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형 본부·팀제 도입, 계급·연공서열 뒤흔드는 '정부혁신'4~5급 계장이 국장급 2급 이사관 위치에서 팀장 역할

[행자부는 혁명 중] 계급장 떼고 철밥통 깬다
기업형 본부·팀제 도입, 계급·연공서열 뒤흔드는 '정부혁신'
4~5급 계장이 국장급 2급 이사관 위치에서 팀장 역할


“K기획관님 방이 어디더라?” “L계장, 아니 L팀장 구내 전화번호는…”

요즘 행정자치부 공무원들은 광화문 청사 내에서조차 서로 얼굴 한번 보려면 수 차례 숨바꼭질을 해야 한다. 정부 수립 이후 가장 화끈한(?) ‘조직 혁신’ 공사 탓이다.

지금 전국 90만 공무원들의 눈과 귀가 온통 행자부에 쏠려 있는 것도 이 때문. 60년을 지켜온 ‘철밥통’ 깨지는 소리가 그곳에서 들려온다는 것이다.

행자부는 지난달 기존의 실-국-과를 폐지하는 대신 기업형 본부-팀 시스템을 전격 도입한 인사ㆍ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조직개편 내용 중 주목되는 부분은 본부장은 1~3급, 팀장은 2~5급에서 선발하도록 한 것(기존의 계급제에서는 실장 1급, 국장 2급, 과장 3~4급, 계장 4~5급)이다. 갓 임용된 5급 사무관이 국장급 2급 이사관과 마찬가지로 팀장이 될 수 있게 됐다.

특히 조직 내부에서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변화는, 7급에서 시작하면 20년 가까이 걸리는 4~5급 계장급 200여명 대다수가 ‘계급장’ 떼고 팀원으로 전환된 것. 다르게 말하면 그들의 20년 캐리어가 이번 조치로 하루 아침에 날아간 셈이다.

공무원 사회의 전통적인 계급과 연공서열을 완전히 뒤흔드는 ‘혁명’이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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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조직 혁명’은 책상 배치 등 사무실 외형에서도 ‘상전벽해(桑田碧海)’를 만들었다. 우선 200여명의 계장 직급이 없어짐에 따라, 기존 계급제 구조를 반영한 T자형 책상 배치를 수평적 팀제 방식에 맞게 바꿨다. 이 과정에서 일부 팀은 아예 제비 뽑기로 팀원들의 책상 위치를 정하기도 했다. 특히 그렇지 않아도 서러운 과거 계장들에겐 ‘잔인한 4월’이 된 셈.

결재권 하향위임, 팀장 위상 제고
결재권의 변화도 크다. 전결권이 대폭 하향 위임돼 팀장의 권한과 책임이 크게 늘어났고, 사실상 팀장이 조직의 중추로 떠올랐다. 주요 정책 결재 단계도 팀장-본부장-장관 순으로 기존 5단계에서 3단계로 줄어들고, 실적에 따라 인사와 보수가 달라지게 된다.

사실 이번 조직 개편은 행자부가 정부혁신의 전범이 돼야 한다는 오영교 장관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오 장관이 KOTRA(대한무역진흥공사) 재직 때 실험한 팀제를 모델로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공무원 조직도 장-차관은 CEO, 본부장은 관리자, 팀장은 실무책임자의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경쟁과 평가를 통한 효율 중심의 기업식 운영을 하겠다는 발상이다.

조직개편과 함께 지난달 마무리된 인사에서는 ‘악’ 소리가 났다. 기존 조직을 5개 본부 48개 팀으로 개편한 이번 인사는 프로 스포츠의 드래프트(Draft) 방식으로 본부장, 팀장, 팀원을 뽑았다. 본부장, 팀장이 같이 일할 유능한 직원을 뽑아가는 방식이다. 완전한 시장경쟁의 성격인 것이다. 팀장 공모에서는 최고 12 대 1 의 경쟁률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기존 국ㆍ과장에서 45%가 교체됐고, 국ㆍ과장급 7명은 지명에서 탈락, 보직을 받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더욱이 팀원의 드래프트에서는 4급 서기관 1명과 5급 사무관 5명이 어느 팀에도 지명을 받지 못해 ‘행자부 미아’ 신세가 됐다. ‘행자부 2군’이 된 이들 6명은 일단 집에서 쉬다가 이번 달 ‘본부 아카데미’로 배치돼, 업무 능력향상을 위한 재교육을 받을 예정이다.

