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시대 상처와 악취 품고 흐르던 하천 생명 기운 되찾아복개천 복원·수량 확보가 하천살리기의 최대 관건

[하천, 되살아나다] 도시하천이 살아돌아온다
개발시대 상처와 악취 품고 흐르던 하천 생명 기운 되찾아
복개천 복원·수량 확보가 하천살리기의 최대 관건


경기도 광주 경안천

하천이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 복개되고 오염되고 말라버렸던 도시하천에 점차 생명이 흐르기 시작했다.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하천은 도시민의 삶도 질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송사리와 오리들이 숨바꼭질 하는 하천에서 삼삼오오 산책을 즐기고 아이들은 생명의 신비함에 탄성을 지른다. 그곳에서 어른들은 잃어버린 추억을 되찾고 ‘아스팔트 키드’들은 녹색의 꿈을 키운다.

불과 몇 해 전만 하더라도 도시엔 하천다운 하천이 없었다. 산업화, 도시화로의 숨가쁜 질주 속에서 내팽개쳐진 하천은 도시의 거대한 하수구로 전락했다. ‘개발시대’의 깊은 상처였다. 서울만 해도 하천이 36개나 있지만 한강, 중량천, 탄천 등을 제외하곤 흐르는 물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악취 나는 하수구에 불과했던 도시의 하천을 살리기 위한 노력들이 전국에서 ‘도미노’처럼 번지고 있다. 하천이 도시를 숨쉬게 하는 생명의 비밀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미 서울 양재천을 비롯, 경기도 안양천, 경안천, 오산천, 울산 태화강, 전주 전주천 등은 그 동안 노력들이 결실을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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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하천이 살아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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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 태화강

치수 중심에서 생태 중시으로의 변화
하천 복원의 성공스토리는 주변 지역의 경제적 가치도 높이고 있다. 부촌의 상징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대치동 우성아파트 등은 모두 양재천을 끼고 있다. 1995년 이후 생태 공원화 사업으로 양재천의 콘크리트 호안은 자연석, 갈대, 나무 등으로 바뀌고 산책로, 생태학습장, 물놀이장도 들어섰다. 집 주변에 도심 속 ‘웰빙 공간’을 확보한 셈이다. 자연히 이곳을 주거지로 선택한 사람들의 마음엔 양재천의 존재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신흥 부촌으로 떠오르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도 탄천 복원의 덕을 단단히 보?있다. 경기도 안양시 평촌 지역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최근 살아난 학의천이 배경으로 작용한다.

수도권뿐만 아니다. 지방에서도 하천의 회복은 도시 전체의 이미지를 개선시키고 있다. 2003년 울산도심을 가로지르는 태화강에 연어가 잡히자 주민과 시 당국은 환호성을 질렀다. 산업도시 울산이 이제 친환경 생태도시 ‘에코폴리스(Ecopolis)’로 다시 태어날 것이란 기대감에서였다. 이런 소식들은 결국 생태형 하천이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반증한다.

‘하천 살리기’ 사업이 본격화한 것은 대략 1990년 대 말부터이다. 민간과 중앙정부ㆍ지자체가 네트워크를 만들어 실질적인 협력이 시작된 시기다. 특히 이런 협력이 하천에 생명을 불어넣는 데 결정적 힘을 발휘했다. 혹자는 하천 살리기 사업을 요즘 새롭게 언급되는 ‘거버넌스(Governanceㆍ비정부기구 등이 참여한 수평적 협력 행정)’의 전형으로 꼽기도 한다.

특히 올해는 이러한 ‘거버넌스’가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둔 해로 평가된다. 정부가 지금까지의 하천 관리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 동안 홍수를 막기 위해 콘크리트로 제방을 쌓고 강줄기를 직선화 했던, 치수(治水) 중심의 하천 정책에서 과감히 방향을 돌려 생명이 있는 하천, 친숙한 하천 살리기에 동참한 것이다. 예산도 의욕적으로 잡았다. 2011년까지 1조1,810억원을 투입한다.

이번 달에 발표한 건설교통부의 ‘도시하천 환경개선 계획’은 친환경 국토 건설이란 목표 아래 도시하천을 자연상태로 최대한 보존한다는 원칙을 담고 있다. 전국 50개 하천에 도시의 특성과 연계된 테마형 생태하천을 조성키로 했는가 하면, 내년부터는 하천을 콘크리트로 덮어 도로 등으로 활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머지않아 안양천, 낙동강, 함평천, 섬강, 영산강, 한강, 남강, 태화강 등이 새로운 모습으로 시민들 곁에 다가설 것으로 보인다.

