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 3파전에 할리우드 끼어들기, 대목 '만원사례'에 도전장

[추석 특집] 한가위 흥행대박 노린 4色 향연
방화 3파전에 할리우드 끼어들기, 대목 '만원사례'에 도전장

절기 상 추석의 의미는 극장가에도 적용된다. 추석 시즌은 일년 중 영화관 앞이 가장 성시를 이루는 대목 중 하나다. 풍성한 결실을 바라는 농부의 마음처럼 올해 추석에도 대목 대박 흥행을 노리는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절대 우위가 예상되는 한국영화들이 벌일 3파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영화 장인의 매운 손 맛을 과시했던 이명세 감독이 할리우드 진출을 잠시 유보하고 만든 <형사 Duelist>는 화려한 이미지의 상찬으로 시선을 유혹하는 액션 멜로 드라마다.

한류 스타 배용준을 흥행 포인트로 내세운 허진호의 일상 멜로 <외출>과 <가문의 영광>의 성공을 잇겠다는 야심찬 포부의 조폭 코미디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도 추석 흥행 왕좌에 도전장을 던졌다.

할리우드 영화로는 울긋불긋 총천연색 이미지와 무한한 상상력의 권능을 보여주는 팀 버튼 감독의 <찰리와 초콜렛 공장>이 눈에 띈다. 저마다의 흥행 비기로 흥행 월계관을 노리는 네 영화를 소개한다.

형사 Duelist

쫓는 형사와 쫓기는 자객의 감정의 액션

이명세 감독이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후 6년 만에 연출한 신작 <형사 Duelist>(이하 <형사>)는 단순한 줄거리를 휘황찬란한 비주얼의 향연으로 장식한다.

조선 시대 여형사 남순(하지원)과 위조 화폐 사건과 관련된 병조판서(송영창)의 오른팔 자객 ‘슬픈 눈’(강동원) 사이에서 벌어지는 애증 관계를 중심 줄거리로 삼았다.








영화는 남순과 슬픈 눈이 다양한 방식으로 대결하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그들의 감정 상태와 상황에 따라 대결의 이미지를 조금씩 변주해낸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박중훈이 맡았던 좌충우돌 우형사 캐릭터의 여성 버전인 남순의 보이시한 매력과, 순정만화에서 방금 뛰쳐나온 듯 낭만적이고 사색적인 검객 슬픈 눈의 영기가 합쳐져 독특한 분위기의 로맨스로 태어났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거의 대사를 사용하지 않고 무성 영화에 가까운 화면과 액션을 선보였던 이명세는 <형사>에서 시청각적인 감각을 자극하기 위해 모든 걸 희생시킨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보다 훨씬 더 복잡해진 세트와 조명 설계, 카메라 움직임, 화면 조작, 사운드는 영화 장인 이명세의 야심을 증명해준다. <형사>는 전작과는 달리 사투리 대사가 많이 등장하지만, 이는 의미를 전달하기보다 말의 리듬감을 살리는 데 일조한다.

이명세는 사투리 억양을 극도로 살려서 말의 의미를 뭉개는 대신 화면과 대사의 음색을 절묘하게 조합해낸다. 현장 촬영 보다는 세트 촬영을 더욱 선호하는 취향도 여전하다.

순제작비만 78억원을 투입한 <형사>는 세트에 엄청난 공을 들였으며, 영화의 초반부를 장식하는 장터는 무려 8억원을 쏟아 부은 2000평 규모의 거대한 세트에서 이루어졌다.

사극이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지만 시대 고증에는 영 관심이 없어 보인다. 장이모우의 <영웅>처럼 <형사>에는 상상으로 만들어낸 의복과 헤어스타일, 대결 신들이 난무한다.

도입부 장터 액션 신을 보면 ‘혼돈 속의 대결’이라는 컨셉트를 보여주기 위해 원색의 천과 국적 불명의 꽃들, 컬러풀한 의상으로 화면을 도배한다.

비현실적인 기조는 남순과 슬픈 눈이 여러 번 대결을 벌이는 한밤중의 돌담길 세트 장면이나 병조판서의 생일에 벌어지는 연회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영화 카메라로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비전들을 모두 시험해보겠다는 이명세의 야심은 신파조로 흐르는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기에 모자람이 없다.

세트나 미술, 사운드의 뿐 아니라 영화의 주요한 정서를 이루는 대결의 움직임은 이명세가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다. 대결을 하기 보다는 마치 춤추는 듯한 동작을 펼쳐 보이는 남순과 슬픈 눈의 결투 장면은 살기를 띠고 있기 보다는 때로는 에로틱하고, 때로는 서정적이기까지 하다.

이러한 정서는 특히 밤 장면의 결투에서 두드러지는데,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투구와 어슴프레 드러나는 인물들의 실루엣에서 느껴지는 극도의 낭만적 서정은 기존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발견이다.

외출

거부할 수 없는 사랑으로의 외출

2001년 추석, <봄날은 간다>로 한국 멜로의 진일보를 이룬 것으로 평가 받았던 허진호 감독이 4년 간의 공백을 깨고 추석 영화로 다시 컴백했다.

