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3인이 말하는 북한식량난 상상초월, 살아남기 위해 '장사'에 나서중앙계획경제체제 붕괴로 공식적 배급도 끊겨

[지금 북한은] "장사하지 않으면 굶어죽을 지경이다"
탈북자 3인이 말하는 북한
식량난 상상초월, 살아남기 위해 '장사'에 나서
중앙계획경제체제 붕괴로 공식적 배급도 끊겨


중국식 시장 경제를 표방, 2002년 7월 1일 취해진 '경제 관리 개선 조치(7ㆍ1조치)' 이후 북한의 과연 어느 정도 달라졌을까?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시기에 약 200만 명의 북한 주민이 아사했다는 흉흉한 소문의 그림자는 정말 가셨을까? 어쨌거나 노동 생산성은 현저히 높아졌다는데 정말일까? 그러나 최근 입국한 탈북자들은 그 같은 얘기에 쉽게 맞장구 쳐주질 않는다. 진실은 어디 있을까?

주간한국은 세 사람의 증언자들을 통해 진실에 접근했다. 탈북자 재교육장인 하나원에서 교육을 마친 탈북자 주현미(가명ㆍ26)씨, 북한에 남겨둔 가족들과 한 달에 2~3번의 연락을 취하고 있다는 차성일(가명ㆍ38ㆍ입국 2년차)씨와 서원국(가명ㆍ32ㆍ입국 3년차)씨로부터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을 엿보았다. 차씨와 서씨는 북한 내부까지 깊숙이 접촉하고 있는 중국 거주 브로커를 거쳐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의 안부는 물론, 북한의 요즘 모습까지 제법 소상히 알고 있는 인물이다. 다음은 그들이 전하는 북한의 모습.

- 7ㆍ1조치 이후에 나타난 생활상의 변화는?

△주: "많은 변화가 생긴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생산성 향상이 가장 큰 변화다. 목표치를 달성한 이후의 잉여 생산물은 개인에게 지급되었으므로 당연한 결과다. 그렇지만 그 때문에 병패도 많았다. 일례로 인민들이 더 많은 생산을 하기 위해 당국에 더 많은 원료를 요구하게 되었고, 급기야 원료 공급이 안 되면 자신들이 직접 원료를 사겠다며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 여기에 맞춰 너무 많은 화폐를 발행, 물가가 치솟았다. 제한된 식량을 돈으로만 사려고 하니까 얼마나 올랐겠나. 그 상승세는 쌀값이 주도했는데, 1kg에 40원 하던 것이 이후에는 400원, 지금은 700원까지 한다. 북한 노동자 월급은 2,000~2,500원선이다."

△서: "돈께나 받는 사람들도 한 달 월급으로 쌀 6kg을 사면 모두 다 날아가는 판국이다. 화폐 남발을 막기 위해 당국서는 복권이나 공채 발행 등으로 돈을 흡수하려는 시도까지 했지만, 고물가 행진을 막을 수는 없었다."

△차: "이렇게 되고 보니, 너나 할 것 없이 장사에 뛰어 든다. 장사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지경이다. 뭐든 장마당(시장)에 내다 판다. 텃밭에서 키운 채소 몇 점을 마을 노인들이 펼쳐 놓고 앉아 기다리던 게 전부였던 장마당이 지금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한다. 세금 20%만 내면 누구나 장사를 할 수 있다."

이들은 '세금 20%' 때문에 진풍경도 연출된다고도 했다. 세금을 면하려 일단 매장안으로는 들어가지 않는 바람에그 문전이 먼저 성시를 이룬다는 것이다. 단속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엔 사람이 하는 일이고, 같은 동네 사람들이다 보니 단속도 형식적일 수 밖이라는 것이 또 이들이 최근 접한 소식이다. 결국 북한 주민들은 살인적인 물가에서 살아 남기 위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장사'를 한다고 했다.

△서: 자본주의화 한 중국에 잠시라도 나가서 '돈 맛'을 본 사람들은 웬만해선 북한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 것도 내가 본 현상 중의 하나다. 그들은 공안에 잡혀 북송되더라도 북한에서 다시 나오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 더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좋은 물건을 쓰다가, 누가 북한으로 들어 가 살려고 하겠는가. 잡혀 들어 가면서도 죽음을 무릅쓰고 다시 나올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주: 친구들 같은 경우도 요즘은 군출신의 당원보다는 장사를 해서 부자가 된 사람을 배우자감으로 맞아, 배불리, 여유로운 삶을 살겠다는 것도 변화라면 변화다. 지금도 일부 당원들이 호화롭게 사는 건 사실이지만, 지금도 계속 변화하고 있는 북한이기 때문에, 이런 생각들은 조금만 앞을 내다 본다면 쉽게 품을 수 있는 생각들이다.

