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픔이 닥치더라도 당신이 있어 나는 행복해요"만성 신부전증 아내 위해 신장 떼준 남편

[가족] 장기이식 부부 최정화·김순복
"어떤 아픔이 닥치더라도 당신이 있어 나는 행복해요"
만성 신부전증 아내 위해 신장 떼준 남편


‘어떤 사실보다 더 큰 아픔이 있어도 당신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 당신을 내가 지켜줄 수 있다는 것에 하느님께 감사 드리고 이것이 기쁨이려니. 투석으로부터 이식하기 전 오늘까지 안타깝고 초조하고 불안한 심기는 모두 걷혀 가누나. 주사위는 던져졌다.’

지난 해 6월 22일 늦은 밤 서울 아산병원의 한 병실. 잠을 못 이루던 최정화(54ㆍ서울 광진구 자양동)씨는 아내 김순복(54)씨를 떠올리며 시를 써 내려 갔다. 이튿날은 만성 신부전증을 앓아 온 아내가 신장 이식 수술을 받는 날. 최씨 역시 ‘가족 교환’ 프로그램(신부전증 환자의 가족끼리 맞기증한 두 개의 신장으로 두 환자에게 동시 이식 수술을 하는 것)에 따라 같은 날 신장 적출 수술을 받게 돼 있었다.

많은 기억이 뇌리를 스쳐 갔다. 아내는 2001년 8월부터 혈액 투석을 받기 시작했다. 이틀에 한 번씩 기계에 의존해 피를 걸러야 하는 고통스러운 투병 생활. 파리한 표정에 몸도 잘 가누지 못하는 아내를 바라보는 최 씨의 마음은 미어질 듯 아팠다. ‘내 신장이라도 떼어 줘야지….’ 최 씨가 오래지 않아 내린 결심이었다.

그러던 차에 맏딸 은경(28)씨가 먼저 나섰다. 자기의 신장을 기증해 어머니를 병마의 수렁에서 구해내겠다며 부모 몰래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www.donor.or.kr)에 등록한 것이다. 효심은 갸륵했지만 주변에서 만류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에게 신장 적출은 부담스러운 일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부모의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금지옥엽 아끼는 딸의 몸에 칼을 댈 수는 없었다.

건강 되찾은 아내 모습에 한없는 행복
망설임 없이 최 씨가 사랑의 바통을 이어 받았다. 때로는 소꿉동무처럼 때로는 오누이처럼, 금실 같은 연분을 28년 동안이나 나눠 온 아내에게 못 해 줄 것은 없었다. 자신이 고생할 것을 걱정한 아내의 반대도 어렵사리 넘었다.

우여곡절 끝에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아버지와 친구처럼 지내는 맏딸 은경 씨는 병실 침대 위의 최 씨를 끌어 안으며 울었다. 김 씨도 남편이 못내 안쓰러워 수술 부위를 보자고 했지만, 최씨는 오히려 덤덤하게 아내와 딸을 안심시켰다. 사실, 장기를 이식 받는 사람보다 떼어 준 사람의 통증이 더 심하다고 한다. 더구나 최씨는 신장의 순조로운 적출을 위해 13번 갈비뼈를 잘라내기까지 했다.

수술 후 6개월. 최씨는 몸이 조금 약해졌지만, 예전의 건강했던 모습을 거의 되찾은 아내를 보면 마음이 뿌듯하다. 김씨도 “부부는 돌아서면 남남이 된다고 무촌인데, 남편이 저를 위해 신장을 떼어낸 것을 생각하면 너무 고맙고 부부애도 새로워지는 것 같다”고 화답한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02-02 10:13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