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르네상스]
문화와 전통이 숨쉬는 인간중심의 도심으로 탈바꿈하는 서울의 심장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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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일대는 지금 리모델링 중

‘서울은 만원이다’.

소설가 이호철은 1960년대 신문 연재소설에서 당시 380만 명에 불과한 서울을 그렇게 비유했다. 단지 살기 위해 전국에서 꾸역꾸역 몰려드는 서울은 인간적인 삶을 꿈꾸기 어려운 생존의 공간일 뿐이었다. ‘.

최근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섰지만 서울은 몇 해 전만해도 소설 속의 삭막한 틀을 떨쳐내지 못해 덩치만 큰 회색 도시로 비쳐졌다. 그런 서울이 최근 새롭게 변신을 거듭, 대한민국 수도이자 얼굴의 위상을 되찾고 있다.

그러한 ‘변신’은 서울의 심장부인 광화문 일대를 중심으로 분출되고 있다. 조선왕조 이래 600년 간 나라의 중심이 되 온 서울이 문화 도시의 위엄을 되찾고, 서울이 사람답게 사는 도시로 탈바꿈하는데 광화문-종로-중구 일대가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중세 말 유럽의 르네상스(Renaissance)가 지향한 ‘인간성 회복’은 서울의 변신과 부활이 추구하는 ‘인간적인 삶’과 본질상 맥을 같이 해 광화문 일대의 변화에 따른 서울의 변신을 두고 ‘광화문 르네상스’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광화문 르네상스의 핵심은 전통과 현대라는 서울의 양면적 특성을 조화시키면서 ‘사람이 중심’인 문화도시를 만드는데 있다.

광화문 일대를 관장하는 문화관광부, 서울시, 종로구ㆍ중구청 등은 ‘전통’은 복원ㆍ유지ㆍ창조의 형태로, ‘현대’는 살고싶은 환경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기본 방향을 설정했다..

‘전통’과 관련, 서울시내에 소재한 지정 문화재 800여 점 가운데 절반 가량이 광화문 일대에 분포하고 특히 조선 왕조 5개 궁궐 중 4개(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를 비롯해 서울시 전체 문화재의 38%가 종로구에 소재하고 있는 사실은 주목할 대목이다.

한국관광공사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해동안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모두 580여만 資막?이 가운데 470여만 명(81%)이 서울지역을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들은 ‘전통’과 관련해 고궁(39.1%), 박물관(26.3%), 인사동(22.4%) 순으로 방문한 것으로 나타나 관광 지역이 광화문 일대에 집중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한 현상은 내국인에게도 적용돼 주말이면 광화문 일대의 고궁, 박물관, 인사동은 방문객으로 넘쳐나고 있다. 인사동에서 만난 경기 지역 대학의 한 커플은 “전철로 1시간 정도면 충분하고 데이트 비용도 적게 드는데다 고궁, 화랑 등이 가까이 있어 자주 온다”고 말했다.

북촌은 전통문화 복원의 구심점
최근에는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북악산 기슭을 따라 형성된 북촌(北村)이 내외국인에게 새로운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북촌의 한옥마을은 전통문화 복원의 구심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데 외국인에게는 한국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내국인에게는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게 한다. 개방형 한옥에는 전통 다식, 궁중음식, 매듭, 누비옷 등 25개 분야 공방들이 둥지를 틀고 손님들도 자유롭게 공방을 찾아 장인들과 만나 잊혀져 가는 전통문화의 숨은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광화문 일대가 전통과 현대가 숨쉬는 문화도심으로 거듭난다. 계동 북촌문화원.

한옥마을을 찾은 한 호주 관광객은 “주변에 화랑 등 볼거리도 많고 서울 한 복판에서 한국적인 문화를 접할 수 있어 좋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화랑에서 만난 한 여대생은 “인사동보다는 수가 적지만 모던한 화랑이 많고 무엇보다 조용하고 여유가 있어 좋다”며 만족해 했다.

일본에 한류 열풍을 몰고 온 드라마 ‘져울연가’의 촬영지인 유진(최지우)의 집(가회동)과 주인공들이 학창시절을 보낸 중앙고등학교에는 하루 평균 300여 명의 관광객이 꾸준히 찾고 있다. 오사카에서 왔다는 중년 관광객은 “직접 와서 보니 마음이 설렌다”며 “일본에 가서 자랑하겠다”는 말과 함께 일행과 연신 사진 찍기에 바빴다.

문광부는 모처럼만에 찾아온 ‘광화?르네상스’를 확산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박영대 문화정책과장은 “경복궁 복원을 비롯해 행정복합도시 이전시 정부종합청사와 문광부 부지, 앞으로 이전할 미 대사관건물을 문화 인프라와 어떻게 연계시킬 것인가를 놓고 고민중에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관계 구청 또한 4대 궁과 남산 한옥마을을 연계한 문화벨트 조성, 인사동ㆍ대학로ㆍ북촌의 문화특화지역 지정 등 여러 문화 부흥책을 제시, 광화문 르네상스에 힘을 싣고 있다.

