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문제 정리는 통일시대 준비 의미"학술연구·실천운동 병행하며 친일문제 정면으로 다뤄

민족문제 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
[끝나지 않은 친일 논란] "친일문제 정리는 통일시대 준비 의미"
학술연구·실천운동 병행하며 친일문제 정면으로 다뤄


친일파에 의해 1949년에 와해되고 만 반민특위의 정신을 잇고, 친일 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故)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잇자는 기치로 1991년에 설립된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www.banmin.or.kr)는 시민 단체로서는 드물게 ‘학술 연구’와 ‘실천 운동’을 병행하며 과거사 바로 세우기에 앞장 서고 있는 단체이다. 군사 정권 때는 물론 이후 제도권내에서 친일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던 시기에 설립돼, 친일 문제를 역사의 정면으로 이끌어 낸 조직이다.

특히 연구소는 한일협정 문서와 친일 후손 재산 환수 특별법 입법 등 최근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사안들에 대해 지금까지의 연구를 토대로 학술, 법률적 근거들을 제공하고 있다. 초대 사무국장을 시작으로 그 동안 연구소의 살림을 도맡아 꾸려 온 조세열(47ㆍ경희대 겸임 교수) 사무총장으로부터 민족문제연구소가 그 동안 걸어 온 길과 연구소의 향후 연구 및 운동 방향에 대해 들어 봤다.

과거사 청산을 통한 역사 바로 세우기
“갈 길이 참 멉니다.” 친일인명사전편찬사업의 주간 연구소인 민족문제연구소가 그 사업의 첫 성과물로 ‘친일 협력 단체 사전(국내 중앙편)’을 세상에 낸 지 한 달여. 조세열(47) 사무총장은 “그것은 시작으로 보기에도 다소 부족하다”며 서두를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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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 과거사 특별위원회가 구성돼 활동에 들어가는 등 과거에 비하면 국가 기관이 진상 파악에 나선 것은 아주 의미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는 특위를 구성하고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해서 진상의 드러내는 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과거사 전모가 드러나면 이를 바탕으로 학자들이 올바른 민족사를 정립하는 것은 물론, 과거사로 분열된 사회를 재통합하고 나아가 통일 시대도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 친일 인명 사전이 완간되었을 때, 민족문제연구소의 설립 목적인 ‘한일 과거사 청산을 통한 역사 바로 세우기’가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가 13년 동안 걸어 온 길을 되돌아 보면 조 씨의 말은 겸사에 가깝다. 민족문제연구소의 학술연구와 실천 운동에 뜻을 같이하는 수 많은 국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연구소에 힘을 보탰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지층도 사회 저변으로 확대되고 있다. 현재 연구소를 후원하고 있는 유료 회원 수만도 5,000여 명에 이른다.

2003년에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 단체가 사업에 반대했을 때는 위기였다. 5억원에 이르던 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돼 앞으로의 사업이 불투명해졌옅㏏?甄? 그러나 이듬해 벌어진 모금 운동을 통해 11일만에 7억원이 넘는 성금을 모은 덕분에 덕분에 좌초될 뻔했던 사업이 추진될 수 있었다. 지난 연말에는 금년 사업비가 다시 책정됐다. 모금 운동에서 확인한 국민적 요구를 국회가 더 이상 거부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말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직원들이 친일청산 의지를 담아 '친일청산'이라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김지곤 기자

민족문제연구소는 국민 성금 모금과 같은 쾌거 외에도 국민의 혈세로 지으려 했던 박정희기념관과 친일 문인ㆍ음악가 등의 기념 사업 저지, 일제하 강제 동원 진상 규명, 한일 교과서 바로 잡기 등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얻고 있다. “일본 교원 단체를 비롯한 양심적인 일본의 시민 단체들과 한국 단체들이 연대해 노력한 결과, 일본 학교에서의 왜곡 역사 교과서 채택률이 1%를 넘지 않습니다.” 전망은 밝다는 것. 일제하 강제 동원 규명 문제의 경우 일본측 시민 단체들이 진행중인 재판에서 한국측을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고, 강제 동원 관련 한일 공동 다큐멘터리 ‘시베리아 삭풍’도 순조롭게 제작되고 있는 상황이다. 광복 60주년이 되는 올해 8월 15일을 즈음해서 彭났?예정이다.

그럼에도 갈 길이 멀다고 한다. 그래서 광복 60주년을 맞아 민족문제연구소가 향후 취할 연구 방향과 운동 방향은 뚜렷하고 광범위하다. “친일 인명 사전 편찬 사업은 계속될 것이고 강제 동원 진상 규명, 통일 시대를 대비한 남북문화 연구 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입니다. 한일 협정과 관련해서는 독자적으로 구제 받을 능력이 없는 고령의 강제 동원 피해자들을 위해 지원 센터도 세울 계획입니다.”

