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티 한 장에서 수조 원 사이?비밀조직 BFC 통해 천문학적 비자금 조성 의혹, 가족들도 수천억 원대 재산 보유

[김우중 귀국 후폭풍] 베일에 싸인 일가 재산
팬티 한 장에서 수조 원 사이?
비밀조직 BFC 통해 천문학적 비자금 조성 의혹,
가족들도 수천억 원대 재산 보유


김우중 전 회장 귀국을 앞두고 부인 정희자 씨가 6월 8일 인천국제공항에서 프랑크프루트 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 계루장으로 향하고 있다. 최재구 기자

한때 재계 2위 대우그룹의 총수였던 김우중(69) 전 회장은 현재 공식적으로는 ‘무일푼’이다. 법적으로 확인된 그의 재산은 없다. 그러나 이 말을 곧이 곧 대로 믿을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우선 항간에서는 김 전 회장이 영국의 대우그룹 자금 관리 조직인 BFC(British Finance Centre)를 통해 조 단위에 가까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가족들도 국내에 수천억대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재산 은닉설은 14일 전격 귀국한 김 전 회장의 재기설을 뒷받침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1999년 10월 중국 출장 명목으로 해외 도피에 나섰던 김 전 회장은 5년8개월이란 긴 세월을 독일ㆍ수단ㆍ프랑스ㆍ베트남 등지를 오가며 보냈다. 도대체 무슨 돈으로 김 전 회장이 버티었겠느냐는 의문에 대해서 측근들은 “해외 생활비는 기업 컨설팅 아르바이트 등으로 충당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김 회장은 3류 호텔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때울 정도였다. 가진 것은 팬티 한 장 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은닉재산이 없음을 강조한다. 1999년 7월 대우그룹 자구대책을 발표할 당시 ‘전 재산’을 금융권에 담보로 제공했기 때문에 현재 김 전 회장은 ‘빈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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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정희자 씨가 '은닉재산 관리' 의혹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국내 김 전 회장 가족들의 행보를 보면 쉽게 납득가지 않는다. 특히 그 동안 부인 정희자(65) 씨의 움직임을 보면 어떻게 하든 ‘남은 재산’을 김 전 회장 ‘컴백’을 위해 관리하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김 전 회장 은닉재산의 중심에 부인 정 씨가 있다는 얘기다. 부인 정 씨는 신병을 이유로 그 동안 언론의 접촉을 피해오다 남편의 귀국을 며칠 앞둔 8일 이탈리아로 급거 출국했다. 이를 두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우선 정 씨는 옛 대우개발인 필코리아리미티드(이하 필코리아)의 실질적인 회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등기이사는 아니지만 직원들 사이에서 회장으로 통한다. 필코리아는 경주 힐튼호텔, 베트남 하노이 대우호텔, 중국 옌볜 대우호텔, 선재아트센터 등을 경영하고 있다. 또 경남 양산에 있는 에이원컨트리클럽 지분 49%도 소유하고 있다. 싱가포르 투자회사에 매각했던 서울 힐튼호텔 23, 24층도 장기 임대하고 있다. 이곳은 전에 김 전 회장이 사용했었다. 최근 필코리아는 경남 거제 대우조선소 근처에 18홀 규모의 골프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로이젠 지분 25%도 인수했다.

필코리아의 주식 90.4%는 퍼시픽인터내셔널이라는 기업이 소유하고 있으며, 이 기업은 조세회피 지역인 케이만 군도에 본사를 둔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다. 자금원이 김 전 회장일 것이라는 소문이 오래 전부터 나돈 것은 이 때문이다.