△차: 예전에는 조총련계 제일 교포들의 입대나 입당을 막았지만, 그들이 일본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재력을 갖추자 북한에서는 이제 그것을 허(許)하고 있다. 재력을 기반으로 해 북한에 권력을 잡고 싶어 하는 교포들이 거쳐야 할 곳은 여전히 군 조직이다. 군을 거쳐야 입당해서도 상부로 오를 수 있으니까. 이 같은 변화도 북한 사회에서의 돈이 차지하게 된 위력을 대변해 주고 있다.

-북한에서도 한류가 붐이라라던데?(경제가 아닌 문화 혹은 생활의 차원에서도 자본 또는 남한의 영향이 파고 들었는지를 알아 보기 위해 던진 질문이었다)

△서: 2000년까지만 하더라도 가요, 그것도 트로트가 대부분이었다. 요즘은 중국에서 녹화된 한국 드라마가 비디오 테이프나 비디오 CD로 북한에 들어간다. '야인 시대', '대장금' 등이 인기를 끌었고 최근 일본서 인기를 끈 '겨울 연가'까지 돌려가며 보고 있다고 한다. 이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중국 애들이 한국의 위성 방송을 녹화해 뒀다가 북한으로 되돌아 가는 여행객들에게 판 것들이다.

△차: 요즘에는 중국에서 온 한국 영화나 드라마라고 하면 북한 사람들은 묻지도 않고 구입해 간다. 불법이지만 북한에서 고가에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화장품까지 들어 간다고 한다.

△주: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은 북한에서 제일 인기 있다. 남한 상품이 북한으로 못 들어가게 돼 있지만 잇속에 밝은 장사치들이 눈 앞의 이윤을 가만둘 리 없다. 중국서 북한으로 들어갈 때에는 한국 상표를 뗐다가, 북한에 들어가서 다시 슬쩍 붙이는 수법도 동원된다.

△서: 그게 좀 심해져서 중국 상인들이 중국의 값싼 상품에 가짜 한국 상표를 붙여서 북한에 팔고 있다. 이렇게 되면 두 배는 더 쳐서 받는다고 한다. 북한 일부 계층에서는 진품, '메이드 인 코리아'제품만을 귀신같이 알아 보고 구입하는 사람들까지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명품족의 북한판이다.

- 북한의 식량난은 지금 어떤가

△주: 상상을 초월한다. 나는 북한에 있을 때 이가 필요 없었다. 씹을 거 없이 그냥 마시기만 하면 됐기 때문이다. 송치(강냉이의 뼈대)까지 갈아 먹었다. 당국에서 동물이 먹고 괜찮으면 사람이 먹어도 된다고 해서, 짐승들이 먹는 풀은 거의 다 먹었다. 지금도 거의 변함없다. 그나마 내가 있는 곳엔 산이라도 있어 철따라 과실, 풀뿌리를 채취해 먹기도 했지만, 황해도 사리원(곡창지) 사람들 경우는 수확기 지나고 나면 배급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벌방 지역(논농사 지역)에서는 농장에서 나오는 산물 외에는 먹거리가 전무하다시피 하기 때문에, 역설적인지만 '고난의 행군'시기에는 곡창지대 사리원에서 아사자가 더 많이 나왔다.

△서: 도시나 공업지에서는 공급(배급)이 끊겨서도 현지에서 생산되는 것들이 유통이 돼 그 물건으로 장사를 하며 살아 간다. 물건이 유통되는 현장을 직접 보는 지역 사람들이 빨리 깨우치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런 데 눈을 빨리 뜨지 못하는 사람들은 거의 길가로 나 앉은 것으로 봐도 크게 틀리지 않다. 중앙 계획 경제 체제의 붕괴로 공식적인 배급이 끊기자 가장 당혹해 하는 곳이 벌방 지역이다. 이들은 공급이 끊어지면 굶어 죽는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다. '꽃제비'라 불리는 어린 부랑아들도 거기서 많이 나온다.

