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 피해자들 KT&G와 5년째 유해성 소송법원 조정 회부도 새 국면에

[폐암] 법정에 선 담배…폐암 주범 공방
흡연 피해자들 KT&G와 5년째 유해성 소송
법원 조정 회부도 새 국면에


‘흡연이 폐암 발생의 주요 원인’이라는 명제는 오늘날 상식이다. 유엔도 흡연이 폐암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올 2월 세계보건기구(WHO) 192개 회원국이 금연을 촉진하는 국제 공중보건 협약을 발효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 동안 흡연과 폐암 발생의 상관관계에 대한 수많은 연구 성과로 이제 과학적 논쟁의 여지가 없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상식이 국내 법정에서는 여전히 큰 고민거리로 남아있다. 판결에 따라 담배회사에 면죄부를 줄 수도 있고, 유사 소송의 폭주로 국내 담배사업이 지속되기 어려운 존폐 위기 상황에 몰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내 첫 ‘담배소송’은 현재 서울중앙지법에서 5년 넘게 진행 중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흡연이 폐암을 일으킨다는 상식이 법적인 동의를 얻고 있지 못하다는 얘기다.

"담배 유행성 숨겼다" 손해배상 청구

관련기사
[폐암] 당신은 안전한가…
[폐암] 국립 암센터 이진수 박사 인터뷰
[폐암] 금연이 최고의 예방약이다
[폐암] 법정에 선 담배…폐암 주범 공방
[폐암] 폐암 이겨낸 이재명 씨
[폐암 별세]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폐암 별세]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

이 소송은 폐암 환자와 폐암 사망자 유족 등 31명이 1999년 12월 KT&G(전 한국담배인삼공사)와 국가를 상대로 3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함으로써 시작했다. 원고측 대리인인 배금자 변호사가 주장한 소송 근거는 KT&G 측이 담배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흡연자에게 이를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배 변호사에 따르면 흡연이 폐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국내에 알려진 것은 1990년대부터다. KT&G가 1989년 12월부터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라는 경고문을 담배 갑에 붙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재 소송의 원고인 폐암환자 등은 1960년대부터 흡연을 해 온 사람들이다. 담배의 유해성에 대한 아무런 경고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김일순 교수도 2000년 7월 법원에 제출한 전문가 의견에서 담배가 30년 전부터 보편화했고, 惻?10년간 폐암 사망률이 무려 59%나 급증한 것은 흡연과 폐암과의 인과관계를 입증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폐암 발생의 90%가 흡연 탓이라는 국내외 연구결과도 제시했다.

또 원고 측은 흡연과 폐암 발생과의 인과성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 20대 후반에 담배를 피기 시작한 폐암 말기 환자 중 가족이 폐암을 앓은 적이 없고, 폐암을 일으킬만한 환경에서 근무한 경력이 없는 환자들을 선발했다.

그러나 피고인 KT&G는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반드시 폐암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며 사실관계에 대한 이의 제기로 맞섰다. 폐암에 걸린 원인을 흡연 이외에 환자의 생활 환경을 종합적으로 조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담배의 유해성을 알고도 담배를 끊지 못한 원고들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1999년 시작해 지지부진하던 소송이 결정적인 전기를 맞은 때는 2003년 6월. 법원이 KT&G 중앙연구원(전 한국인삼연초연구원)이 1978년 이후 흡연의 유해성, 중독성에 대해 연구한 464건의 자료를 공개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재판부가 3년 넘게 연구자료 공개를 요구한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원고 측은 “KT&G 측이 담배가 인체에 유효하다는 사실을 알고도 공개하지 않은 게 확인됐다”고 주장, 소송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 듯 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은 좀처럼 쉽게 나지 않았다. 판결이 가져올 엄청난 파문에 대한 우려로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는 모습이었다.

피해자측 공익재단 설립 제안
그러던 중 올 4월 드디어 해결을 위한 새로운 실마리를 찾았다. 법원이 ‘담배소송’ 5년 여 만에 조정에 회부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13부(부장판사 조경란)는 “흡연 피해자 측 변호사가 담배소송이 공익적 차원의 성격이 짙다며 조정의견을 제시함에 따라 조정에 부쳤다”고 밝혔다.

즉 배금자 변호사가 KT&G 측이 담배 수익금으로 흡연자(1989년 이전에 흡연을 시작한 환자) 치료 등을 위한 공익재단을 설립하라고 제안한 것이다. 패소해 천문학적 손해배상금을 부담하는 것 보다 났다는 타협안이다. 배 변호사는 공익재단을 위해 KT&G 측에 2020년 까지 매년 1,000억원대의 출연료를 요구하는 조정안을 이번 주 법원에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KT&G 측이 어떻게 대응할 지는 미지수다. 흡연 피해자의 구체적 기준과 공익재단의 성격, 출연금 부담 규모 등 아직 공방의 여지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5년을 끌어 온 지루한 ‘담배소송’이 일단락 되기까지는 아직 ‘산넘어 산’인 형국이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06-02 17:17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