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적 양극화 비켜서서 독자 목소리 내기21세기 한국사회의 새로운 돌파구 모색

[중도, 세상 속으로] 左右之間비집고 세상 속으로…
이념적 양극화 비켜서서 독자 목소리 내기
21세기 한국사회의 새로운 돌파구 모색


진보 - 보수, 좌 - 우 이념 논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 들었다. 최근 중도(中道)를 표방한 목소리가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중도 세력은 ‘4대 개혁 입법’을 둘러 싸고 골이 깊어진 이념 논쟁이 21세기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푸는 생산적인 담론 구조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는 반성에서 출발한다. 근래의 진보 - 보수 이념 대립은 사회 전체를 편가르기 하고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을 가로 막고 있다는 것이다.

21세기 한국을 관통하는 단어는 ‘세계화’와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세계화의 충격이 한국사회 중산층을 강타하며 사회적 양극화를 가속화하고 있음에도 생산적 복지의 키워드인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성장의 동력을 찾지 못 하고 있으며, 노무현 정부의 성립은 보수 독점 체제로 평가되어 온 한국 정치 구조의 해체와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말하지만 해체의 과정은 지루하고 새로운 전망은 더뎌 국민은 피로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존의 진보 - 보수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중도 세력이 최근 세를 얻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특히 이념의 과잉 대립을 극복하고 사회 에너지를 수렴해 21세기 한국 사회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한 전망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각별히 주목된다.


왜 중도주의 목소리 커지나
우선 지난 11월 말, 중도 통합과 개혁을 내세우며 ‘기독교사회책임’이 출범을 선언해 “진보 - 보수의 대립이 도를 넘어선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국민적 합의와 실사구시(實事求是)적 접근법으로 좌우를 포용하고 국민을 통합하겠다”고 나섰다. 이와 함께 진보 - 보수의 이념 대립을 심화시킨 4대 입법에 대해서 독자적인 대안제시도 마다하지 않았다.

386 운동권 출신 신보수주의가 주축인 ‘자유주의연대’도 과거 지향적 이념 대립을 탈각하고 한국의 미래 건설을 모색하자는 자유화 운동 ‘뉴 라이트’를 주창하고 나왔다. 현 정부를 헌정질서를 위협하는 민중민주주의 좌파 세력으로 규정하는 ‘자유주의연대’는 자신들이 진보세력에 맞설 보수 적자임을 주장한다.

그러나 학계나 시민 사회의 시선은 비판적이다. 자신들의 말처럼 ‘뉴 라이트’를 자처한다면 의당 ‘올드 라이트’에 대한 반성과 극복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현 정부에 대한 비판 세력으로서의 무게 중심을 두고 있는 데 대해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며, 나아가 좌-우 통합의 중도 세력으로 분류하기가 껄끄럽다는 분위기이다.

문제는 중도를 표방하는 세력들이 주장하듯 진보나 보수가 만날 수 있는 사회 통합의 현실적 대안을 가지고 있냐는 것이며, 그 대안이 21세기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문제에 대답할 수 있냐 하는 점이다.


중도 표방 세력 어떤 주장을 하나

서울 YMCA에서 열린 '기독교사회책임'출범 기자회견에서 서경석 목사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김주성 기자
기독교사회책임 집행위원인 권영준 경희대 교수는 “우리가 추구하는 중도주의는 진보나 보수가 모두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양측의 유용성을 포용하는 적극적 접근이며 그 정신은 실용주의이다”라고 밝혔다. 또, 좌우의 극한 대립을 불러 온 4대 입법 등에 대해서도 보다 유연한 접근법을 제시한다. 당장 못 따라갈 수도 있는 현실을 감안해 법을 개정하되 선택의 여지를 마련해야 한다 ”는 것.

