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성 노동자, 생존권을 달라"인생 막장에서 거리로 내몰린 그녀들, 현실적 대책 요구하며 단식농성 중

집창촌 성매매 여성들
세상의 그늘에서 세상을 향한 절규

[한국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우리는 성 노동자, 생존권을 달라"
인생 막장에서 거리로 내몰린 그녀들, 현실적 대책 요구하며 단식농성 중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천막농성장. / 김지곤 기자

성매매특별법 시행 2개월여, 그리고 집창촌 성매매 여성들이 거리로 나와 단식농성을 시작한 지 45일째가 되는 12월 15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전국 한터 여성 종사자 연합’ 소속 성매매 여성들의 단식 농성장을 찾았다.

청승맞은 겨울비가 내리던 날, 비닐 천막 농성장에서 만난 성매매 여성 연수(가명ㆍ25세)씨는 기자에 대한 경계심이 역력하다. 그는 대뜸 “취재해 가도 우리의 뜻을 정확하게 알리지 않는다”며 언론에 대한 저간의 실망과 불신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한동안 머뭇머뭇하더니 “현재 6명이 단식중이다. 일부의 추측대로, 정말 우리가 업주들 사주로 죽을 지도 모르는 단식 농성까지 하겠나”며 바깥 세상에의 적의를 감추지 않았다.

“언제는 우리를 가리켜 ‘피해 여성’ 운운하더니 이제는 완전히 ‘범죄자’로 취급한다”며 성매매특별법(이하 특별법) 이후 더욱 기구해 진 자신들의 처지를 하소연한다. 특별법의 현실이 성매매 근절의 당위성에 강조점을 놓다 보니, 정작 성매매 여성들의 실질적인 인권인 ‘생존권’이 무시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단속 유예로 전업의 길 터달라"
‘우리에게도 부양 가족이 있다 생존권 보장을’, ‘정부는 우리를 돕는다는 이유로 국민 세금 쓰지 마라’…. 농성장에 내걸린 구호들에는 지금껏 자신들을 ‘성노예’라는 시각으로만 보던 세상의 눈길을 거부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을 ‘성노동자’로 규정하고 직업으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한다. 지금껏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피해자로서만 말하기’를 강요 받았던 그들이 이제 다른 어조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집창촌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뒤집는 역습(?)이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성매매 여성 가을(가명ㆍ26)씨는 “농성이 길어지고 우리의 목소리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오히려 주홍 글씨 같은 사회적 경멸을 더 절감하고 있다”고 밝히며 성과 없는 천막 농성 생활의 힘겨움을 호소한다. 또 “지금 상황에서는 업주들이 그나마 우리를 도와 주는, 따뜻한 시선을 가진 유일한 사람들”이라는 고백에는 갈수록 점점 고립되어 가는 성매매 여성들의 딱한 처지가 반영돼 있었다.

그들은 여성 인권의 파수꾼을 자처해 온 여성 단체들에게조차 “탈(脫)성매매 하지 않으면 도움을 줄 수 없다”며 여성부의 입장과 별반 다른 것 없는 이야기를 전해 들을 땐 더욱 절망스럽다고 한다. 가을 씨는 “탈성매매를 전제로 대화하겠다는 정부나 여성 단체들이 우리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월 37만원씩 6개월 생계비 지원이 고작”이라며 “집창촌에서 일할 때는 한 달에 보통 3백~4백만원은 벌었다. 그걸로 가족도 돕고 앞날에 대한 나름대로 꿈도 있었다”고 말했다. 여성으로서의 인생 막장에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이 ‘괜찮은 벌이’였음을 숨기지 않는다.

한달 수입이 3백~4백만원이라는 말에, ‘당신들과 경제적으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숱한 여성들이 한달 백만원대 벌이로도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 다른 방식의 삶이 많지 않느냐’며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잠시 할 말을 잊은 듯 시선을 딴 곳에 두더니 말을 이어 갔다.

“성매매을 하며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은 안다. 전업을 위해 쉼터 같은 사회단체에 가라고 하지만 당장 먹고 살기 캄캄한 내 가족은 어떡하라는 말이야! 우리같이 ‘빽’도 없고 목돈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당장 전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날을 세운다. 그렇다면? “우리도 계속 이 일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전업을 준비할 수 있게끔 현실적 도움을 달라는 거다.” 결국 집창촌 영업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일정 기간 유예해 달라는 요구다.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천막안은 냉기로 가득하다. / 김지곤 기자

이를테면 2007년까지 특별법을 유예해 줄 경우, 전업을 위한 정부나 여성단체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기술도 배우고 자본금도 스스로 모아 사회에 재편입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단순히 호구지책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여성으로서 건강한 삶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그는 별 이론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정부 "폐쇄·단속방침 불변"
그러나 그들에겐 세상을 향해 열린 창이 없다. 그들의 생각을 놓고 대화할 장(場)이 현재로선 없다. 즉각적인 ‘탈성매매’라는 전제 없이는 성매매 여성들과 어떠한 협상도 있을 수 없다며 여성부가 못 박고 나왔기 때문이다.

