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의 이념대립은 가라"균형·실용주의 앞세우며 외연 확대, 향후 정치지형에 변수로

[중도, 세상 속으로] 목소리 커지는 정치권 중도세력
"극단의 이념대립은 가라"
균형·실용주의 앞세우며 외연 확대, 향후 정치지형에 변수로


열린우리당 '안정적 개혁을 위한 모임' 발족식

우리 사회 중도 그룹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면서 정치권에서도 이념과 명분 대신 ‘균형’과 ‘실용주의’룰 중시하는 세력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좌우 극단의 이념적 편향성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 이념적 중간 지대를 선점하려는 정치권의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에서는 ‘실용주의’를 표방한 중도 보수 성향의 모임이 잇따라 출범해 개혁ㆍ진보 그룹이 견인하던 당의 좌표와 속도에 조정자를 자임하고 나섰고, 한나라당은 기존의 수구ㆍ보수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탈각하기 위해 소장파를 비롯한 중진 의원들까지 합류해 중도의 깃발을 흔들고 있다.

이처럼 정치권에서 중도 세력이 확산되는 것은 ‘이념 과잉’이 빚은 극한 대립에 국민이 등을 돌리고 있다는 통렬한 자기 반성 때문만은 아니다. 현실적으로도, 정당의 운명을 가를 주요 선거를 앞두고 있는 절박한 정치 상황이 바탕에 깔려 있다.


우리당 중도, 진보 질주에 제동
열린우리당은 4ㆍ15 총선 직후 가진 당 워크숍에서 ‘ 중도 실용주의’를 당의 기본 노선으로 삼았지만, 이후 여야간 과거사 공방에 이어 4대 입법을 둘러 싸고 소위 이념 정국이 지속되면서 중도가 점차 설 자리를 잃었돈 게 사실이다. 대신 ‘진보’의 행군가가 요란했다.

그러나 그 소리가 크면 클수록 당과 노무현 정부에 대한 지지도는 곤두박질했다. 지난 11월 25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소장 김헌태)가 TNS에 의뢰, 전국 성인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 열린우리당 지지도는 22.4%로 올들어 최저를 기록했다. 또 노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지지도 역시 ‘잘하고 있다’ 21.8%에 ‘잘못하고 있다’ 66.0%로 나타나, 올들어 최저였다.

이처럼 열린우리당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진보의 위세에 눌려 침묵하던 중도가 다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11월 1일 26명 의원으로 공식 발족한 ‘안정적 개혁을 위한 모임’(안개모)은 중도 입장을 표방한 대표적 그룹. 유재건 의원을 대표로 조성태(전 국방장관), 이근식(전 행자부 장관), 김명자(전 환경부 장관), 안병엽 (전 정보통신부 장관), 심재덕(전 수원시장), 박상돈(전 서산시장) 의원 등 관료 출신이 대부분이다.

안개모는 창립 선언문에서 당의 좌우 화합을 위해 무게 중심을 잡자는 ‘천칭(저울)론’을 내세우고 당내의 개혁조급증을 비판했는가 하면, 국보법 폐지라는 당론에 정면 반대하며 ‘국가보안법 개정론’을 주장하는 등 중도 입장을 분명히 했다.

‘헌재 판결 승복과 국정 쇄신론'을 주장했던 정장선 의원은 “그 동안 정부 여당은 개혁 목표 하나만 갖고 달려 왔다”며 “중도적 목소리가 사회를 이끌어야 하며 양 극단은 소수를 대변하는 분출구 역할에 그쳐야 한다”고 말했다.

안개모 운영위원인 박상돈 의원은 12월 1일 안개모 공식입장의 성격을 띤 발표문을 통해 “우리나라 현실 정치에서 개혁은 진보와 동일시 되는 반면, 보수적 혹은 중도적 개력세력과 이념은 곧바로 수구로 등치되는 이분법적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면서 “국가적 비전은 속도가 아닌 방향의 문제로, 국민의 동의가 전제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중도의 외연 확장을 위해 안개모 주최로 12월 말쯤 ‘대한민국,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주제의 초청 강연 및 심포지엄을 가질 계획임을 밝혔다.