권 교수는 “언론 관계법이나 사학법 개정 문제에선 법의 취지에 적극 호응하는 언론이나 학교에 대해서 혜택을 주고 당장 그렇지 못한 곳에는 불이익을 있어야겠지만 패널티 보다 혜택에 초점을 두는 입법 정신이 중요하다”며 “제도를 선진화하는 큰 틀 내에서 법을 손질하되 법의 집행에 있어서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진보 보수의 공통 분모를 찾을 대안이 있을 수 있다. 국민 模痔?뜻에 무게추를 달아 국가보안법 등을 일단 개정하되 한시적으로 지켜본 뒤 폐지 여부를 재론하면 될 것”이라는 견해다. 미래의 불확실한 가정 아래서 진보와 보수의 명운을 건 투쟁을 지양하고, 비판 일변도 보다는 포지티브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진보 - 보수를 나누는 민감한 잣대로 여겨지는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최근 보수 단체가 현 정부을 비판하는 지렛대로 북한 인권 문제를 악용하는 측면이 있다”며 비판을 늦추지 않았다. 정부가 북한 인권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불필요하게 북한을 자극할 뿐 실제로 인권 개선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

그는 특히 북한 인권이 마치 진보 진영의 아킬레스건 인양 공격하는 보수를 비판, 대북 접근에 있어 정부 차원과 민간 차원의 구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기독교가 갖는 이념적 제한성을 의식한 듯 “우리는 중도 우파가 아니다”라고 먼저 선을 긋고는 이념적 스팩트럼으로 자신들을 평가하려는 움직임을 경계해 줄 것을 요청했다.


최근의 중도세력은 보수의 줄기?
중도주의 목소리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다. 과연 최근 중도 세력이 필요 이상의 이념 논쟁을 종합하는 희망의 목소리이냐, 아니면 또 하나의 이념 논쟁을 덧보태는 소란이냐는 견지에서 비교적 진보적 성격의 시민 사회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지금의 이념 대립은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보수 세력들이 싸움의 명분을 마련하고자 조장한 측면이 없지 않고, 따라서 과도하게 여론화한 좌-우 대립은 허구적인 정치 공세인데, 왜 이 시점에 중도를 들고 나오냐며 의구심을 드러낸다.

참여연대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중도를 내세운 세력들이 자신들이 주장하는 가치와 실천이 과연 일치하느냐에 회의적”이라며 의구심을 표했다. 홍 교수는 “국가보안법의 문제만 하더라도 민주주의 심화 차원에서 당연히 폐지되어야 할 사안인데 이념 대립 운운하는 것은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라며 “일각에서 국가보안법 처리에 대한 대안으로 최종 결론을 한시적 유예를 말하지만 결국엔 폐지 반대를 원하는 보수 진영을 편드는 색다른 표현일 뿐”이라고 중도세력이 갖는 정파성을 경계한다.

김수진 이화여대 교수도 ‘기독교 사회 책임’의 움직임에 대해 기독교의 정치 세력화의 한 형태로 서구의 ‘기독교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크리스천 데모크라시와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고, 종교에 묶인 정치라는 점에서 좌우를 융합하는 데 태생적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뉴 라이트 운동'을 주창하는 386세대 출신 모임인 '자유주의연대'가 22일 서울 중구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창립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중도세력이 미미한 탓에 중도주의의 개념도 제 각각인 것이 현실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여운형, 김규식, 조봉암 정도를 대표적 중도주의자로 평가하는 임현진 서울대 교수는 “중도주의적 실험은 결국 좌우파에 이용당하고 협공당해 궤멸했지만 의미있는 역사적 경험을 남겼다”며 “중도가 성공하려면 균형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좌우를 흡인하는 세력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도주의가 차라리 ‘진보의 한줄기’로 이해된 역사적 경험을 상기시킨 임 교수는 최근의 중도 세력에 회의적인 평가를 내린다. 같은 맥락에서 임 교수는 “개혁 성향이 강한 시민 단체 등 최근의 이른바 중도 세력들은 내용상으로는 명백한 보수이면서 중도로 포장하고 평가되는 현실이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들 중도 표방 세력들의 프리즘을 기준으로 좌 – 우 - 중도파를 구분 짓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중도주의는 가능한가
최근의 중도 세력 목소리가 진보 - 보수, 좌 - 우의 대립 구도에 대한 잘못된 진단에서 출발하는 한계를 노정했다면 현재의 진보 - 보수 대립은 어떤 성격이고, 21세기 성공적인 중도주의의 가능성은 어디에 있는가.