여성부 김기환 권익증진국 인권복지 과장은 “집창촌은 2007년 말까지 지자체와 협의를 통해 단계적으로 폐쇄한다”며 정부를 입장을 확인하고, 성매매자의 처벌 방침에 변화는 없다는 점을 본지에 밝혔다. 김 과장은 “단계적 폐쇄라는 표현 때문에 일부에서 집창촌 영업에 대해 제한적 단속을 하는 것인가라는 오해가 있는데, 그것은 분명 아니다”라며 못 박은 뒤 “특별법에 따라 집창촌은 철저히 단속하며, 성매매자는 처벌한다”고 확인했다. ‘단계적 폐쇄’란 집창촌 업소도 사업자 등록을 한 영업장인 이상, 현행법상 재산권 등의 문제 소지가 있으므로 지자체와 협의해 지역재개발 등을 통해 2007년까지 폐쇄한다는 의미에서의 ‘단계적 폐쇄’라는 것.

현재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여성은 전국적으로 총 33만명 정도이고 이 중에서 집창촌 여성은 전국 65곳에 6,000여명(전국 한터 여성종사자 연합에선 9,000여명이라고 주장)인 것으로 추정된다. 집창촌 여성들은 지난 9월 23일부터 전격적으로 시행된 성매매특별법 등 정부의 조치가 상대적으로 집창촌에 집중타를 가하게 된 것이 결국 단속의 용이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여성들이 성매매업에 발을 들여 놓는 것이 일반적으로 티켓다방이나 단란주점에서 시작해 룸살롱과 안마시술소 등을 거쳐 집창촌으로 귀결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효과적으로 성매매업을 근절하기 위해선 초기 단계인 유흥업소 성매매부터 손을 대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집창촌이 가지는 상징성 때문에 가장 문제가 많은 곳으로 부각됐다고 집창촌 사람들은 주장한다.

티켓다방에서부터 성매매업을 시작했다는 가을 씨는 “사실 안전면에서 집창촌이 제일 나아요. 룸살롱 같은 곳은 2차 나가면 손님과 1대 1 상황이 되잖아요. 사고도 많이 당해요. 여긴 그런 일도 없고 생활하면서 옷값 등도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돈도 빨리 모으고요”라며 나름대로 성매매업 생활을 비교한다. 음성적으로라도 성매매업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면 차라리 집창촌이 성매매 여성의 입장에선 낫다는 주장에, ‘공창제’에 대한 은근한 기대감이 깔려 있었다.

"사회의 벽 실감"… 인권 간과해선 안돼
“우리는 새로운 언니, 동생을 얻었어요. 사회적 약자로서 연대감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게 큰 소득이라고나 할까요.”처음으로 성매매 여성들이 모여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보냐는 질문을, 가을 씨는 그렇게 받았다. 그러나 갈수록 우리 사회의 넘기 힘든 벽을 실감하고 점차 주눅들고 흩어져 가는 자신들의 처지를 고백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한숨 짓고 만다.

여성계를 중심으로 오랜 노력 끝에 탄생한 성매매특별법이 성매매 근절의 당위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킨 것은 확실하다. 또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남성중심의 왜곡된 성문화를 개선할 획기적인 사건이라는 평가에 사족을 달기란 어려운 노릇이다.

대표적 여성 쉼터 중의 한 곳인 ‘다시 함께 센터(소장 조진경)’는 특별법 관련 일련에 사태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청받고, “아직 입장 정리가 안 됐다”며 사실상 취재를 거부했다. 전업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성매매 여성들의 생생한 목소리는 아직 가려져 있는 것이 현실이 아쉽다.

탈성매매의 성적표는 ‘성매매를 근절했느냐’보다 ‘성매매 여성의 인권이 어떻게 보장되는냐’에 더 높은 비중을 둬야 한다는 여성운동가 원미혜 씨는 주장이 주목된다.

확실한 사실 하나는 갑론을박의 뒤안길에서, 정작 당사자인 성매매 여성들은 두 달 가깝게 단식 농성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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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4-12-22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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