정 씨는 또 두 아들 선협(36)ㆍ선용(30) 씨와 함께 1999년에 개장한 경기 포천의 아도니스 컨트리클럽을 소유하고 있다. 고급 정원수와 거대 조각상으로 꾸며진 65만평 대지에 27홀을 갖춘 이 골프장은 시가가 1,000억원 가량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아도니스 컨트리클럽은 한때 환수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2001년 11월 예금보험공사가 골프장 지분 81.4%와 두 아들 명의로 된 방배동 토지(당시 시가 30억원), 외동딸 선정(39ㆍ이수그룹 회장 며느리) 씨 명의의 이수화학 주식 22만5,000주(당시 시가 22억원) 등이 김 전 회장의 숨겨놓은 재산이라며 법원의 판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법원은 올 3월과 4월 골프장과 딸 명의 주식은 적법한 증여 절차를 거친 것으로 김 전 회장 소유가 아니라 부인과 자녀의 재산이라며 김우중 씨 일가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차남 선협 씨는 올 3월 초 아도니스 골프장 사장에 취임했으며, 골프장 이외에도 골프장 입구에 아도니스 호텔을 짓고 곧 개관할 예정이다. 게다가 주변 160만평에 복합 레저단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막내아들인 3남 선용 씨는 베트남 하노이ㆍ다낭ㆍ호치민 등에서 골프장과 領척保?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노블 베트남’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것들을 두고 세간에서는 김 전 회장 일가가 대우그룹의 지명도가 높은 베트남에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냐고 분석하고 있다.

한편 김 전 회장의 천문학적 규모의 재산 국외도피 의혹과 관련해 대우그룹의 해외 자금 관리 조직인 BFC가 다시 주목 받고 있다. BFC는 원래 1981년 ㈜대우 런던법인의 금융부문이 쓰기 시작한 텔렉스 코드의 이름이었으나 나중에는 ㈜대우의 해외계좌를 관리하는 조직을 총칭하는 것으로 통했다. 전담직원은 5명에 불과했지만 김 전 회장이 유럽 출장 때마다 반드시 들르는 핵심 부서였다.

대우사태를 조사한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BFC를 “상부의 지시를 받아 대우그룹 해외 법인들과 국내 본사, 계열사가 서로 자금을 주고 받는 통제센터”라고 설명했다. 기업회계기준이나 외환관리법 등은 대우 ‘세계경영’에 심각한 장애물이었지만 대우는 BFC를 통해 그 장벽을 간단하게 뛰어 넘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해외자금 중 7억여 달러 행방 묘연
2001년 검찰 수사 당시 BFC가 불법으로 관리한 자금은 200억 달러(당시 환율 기준 25조원ㆍ현재 환율 기준 20조원) 규모 정도로 밝혀졌다. 해외 유령회사에서 물건을 수입한 뒤 수입대금을 송금하는 방식으로 조성한 26억 달러, 해외 법인들의 자동차 판매대금을 국내를 거치지 않고 BFC로 직접 송금한 14억1,000만 달러, 해외 법인 명의로 현지 금융기관에서 빌린 157억 달러 등이다.

이에 대우측은 BFC 관리자금 200억 달러 중 157억 달러는 해외 금융기관에서 빌린 차입금 상환에, 30억 달러는 동구권 사업 투자에, 13억 달러는 차입금 이자로 썼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2000년 3월 영국 런던 현지에 급파돼 대우그룹 특별조사를 이끌었던 금융감독원 이성희 팀장은 “당시 조사에서 사용내역이 밝혀지지 않은 액수는 7억5,342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8,620억원)에 달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김 전 회장 수사의 핵심이 결국 BFC 자금 행방을 정확히 밝혀내는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자금 행방이 명확해지면 대우의 재산 해외도피 의혹 실체가 밝혀지는 것은 물론이고 정ㆍ관계 로비 의혹의 해답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여하튼 김 전 회장의 무리한 세계경영으로 공적 자금 형태로 투입된 국민 혈세만 30조원에 달한다. 대우로 인해 피해를 본 소액투자가는 약 38만 명, 피해액은 3조원을 넘는다. 하루 아침에 길거리로 나 앉은 대우 및 협력업체 직원들의 고통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귀국 길 기내에서 김 전 회장은 “책임지려 돌아간다”고 말했다. 한때 세계를 경영했던 사나이가 말한 책임의 내용이 무엇인지 사뭇 궁금하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06-23 14:39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