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이후 문화 예술의 거리로 자리매김우리 고유의 색채 지켜나갈 정책적 배려 절실

[광화문 르네상스] 인사동적인 것이 한국적이다?
조선시대 이후 문화 예술의 거리로 자리매김
우리 고유의 색채 지켜나갈 정책적 배려 절실


인사동을 찾은 시민과 관광객들로 거리는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박철중 기자

광화문에 불고 있는 르네상스 바람이 그냥 비켜가는 곳이 있다. 바로 한국 전통문화 1번지라는 인사동이다. 겉으로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대는 등 화려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인사동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색채가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다.

한국을 찾은 외국 관광객이 피할 수 없는 곳이 서울이라면, 서울을 찾은 외국인들이 가보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곳이 인사동이다. 차량 출입이 전면 통제되는 주말이면 인사동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 난다. ‘내국인 반, 외국인 반’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가 찾는 명소다. 고층 빌딩과 콘크리트 숲속에서 전통문화의 향기를 물씬 풍기는 인사동은 외국인은 물론이고 내국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코스다. 말 그대로 한국 전통 문화 1번지다.

인사동 거리가 지금처럼 문화의 거리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 말부터다. 북촌과 종로사이에 자리한 이곳에는 양반과 상인의 중간 계급으로 기술직, 사무직 등에 종사했던 중인들이 대거 살았다. 특히 도화원 등이 있어 미술 분야의 중심 역할을 했다. 인사동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골동품 가게는 일제 강점기에 많이 들어섰는데, 이 상점들은 역설적으로 우리 문화재를 일본으로 유출하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

인사동(仁寺洞)이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한성부의 관인방(寬仁坊)과 대사동(大寺洞)이 더해져 생겼다. 골동품 상가로 성시를 이룬 인사동에 1950년대 말부터 토속음식점이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했고, 60년대 말~70년대 초에는 화랑, 표구점 등이 등장하면서 지금의 인사동 골격이 대략 갖추어졌다.

한옥 구조의 특성상 넓은 공간을 확보하기 힘들었던 화랑들의 주도로 현대적 건물의 화랑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다. 하지만 인사동의 변화를 이끌던 화랑들은 80년대 말강남의 청담동, 신사동 등으로 옮겨갔고, 90년대 후반에 생기는 화랑들은 인사동 대신 북촌(사간동)에 터를 잡기 시작했다.

인사동 문화의 핵심을 이루던 화랑들이 인사동을 외면하고 있는 까닭은 역설적이게도 인사동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 때문이다. 유동인구가 늘면서 임대료는 계속 뛰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 이상 넓은 공간을 확보하기도 힘들어졌다. 화랑과 함께 공방, 골동품 가게들도 더 이상 임대료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인사동을 떠나고 있다. 이들이 주로 향하는 곳은 바로 이웃이지만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싼 북촌이다. 사정이 더 여의치 못한 경우에는 동대문 주변이나 장안평 등에 새 둥지를 틀고 있다.

그 빈 자리를 찻집 술집 밥집 등이 ‘전통’을 앞세우며 차지하고 있다. 먹거리 문화가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인사동의 24개 골목 중 인사동 거리(대로)를 제외한 뒷 골목들은 상당 부분 이런 음식점이 점령하고 있다. 새벽의 인사동 길에서 전날 밤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인 구토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이 같은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밀려드는 외국제품, 인사동의 위기
인사동의 위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념품 가게 진열대를 메우고 있는 것은 대부분이 조야한 중국산이다. 골동품도 중국에서 들어오는 것이 적지 않다. 이곳에서 상점을 열고 있는 서명희(43) 씨는 “고가의 전통 수공예품들은 눈요기거리 그 이상은 아니다라는 판단에서 업종을 전환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 등으로 값비싼 공예품들을 뻔졌貂?비교적 저렴한 제품들을 올리고 있는 상점들이 몇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이 같은 변화에 위기를 느낀 터줏대감들이 인사동 지키기에 나서고 있지만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음식도 하나의 문화임에는 틀림없지만 지금은 정도가 도를 지나쳤습니다. 너무 많이 생겼습니다.?30년째 인사동에 살아오며 ‘인사동 번영회’를 이끌고 있는 최희소 회장의 지적이다.

“인사동이 인사동다우려면 화랑, 골동품, 공방 등 인사동 고유의 것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데, 이들이 떠날 정도면 심각한 수준 아닙니까.” 그는 인사동을 ‘문화 지구 1호’로 지정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정책들이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통문화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터를 잡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임대료 상승을 부르는 식당이나 술집은 줄여야 합니다. 반면 전통문화 종사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면세 혜택이나 임대료 지원 등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인사동을 눈으로, 손으로, 귀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한국 전통문화의 1번지로 되살릴만한 뚜렷한 묘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 전통 문화 1번지’라는 인사동은 지금 우리에게 다시 한번 열린 마음으로 지혜를 모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민승 기자


입력시간 : 2005-06-16 16:02


정민승 기자 msj@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