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플레로 휘청댄다"지난해부터 쌀값 폭등…도시 노동자 더 배 곯아7·1 경제개혁 후 장사 등 확산, 정치·치안 골머리

[지금 북한은] 인터뷰 - 통일연구원 박형중 박사
"북한, 인플레로 휘청댄다"
지난해부터 쌀값 폭등…도시 노동자 더 배 곯아
7·1 경제개혁 후 장사 등 확산, 정치·치안 골머리


북한은 올해도 2개의 적(敵)과 싸워야 한다. 식량난이라는 내부의 적, 미국이라는 외부의 적이다. 식량난이 내부 결속력에 대한 위협이라면, 미국은 정권과 안보의 걸림돌이다.

북한의 곡물 생산량은 2001년 이후 5년째 미미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긴 하다. 그러나 올해도 수입과 외부 무상 지원 등에도 불구하고 연간 100만 톤 이상의 식량이 절대 부족한 만성적인 식량난을 벗어 나기는 어렵다. 결국 북한 정권은 집권 2기를 맞는 부시 미 행정부를 상대로 북핵 대결 국면에서 어떤 식으로든 체제를 지켜내야 하고, 동시에 코앞의 식량난을 덜기 위해 국제 사회의 도움을 끌어내야 한다. 북한에 있어서 안보 위협과 식량난은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

마침 내달 출범을 앞둔 부시 정부 2기 외교ㆍ안보 팀의 골격이 짜졌다. 라이스 국무장관 - 로버트 죌릭 부장관 – 정무차관 - 크리스토퍼 힐 동아ㆍ태 담당 차관보의 순으로 이어지는 국무부 정책 라인은 1기와 달리 전문 외교관을 전진 배치, 이념보다 국제 관계를 중시하는 실용주의적 색채를 뚜렷하게 표출했다.

이는 북한 핵 문제를 6자 회담을 통한 외교적 해결한다는 원칙을 보다 분명히 한 것으로, 1기 때보다 북한과의 협상에 보다 탄력이 붙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부시 2기 정부의 대북 정책 기본 개념이 ‘체제 변화(Regime Change)’에서 ‘체제 전환(Regime Transformation)’으로 수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것은 미국이 북한 핵이라는 이슈를 둘러 싸고 북한에 대해 펼치는 논리(logic)에 중대한 변화가 예견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런 미국의 논리 변화를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미국이 북한 핵 문제에 접근하는 숨겨진 키워드는 ‘사실(fact)의 문제가 아니라, 논리(logic)의 문제’ 라는 시각이 힘을 얻게 된다. 즉, 미국이 북한 핵 문제를 보는 방식은 북한 핵 자체에 고정된 것보다는 21세기 동북아 구상과 세계 전략의 큰 그림 속에서 북핵 이슈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하는 전략적 논리의 문제라는 시각이다.

특히 올해는 북한의 동향과 북한 핵을 둘러싼 국제정치 구도의 변화 가능성과 관련해 이런 저런 전망들이 쏟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적 현상’이란 키워드로 북한 사회 전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기해 온 통일연구원 박형중 박사(45ㆍ선임연구위원)를 만났다.

- 북한은 2002년 7월 1일 경제개선조치로 제한적 경제 개혁을 단행했다. 올해로 7ㆍ1 조치가 3년째로 접어 들었는데, 어떻게 전개되어 가고 있나. 주민 생활에서 실제적인 변화란 무엇인가.

“7ㆍ1 경제개선조치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식량난은 점점 더 심각해 지고 있다. 특히 인플레가 문제이다. 2004년 3월 경부터 쌀값이 급속히 뛰기 시작했다. 2002년 7월에 ㎏당 46원 하던 쌀값이 2003년 말에 130원, 2004년 3월에 250원, 그리고 2004년 8, 9월엔 1,000원 까지 뛰었다. 10월에 옥수수 추수와 남측 지원 쌀이 도착하면서 25% 가량 떨어졌다. 국가 배급량이 부족해 시장에서 식량을 사야 하는 주민, 특히 도시 노동자의 인플레 고통은 심각하다. 격심한 인플레는 작년 이후 북한 정권이 직면한 핵심적인 체제 문제이다.”

