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로하스족' 여기도 저기도 '로하스 마케팅'


삼성경제연구소(SERI)는 기업의 임원급 이상을 대상으로 운영 중인 유료 정보 사이트 ‘세리 CEO’(www.sericeo.org)를 통해 얼마 전 흥미로운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라이프 스타일과 가치관에 따라 분류한다면 자신은 무슨 족(族)에 해당하느냐는 질문을 회원 407명에게 던진 것.

그 결과 응답자의 약 40%가 “나는 로하스(Lohasㆍ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족이다”라고 답해, ‘로하스’에 대한 인식이 국내 기업 경영인들 사이에 빠르게 자리잡아 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로하스는 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지구 환경의 보전, 사회적 책임 등도 함께 고려하는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뜻하는데, 2000년 무렵 미국의 마케팅 전문가들에 의해 처음 개념으로 정립됐다.

소비자들의 라이프 스타일 변화는 곧 기업들에게 새로운 시장의 형성을 의미하며 마케팅 전략의 수정도 동시에 요구한다. 미국에서는 로하스족을 겨냥한 관련 산업의 시장 규모가 이미 2004년 기준 약 2,200억 달러를 상회했고, 전체 소비자의 27%에 달하는 5,500만 명 정도가 로하스족의 특성을 띠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소비되는 로하스 제품군은 유기농으로 재배한 농산물, 에너지 효율이 높거나 대체 에너지를 사용하는 전자제품, 천연 건강식품, 대체 의약품 등 구색이 매우 다양하다. 이들 제품을 생산ㆍ판매하는 이른바 로하스 기업들 중에는 급성장하는 ‘블루칩’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도 로하스를 앞세운 마케팅이 유행처럼 번져 나가는 중이다. 다소 진부해진 ‘웰빙’의 뒤를 이을 마땅한 후계자를 물색 중이던 기업들에게 로하스는 안성맞춤의 마케팅 요소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로하스를 표방한 제품도 쏟아지고 있다. 의식주와 관련된 것은 물론이고 웬만한 생활용품은 모두 로하스 깃발 아래 모여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친환경 농법인 유기농 방식으로 생산된 먹을 거리는 대표적인 로하스 제품이다. 얼마 전까지는 ‘웰빙’으로 포장돼 불티 나듯 팔려 나갔다면 요즘엔 ‘로하스’의 이름으로 재포장되고 있는 상황이다.

주목할 것은 유기농 제품의 영역이 식품의 한계를 벗어나 생활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의류업계는 최근 유기농으로 재배된 순면(오가닉 코튼) 소재의 유아복이나 콩 대나무 등에서 추출한 천연 섬유로 만든 성인복 등을 경쟁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이런 덕분에 LG패션이 자체 조사한 올 상반기 패션계의 3대 키워드 안에 로하스가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결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유기농은 화장품 업계에서도 한몫 하고 있다. 유기농으로 생산된 각종 천연 원료에서 추출한 자연 성분으로 만든 신제품들은 먹어도 될 정도로 안전할 뿐더러 피부의 독소까지 제거해 주는 로하스 화장품이라고 업체들은 소개하고 있다.

가정에서 흔히 쓰는 제품들에도 로하스 개념이 널리 적용되기 시작했다. 설탕, 오렌지 등 천연 성분을 원료로 만든 세제들은 강력한 오염 제거 효과와 함께 피부 건강 보호와 친환경을 무기로 주부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표백제, 가구광택제, 비누 같은 가정 필수품들도 마찬가지다.

집안 인테리어에도 로하스는 대세다. 포름알데히드 등 유해 물질의 방출을 크게 줄인 마감재와 벽지를 쓰는 것은 ‘새집 증후군’ 등으로 민감해진 소비자들에게 필수가 되고 있다.

사람들이 먹고 자고 숨쉬는 주택은 어쩌면 로하스와 가장 밀접할 수 있다. 이런 점을 간파한 주택 건설업계는 올 초부터 대대적으로 로하스 주택 분양을 선전하고 있다. 주민 건강을 위한 부대 시설과 친환경적인 단지 설계 등을 기본 컨셉트로 내세운다.

이밖에 정수기, 공기청정기 등 건강기기를 판매하는 웅진코웨이나 대형 유통업체인 롯데백화점 등은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다채로운 로하스 마케팅 캠페인을 벌여 눈길을 끌고 있다.

로하스 시장이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관련 업계의 마케팅 활동도 활발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로하스에 담긴 삶의 철학과 통찰을 먼저 구현하는 노력보다 말만 앞세운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웰빙으로 분양에서 재미를 톡톡히 봤던 업체들이 이제는 누가 먼저箚?할 것도 없이 로하스를 부르짖고 있다”며 “하지만 건강, 친환경, 안전 등의 요소를 결부시켜 ‘이게 로하스 아파트다’라고 내세울 만한 업체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로하스는 향후 모든 기업들에게 가장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각국 정부의 환경규제가 갈수록 강화되고 또한 소비자들의 의식이 높아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현대ㆍ기아자동차가 하이브리드카 등 친환경 자동차 개발을 일찌감치 서둘어 온 것이나,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간판 기업들이 생산 제품에서 모든 유해 물질을 제거하겠다고 나선 것도 그런 까닭이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08-18 14:11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