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100년 전쟁' 제2라운드1908년 부평땅 놓고 한차례 소송서 송씨측 승소2008년 국가 반환 앞두고 민씨측 소유권 회복 소송
[끝나지 않은 친일 논란] 송병준 후손 VS 민영환 후손 '땅 100년 전쟁' 제2라운드 1908년 부평땅 놓고 한차례 소송서 송씨측 승소 2008년 국가 반환 앞두고 민씨측 소유권 회복 소송
100년 가까운 시차를 두고 친일파 후손과 열사의 후손이 ‘땅 전쟁’을 벌이고 있다. 대표적 친일파로 꼽혀 온 송병준의 후손과 을사조약(1905년) 때 자결한 충정공 민영환의 후손이 땅 주인을 가리기 위해 소송에서 맞붙은 것. 송병준의 증손 송돈호씨가 2002년 9월 “인천시 부평구 산곡동의 미군 기지인 캠프 마켓이 증조부의 땅이었다”며 소유권 회복 소송을 제기한 데 대해 민영환의 후손 민병기씨가 2004년 5월 독립 당사자로서 소송에 참여한 게 직접적인 계기였다. 양측은 100여년 전인 1908년에도 같은 지역을 놓고 소송을 벌였었다. “근대 농업 회사인 목양사 땅(현 부평 산곡동 지역)을 송병준이 민영환의 노모를 속여 빼앗았다”는 민영환 측의 주장에 대해 송병준 측이 “민영환의 생모가 민영환의 장례 비용 빚을 갚기 위해 땅을 팔아 달라고 부탁해 ‘일진회’(친일 단체)로 하여금 사들이게 한 것”이라고 반박했던 것이다. 조선통감부 재판소는 1908년 12월2일 당시 실세이던 송병준 쪽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러나 이 땅은 해방 후 미군정에 의해 국가로 강제 귀속됐다.
송병준의 증손자 등은 1994년에 이어 1997년에 땅의 소유권을 주장했지만 각각 증거 불충분으로 패소하거나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2002년 송병준 소유로 기록돼 있는 부평 땅의 옛 등기부 등본을 토대로 다시 소송을 제기, 현재 유리한 고지에 올라 있다는 분석이다. 대정(大正) 5년(1916년) 옛 임야 대장에 사정(査定) 취득자로 송병준의 이름이 기록돼 있고 1923년 조선총독부 소유를 거쳐 해방 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8월11일 미군이 주둔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 반면 민영환의 후손 민병기씨는 “황현이 쓴 ‘매천야록’에는 ‘충정공이 자결하자 송병준이 그 분의 재산 500석 지기(현 부평 산곡동)도 갈취했다’는 내용이 있다”면서 “1908년의 재판은 시대 상황상 송병준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무효 재판으로 소유권은 우리 쪽에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현재 송병준 후손 쪽에서 제기한 소송은 국가와의 소유권 다툼과 민영환 후손과의 소송 분쟁으로 양분할 수 있다. 현재 친일파 후손의 재산 반환 소송의 판례 추이를 볼 때 원고(송병준)의 승소 가능성이 점쳐진다. 그렇게 되면 향후 반환될 부평 땅의 소유권은 송병준 후손과 민영환 후손 중 승자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입력시간 : 2005-01-27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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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