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정권 "너 잘걸렸다"軍 "우릴 건드리지마"

[盧정권과 軍 '별의 전쟁'] 장성인사 비리의혹 파문
盧정권 "너 잘걸렸다"
軍 "우릴 건드리지마"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0월 1일 계룡대 대연병장에서 거행된 제56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 참석, 남재준 육군참모총장과 악수하고 있다.

지난 10월 15일 단행된 군 장성 인사를 둘러싼 파문이 확산 일로에 있다.

‘장성 진급에 대규모 비리가 있다’는 내용을 담은 괴문서가 뿌려진데 이어 창군 이래 처음 육군본부가 군 검찰에 의해 압수 수색당했는가 하면 육군참모총장의 사의 표명과 이의 반려 등 군 안팎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는 것. 여기에 ‘장성 진급 비리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국방부 검찰단이 향후 수사폭을 육군본부 인사 담당 장성과 병사 등 전방위적으로 확대할 예정이어서, 군은 상당 기간 몸살을 앓을 전망이다.

이번 군 인사 파문은 외형상 ‘괴문서’에서 촉발된 돌발성 사건으로 비쳐지지만 이미 상당 부분 예고된 일이었고, 향후 재연될 수 있는 뇌관들이 곳곳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예고된 일’은 군 개혁의 기치를 든 노무현 대통령과 윤광웅 국방장관의 ‘코드’ 행보이고, ‘뇌관’은 군 개혁이 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계속 진행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참여정부 출범 이후 군과의 갈등 속에서도 일관성 있게 추진된 군 개혁의 흐름에 비춰 보면 명징해 진다.

• 상처로 남을 괴문서 진실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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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인사 파문은 그러한 함의를 담은 채 등장했고, 앞으로의 진행 방향은 일단 괴문서와 이보다 앞서 청와대에 접수된 투서 내용의 ‘사실성’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국방부와 육군의 진실게임 결과에 따라 군 개혁이 가속 페달을 밟거나 반대로 브레이크가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수사 결과 비리 내용이 확인되면 육군은 회복할 수 없는 치명상을 입게 되고 ‘개혁 폭풍’에 휘말릴 수 밖에 없다. 반면 군 검찰의 강도 높은 조사에도 불구하고 비리가 드러나지 않으면 그 부담은 내사를 지시한 청와대와 윤 국방장관 등 군 개혁 세력의 몫으로 돌아 간다.

그래서 군 검찰은 투서와 괴문서에 대한 수사를 관련 서류의 누락이나 변조 등 육군의 구조적 비리에 맞춰왔다. 그러나 최근까지 확인된 바로는 괴문서에 담긴 내용이 대부분 근거가 희박하고 투서 내용도 증거가 부족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박스기사 참조)

이에 군 검찰은 지난 11월 26~27일 육군본부의 인사 담당 핵심 장성 두명을 소환 조사한 데 이어 괴문서에 오른 준장 진급 대상자들을 본격적으로 소환해 수사 강도를 높이고 있다. 군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육본의 인사 담당 영관 장교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 음주 운전 등 진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료가 고의적으로 누락됐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군 검찰이 27일 조사한 육본 근무 L준장이 괴문서에서 장성 인사의 핵심 인물로 거론됐던 세 명 중 한명이고, 26일 소환했던 J준장은 육참총장이 인사와 관련된 최측근으로 알려져 군 검찰 수사가 육본 최고 수뇌부로 진행되고 있는 양상이다.

반면 육본은 군 검찰 수사에 방어막을 치며 장차 일전을 벼를 태세다. 특히 지난 11월 25일 윤 국방장관이 “괴문서는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발언과 남재준 육참총장 사의가 반려된 이후 수사에 비협조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군 검찰은 인사 기록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육본의 행정병들까지 소환 조사해 머지않아 수사가 확대될 지, 또는 마무리 국면으로 들어갈 지의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 육본 압수수색 배후는 청와대?
군 검찰 수사와 관련, 주목되는 것은 국방부 및 청와대와 육군의 ‘갈등’ 부분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11월 12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음주운전 경력의 진급자가 있다’는 투서가 접수돼 국방부 검찰단으로 넘겨져 수사가 시작됐다고 한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괴문서가 뿌려진 11월 22일 군 검찰은 창군 이래 처음 육군본부를 압수 수색했다. 청와대는 “투서 내용에 대한 수사의 연장선에서 육본을 압수수색했을 뿐 괴문서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지만 괴문서가 뿌려진 날 오후에 육본을 급습(?)한 것에 대해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다.

‘청와대 배후설’이 그 대표적이다. 군 관계자는 “권력 최고위층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고서야 군 검찰이 육본을 압수 수색할 수 있느냐”며 “더구나 내용이 불분명한 괴문서를 가지고 그럴 수 있느냐”는 반문이다. 군 검찰의 압수 수색이 시도된 다음날인 11월 24일 열린우리당측에서 철저히 수사하지 않을 경우 국정 조사를 검토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 것도 청와대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육군 장성은 “참여정부가 들어선 후 군 개혁을 내세워 ‘군 검찰 강화론’이 본격화하는 것에 대해 육참총장이 강력하게 반발했다”면서 “이번 사태를 보면서 청와대가 군 검찰을 통해 군 수뇌부를 길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측은 “전혀 터무니 없는 얘기”라는 입장이다.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가 한 일은 음주운전 경력자가 진급했다는 내용의 제보를 군에 이첩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윤 국방장관도 11월 26일 국회 국방위에 출석, “육본에 대한 압수 수색은 ‘육본의 자료제출 거부 때문에 벌어진 것’” 이라고 주장했다

