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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르네상스] 전통 문화공간 '북촌'
서울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한국의 美가 이곳에…





과거와 현대가 교차하는 공간. 광화문 일대를 특징짓는 스케치다. 고층 빌딩들이 폭 100m 대로변을 호위하듯 늘어선 반면, 사잇길로 살짝 접어들면 600년 고도, 서울의 기억이 골목마다 숨어 있는 풍경, ‘광화문 일대’의 두 얼굴이다.

광화문은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의 정문이다. 오늘날에도 지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우리나라의 한복판이다. ‘광화문 일대’란 말은 세종로와 태평로, 신문로, 종로 일부와 북촌을 품는 ‘서울 도심’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이런 광화문 일대가 광화문만의 개성적인 문화로 사람들의 발길을 유혹하고 있다.

새로운 풍경과 상권이 급속히 형성되고 있지만 성장, 효율, 현대화 등 서구적 이미지가 압도적인 강남 문화와는 확연히 다르다. 광화문의 문화는 전통문화의 재발견이자 현대를 아우르는 전통문화의 진화이다. ‘광화문의 르네상스’인 것이다.

보물같은 한옥 골목길
광화문 일대 전통문화의 아우라는 빼곡히 들어선 한옥과 굽이굽이 미로 같은 골목길에서 뿜어져 나온다. 특히 북촌(北村)이 대표적이다. 북촌은 행정구역이 아니다. 북촌은 4대문 안에서 북으로 북한산 자락을, 남으로 종로, 동서로는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가회동, 원서동, 재동, 계동, 삼청동, 화동, 사간동, 안국동을 끼고 있는 지역이다.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 해서 북촌으로 불리며 현재 900여 채의 한옥이 남아 있다. ‘남산골 선비’를 상징하던 가난한 선비와 유생들이 모여 살았던 남촌과 달리, 북촌에는 종친이나 사대부 등 고급관직의 양반들이 주로 살았던 동네다.

북촌의 한옥촌은 사실 조선시대부터 보존되어 온 것이라기보다 1920~30년대 주택건설업체였던 ‘건양사’의 정세권 씨 등이 서민들이 살기에 적합하도록 큰 대지를 매입해 30, 60평 짜리 한옥을 지어 분양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전통적인 한옥 양식을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특히 제비가 날아가듯 날렵한 처마선과 정겨운 담장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가회동 31번지와 11번지 일대의 한옥촌은 전통적인 한국의 미를 대변한다.

또한 북촌에는 발길 닿는 곳곳에 현재 사적, 민속자료, 천연기념물 등 역사문화자원이 자리잡고 있다. 사적(史積)으로는 계동 1번지 중앙고등학교 본관, 서관, 동관, 관상감 관천대 등 4곳이 있다. 민속 자료는 가회동의 백인제가(家), 안국동의 윤보선가 등 4곳이, 유형문화재는 정독도서관 내 종친부 건물, 사간동의 동십자각 등 3곳, 문화재 자료는 가회동 이준구가가 있다. 천연기념물로 재동 백송이 있다. 이러한 지정문화재 이외에도 석정골 보름 우물, 창덕궁서 사용하던 화동의 복주 우물, 성삼문ㆍ김옥균 집터 등이 산재해 있는 문화재의 야외 전시장 같은 곳이다.

북촌의 전통문화를 소개한 책자들과 가회동 한옥. 박철중 기자.
소격동 단청연구소 운양재에서 단청을 그리는 수강생.
담쟁이 덩굴에 덮인 가회동 한옥. 박철중 기자



특히 가회동 일대는 전통 가옥, 문화재와 더불어 오죽장, 생옻칠장, 궁장, 단청, 매듭, 염색 등을 다루는 무형문화재 전통 기능인과 조각가, 건축가, 미술사가 등의 예술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북촌의 부상은 인사동 이탈현상과 맞물린다. 최근 몇 년 사이 인사동 일대가 급속히 상업화해 부동산 가격이 치솟고 임대료가 비싸졌? ?여파로 오랫동안 인사동에서 진을 치던 갤러리, 전통 공방, 숍들이 길 건너 삼청청, 소격동, 안국동, 가회동 등으로 북진하고 있는 추세다. 2년 전 소격동 30번지에서 단청 연구소 ‘운향재(720-8940)’를 연 강원(42) 씨는 최근 달라진 풍경은 주변 땅값을 보면 실감할 수 있다고 한다.