결국 결재 라인에서 자리만 지키면서 조직에 도움이 안된 일부 공무원에겐 이번 변화는 설마 하던 악몽이 현실화 한 셈. 요즘 행자부 공무원들은 ‘철밥통이 깨졌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이번에 과장으로 일하다 지방혁신전략팀을 이끌게 된 박동훈 팀장은 “행자부가 여러 차례 정부혁신의 선두 부서라고들 했지만, 조직 내부의 변화의지가 약했었다”며 그 동안 설마했던 내부 분위기를 전하며 “이번의 혁신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충격적”이라고 토로한다. “혁신! 혁신!”하며 변죽만 울리던 정부가 칼을 뽑아 든 것이다

계장으로 있다가 이번에 팀원이 된 정무설(운영지원팀)씨는 “차라리 잘 됐다”고 말한다. 왜?라는 질문에 그는 “과거 계장은 방패막이 역할을 많이 했는데, 이젠 자기 일만 하면 된다”며 홀가분하다는 표정이다. 다만 그는 그 동안 특별한 업무 없이 사인만 하던 계장인 경우는 지금 상황에 적응해 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추론하면 결국 팀제에서는 나이 든 사람이 다소 곤혹스런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6급이하 공무원들로 구성된 행자부 직장협의회는 처음엔 공무원 직업의 안정성을 해치는 조치라며 반발했지만, 장관의 강력한 의지와 여론에 밀린 탓인지 일단 지켜보겠다며 관망자세로 돌아선 분위기이다.

직장협의회 고응석 회장(지방혁신전략팀)은 전화 통화에서 “기본입장은 조직을 수평적 구조로 개편한 것에 대해 평가하고, 큰 방향에서 지지한다”는 것이다. 즉 효율적인 정부를 위한 변화는 대세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민간기업과 정부는 분명 차이가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주문이다. 업무 성격이 민간 기업과 다를 수밖에 없는 정부에 기업식 팀제를 이식하는 데 불가피한 모순이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정책 품질에 문제" 지적도
고 회장은 우선, 효율을 우선시 하는 팀제가 ‘신중성’을 생명으로 하는 정책 부서 업무와 어떻게 조화할 것인가에 의문을 제기한다. 즉 업무처리 속도를 곧 효율로 받아들이는 팀제는 여론수렴 등 더디지만 민주적 절차가 꼭 필요한 정책 추진과 마찰을 일으키기 쉬운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결재권이 축소되고, 전결권이 하향 위임되면 정책의 품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고 회장이 걱정하는 문제점은 언로가 막힐 수 있다는 점이다. 팀간, 팀원간 경쟁은 의사소통 문제가 불가피하게 제기될 것이란 것. 또 팀제는 자신의 인사에 절대적 영향을 미칠 상관인 본부장이나 팀장에 문제 제기를 하기 힘든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즉 상명하달은 지금보다 원활해지겠지만, 하의상달은 보다 어렵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직장협의회는 또 이번 기회에 팀 시스템과 맞지않는 공무원 임용시험제도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팀제의 기반을 튼튼히 하기 위해선 지방 5급 공무원 시험을 없애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이번 행자부 조직 혁명을 실무적으로 디자인한 김남석 혁신기획관(장관 직속)은 “정부 조직에 기업형 팀제를 이식하는 데에 많은 우려가 있다는 것을 안다”고 전제한 뒤 “실험의 성공은 평가시스템의 정착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평가시스템 요체는 팀장이고, 팀장의 운영 능력에 이번 실험의 성패가 달렸다는 것. 또 팀장 평가의 첫번째 항은 ‘변화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될 것이라 밝힌다.

또한 그는 정책의 신중성 약화를 걱정하는 의견에 대해 “주요 정책은 장ㆍ차관-본부장-팀장-팀원-관련부처 팀장 등이 참석하는 ‘정책조정회의’를 통해 결정함으로써 우려되는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고 밝힌다.

여하튼 6월부터 작동되는 직원 평가 시스템은 9월까지 검증 과정을 거친 뒤, 내년 초 정기인사에 반영할 예정이다.

김 기획관에 따르면 평가는 크게 성과관리와 능력평가로 나눠 측정한다.

성과관리는 업무실적과 협력부처 고객평가를 합친 ‘통합행정혁신시스템’을 통해 이뤄지고, 반면 잠재력과 리더십을 보는 능력평가는 360도 다면평가를 실시하는데, 오 장관이 만든 KOTRA의 방식을 원용할 계획이다.

익명을 요구한 행자부 관계자는 “이번 인사에서는 정확한 평가 자료가 없어 이 정도로 그쳤지만, 조직 혁명의 하이라이트는 내년 초 인사가 될 것”이라며 긴장된 표정으로 더 큰 소용돌이를 예견했다.

여하튼 ‘작고 강하고 효율적인 정부’라는 시대적 요구와 기대에 찬 여론 앞에 행자부의 실험은 그곳에서만 멈추지 않을 기세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04-14 16:27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