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실패는 사회적 자산이다"21세기는 기술혁명의 시대, 벤처가 국민소득 2만달러의 주역 확신정부도 '패자부활제' 통한 장기불황 돌파의지, '벤처의 도전' 인정 받아야

[다시 벤처다] 인터뷰 - 장흥순 벤처기업협회 회장
"정직한 실패는 사회적 자산이다"
21세기는 기술혁명의 시대, 벤처가 국민소득 2만달러의 주역 확신
정부도 '패자부활제' 통한 장기불황 돌파의지, '벤처의 도전' 인정 받아야


정부가 내놓은 ‘벤처 활성화 대책’은 40만개 일자리 창출과 400조원에 가까운 부동자금 흡수를 통한 투자 활성화를 동시에 겨냥한 ‘경제 살리기’ 빅카드다. 이번 대책은 ‘묻지마 투자’ ‘머니게임’ 등 도덕적 해이의 상처만 남긴 벤처 열풍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왔다는 점에서 ‘거품 재연’을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장기 불황을 돌파하기 위한 현실적인 수단으로는 ‘벤처 되살리기’만한 카드가 없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그래서 실패한 벤처기업가도 ‘패자부활제’를 통해 현장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했다. 그 기준과 판단은 정부가 아닌 벤처기업협회에 맡겨졌다. 벤처인 스스로가 도덕적 해이를 해소하고 내실을 다져 ‘사회적 신뢰’를 회복해 달라는 주문인 셈이다. ‘벤처 되살리기’의 최전선에 선 장흥순 벤처기업협회장(터보테크 대표이사)을 12월29일 만나 벤처의 가능성에 대해 들었다.

고용창출 파급효과, 중소기업보다 커

-12조원에 이르는 정부의 벤처지원대책에 대해 평가해 달라.

“기대했던 것 이상이다. 10대 아젠다 등 그간 벤처업계에서 꾸준히 요구해 온 건의안이 대폭 수용됐다. 특히 창업, 성장, 성숙ㆍ구조조정 등 단계별 지원 대책은 벤처기업이 살아갈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또한 과거 벤처기업 자체에 초점을 맞춘 지원정책과 달리 인프라 조성과 자율적 제도화에 역점을 뒀다는 점에서 ‘제2의 벤처거품’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제거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산업정책과 금융정책이 박자를 맞춰 잘 디자인되었다는 점이다.”

-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큰 기대를 갖고 있지만 일반인들은 벤처의 고용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는 인식도 있는데.

“그것은 오해이다. 현재 벤처기업의 종업원 수는 평균 44.1명으로 일반 중소기업의 9.2명 보다 4~5배 많다. 벤처 하면 인터넷 컨텐츠 사업을 많이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제조업 벤처가 전체의 63%를 차지한다. 특히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벤처기업의 경우 직접 고용 인력은 적어 보이나 생산ㆍ판매 등을 아웃소싱하기 때문에 고용창출 파급 효과가 어느 산업보다 크다.”

- 소위 ‘게이트’로 표현되는 부정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정직한 벤처 실패자 구제를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패자부활제는 그 동안 업계가 꾸준히 요구해 온 것인데 그 배경은 무언가.

“솔직히 잇단 ‘게이트’ 탓에 정직한 벤처인들이 손해를 많이 봤다. 그리고 경기침체 와중에 7,000여개의 벤처기업이 쓰러졌다. 이들의 시행착오가 사회적 비난 속에서 그냥 묻힐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성공신화을 위한 사회적 자산이 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95%의 실패와 5%의 성공이 벤처이다. ‘다산다사(多産多死)’, ‘고위험-고수익’이 벤처의 본질이다. 그런데 지금 실패한 창업자는 대부분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 여파로 검증된 원천기술을 가지고도 자칫 실패할까 봐 창업을 꺼린다. 한번 실패하면 재기불능의 신용불량자 신세가 되는데 누가 도전하겠는가.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을 보장해 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한국경제 성장의 자양분이다.”

- 재정경제부가 패자부활을 위한 1차 평가 기관으로 벤처기업협회를 지정했다. 정직한 실패자에 대해서는 벤처업계 자율로 기술력과 도덕성을 평가해 기술신용보증기금에서 신규보증을 제공한다는 것인데 패자부활 평가 잣대의 공정성에 대해 논란도 예상되는데.