특히 종로구청은 앞서 한국관광공사의 여론조사에서 외국 관광객의 서울 시내 방문지 중 남대문ㆍ동대문 시장이 44% 대에 이르고 쇼핑을 하겠다는 응답이 87%대인 점에 착안, ‘종로ㆍ청계 관광특구’ 를 조성해 종로 일대의 문화 관광과 쇼핑을 연계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광화문 르네상스’를 징표하는 서울의 또다른 변화는 사람들의 소통이 단절된 콘크리트 도시에서 생명이 살아 숨쉬는 ‘인간 중심의’ 도시로 나아가는 점이다. 서울 시청 앞에 조성된 서울광장과 서울의 상징적 중심가로인 광화문~서울광장~숭례문~서울역에 이르는 ‘보행벨트’는 대표적인 예다.

서울광장은 2002년 월드컵 때 광화문 일대가 시민의 광장이 되면서 귀속 시기만이 문제였는데 작년 5월 시민의 품으로 돌아가면서 각종 시위에도 불구하고 문화의 메신저로, 사람들 사이를 소통시키는 무대로 활용되고 있다.

생동감 있는 도시, 시민의 품으로
‘보행벨트’는 서울시가 서울 도심을 인간적이며 문화적인 도심으로 만들어 간다는 프로그램에 따라 조성된 것으로 지난 1967년 지하도가 개통된 이래 무려 38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는 서울의 보행문화가 자동차 위주에서 사람 중심으로 대전환됐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지하의 고립된 공간에서 지상의 생동감 있는 공간으로 도시의 활력을 되찾는다는 의미와 함께, 도시에는 매력을 주고 시민의 삶에는 질을 높여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청계천 복원은 그러한 사람 중심의 도시에 방점 역할을 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지난 4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오는 10월에 청계천이 복원되면 1년에 최소 100만 명 이상이 찾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 시장에 따르면 청계천 복원은 광화문 르네상스의 최대 동력이 될 전망이다.

주창식 청계천복원추진본부 홍보팀장에 따르면 청계천이 복원되면 도심 기온?0.8~1도 가량 낮아愎鳴?한다. 그만큼 도심 공기는 깨끗해지고 신선한 바람이 콘크리트 건물 사이를 헤치며 생명의 숨소리를 전한다는 설명이다.

2000년부터 광화문 일대에 대형 건물이 들어선 것도 광화문 르네상스의 뚜렷한 징후다. 서울시 도심재개발계획에 따라 건물이 서고 이에 따라 입주자가 증가하는 양적인 변화로 설명할 수 있지만 광화문 일대가 사람 중심의 문화도시로 변하면서 입주의 성격도 적극성을 띠고 그 속도와 폭 역시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은 종래 건물의 신축과 구별되는 질적 변화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저녁이 되면 주거지역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도시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한풀 꺾이고 서울 도심 한복판에 상주(常住) 인구가 늘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특히 세종로 뒷길 내수동의 변화가 가장 눈에 띈다. ‘삼성 파크팰리스’ ‘경희궁의 아침’ ‘‘광화문 시대’ ‘용비어천가’ 등 주상복합 아파트 및 오피스텔 건물 4곳이 작년 말부터 입주를 시작했고 내년까지 이곳에 상주할 인구가 8,200여명으로 예상되고 있다. 개발 전이었던 1990년대 중반 1,250여명이었던 인구가 6.5배 정도 늘어나는 셈이다.

앞으로 광화문 인근 사직동에도 1,030세대의 대형 주상복합 단지가 들어서고, 청진동과 중학동에도 대규모 오피스텔이 건립되는 등 2007년까지 광화문 도심에는 주거 시설 10여곳에 3,200여 가구 9,000여명의 주민들이 새로 입주할 예정이다. 인구면에서 광화문 르네상스를 실감케 하는 대목들이다.

‘피맛골’로 불리는 청진동 일대 재개발과 송현동 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 터의 변화도 광화문 르네상스에 적지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2008년 지하 7층과 지상 20층 규모의 주상복합 건물인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이 완공될 경우 하루 유동인구가 20만 명에 달하던 음식점 거리인 청진동과 종로 1가는 새로운 이미지를 갖출 전망이다.

미국 대사관 터는 현재 삼성생명이 주인으로, 미술관 같은 문화 시설이나 문화공간과 오피스텔이 결합한 복합 건물이 건립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돈다.

한국을 대표하는 수도 서울은 광화문 르네상스에 힘입어 변신을 꾀하고 있다. 양적 변화와 함께 질적 성장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6-16 19:26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