- 도대체 왜 쌀값이 폭등했나. 북한 경제의 엄청난 인플레 배경은 무엇인지.

“첫째, 중국의 대(對)북한 곡물 수출 전면 금수(禁輸) 조치때문이다. 중국의 2003년 곡물 생산이 극히 저조했다. 자체 공급도 부족할 정도였다. 중국 내에서도 쌀값이 50% 가량 뛰었다. 급기야 안정적인 곡물 수출 루트 확보 차원에서 한국과 일본에는 수출을 계속했지만, 2004년 3~4월에 대(對)북한 곡물 수출을 전면 금지함으로써 북한의 곡물 수입량은 전년 대비 60%까지 급감했다. 물론 중국의 대북한 곡물 수출 금지 조치는 경제적 이유 뿐옛틈灸? 식량을 통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정치적 포석, ‘북한 길들이기’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북한의 화폐 개혁설(디노미네이션) 탓이다. 화폐 개혁설 때문에 다들 원화를 처분하려는 바람이 일고 물가 급등을 부채질했다. 그리고 북한의 물가는 생필품 대다수를 들여오는 중국의 물가와 연동한다. 중국의 쌀값 급등 등 물가 상승이 북한에 그대로 반영됐다. 또 인민폐의 가치 절상(2001년 1원당 북한돈 22원, 2004년 10월 함경북도에선 215원~240원)도 악재로 작용했다. 북한은 결국 2중 3중고(苦)를 겪고 있다.”

-갈수록 가중되는 식량난으로 북한은 신년 공동 사설에서 ‘올해 사회주의 경제 건설의 주된 전선은 농업 전선’이라고 선언하며 노동력과 물자 등 경제력을 농업 부문에 집중할 것을 시사했다. 식량난 해결 없이 체제 보장도 없다는 현실 인식인데.

“북한 2005년 신년사에서 주목되는 점은 경제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예년의 3배에 이른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 부문에서 3분의 1이 농업 부문에 할애되어 있다. 지적한 대로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 없이는 정권과 체제의 보장이 없다는 인식이 북한 정권 내에 분명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반증이다. 특히 2002년 7ㆍ1 조치 이후 국가와 주민의 관계에 상당한 변화가 있다. 우선 국가가 주민에 의식주를 전적으로 책임지던 때와는 달리, 이제는 상당히 제한적으로 보장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쌀 배급에서도 1인 당 하루 필요한 700g(북한 주민의 쌀 소비는 밥 위주의 식사로 남한인의 소비량 보다 훨씬 많다) 중 300g 만 배급하고 있다. 이 300g은 우리로 치면 사회 안전망 확보의 차원이다. 결과적으로 북한 주민의 국가 의존도가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북한 정권이 용천역 사고 계기로 휴대폰 사용 금지 조치 등 외부 접촉을 강하게 제한하고 장발 단속 등도 시작한 것은 7ㆍ1 조치 이후 생긴 정치 치안 불안과 무관하지 않다. 이것은 북한 정권이 겪는 개혁의 피할 수 없는 딜레마이다.”

- 경제난, 정치 치안 불안 등의 여파로 올해에 북한 정권 운영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선군(先軍) 정치는 기본적으로 계엄 정치이다. 정치 치안 문제가 증대됨에 따라 선군 정치라는 기본틀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경제 정책에선 정치적 영향력을 상당히 배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 같다. 경제 정책은 내각이 책임지고 밀고 나가는 형태로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김정일 측근인 박봉주 내각 총리의 행보가 주목된다. 그리고 2004년 이후로 북 - 중 간 무역이 쌀을 제외하고는 훨씬 활발해졌다. 화교 자본이 대거 북한에 들어와 무역을 하고 있다. 북한도 중국 자본 유치에 적극적이다. 최근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 북한은 지난해 중국의 ‘가정 책임 경영제’를 본떠 ‘포전(圃田) 담당제’를 도입해 농업 개혁 실험을 하고 있다. 시장 경제 요소를 제한적으로 받아들인 것인데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

