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 초기엔 활발한 사업복귀 준비, 프랑스·베트남 등 수개국 전전하며 경제활동

한 순간도 재기 꿈 버리지 않았던 유랑 5년 8개월
[김우중 귀국 후폭풍] 유랑 초기엔 활발한 사업복귀 준비,
프랑스·베트남 등 수개국 전전하며 경제활동


2002년 10월 동남아 한 국가에 모습을 드러냈던 김우중 전 회장. 문화일보 제공

그는 과연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지냈을까. 1999년 10월 중국 산둥성 옌타이 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 참석차 출국한 뒤 무려 5년 8개월 만에 귀국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바라보며 국민들이 느끼는 궁금증이다.

그는 검찰에서 도피 기간 동안 프랑스, 독일, 베트남, 수단 등 여러 나라를 전전했으며, 프랑스의 한 회사에서 자문역으로 일하며 받은 월급으로 생활비 일부를 충당했다고 진술했다. 이 같은 사실은 그 동안 측근들의 전언과 현지 목격담,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 흘러 나온 그의 행적과 대체로 일치한다.

해외 유랑 초기 김 전 회장은 주로 유럽 쪽에 머물렀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만간 사업에 복귀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주요 거래선 등을 만나 대우 사태에 대해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는 병세가 악화하면서 수 차례 수술을 받는 등 힘겨운 투병 생활을 해야만 했다. 측근들에 따르면 장 폐색증과 심장 질환 등으로 병원 신세를 진 것만 대여섯 번에 달한다.

수술과 치료, 요양으로 이어지는 유랑 생활 동안 그의 모습은 간간이 외부에 노출되기도 했다. 2000년 9월 프랑스 니스가 처음이었다. 고급 주택가에 머물며 인근 쇼핑센터와 골프장을 오가는 모습을 현지 교민들이 목격한 것이다. 2001년 초에는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위치한 골프장에서 김 전 회장을 목격했다는 제보가 대우자동차 노조에 접수되기도 했다.

2001년 3월 한국 사법 당국의 요청에 따라 김 전 회장은 인터폴 적색수배 명단에 올랐으며, 한국 여권의 유효기간도 2002년 말쯤 만료됐다. 그럼에도 그는 해외를 돌아다니는 데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여기에는 1987년 취득한 프랑스 국적과 함께 세계 각국에 포진한 거물급 지인들의 도움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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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정권 말기 귀국 가능성 타진
김 전 회장은 그 동안 여러 차례 귀국 가능성을 타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김대중 정권 말기인 2002년에는 그의 귀국설이 상당한 신빙성을 갖고 유포되기도 했다. 대우그웰옳饅션?정권이 퇴장하는 시기가 그에게는 귀국의 적기라는 그럴 듯한 분석이 뒤따랐다. 실제로 그는 2002년 10월 도올 김용옥씨, 2003년 1월 미국 경제주간지 포천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DJ 정권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간접적으로 드러내 그 같은 분석에 힘을 실어준 바 있다.

김 전 회장은 5년 8개월의 세월 동안 단지 유랑만 한 것은 아니었다. 세계를 무대로 원대한 구상을 펼쳤던 기업인답게 물밑에서도 경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프랑스의 엔지니어링 전문기업인 로르사(社)의 해외사업 고문으로 일하는 한편 베트남 하노이 신도시 개발 사업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초ㆍ중반 세계경영이 본격화하던 시기, 베트남은 동남아시아 국가 가운데 대우의 투자가 가장 활발했던 국가 중 하나였다. 그 당시 쌓은 베트남 정부 고위층과의 두터운 친분으로 경제 자문위원 역할도 해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이 베트남을 발판으로 재기에 나설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재계 일각에서 나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06-23 14:17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