잡 노마드족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 이직 문화’를 반드시 긍정적인 현상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직을 하게 되는 실제 원인을 따져 보면 보통은 상사나 동료와의 불화에서 비롯된 경우가 상당수이고, 때문에 적지 않은 이직자들이 장기적인 경력 관리 차원에서 치밀한 준비를 하지 않은 채 기존 직장을 떠나기 일쑤라는 것이다.

물론 회사 입장에서도 잘 훈련된 인력이 빠져 나가는 것은 결국 경쟁력 약화라는 손실을 가져오기 때문에 그다지 달가운 일이 아니다. 최근 첨단 기술업체 직원들의 이직으로 인한 기술 유출 논란이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김화수 잡코리아 사장은 “ 거시적으로 봤을 때 이직이 활발해지면 고용 유연성이 커져 인력 채용이 늘어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없지 않다”면서도 “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 늘어나는 이직 현상은 기업들이 내부의 조직 문화 구축에 소홀히 해 비롯된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  


입력시간 : 2004-11-04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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