친일재산환수 특별법 반드시 통과돼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용역을 받아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친일 재산 환수 특별법’에 대해서도 조 총장은 “이 달 말 국회에 발의될 예정인데 입법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선량한 국민들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서도 이 법은 꼭 통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일 후손 하나가 가처분 신청을 한 경기 부천의 한 아파트 단지만 하더라도, 그 신청이 받아들여지게 되면 그 아파트 주민들의 재산권은 모두 동결될 실정이라는 것. 또 친일재산특별법은 토지 전문 브로커들의 사기 행각으로 드러난 강두운평 사건과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시급히 입법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소의 살림꾼이라는 본분은 잊을 수 없다. 탄탄한 재원을 바탕으로 꾸려진 연구소가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오는 프로젝트를 처리하면서 발생하는 수입과 국민의 후원금으로 연구실과 사무국이 운영중인 실정에 당장 할 일이 한 둘 아니다. 이 곳 사무국 직원의 초임은 70만원 선. 연구실 박사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 정도 학식으로 다른 데서 연구를 하게 된다면, 이 곳의 서너 배는 벌 수 있을 것이라며 웃는다. “과거의 독립 투사들 수준이죠. 역사적 소명 의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정을 잘 아는 외부 기업으로부터 갖은 유혹을 받기도 했다고 그는 털어 놓았다. “한 대기업이 그 기업과 관계된 인사를 친일 인명 사전에서 제외시키면, 92년 당시 연구비 지원 명목으로 1억이 넘는 돈을 지원하겠다는 겁니다.” 어떤 유혹에도 미혹되지 않고 꿋꿋이 달려 온 덕분에 당당히 털어 놓을 수 있는 일이다. “우리와 뜻을 같이 하는 유력 정치인이 사무실을 제공하겠다고 나섰을 때도 거절했습니다. 시민 운동과 학술 연구가 결합한 단체가 특정 기업과 정치인으로부터 지원을 받는다는 게 연구의 객관성과 연구소의 독립성을 저해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어려움을 딛고 오늘에 이른 조 총장이 과거사 특별위원회에 거는 기대는 크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서두르지 말고 ‘조용히’, ‘꾸준히’, 그리고 ‘치밀하게’ 특위를 꾸려가시면 좋겠다. 친일 재산 환수 특별법도 시민 단체가 제출한 초안에 비기면 미흡한 점이 있지만, 민족사 정립을 위해 국가가 나선만큼 앞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나 나오리라 본다.”

▲ 친일인명사전
만여 명의 친일파 색인으로 정리

친일 인명 사전 편찬 사업의 주간연구소인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해 말 그 첫 성과물로 ‘일제 협력 단체 사전(국내 중앙편)’을 발간했다. 900여 쪽이 이르는 이 책에는 일진회 등 당시 친일 여론을 확산시키며 나아가 친일 정부를 구성, 일제의 조선 지배 정책 수행에 협조할 목적으로 결성된 대한제국의 친일 단체들이 수록돼 있다. 친일파 총서의 첫 권에 해당하는 이 책은 350여개의 일제 관변 단체와 민간 협력 단체가 단체별 연혁, 성격, 주요 활동, 사업 내용, 구성원 등에 걸쳐 상세한 내용으로 기록돼 있다. 단체에 가담했던 만 여 명의 인명은 색인으로 정리돼 있다.

이후 제 2권 ‘일제 협력 단체 사전(해외편)’, 제 3권 ‘조선총독부 기구 사전’, 제 4권 ‘일제 협력 단체 사전(국내 지방편)’, 제 5권 ‘친일 인명 사전’, 제 6권 ‘일제의 민족 분열 정책’(이론적 총론), 제 7권 ‘자료집’ 그리고 마지막으로 친일 총서가 편찬되기까지 겪어야 했던 비사를 정리한 백서를 마지막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원래 이 작업은 2006년에 마무리 될 예정이었으나 연구 인력이 작은데다 재정마저 쪼달려 예정보다 늦은 2007~2008년께 완간 될 계획이다. 조세열 사무총장은 친일 인명 사전 편찬과 관련, “당시의 잡지와 신문, 관보 등 고문서와 재판 기록들을 중심으로 자료 정리가 이루어지는데 자료에 대한 접근이 힘들어 寧?먹고 있다”며 “사생활 침해가 발생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ㅊ寬?융통성을 발휘해 줄 것”을 요청했다.

정민승 기자


입력시간 : 2005-01-27 16:13


정민승 기자 prufrock@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