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서로의 든든한 버팀목, 이방인의 서러움 견디게 해요"2002년 일가족 21명과 '목숨 건 목선 탈출'

[가족] 탈북 최동현씨, 또다른 이산의 아픔 겪으며 생활
"가족은 서로의 든든한 버팀목, 이방인의 서러움 견디게 해요"
2002년 일가족 21명과 '목숨 건 목선 탈출'


“기자 선생이 온다고 하니깐 북에 두고 온 애들 삼촌, 고모들 피해 입을까 걱정부터 됩니다.”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서 새 둥지를 틀고 신문 배달과 택배일을 하는 탈북자 최동현(43)씨는 취재 요청에 한참을 망설였었다. 세상에 거침없이 나오기란 아직 여러 모로 두렵기 때문이다.

최 씨 가족은 부인 순영옥(40)씨와 두 딸(수양ㆍ16, 수련ㆍ11) 등 모두 넷. 그들은 평북 신의주에서 2002년 8월 다른 두 가족 등 21명이 20톤급 작은 목선에 목숨을 맡긴 채 서해 공해상을 경유 탈북해, 세상의 주목을 받았던 ‘보트 피플’이었다. 당시 최 씨는 부인 순 씨 친정 일가족이 주도한 탈북 계획을 나중에 알고 서둘러 합류했던 탓에 조실부모한 자신의 형제 자매 여섯에게는 소식 한 자 못 남기고 떠나왔다.

부인 순 씨는 “당시 여러 사정을 자세히 설명하기 힘들지만, 시숙과 시누이를 생각하면 남편에게 한없이 죄송하다”며 못내 고개를 숙인다. 그들에게 탈북은 목숨을 건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면서, 한편으론 가족이 찢어지는 이산의 아픔을 만든 원인이었던 셈이다.

설 명절땐 북에 남은 형제 더 그리워
최 씨는 설이 다가오는 요즘, 황망히 떠나 온 북녘 땅 형제들이 더욱 그립다. 이럴 땐 소주 한 잔에 “몇 시간 거리에 부모 자식, 부부간에 찢어져 사는 분들도 수두룩한데…”라는 말을 띄워 올려 수심을 거둔다. 그리고 한 남녘 땅을 찾아 왔건만 남녘 땅은 날씨만큼 따뜻한 데가 아니었다. 이방인 같은 한국 땅에서의 서러움이 사무쳐 올 때, 최 씨는 노사연의 ‘만남’을 한 곡조 뽑는다. 최 씨의 애창곡 ‘만남’은 사랑을 노래하지만 그에게는 서러움을 달래주는 눈물이다. “돌아보지 말아/후회하지 말아/아, 바보 같은 눈물 보이지 말아.”

무엇보다 최 씨에게 힘이 되는 것은 한국의 딸들 못지않게 배고픔 없이 밝게 자라고 있는 수양, 수련이다. 중학생, 초등학생인 두 딸은 형편이 어려워 학원도 못 보내지만 공부는 곧잘 한다. 가끔 TV서 배운 동요 ‘아빠 힘내세요’를 합창 하며 애교를 부릴 땐 새벽 2시부터 시작되는 일과의 고단함도, ‘2등 국민’ 취급 받는 서러움도 어느 새 달아난다.

역시 두 딸은 최 씨 가족이 힘을 얻는 원천이다. 처음엔 식당 일을 하다 지금은 남편과 함께 신문 배달과 택배 일을 하는 부인 순 씨는 “우리가 기댈 곳은 가족뿐”이라며 힘들 땐 “서로 힘내자”며 손을 맞잡는다고 한다. 꼭 성공해서 통일되는 그 날 북의 가족을 만나자며….

함께 탈북한 부인 순 씨의 부모님과 형제들은 지금 고향 충남 논산서 멀지 않은 대전에서 모두 새 삶터를 잡았다. 최 씨는 생사를 같이 하며 탈북한 처가 식구들이지만, 자본주의 생활에 적응하느라 좀체 마음같이 자주 못 보는 것이 안타깝다. 그래도 설 명절 때 찾아갈 곳이 있는 것이 여느 탈북자 보다 행복한 축에 낀다고 웃는 최 씨가 한 마디 덧붙였다. “북한에서도 설 명절 땐 차례도 지내고 가족들이 모여 덕담도 하고 술과 음식을 나눈다. 다만, 멀리 있는 가족은 교통 사정이 안 좋아 함께 하기 힘들다”고 저간의 북한 사정을 전한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02-02 10:17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