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불안감 해소에 최선의 노력, 지역발전 위한 국가적 지원도 한몫

['뜨거운 감자' 방폐장] 외국의 방폐장, 투명성과 신뢰로 '드럼'을 묻었다
주민 불안감 해소에 최선의 노력, 지역발전 위한 국가적 지원도 한몫

우리나라는 발전 설비 용량 기준으로 세계 6위의 원자력발전소(원전) 운영 국가다. 원전 관련 기술에서도 한국 표준형 원전의 독자적인 설계 및 건설 능력을 갖추는 등 높은 국제 경쟁력을 확보했다. 뿐만 아니다.

원자력발전은 2003년 말 현재 국내 총 발전량의 40.2%를 차지, 최대 전력 공급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같은 원자력발전의 대내외적 위상을 감안한다면, 20년 가까이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는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방폐장) 설치 문제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원전 20기가 가동될 만큼 원자력발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정작 그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시설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핵(核)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몰이해, 충분한 대화와 설득 과정이 결여된 정부의 정책 추진 등이 맞물려 더욱 문제가 복잡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 점에서 투명한 정보 공개와 합리적인 대화를 통해 성공적으로 방폐장을 운영 중인 국가들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북유럽의 아름다운 나라 스웨덴은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해저 동굴 방폐장을 갖고 있다. 수도 스톡홀름에서 약 160㎞ 떨어진 발틱 해변에 위치한 포스마크(Forsmark) 처분장이 바로 그곳이다.

해저 60m 깊이에 동굴을 뚫어 만든 이 시설은 암반이 잘 발달된 국토의 특성을 십분 활용한 사례로 곧잘 언급된다.

시설의 구조는 1.2㎞ 길이의 진입 동굴 2개, 저준위 폐기물 처분 동굴 4개, 중준위 폐기물 처분 사일로 1개 등으로 이뤄져 있다. 처분 용량은 200리터 용량의 드럼 30만 개를 채울 수 있는 정도다.

폐기물 저장이 완료되면 콘크리트로 빈 공간을 메운 뒤 ‘벤토나이트’라는 점토와 모래로 동굴을 메워 영구 처분하게 된다.

스웨덴의 방사성 폐기물 관리는 4개 전력회사가 공동 출자한 SKB사가 맡고 있는데, 이 회사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하고 건설 현장을 공개하는 등 적극적이고 투명한 홍보 활동을 통해 방폐장 건설에 성공했다.

주민들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시설이 들어선 뒤에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정기적인 현황 보고서를 낼 뿐 아니라 원칙적으로 주민들이 원하는 정보는 언제든 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는 59기의 원자력발전소에서 총 전력의 70% 이상을 공급 받는 원자력 의존도 세계 1위의 국가다. 그런 까닭에 방폐장 건설과 운영에서도 상당한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

프랑스는 1969년부터 영화 ‘쉘부르의 우산’으로 유명한 쉘부르 지역 인근의 라망쉬(La Manch)에 첫 번째 방폐장을 건설했다. 라망쉬 방폐장은 이후 25년 동안 성공적으로 운영된 뒤 용량 포화로 1994년 문을 닫았다.

바통을 이어 받은 것은 포도 주산지인 로브(L’Auve)의 30만평 부지에 들어선 두 번째 방폐장. 1992년부터 운영에 들어간 이 시설의 처분 용량은 200리터 드럼 기준으로 500만개에 달하며, 이는 향후 50년 동안 발생할 방사성 폐기물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방대한 규모다.

로브 방폐장은 폐기물 저장이 완료되면 콘크리트 등으로 빈 공간을 채운 다음 흙, 모래, 아스팔트 등으로 복토한 뒤 잔디를 심어 마감하는 처분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관련 부처 공동으로 만든 공공기관 ANDRA에 로브 방폐장의 관리를 맡기고 있다. ANDRA는 방폐장 주변 지역에 대해 상시적인 방사능 수치 검사를 실시하는가 하면, 분석 결과 역시 지역 주민들에게 정기적으로 공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자원부 방사성폐기물과의 한 喚窩渼?“프랑스는 원자력 의존도가 매우 높은 까닭에 국민들의 원자력에 대한 이해 역시 깊은 편”이라며 “처음 방폐장을 건설하려 할 때에 ‘님비’(혐오시설을 기피하는 집단 이기주의) 현상이 없진 않았지만 결국 슬기롭게 합의를 도출했다”고 말했다.

원자력발전의 역사가 오래 된 영국도 방폐장 운영의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 받는 국가다. 영국은 1959년부터 중ㆍ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드릭(Drigg) 憐瓚恙【?처분해 오고 있는데, 1987년부터는 안전성이 한층 보강된 공학적 천층(淺層)처분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천층처분은 지표면에서 10m 이내로 얕게 땅을 판 다음 그 안에 폐기물 드럼을 저장한 뒤 콘크리트 등으로 마감하는 처분 방식을 뜻한다. 이 방식은 기술적으로 안전성이 검증돼, 많은 국가들이 중ㆍ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에 활용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방폐장 설치 지역 주민들과의 신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 놓았다. 핵연료공사(BNFL), 지역보건당국, 지역 및 환경보호단체의 대표들로 구성된 지역연락위원회가 그것인데, 이 위원회는 정기 모임과 특별 설명회 등을 개최함으로써 방폐장의 투명한 운영에 보탬을 주고 있다.

이웃 일본은 방폐장 건설을 위해 정보 공개 원칙과 함께 주민들에게 ‘당근’ 정책을 사용한 경우다. 일본 정부는 1980년대 중반 혼슈(本州) 최북단 아오모리현 로카쇼무라에 방폐장을 설치하기로 방침을 정했으나, 주민들과 시민단체 등의 반발로 한 동안 제자리 걸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지역 발전을 위한 대규모 지원 정책이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전원 3법’이라는 관련 법률을 제정, 1988년부터 1999년까지 로카쇼무라, 인접 지자체, 아오모리현 등에 총 423억엔(약 4,200억원)의 특별 교부금을 지급했다.

그 결과 외딴 농어촌 마을이었던 로카쇼무라는 주민 소득과 고용 기회가 증가하는 등 살기 좋은 지역으로 거듭나게 됐다.

만족스럽기는 중앙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중장기적인 방사성 폐기물 처리 정책의 든든한 교두보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중ㆍ저준위 방폐장을 유치하는 지역에 3,000억원의 특별지원금 등을 주기로 한 것은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08-30 19:45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