2~3년 전만해도 평당 600만~800만원 하던 것이 지금은 2,000만원 이상을 호가한다는 것. 또 강 씨가 연 단청 연구소도 싸지 않은 수강료(3개월에 45만원)에도 불구하고 현재 20여 명의 문하생으로 활기에 차 있다. 이렇게 북촌 지역이 들썩거리기 시작한 것은 2001년 고건 전 서울시장 때부터 시작한 ‘북촌 가꾸기’ 정책에 힘입은 바 크다. 서울시는 한옥 소유자가 리모델링을 신청하면 서울시 ‘한옥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무상 3,000만원과 무이자 2,000만원까지 지원하고 있다.

북촌은 한국의 몽마르뜨
또 서울시는 북촌 골목들을 인사동과 연계해 ‘전통의 거리’로 지정, 전신주 지하화ㆍ도로 단장 등 여러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에 고급 고가구 공방, 패션숍 등 상인들이 앞다퉈 인사동을 떠나 북촌 구석구석에 자리잡음으로써 급속히 북촌 상권이 형성되고 있다.

주말이면 산책 나온 서울ㆍ수도권 시민은 물론 외국인들의 발길이 부쩍 늘어 신생 상권을 활기를 말해 준다. 천천히 걸어 다녀도 반나절이면 미술관, 한옥촌, 음식점, 패션숍, 각종 공방 등 ‘원스톱’ 문화 체험과 쇼핑이 가능한 종합 문화체험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벌써 북촌 언덕이 ‘한국의 몽마르뜨’로 자리잡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북촌에는 뭇 일본인을 설레게 하는 장소도 있다.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 장소가 그 곳이다. 극중 인물 유진(최지우 분)의 집으로 나왔던 중앙고등학교 옆 파란 회벽의 가정집 근처에선 ‘욘사마’ 배용준의 팬들인 일본인 ‘순례객’들과 쉽게 마주친다.

북촌 일대를 효율적으로 둘러 보려면 ‘북촌 문화센터’(02-3707-8270)를 먼저 찾을 것을 권한다. 서울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북촌 문화센터는 계동 현대사옥 옆길에 위치해 있다. 그곳에 가면 북촌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오는 입체 지도와 전통문화 체험, 게스트하우스 등 각종 안내책자를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다.

▲ 가회동길 구역
‘다가(茶家) 올물’(738-2154)은 전통한옥의 다실을 그대로 재현한 곳으로 다도인 김현숙 씨의 17년 다도에 대한 공이 배어 있다. 그 밖에 천연 염색과 매듭 공방인 조일순 선생의 ‘하늘 물빛’(739-6352)가 근처에 있다.

▲ 삼청동길 구역
‘작은 차 박물관’ (737-5988)은 오원 장승업의 집터에 새롭게 조성된 개방한옥으로 한국, 중국, 일본의 전통 차와 다기, 고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아래 쪽으로 내려오면 옻칠 연구 50년 째인 신중현 선생의 공방(735-5757)도 자리잡고 있다.

▲ 계동길 구역
‘가회 박물관’(741-0466)은 민화와 부적 등 옛 사람들의 민속 신앙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수백점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또 인근에 북촌에서 가장 오래 된 한옥 민박집으로 100년 전에 지어진 ‘서울 게스트 하우스’(745-0057)도 있다.

▲ 원서동길 구역
‘궁중음식 연구원’(3673-1122)은 국가중요무형문화재인 황혜성 선생의 연구원이다. 이곳에선 사극 ‘대장금’을 떠올리는 화려한 궁중음식의 세계를 소개한다. 또 근처 ‘각궁 공방’(745-8615)에선 숙종 이래 11대에 이르기까지 궁장 명인의 가계를 이어온 권무석 선생이 활을 제조하고 있다.