“우선 패자부활을 위한 프로세스는 우선 정부 차원의 신용회복위원회→ 벤처기업협회→ 기술신용보증기금의 평가를 진행된다. 벤처기업협회는 도덕적 해이 여부와 원천 기술력 등을 집중 심의한다. 업계 자율로 ‘옥석가리기’를 하는데 나름의 우려가 있는 것은 알지만, 사실 벤처기업에 대해 업계 만큼 잘 알고 있는 곳이 없다. 열심히 그리고 공정하게 해서 정부가 하는 것보다 낫다는 소리를 듣겠다. 그리고 현재 협회에는 벤처윤리위원회(위원장 김일섭 이화㈃?교수, 부위원장 박원순 아름다운대단 상임이사 외 5인)가 있다. 앞으로 이 위원회를 보다 확대하고 세분화해 심사기능을 대폭 강화할 것이다. 이번 지원대책에 맞춰 벤처업계가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업계 전체가 동반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각오로 패자부활제를 운영할 것이다. 또한 범 업계 차원의 벤처기업 윤리회복 운동도 전개할 예정이다. ”

옥석가르기, 자율정화시스템 작동할 것

- 패자부활을 위한 구체적인 잣대들은 마련되어 있는가.

“현재로선 확정된 기준은 없다. 곧 벤처윤리위를 열어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것이다. 다만 원천기술과 사업모델을 잘 갖추고도 마케팅이 뒷받침 안돼 실패한 기업, 글로벌화를 위한 펀딩이 안돼 실패한 기업 등을 기술별로 나눠 소위원회를 통해 심의한다는 게 대략적인 구상이다. 또한 우수한 지배구조를 가진 벤처기업에 대해선 인센티브가 주어질 것이다. 옥석가리기를 위한 업계 자율 정화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하겠다.”

- 협회가 최근 조사한 ‘벤처 생태계 현황’에 따르면 벤처 생태계 조성의 가장 큰 걸림돌 중에 하나가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관행이었다. 개선 방안은 무엇인가.

“내수시장에서, 특히 B2B 벤처기업들은 대기업과 협력 차원의 공정거래가 중요한데, 문제는 대기업들이 벤처기업 기술에 대한 ‘지식원가’를 잘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기업 구조에선 못하는 도전을 실패를 무릅쓰고 벤처들이 하고 있는데,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벤처들이 도전하는 일과 그 가치를 대기업이 인정해야 한다. 성장하는 중소ㆍ벤처기업을 키워야 글로벌 시대에는 대기업도 그 덕을 본다. 얼마 전 ‘대ㆍ중소기업협력재단’이 출범한 것도 서로의 이해를 넓혀 보자는 취지에서 이뤄진 것이다.”

- 장기적으로 벤처 활성화 대책이 시너지 효과를 얻으려면 M&A(인수ㆍ합병)가 지금보다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번 대책에도 M&A 활성화를 위한 내용이 있나.

“지금까지 대기업은 출자총액제한제도에 묶여 중소ㆍ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지분이 30% 미만인 경우에만 예외적인 투자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대책에서 예외 인정 범위가 크게 확대되어 재벌기업의 유동성 자금이 벤처업계로 흘러 들어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그리고 코스닥 기업간 주식 스와핑을 통한 M&A 등을 위한 세제 개선도 곧 마련될 줄 안다”

- 공과대학의 인기가 벤처기업 몰락과 함께 시들해졌다. 특히 경제가 어렵다보니 패기와 모험심의 상징이어야 할 젊은이들조차 안정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인적 성장동력을 잃어가는 우려도 없지않은데.

“한동안 벤처가 실패한 산업이란 인식에 대해 벤처 1세대로서, 또 벤처기업협회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희망을 가질 만하다. 21세기는 분명히 새로운 기술혁명의 시대이다. 자녀들을 공과대학에 보내라고 권하고 싶다. 좋은 기술만 있으면 언제든지 창업해 큰돈도 벌 수 있다는 성공신화를 쓸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고, 만들어 나가겠다. 벤처가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의 주역이 될 것을 확신한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01-05 10:37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