우선 좌 - 우 대립의 실체적 내용에 대해 참여연대 김수진 교수는 “요즘 진보 - 보수 대립 구도에 대해 소위 중도를 표방하는 분들이 도를 넘어선 위기라고 평가하는 데에는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며 “현재 이념 – 정책 – 지지 기반 등에서 좌-우파의 거리는 내용면에서 위기라 할 만큼 그렇게 멀지 않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오늘날의 좌우 이념은 확정된 패러다임은 갖고 있지 않으며 다만 변화를 추구하는 강도에 따라 상대적으로 평가되고 이미지화 한 것 뿐”이라며 그 이유를 밝히고, “최근에 국민통합 등을 표방하는 중도 세력이 ‘내용 있게’ 끼어 들 여지가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또 지금의 이념적 대립 현상을 “보수 독점 구도가 해체되는 국면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일면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반증하는 것”이라며 의미를 평가했다.


개혁적 자유주의로서의 중도
학계와 시민 사회 모두 한국 사회에서 중도주의의 유용성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뿐만 아니라 향후 가장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확보할 정치 노선으로 중도주의를 전망하기도 한다. 다만 최근에 등장한 그런 중도주의는 아니라는 것이다.

성공적인 중도세력의 가능성을 열기 위한 전제로서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것은 자유주의(liberalism)를 재정립하자는 의미에서 중도주의의 출발이다. 다시 말해 분단 상황에서 공산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으로만 인식되어 온 자유주의가 아니라, 모든 권위주의와 보수주의의 상대 개념으로서 갖는 본래적 위치를 회복시키자는 것이다.

김수진 교수는 “지금껏 자유주의는 보수주의와 동의의 뜻으로 오해 받은 점이 없지 않다. 진정한 중도주의가 표방해야 할 자유주의 정신은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에서 주장하는 보수의 자유가 아니라, 왈러스타인의 저서 ‘자유주의 이후’에서 말하는 진보적 자유주의, 개혁적 자유주의이다”라고 말한다.


지속적 수정주의로서의 중도
중도주의의 또 하나의 가능성은 오늘날 좌우 이념이 1990년대의 자기 성찰을 거치면서 중간으로 수렴되고 있는 점을 주목할 때 탈(脫) 이념적 ‘지속적 수정주의’의 길이다.

1998년 토니 블레어는 워싱턴포스트의 기고에서 “현재 우리는 세계화, 계속적 빈곤과 사회적 배타, 가족의 붕괴, 여성의 역할 변화, 기술과 노동의 혁명, 정치에 대한 대중의 적개심, 민주적 개혁에 대한 요청, 국제적 행동을 요구하는 환경과 안보에 대한 요구에 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역설하며 “나의 노선 ‘제 3의 길’은 이러한 도전에 대한 좌우파의 진단을 수렴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적 응전”이라고 규정했다.

현실 정치에서도 그는 당내 강경파의 비난을 무릅쓰고 자유민주주의자들과의 연합을 통해 미래 전망에 대한 하나의 청사진은 거부하며 자신을 ‘지속적 수정주의’로 표현하며 이념의 옷을 벗었다. 같은 맥락에서 임현진 교수도 “한국 사회에서 성공적 중도주의의 길은 단지 좌 - 우 극단을 극복하자는 온건주의의 한 형태가 아니라 진보성과 자유주의의 결합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내다본다.

어쨌든 최근 뜨거워진 중도주의 논의는 좌ㆍ우라는 철 지난 도그마에 의해 지배되어 온 한국 사회가 한 차원 업그레이드를 위한 몸부림을 반증하는 희망의 메시지일 수도 있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4-12-08 23:43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