건교부의 하천 살리기 성寬宛뮌?보면, 홍수에 대비한 직선화한 물길 대신에 여울과 소를 곳곳에 두어 구불구불한 하천 본래의 모습을 되찾도록 했다. 또 물이 흐르지 않게 된 하천부지는 생태습지와 생태공원으로 만들어 홍수 때 범람한 물을 담을 수 있는 저류지로 활용하게 된다. 즉 하천 제방 위주의 홍수 대책을 유역 내 분산 방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또 물의 흐름을 막아 장마 때 범람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높이 1m 이상 식물을 심을 수 없게 규정됐던 관련법 규정도 고쳐 자생식물 군락을 보호하는 한편 필요할 땐 나무도 심을 수 있도록 했다.

전국 하천은 2만6,690곳으로 이중 91%가 지방하천이며 나머지 9%가 국가하천이다. 그러나 현재 9%의 국가하천마저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에 관리 부담을 떠맡기고 있다. 건교부는 국가하천 비중을 2011년에는 30%까지 높여 보다 많은 하천을 국가가 직접 관리할 계획도 세웠다.

도시하천이 생태계의 축인 이유는 무엇보다 산과 강을 연결하는 생태계 통로 역할 때문이다. 대부분의 도시하천은 도시 외곽의 산 속에서 발원한다. 흐르는 물과 함께 야생 동물이 이동하는 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양재천에서 발견되는 너구리나 백로 등이 이를 잘 설명한다. 하천 생태계가 살아나야 산과 강을 잇는 녹지 띠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설명도 가능해진다.

생명의 물이 흐르는 도시하천의 고마움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열대야를 일으키는 열섬(Heat Island)현상을 완화하고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거대한 환기구 역할을 한다. 아스팔트, 콘크리트, 자동차 연소열 등으로 덥혀진 열기를 낮추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서울 청계천의 복원되어 물이 흐를 경우 주변 온도가 평균 0.6도 낮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과거 30년 동안 서울시 연평균 온도가 1.4도 상승한 것에 비교하면 복원된 도시하천의 기온조절 능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복개천 복원이 하천 살리기의 최대 관건
그러나 대부분의 도시하천이 여전히 신음하고 있다. 주범은 하천복개다. 산업화ㆍ도시화의 미명하에 도시하천은 도로로 주차장으로 복개되어 죽어갔다. 하천은 단지 도시 하수구 역할만 떠맡아 온 셈이다. 서울시 하천의 경우 거의 절반(법정하천 29%)이 복개됐다. 복개된 만초천, 화계천, 가오천, 방학천, 사당천 등은 이제 그 이름도 잊혀졌다. 잊혀진 이 천(川)들의 물은 하수처리장으로 흘러갈 뿐 새로운 하천과 만나지 못한다. 복개되지 않은 하천들까지 물부족으로 죽어 가는 악순환은 결국 하천 복개에서 시작됐다. 현재 서울의 36개 하천 중 건천은 31.4%이다. 3분의 1이 이름뿐인 하천인 셈이다. 복개를 뜯어내는 것이 하천 살리기의 제1조건이란 이유가 분명해 진다.

하천을 살리기 위해선 오ㆍ폐수의 유입도 막아야 하지만 수량(水量) 확보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흐르지 않는 물이 썩는 것은 당연지사. 하천이 건천(乾川)이 되는 이유는 하천 복개 이외에 도시지역의 불투수층(아스팔트ㆍ콘크리트 포장) 증가로 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대부분 하수관으로 흐르는 까닭이다. 또한 지하철, 고층빌딩 등 지하공간의 개발로 인해 유출 지하수가 대량으로 유출되는 것과 함께 공단지역 등의 마구잡이식 지하수 개발도 하천 물 부족의 주요 원인으로 파악되고 있다. 현재 서울시 유출 지하수는 1일 15만 톤으로 지하철 119곳과 고층빌딩 18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와 같이 복개 철거ㆍ지하수 유출방지 등 하천 살리기 앞에는 수많은 난제들이 가로막고 있다.그러나 다행히 양재천, 안양천 살리기의 성공스토리는 환경단체뿐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에도 큰 용기를 주고 있다. 특히 안양천 살리기 민ㆍ관 네트워크가 대표적인 사례다. 안양천 유역 21개 시민단체와 13곳의 지자체가 ‘안양천은 하나다’라는 인식아래 협력해 오염의 대명사였던 안양천을 살려냈다. 이해가 얽히고설킨 환경 행정에 새로운 전범을 마련한 것이다. 또 하천 살리기도 지역현실에 맞게 다양화하고 있다. 서울 서북권 일대를 가로질러 흐르는 홍제천을 ‘지붕이 있는 하천’으로 되살리기 위한 프로젝트다. 2008년까지 총 400억원을 투입할 서울 서대문구의 야심찬 계획이다. 홍제천 살리기는 절반을 덮고 있는 내부 순환로의 구조물을 철거할 수 없는 탓에 홍제천을 ‘음지 식물의 보고’로 만들겠다는 차별화 전략이다. 하천이 살아야 도시환경도 산다는 절박한 목소리가 방방곡곡 메아리 치고 있는 셈이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06-30 19:20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