일본을 넘어 아시아 전역으로 영역을 넓힌 한류 스타 배용준과 최고의 멜로 감독 허진호의 만남으로 제작 단계부터 화제가 됐던 영화다.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에서 보여준 감정의 디테일을 포착하는 감각, 과장을 덜어낸 허진호식 일상 멜로가 어떤 진화를 이룰 지 관심을 집중시켰다.

무대 공연 조명 감독인 인수(배용준)는 아내 수진(임상효)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삼척으로 간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 인수는 출장을 간다고 했던 수진이 실은 외간 남자 경호(류승수)와 불륜 관계였고 강원도에서 밀회를 즐기다 변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혼란에 휩싸인 인수는 경호의 아내 서영(손예진)과 사고 수습 과정을 함께 한다. 상실감과 배신감에 번민하던 두 사람은 우연한 스침들 가운데 서로에게 연정을 품게 된다.

<외출>의 영어 제목은 '4월의 눈'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 이어 자연의 계절 흐름에 무감한 허진호식 제목 짓기는 여전하다. 사랑의 순간과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 그 속성을 보여줬던 전작들을 지나 <외출>은 어떤 혼란과 역경의 순간에도 불가피한 사랑은 생겨난다는 걸 말해준다.

피할 수 없지만 언제고 시들거나 소멸해버릴 감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는 얘기다. 결국 허진호의 전작들과 <외출>은 모순적인 사랑의 시학을 보여준 셈이다. 이와 관련해 가장 관심을 끌었던 건 역시 한류 스타 배용준이다.

복수심에서 출발해 진짜 사랑의 감정에 휩싸이는 남자를 연기한 그를 두고 말들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아시아 시장을 의식한 비즈니스용 캐스팅이라는 악의적 험담까지 들었던 터라 본인도 부담스러웠을만하다. 하지만 <외출>은 배용준의 캐릭터 보다 허진호식 사랑의 시학이 두드러진 영화로 나왔다.

차이가 있다면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붙잡기 위한 장치(<8월의 크리스마스>의 사진, <봄날은 간다>의 소리 채록)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배용준의 유명세 탓이겠지만 영화의 촬영지는 개봉 전부터 일본 관광객들이 떼지어 찾는 명소가 됐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군산, <봄날은 간다>의 삼척에 이어 지방 소도시에 대한 애정을 남달리 과시해 온 허진호는 이번에도 삼척을 무대로 호젓한 공간에서의 일탈적 감정을 담아낸다.

‘불륜영화’라고 알려졌지만 영화를 보는데 도움이 되는 건 윤리적 잣대 보다 필요한 건 자문의 태도다. 어떤 비난받을만한 관계에서도 사랑은 가능하다고 말하는 이 영화는 세속의 기준을 잠시 떠나 인물들을 보기를 권한다.

명절의 흥겨움보다 가을의 정취에 잠시 젖어 보고픈 관객들에게는 감상에 빠지기 쉬운 영화가 될 것이다.

가문의 위기_ 가문의 영광2

조폭 가문, 검사 며느리 맞기 대소동

2002년 52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대박 신화를 쓴 <가문의 영광>은 조폭 코미디와 로맨틱 코미디를 적절히 배합한 트렌디한 히트 상품이었다.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이하 <가문의 위기>)는 과년한 딸을 시집보내기 위한 조폭 가문의 전력투구를 보여준 <가문의 영광>의 속편이다.

이번에는 여수 일대를 평정하고 서울 진출을 노리는 뼈대 있는 백호파 가문이 검사 며느리를 맞이할 상황에 놓이면서 사면초가에 빠진다. 여수의 명문 조직 백호파 첫째 아들 인재(신현준)는 사랑했던 여인 경숙(김원희)이 불의의 사고로 죽은 뒤 여자에 관심을 끊고 노총각으로 살아간다.











백호파 대모이자 어머니 홍덕자 여사(김수미)는 그런 아들에게 짝을 찾아주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인재의 마음은 돌아서지 않는다.

둘째 석재(탁재훈)와 셋째 경재(임형준)가 형의 결혼 작전에 나서지만 인재는 자신의 첫 사랑과 꼭 닮은 강력계 검사 진경(김원희)에게 첫 눈에 빠진다. 그 때부터 인재는 신분을 숨기고 위험한 로맨스의 줄다기리를 시작한다.

추석 시즌, 검증된 흥행 코드로 가족 단위 관객의 선택을 받겠다는 전략을 세운 <가문의 위기>는 성공한 전편의 흥행 비기를 온전히 계승한 속편이다.

사투리 개그와 조폭들 사이의 인간애, 알콩달콩한 로맨스, 그리고 양념 역할을 하는 액션까지 성공한 전편의 흥행 코드를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속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더 센 자극이 필요하다는 ‘속설’에 따라 외설적인 성적 농담과 지저분한 화장실 유머, 화려한 카메오 등 웃음의 코드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전작의 성공이 충무로 최고의 여자 코미디 배우인 김정은의 활약에 힘입은 바 컸던만큼 강력계 여검사 진경 역을 맡을 여배우 발탁은 영화의 성龜?좌우할 열쇠였다.

