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대접 받으며 살고 싶다"차별과 폭력, 불안정한 일자리로 고통받는 노예같은 삶

외국인 노동자 - 산산히 부서진 코리안 드림
[한국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인간대접 받으며 살고 싶다"
차별과 폭력, 불안정한 일자리로 고통받는 노예같은 삶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에 머물고 있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불법체류 노동자 M씨와 또다른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에서의 힘겨운 삶을 얘기하고 있다. 옷을 벗어 수술부위를 보여주는 M씨. / 김지곤 기자

“때리지 마세요, 제발!”.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말이란다. 저임금과 노동력 착취 문제로 ‘현대판 노예제’라는 오명을 가진 외국인 산업 연수제의 뒤안길이다. 그처럼 차별과 폭력이 횡행하는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1999년 10월 ‘코리안 드림’을 쫓아 방글라데시에서 온 M(34)씨. 지난 5년 간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려고 발버둥쳤지만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유로 가는 업소마다 채 몇 개월을 못 채우고 옮겨 다니며 임금 착취와 박대를 당했다. “가구 공장, 약품 공장, 봉제 공장 등 어떤 험한 일이든 가리지 않고 찾아 다녔지만 짧게는 한 두 달에서 길게는 예닐곱 달을 버틸 수가 없었어요. 공장이 문을 닫거나, 임금을 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그만 두게 되죠. 채용할 때 약속한 대로 대우를 해 주지 않는 일도 많았어요. 한국인과 같은 노동자로 대우해 주지 않아 너무 속상하고 힘들었어요.”

불법체류 노동자들의 고달픈 일상
방글라데시 필리핀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등 20개국 이상에서 산업연수생제도와 고용허가제 등으로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략 40여 만 명. 불법 체류 신세라, 정확한 숫자 파악은 엄두도 못 낸다. 이들은 대부분은 하루 10시간 넘는 과중한 작업 조건과 산업재 해를 당하기 쉬운 위험에 노출돼 있는 등 사회적 차별과 불안정한 일자리 등으로 고달픈 삶을 이어가고 있다.

신발 공장을 운영하던 M씨가 사업실패로 방글라데시를 떠나올 때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사는 데 이 같은 어려움이 있을 줄은 거의 생각지도 못했다고 한다. “방글라데시보다 경제 여건이 좋은 한국에서 일하면 돈도 많이 벌고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불법 체류자로 쫓겨 다닐 줄은 꿈에도 몰랐죠.” M씨처럼 관광 비자 등으로 입국했다가 장기간 체류하는 경우나, 외국인 산업연수제처럼 합법적인 절차를 밟았지만 해고 등으로 소위 ‘불법체류자’라고 불리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신세로 전락한 외국인 노동자는 줄잡아 18만 명에 이른다.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라면 차별은 두 말할 나위 없이 더욱 심하다. 노동부에 의하면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체불이 올들어 8월까지 43억 6,478만원이었고, 1,504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밀린 임금을 받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재해 발생율이 높은 위험한 근로 환경에서 일하는 경우도 잦다. 지난해 집계된 외국인 노동자 재해 현황에 따르면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1,790명)가 산업연수생(325명)과 합법취업자(551명)보다 월등히 높았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실태에 대해 얘기하는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김지예 간사

M씨가 본격적으로 험난한 삶의 질곡으로 빠져든 것은 3년 전 신체에 이상이 발견되면서부터. 8개월간 화학약품 공장에서 일한 뒤였다. 팔과 가슴 같은 부위에 지름 1~2cm 가량의 불룩한 반점 등이 나타났다. 무거운 물건을 들라치면 심한 통증이 느껴졌고, 화학약품 냄새를 맡으면 몸에 가려움 증세도 일어났다. 현재까지 세 차례에 걸쳐 불룩 솟은 종기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러는 사이 2년간 사귀었던 한국인 여자 친구도 그의 곁을 떠났다.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나니 사람들이 더욱 기피해요. 여자 친구도 두려웠겠죠. 언제 나을지도 모르고…불룩한 것이 돋아날 때마다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있어요. 여기는 병원비도 비싸니 고국으로 돌아가 제대로 치료 받고 싶어요.” 12월 22일이면 M씨의 비자는 만료된다. 단속을 피해 다니느라 지쳐 체불 임금 500만원을 받아 고국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과연 밀린 월급을 받아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사장에게 고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밀린 월급을 달라고 하면 ‘자기 밑에 힘깨나 쓰는 애들 있다’는 식으로 협박해요.” M씨는 외국인이라고 무시하고, 툭하면 불안정한 신분을 문제 삼아 협박하면서 똑 같은 노동자로 대우해주지 않는 ‘사장님’들이 원망스럽다고 했다.

임금체불·협박에 걸핏하면 폭행
국가인권위원회가 2002년 11월부터 한달간 외국인노동자 2,067명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실시한 결과, 27.6%가 불법 체류 사실을 신고하겠다는 협박을 받았으며 위협한 사람은 고용주가 70.2%로 가장 많았고, 직장 상사가 25.4%로 뒤를 이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외국인 노동자의 30.5%는 사업장 내에서 폭행 당한 경험이 있고, 특히 여성 노동자의 경우는 10명 중 1명 꼴인 12.2%가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M씨는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여자 동료들에 대한 차별은 더 말도 못해요. 한 모로코 여자는 남자보다 더 일을 잘 하는 데도 한달 월급을 60만원 밖에 안 주면서 창고에서 살게 했어요. 그곳은 물도 안 나오고 화장실도 갖추어지지 않았죠. 우리 방글라데시에서도 그런 데서 안 사는데….” 그는 이어 “그런 사장님이 한국인 여자들한테는 방을 얻어 줬다”며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M씨의 딱한 사정을 듣고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쉼터에 머물게 하고 있는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김지예 간사의 말. “우리나라는 국제화를 주창하면서도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너무 배타적이에요. 임금 체불과 폭력, 다쳐도 치료는 제대로 안 해주면서 일을 시키는 비인간적인 행태가 사라지지 않고 있어요. 최근엔 출산을 앞둔 한 여성 외국인 노동자가 수술비 마련을 위해 밀린 임금을 달라고 예전에 일하던 공장을 찾아갔는데 사장이 ‘자꾸 전화하면 (불법이라고) 출입국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서 항의도 못했어요. 단속 때문에 남편이 잡혀가면 애기는 어떻게 어떡하느냐며 피해를 봐도 꼭꼭 숨기고 말을 못하죠.”

"한국에 오겠다는 고향친구 말리겠다"
M씨의 목소리가 작아진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살고 싶었어요. 한국말도 잘 하고, 애국가 들으면 가슴도 찡하고…. 근데 이제 다 포기했어요. 지금도 한국에 오고 싶어하는 고향 친구들이 많은데 다 말리고 싶어요. 여기서 외국인 노동자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일하는 노예일 뿐이죠.”

배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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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4-12-22 18:17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