• 국방장관·육참총장 갈등설
윤 국방장관과 남 육참총장의 ‘갈등설’도 군 인사 파문의 배경으로 거론되고 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아는 군의 한 관계자는 “육참총장이 사의를 밝힌 것은 군 검찰의 압박 수사에 대한 항의성이기도 하지만 이를 허가한 국방부 장관에 대한 항의도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15일 단행된 군 장성 인사 과정에서 두 사람이 정면으로 부딪친 것도 ‘사의 - 반려’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난달 육군 준장 진급자는 모두 52명으로 이 가운데 합참 근무자는 5명, 국방부 근무자는 2명인데 반해 육본 근무자는 14명으로 월등히 많았다. 국방부와 합참은 장관의 영향력이 많이 미치는 곳이고 육본은 총장의 입김이 강한 곳으로, 윤 장관은 남 총장에게 재심을 요구했지만 남 총장이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남 총장의 인사안은 원안 그대로 청와대로 이송됐고 ‘육군 우위’를 고수하려는 남 총장의 뜻은 관철됐다. 윤 장관 입장에선 남 총장에게 불만을 가질 수 있는 인사였다.

그러나 이번 장성 인사 파문은 두 사람의 개인적인 대립이나 육군(남 총장)과 해군(윤 장관) 간의 견제란 평면적 차원을 넘어 군 개혁 측면에서 청와대와 국방부가 육본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 7월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과 관련한 보고 누락 사건으로 물러난 조영길 전 국방장관 후임으로 윤 장관을 발탁했다. 당시 노 대통령이 조 전 장관을 경질한 실질적인 이유는 ‘군 개혁’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노 대통령은 윤 장관에게 강도 높은 군 개혁을 주문했고 그 가운데 ‘3군 균형발전’은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기준에 근거하면 남 총장의 10ㆍ15 인사는 군 개혁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셈이다.

더욱이 남 총장은 이번 사건 이전에도 현 정부의 군 사법개혁, 문민화, 비무장지대(DMZ) 내 선전물 제거 등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신중한 입장을 표출, 청와대 및 군 고위층과 갈등을 빚어오던 터였다. 따라서 군 검찰이 육본을 압수수색한 것이나 노 대통령이 남 총장의 사의를 반려한 것은 군 개혁의 신호탄임과 동시에 명분쌓기를 위한 숨고르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군 검찰은 지난 11월 22~23일 육본에 대한 압수 수색을 전격 실시하면서 이번 준장 진급과는 관계가 없는 문서와 자료 등도 가져가 육본을 옥죄고 있다. 또 장성 진급 심사위원들에 대한 계좌 추적은 물론, 10ㆍ15 인사 과정에 관여한 영관급 장교와 사병들까지 소환 조사를 실시해 육본을 비롯한 군 전체를 압박하고 있다.

• 군 개혁·문민화 본격화 예고
노 대통령은 고교(부산상고) 선배인 윤 장관이 청와대 국방보좌관에 오른 올해 초, 영국 국방부 정책국에 근무하는 데이비드 추터 박사의 논문 ‘국방의 변화(Defence Transformation)’의 일독을 권한 적이 있다. 추 박사 논문의 핵심은 ‘군의 문민 통제’로 노 대통령이 윤 장관을 새로 임명할 때부터 군의 전면적인 개혁은 예고돼 있었다. 이를 두고 군 내외 전문가들은 “참여정부가 국정원, 검찰 개혁에 이어 마지막 성역인 군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고 평했다.

이번 장성 인사 파문은 노 대통령과 윤 장관이 추진하는 군 개혁과 이에 저항하거나 속도 조절을 요구하는 군이 충돌하면서 빚어진, ‘예고된’ 그리고 언제든 ‘재발 가능성이 있는’ 사건의 일부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청와대ㆍ국방부와 육본의 파워 게임 결과가 윤곽을 드러내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 괴문서 메가톤급 충격, 내용은 대부분 사실무근

지난 11월 22일 국방부 주변에 뿌려진 군 인사 관련 ‘괴문서’가 군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육사 00기 동기생 모임 회원 일동’과 ‘국방부ㆍ육본 대령 연합회원 일동’ 명의의 A4 용지 2장으로 된 괴문서는 올해 준장 진급에 대규모(52명 중 1/3 이상) 비리가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괴문서에 실명이 거론된 장성 진급자들의 비리 의혹은 대부분 사실 무근인 것으로 밝혀졌다. 음주 운전에다 뺑소니를 친 것으로 돼 있는 P대령의 경우 뺑소니 사실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내부 갈등을 유발했다는 이유로 보직 해임됐다는 H대령은 과거에 부대 공금을 다른 항목에 전용한 게 문제가 돼 경고를 받았으나, 보직 해임 처분을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부인을 S사령관 집에서 식모살이를 시켰다는 J대령은 음해성 모함이라는 게 지인들의 설명이고, 참여 정부의 실세 인물과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인연으로 진급했다는 L대령은 능력과 전문성에서 진급 경쟁자들에 비해 뛰어났다는 평가다.

인사 청탁으로 물의를 일으킨 인물로 거론된 P대령도 자신의 부하를 육본으로 보내기 위해 인사 담당자에게 전화한 적은 있으나 조직에 누를 끼치지는 않았다는 게 육사 동기생들의 평이다.

청와대에 파견 근무한 SㆍHㆍP 대령 등 3명이 아무런 실적도 없이 외부 입김으로 진급했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용산 기지 이전이나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협력적 자주 국방 정책 수립 등 핵심적인 국방 현안에 대해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를 받았다.

이 밖에 문제점으로 거론된 부도덕성과 향응, 품위 손상, 지휘 능력 결함, 업무 능력 부족은 투서 작성자의 주관적인 평가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래서 군 검찰도 괴문서에 대해 확인 차원에서 조사를 벌일 뿐, 수사를 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12-02 15:58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