△차: 중국 친척집으로 가서 몇 달 머물다 돌아오면, 같은 동네 사람들이 몰라 볼 정도로 때깔이 좋아진다. 그만큼 북한에서 먹는 것들은 취약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업무차 중국에 1년 정도 머물다 작년 추석 때 들어 온 중?간부가 자신의 아파트에 못 들어 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아파트 경비를 알아보는데 경비는 그를 못 알아봐서 생긴 일이다. 먹고 입는 것 하나에 사람이 그만큼 달라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주: 내가 중국에 머물 때만 해도 이 사람이 중국으로 온 지 얼마나 되었는지 금세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사람 얼마됐구나, 저 사람은 피래미구나'하는 식으로 얼굴이나 옷차림으로 한눈에 알아 본다. 취약한 북한 음식이 그들 얼굴에 '나 북조선사람'이라고 적어 놓는다.

△차: 북한이 식량난에 계속 시달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비료 공장들이 죄다 놀고 있기 때문이다. 땅에서 기름기가 없어진 지는 오래다. 하는 수 없어 하는 일이 '인분 회수 운동'이다.

인분(진거름) 회수 운동은 장애인 소설가로서 북한의 인기 작가로 추앙받고 있는 림재성씨가 쓴 소설 '찬란한 미래'에도 잘 드러나 있다. 소설은 '고난의 행군'시기(1994~1998년)에 어려운 경제난과 극심한 식량난을 극복해 나가는 관리들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그 구절은 다음과 같다.

로동자, 농민, 사무원 할 것 없이 도안의 모든 주민들이 진거름을 회수하는 군중적 운동을 벌려야 하겠습니다. 한 세대당 200키로그람이면, 20만 세대만 해도 4만 톤의 진거름을 모을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이 그날 그날 배설한 인분을 회수하여 비료 대용품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도당 책임 비서를 비롯하여 시당 책임 비서, 교수, 문필가, 도와 시급의 책임 일꾼들 할 것 없이 아침마다 비닐통에 자신의 인분을 담아 나르고 직장마다 당직자가 진거름 회수 대장을 가지고 정문에 서서 이를 기록한다는 전언이다.

△주: 이 방법이 아니면 땅을 기름지게 할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에, 지금도 행해지고 있는 운동이다. 내가 북한에 있을 때까지 아침마다 이 진거름 때문에 한판 전쟁이 날 정도였다. 늦게 나가는 날에는 다른 사람들이 공동 화장실을 다 퍼 가버리기 때문에 전날 밤에 조용히 화장실에 나와서 미리 담아다가 집에다가 '모셔 놓고' 잠자리에 든 적도 부지기수다.

-전력난도 심하다던데.

△차: 하루 이틀 얘기가 아니다. 요즘은 평양 시내도 밤이 되면 고층 건물과 아파트들이 밤 하늘보다 더 까맣다고 한다. 아파트에 전등불 하나 안 들어 온 곳도 많다는 얘기다. 40층 높이의 아파트들로 즐비한데 꼭대기층에 사는 사람들은 전기가 안 들어오면 오죽하겠나. 엘리베이터, 물이 안 올라온다. 난방은 물론이다. 그래서 옷을 다 껴입고 자는 데다. 수세식 변기에 물이 공급 안 되니, 대소변도 비닐에다 본 뒤에 창 밖으로 던지고, 아침에 내려가서 그 변을 다시 치운다. 그래서 평양의 골목에서도 구린내, 쾌쾌한 내가 진동을 한다.

△주: 전기가 안 들어오니 TV가 있다 해도 거의 애물단지 수준으로 전락한 상태다. 전기가 잠시 들어 왔을 때 무슨 배터리를 충전해뒀다가 연결해 TV를 본다는 데도 있을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분기에 한 번씩 내는 전기 요금도 아예 낼 일이 없다.

△서: 남한에서는 흔하디 흔한 전등 하나를 못 켜 거의 대부분의 가정에서 등잔불을 사용하고 있다. 그나마 그 연료도 가격도 식량 수준이어서 맘놓고 사용할 수 없다. (기름으로 가는)길거리 자동차도 관용차들이고, 그 외는 목탄을 때는 차량들이다. 오죽했으면 김정일 국방위장이 새벽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보는 곳이 동평양화력발전소 굴뚝이라는 얘기가 다 나왔겠는가.

정민승 기자


입력시간 : 2005-01-20 15:52


정민승 기자 prufrock@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