■ 한옥 체험 민박집
북촌 일대에는 앞서 소개한 ‘서울 게스트 하우스’를 비롯해 총 5곳의 전통 한옥 민박집이 있다. ‘북촌 게스트 하우스’(743-8530) ‘우리집 게스트 하우스’(744-0536) ‘안국 게스트 하우스’(736-8304) ‘낙고재’(742-3410) 등이 있다. 숙박료는 대개 3만~7만원이다. 그러나 ‘낙고재’의 경우는 개별 방이 아닌 한옥 전체를 빌려야 한다. 한 가족이 편하게 한옥 공간의 멋을 즐길 수 있지만 1인당 16만5,000원(2인 이상 가능ㆍ아침식사 제공)으로 가격이 비싼 것이 흠이다.

오죽장 윤병훈 선생
손끝으로 전하는 올곧은 장인의 기개

“역광에서 우러나오는 오묘한 오죽(烏竹) 작품의 빛깔 좀 보세요. 이 빛에 미쳐 45년 한길을 걸어 왔어요.”

오죽장 윤병훈(71ㆍ 서울?デ渙???제15호) 선생은 자신의 외길 인생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그가 가장 아낀다는 기하학 문양의 오죽함(函)을 내민다.

종로구 원서동 41번지에서 창덕궁과 담을 같이 하는 허름한 북촌 한옥. 윤 선생의 오죽 공방이 3년 전부터 자리잡은 곳이다. 서울시가 사서 그에게 임대한 집이다. 현재 선생은 홀로 이곳에서 숙식하며 작업한다. 3명의 문하생만이 출퇴근을 하며 선생과 호흡을 맞춘다.

그러나 선생은 스승도 없이 오늘에 이르렀다. 문헌으로 독학하며 전통 오죽 공예를 살려낸 것이다. 그만큼 그의 인생은 힘겹고 곡절도 많았으리라. “작품은 좀 팔립니까”라는 질문에 “굶어도 내가 부른 값이 아니면 안 판다”고 잘라 답한다. 평생을 대를 만지며 산 그의 대쪽 성품이 작품에 대한 애착과 함께 묻어 나온다.

그의 오죽 작품은 흔히들 말하는 죽공예와 차원을 달리 한다. 중국이나 동남아 죽공예는 하나같이 ‘엮음질 공예’이다. 그러나 선생의 오죽 공예는 자개를 붙이듯 하는 ‘붙임식’이다. 세계에서 유일하다는 것이 선생의 설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때부터 이런 기법이 시작됐다고 하나 현재 남아있는 작품은 거의 없다.

붙임식 오죽 공예는 엮음질 죽공예에 비해 다양한 문양을 만들 수 있는 장점을 지닌 기법이다. 대신 공정이 복잡하고 어렵다. 우선 오죽 재료의 변형이 생기지 않는 봄ㆍ가을에만 작업이 가능한 데다 조그만 서류함 하나 제작에도 3~4개월 밤낮으로 손을 놓지 못한다. 집념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공정이다. 그것은 흉내낼 수 없는 섬세한 작품과 기형적으로 굽은 선생의 손끝을 보면 짐작이 간다.

오죽 작품의 재료는 경북 울진군 평해읍 오죽밭에서 가져온다. 그곳은 선생이 오죽의 신비함을 처음 만난 곳이자 오죽 인생이 시작된 곳이다. 오죽은 예부터 충효를 상징한다. 선생은 평해마을에서 수 세대 동안 옆집의 왕대와는 조금도 섞이지 않는 오죽 밭을 보고 오죽의 죽심(竹心)에 그의 혼을 온통 뺏겼다고 한다.

선생의 작품 수는 얼마 되지않아 작은 상(床) 한 점이 수백 만원에 팔린다. 기억에 남는 작품 구입자로는 노태우 전 대통령. 대통령으로 재직시 모 정치인 아들의 결혼선물로 선생이 만든 ‘오죽 이층장’을 샀다는 것. 가격을 묻자 손사래를 치며 웃는 선생에게서 북촌 장인의 자존심이 엿보인다.

** 조신 차장 shincho@hk.co.kr



조신 차장 shincho@hk.co.kr  


입력시간 : 2005-06-16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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