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문제 정리는 통일시대 준비 의미"학술연구·실천운동 병행하며 친일문제 정면으로 다뤄
민족문제 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 [끝나지 않은 친일 논란] "친일문제 정리는 통일시대 준비 의미" 학술연구·실천운동 병행하며 친일문제 정면으로 다뤄
친일파에 의해 1949년에 와해되고 만 반민특위의 정신을 잇고, 친일 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故)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잇자는 기치로 1991년에 설립된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www.banmin.or.kr)는 시민 단체로서는 드물게 ‘학술 연구’와 ‘실천 운동’을 병행하며 과거사 바로 세우기에 앞장 서고 있는 단체이다. 군사 정권 때는 물론 이후 제도권내에서 친일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던 시기에 설립돼, 친일 문제를 역사의 정면으로 이끌어 낸 조직이다. 특히 연구소는 한일협정 문서와 친일 후손 재산 환수 특별법 입법 등 최근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사안들에 대해 지금까지의 연구를 토대로 학술, 법률적 근거들을 제공하고 있다. 초대 사무국장을 시작으로 그 동안 연구소의 살림을 도맡아 꾸려 온 조세열(47ㆍ경희대 겸임 교수) 사무총장으로부터 민족문제연구소가 그 동안 걸어 온 길과 연구소의 향후 연구 및 운동 방향에 대해 들어 봤다.
과거사 청산을 통한 역사 바로 세우기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가 13년 동안 걸어 온 길을 되돌아 보면 조 씨의 말은 겸사에 가깝다. 민족문제연구소의 학술연구와 실천 운동에 뜻을 같이하는 수 많은 국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연구소에 힘을 보탰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지층도 사회 저변으로 확대되고 있다. 현재 연구소를 후원하고 있는 유료 회원 수만도 5,000여 명에 이른다. 2003년에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 단체가 사업에 반대했을 때는 위기였다. 5억원에 이르던 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돼 앞으로의 사업이 불투명해졌옅㏏?甄? 그러나 이듬해 벌어진 모금 운동을 통해 11일만에 7억원이 넘는 성금을 모은 덕분에 덕분에 좌초될 뻔했던 사업이 추진될 수 있었다. 지난 연말에는 금년 사업비가 다시 책정됐다. 모금 운동에서 확인한 국민적 요구를 국회가 더 이상 거부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말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국민 성금 모금과 같은 쾌거 외에도 국민의 혈세로 지으려 했던 박정희기념관과 친일 문인ㆍ음악가 등의 기념 사업 저지, 일제하 강제 동원 진상 규명, 한일 교과서 바로 잡기 등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얻고 있다. “일본 교원 단체를 비롯한 양심적인 일본의 시민 단체들과 한국 단체들이 연대해 노력한 결과, 일본 학교에서의 왜곡 역사 교과서 채택률이 1%를 넘지 않습니다.” 전망은 밝다는 것. 일제하 강제 동원 규명 문제의 경우 일본측 시민 단체들이 진행중인 재판에서 한국측을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고, 강제 동원 관련 한일 공동 다큐멘터리 ‘시베리아 삭풍’도 순조롭게 제작되고 있는 상황이다. 광복 60주년이 되는 올해 8월 15일을 즈음해서 彭났?예정이다. 그럼에도 갈 길이 멀다고 한다. 그래서 광복 60주년을 맞아 민족문제연구소가 향후 취할 연구 방향과 운동 방향은 뚜렷하고 광범위하다. “친일 인명 사전 편찬 사업은 계속될 것이고 강제 동원 진상 규명, 통일 시대를 대비한 남북문화 연구 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입니다. 한일 협정과 관련해서는 독자적으로 구제 받을 능력이 없는 고령의 강제 동원 피해자들을 위해 지원 센터도 세울 계획입니다.”
친일재산환수 특별법 반드시 통과돼야 그러나 연구소의 살림꾼이라는 본분은 잊을 수 없다. 탄탄한 재원을 바탕으로 꾸려진 연구소가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오는 프로젝트를 처리하면서 발생하는 수입과 국민의 후원금으로 연구실과 사무국이 운영중인 실정에 당장 할 일이 한 둘 아니다. 이 곳 사무국 직원의 초임은 70만원 선. 연구실 박사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 정도 학식으로 다른 데서 연구를 하게 된다면, 이 곳의 서너 배는 벌 수 있을 것이라며 웃는다. “과거의 독립 투사들 수준이죠. 역사적 소명 의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정을 잘 아는 외부 기업으로부터 갖은 유혹을 받기도 했다고 그는 털어 놓았다. “한 대기업이 그 기업과 관계된 인사를 친일 인명 사전에서 제외시키면, 92년 당시 연구비 지원 명목으로 1억이 넘는 돈을 지원하겠다는 겁니다.” 어떤 유혹에도 미혹되지 않고 꿋꿋이 달려 온 덕분에 당당히 털어 놓을 수 있는 일이다. “우리와 뜻을 같이 하는 유력 정치인이 사무실을 제공하겠다고 나섰을 때도 거절했습니다. 시민 운동과 학술 연구가 결합한 단체가 특정 기업과 정치인으로부터 지원을 받는다는 게 연구의 객관성과 연구소의 독립성을 저해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어려움을 딛고 오늘에 이른 조 총장이 과거사 특별위원회에 거는 기대는 크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서두르지 말고 ‘조용히’, ‘꾸준히’, 그리고 ‘치밀하게’ 특위를 꾸려가시면 좋겠다. 친일 재산 환수 특별법도 시민 단체가 제출한 초안에 비기면 미흡한 점이 있지만, 민족사 정립을 위해 국가가 나선만큼 앞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나 나오리라 본다.”
입력시간 : 2005-01-27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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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승 기자 prufrock@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