“포전 담당제는 일부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다. 올해에 더욱 확대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포전 담당제의 내용은 300~400평 규모 내에서 집단 영농이 아닌 개인 영농을 허용하는 것이다. 2, 3가구 단위로도 떼 주기 때문에 부자(父子)가 같이 하는 가족 영농도 가능하다. 당국은 현물 형태로 토지 사용료를 걷는다. 농업 개혁에 시장 경제 기능을 도입한 포전 담당제는 현재의 협동 농장과 향후 완전 자율 농장의 중간 형태이다. 결국엔 농민이 돈 되는 작물을 선택해 경작하고 국가에 화폐로 세금을 내는 형태로 갈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의 식량난은 전반적인 어렵지만, 쌀값 폭등ㆍ포전 담당제 등의 영향으로 농촌 보다 도시 노동자가 더 혹독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도ㆍ농 간의 식량난에 차이가 있다. 그리고 최근 중국에서 수입되는 물품들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것은 돼지고기 수입이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이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식량난 속에서도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는 특수 계층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을 반증이다. 제한적 시장 경제 도입에도 빈부차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 내달이면 미국 부시 2기 정부가 출범한다. 이미 이념 보다 국제 관계를 중시하는 전문 외교관 출신의 실용주의자들이 2기 국무부에 라인업 됐다. 또한 부시 정부는 2기 출범을 앞두고 대북 기본 정책 노선을 ‘체제 변화(regime change)’에서 ‘체제 전환(regime transformation)’으로 수정했다. 이것은 여러 해석이 나올 수 있?‘미국의 대북한 논리의 변화’를 의미한다. 향후 북한 핵 이슈 등 미국의 대(對) 북한 정책을 전망하면.

“미 국무부 동아ㆍ태 차관보에 내정된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 대사는 ‘체제 전환’에 대해 지도자의 품성(personality)이 아닌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 초점을 둔 것으로 설명한다. 그가 말하는 행동 변화란 북한 체제의 근본 변화가 아닌, 핵 개발 포기를 뜻한다. 즉 김정일 정권이 핵 개발만 포기한다면 북한 정권을 인정하겠다는 논리이다. 이것은 내용상으로 보면 클린턴 정부의 ‘페리 프로세스’와 별 반 다를 게 없다. 그러나 부시의 정치 스타일이 ABC(Anything But Clinton: 클린턴을 절대 따라 하지는 않는다)인 점을 고려해 볼 때 대북한 문제에 부시 정부가 북핵 안보리 회부 가능성ㆍ인권 문제 등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고리를 걸어 놓은 것은 이해할 만하다. 즉 2기 부시의 외교ㆍ안보팀이 1기에 비해 상당히 유화적 모양새를 갖췄지만, 클린턴 때와 달리 ‘외교와 압박’이라는 2개의 사인을 동시에 보내고 있는 것이다. 미국도 마찬가지이지만, 북한도 미국을 잘 읽어야 한다. 부시 2기 출범 기조 연설에서 확실한 미국의 노선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 1월 12일 탈북자 문제에 대한 현장 조사를 위해 중국을 방문중인 한나라당 의원단이 베이징에서 기자 회견을 하려하자 중국 당국이 거세게 제지해 외교적 물의를 빚고 있다. 중국이 왜 이렇게 민감하게 대응하나.

“미국이 북한인권법을 발효시킨 뒤, 중국은 탈북자 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다. 일차적으로 중국은 기획 탈북(脫北) 장소로 자국이 이용되는 것에 대해 불쾌해 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국회의원이 북한의 인권 문제로 자국에서 기자 회견을 하는 것은 향후 북 - 중 관계를 고려해 부정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중국은 북한의 인권보다 당장은 북한과의 관계 유지를 통한 대(對)북한 영향력 확보가 우선이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01-20 15:31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