지난 10월 2일 돛을 올린 일토삼목회(一土三木會)는 참여 정부의 행정 관료 및 지방 자치 단체장을 지낸 의원 40여명이 참여, 당내 진보 - 보수 세력의 완충 역할을 하면서 ‘중도’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광재 ,서갑원 의원 등 친노(親盧)그룹을 주축으로 한 ‘신의정연구센터(의정연)’는 개혁ㆍ진보 성향을 띠고 있으나 철저하게 ‘실용주의’ 행보를 고수해 경제 문제에 전력하고 있다.


한나라 "수구·보수 이미지 탈피" 긍정적

한나라당 '새정치수요모임' 창립대회
한나라당은 정치권 밖의 ‘중도’ 흐름을 긍정적으로 평가, 당의 외연을 넓히는 한편 그러한 기류를 활용해 ‘꼴통 보수’에 ‘수구 정당’ 이라는 당의 부정적 이미지를 털어 내겠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대표는 12월 1일 기자간담회에서 ‘중도주의’ 운동에 대한 질문에 “긍정적으로 본다”면서 “그분들이 주장하는 원칙을 들여다봤는데 한나라당이 추구하는 바와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내에서 선명 야당 노선을 추구하는 의원 모임인 ‘국가발전전략연구회(국발연)’는 중도주의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자유주의 연대’‘기독교 사회책임’등과 공동으로 12월 11~12일 세미나를 갖기로 했다.

한나라당은 여야 정당 중 이념 스펙트럼이 가장 넓다. 영남 중진 보수파 모임인 ‘자유포럼’이 확실한 ‘보수’성향을 보이는 가운데 이를 기준으로 해, 국발연, ‘국민생각’, ‘푸른정책연구’, ‘새정치수요모임(수요모임)’순으로 이념적 거리를 보인다. 그러나 자유포럼을 제외한 여타 모임은 ‘중도’를 표방하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중도 그룹으로 분류하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한나라당에서 중도주의적 움직임이 싹튼 것은 재작년 대선 직후인 2003년 초다. 대선 패배에 따른 후유증에다 이부영ㆍ안연근 등 탈당파의 당의 정체성에 대한 공격으로 한나라당이 만신창이가 됐을 때였다. 박진ㆍ임태희 의원과 김정훈 당시 부대변인(현 의원) 등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표방하며 ‘수요조찬 공부모임’가졌고, 이어 원희룡ㆍ권영세 의원과 오세훈ㆍ심규철 전 의원이 합류했다.

같은 해 7월에는 박진ㆍ진영 의원, 이회창 전 총재의 보좌과이었던 이명우, 정찬수 부대변인이 ‘자유를 위한 행동’을 결성, 일방주의적 수구와 진보를 거부한 ‘중도주의’를 주창했다. 이들은 11월 22일 ‘자유주의연대’ 신지호 대표를 초정해 세미나를 갖는 등 최근 활동폭을 넓히고 있다.

4ㆍ15 총선 이후 박진ㆍ임태희ㆍ김정훈 의원은 당내 중도세력인 국민생각ㆍ푸른정책연구모임 회원으로, 원희룡ㆍ권영세 의원은 수요 모임에서 각각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당의 4대 법안 무조건 저지 방침에도 이의를 제기하는 등 나름대로 일방적 보수입장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57년 닭띠들이 주축이 된 초선이 ‘중도우파 모임’을 갖고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로 했으며 김정훈, 유승민, 박세환, 박승환, 유정복, 정두언, 주성영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모임을 주도한 김정훈 의원은 “방향은 중도 우파, 신보수이고 모임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를 지킬 수 있는 대통령 후보를 만들어 그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있다.

바로 그것이 대한민국과 자유시장 질서를 지키는 첩경이다”고 말했다. 또 지난 12월 1일에는 이념적 대척점에 있는 자유포럼과 수요모임이 회동, 접점을 찾는 등 한나라당에서 ‘중도’ 움직임은 점차 확산되는 양상이다.

정치권 안팎에서 가속화하고 있는 ‘중도’흐름은 향후 정치 지형과 대권 레이스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여야는 물론, 차기 주자들 또한 ‘중도’의 속도와 향배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요즘이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12-08 23:24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