<餞侈?씨스터즈>와 TV 토크 쇼를 통해 입담을 과시해 온 김원희의 캐스팅은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보인다. 김원희는 사건 앞에서는 저돌적이고 남자 앞에서는 내숭적이 되는 진경과 인재의 과거 애인 경숙까지, 1인 2역을 특유의 천연덕스러움으로 해낸다.

<에스다이어리>등을 통해 스크린 경험을 쌓은 가수 탁재훈과 <마파도>의 성공 비결로 꼽히는 김수미의 농익은 코믹 연기,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의 안성댁 박희진, 현영, 백일섭, 정준호 등의 카메오 출연도 눈길을 끈다.

민족명절인 추석에는 모름지기 가벼운 코미디게 제격이라는 게 충무로의 속설이다. 웃음의 퍼레이드를 위해 남성 성기와 여성 가슴을 이용한 음담패설, 검사와 조폭의 로맨스를 성공시키기 위해 동원된 억지스러운 설정, 개인기에 의존한 일회성 개그 장면 등이 거슬리기도 하지만 추석 연휴에 부담없이 즐길만한 ‘볼거리’를 찾는 관객들의 스트레스 해소용으로는 그만이다.

2001년 추석, 평단의 냉대를 받았던 <조폭 마누라>가 <봄날은 간다>를 누르고 추석 시즌 흥행 왕좌에 올랐다는 전례 때문에 올해 한국영화 추석 3파전의 승자가 될 가능성이 큰 영화로 꼽히고 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팀 버튼의 궁극의 판타스틱 월드

로알드 달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동화작가 로얄드 달과 팀 버튼 감독의 팬 모두에게 일종의 꿈의 프로젝트라 할 만한 영화다.

이미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에서 달의 원작에 한 번 도전해 본 경험이 있는 팀 버튼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주인공 윌리 웡카 역에 조니 뎁을 캐스팅하면서 영화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윌리 웡카라는 괴상한 천재가 운영하는 비밀에 둘러싸인 초콜릿 공장에 전 세계에서 오직 다섯 명의 어린이만이 하루 견학을 허락받게 되면서 펼쳐지는 모험을 다룬다.
















이 영화는 팀 버튼의 최근 영화 가운데에서 그의 기괴한 상상력이 모처럼 만개한 영화다. <혹성 탈출>이나 <빅 피쉬>와 같은 근작이 그다지 독창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배트맨>이나 <가위손> <유령수업>을 떠올리게 하는 이 괴기스러운 동화는 팀 버튼의 진정한 귀환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착하고 어른스러운 주인공 소년 찰리 버켓의 캐릭터는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이는 초콜릿 공장 주인 윌리 웡카의 아우라가 너무나 독특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 전체가 찰리의 모험이라기보다는 윌리 웡카와 다수의 사람들이 겪는 모험이라는 표현이 더욱 적절하기 때문이다.

팀 버튼은 로얄드 달의 원작을 최대한 충실히 영화화하기 위해서 360도의 실물 크기 세트를 지어 어린 배우들로 하여금 실감나는 연기를 할 수 있도록 했으며, 관객들로 하여금 결코 블루 스크린으로 채워질 수 없는 실제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특히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인 초콜릿을 만드는데 있어서 각종 아날로그 기술이 동원되었다. 초콜릿 공장 안을 흐르는 초콜릿 강은 무려 길이 55m에 폭 12m, 깊이가 1m에 이르는 규모를 자랑하며, 제작진은 촬영을 위해 총 77만리터 이상의 초콜릿을 공급해야 했다.

하루에 몇 톤 분량의 초콜릿을 제조하기 위해 치약 제조회사에서 한번에 12톤 씩 반죽이 가능한 치약 반죽기를 공수해오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 놀라운 캐릭터는 정글에서 구조되어 공장 안에서 일하는 움파룸파 부족이다.

수백 명에 달하는 이 부족은 실제로 딥 로이라는 한 명의 배우가 연기했는데, 영화 속에서 주로 코러스처럼 등장하는 이 부족들?집단 군무 장면에서 로이는 수십명의 동작과 표정 연기를 모두 소화해내야 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팀 버튼과 조니 뎁이라는 명콤비가 언제나 그렇듯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영화다. <가위손> <에드우드><슬리피 할로우>에 이어 팀 버튼과 네 편째 함께 작업하는 조니 뎁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이 영화가 지닌 최고의 매력이다.

전작인 <빅 피쉬>와 마찬가지로 가족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교훈극적인 성격이 짙은 탓에 진부함은 있지만, 블루베리 파이로 변해버리거나, 다람쥐들의 공격을 받는 어린이 등 기발한 상상력이 현실화된 초콜릿 공장을 둘러보다 보면 결코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을 것이다.


장병원(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5-09-14 16:34


장병원(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