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여성 47% "조건 맞으면 이혼남과 결혼할 수 있다"

[커버 스토리] 백마 탄 왕자 만나 육아·가사 부담없이 살고파
미혼여성 47% "조건 맞으면 이혼남과 결혼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미혼 여성들은 결혼에 대해 무슨 꿈을 꾸며, 직장 생활과 정치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본지는 창간 41주년 특집으로 결혼정보업체 ‘선우’와 공동으로 ‘2005 한국 여성의 현주소’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결혼관을 중심으로 가사 및 취업, 여성의 정치 참여 의식까지 라이프 스타일을 다각적으로 살펴보고 점검함으로써 여성 삶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해 보기 위해서다.

이번 조사는 지난 8월22일부터 26일까지 ‘선우’의 미혼여성 회원 367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로 실시됐다. 대상 미혼여성의 연령은 20~44세(27세 이하 23.2%, 28~31세 46.6%, 32~35세 22.8%, 36세 이상 7.4%)다.

백마 탄 왕자 만나 육아·가사 부담없이 살고파

◇ 결혼관 = 요즘 미혼 여성들은 현실을 중시하면서도 신데렐라의 꿈은 버리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통 재벌 왕자들의 세상인 TV의 영향일까. 실현 가능성이 0.00001%에도 못 미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미혼 여성들은 여전히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린다.

미혼 여성 3명 중 1명은 백마 탄 왕자를 꿈꾸는 것으로 조사됐다. ‘배우자감으로서의 재벌 2세’에 대해 전체 응답자 중 109명(29.7%)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46.9%는 ‘그저 그렇다’고 답했다. 가끔 뉴스를 통해 접하는 현실의 재벌 2세가 변칙적 유산 상속이나 금지 약물 복용 등 부정적인 모습이 대부분인데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자는 23.4%에 그쳤다.

그렇지만 현실이란 벽에 부딪히면 재벌 2세 배우자란 꿈은 사그라진다. 대신 직업의 안정성이 최우선 조건으로 떠오른다. 배우자의 직업 선호도를 보자.

배우자의 직업으로는 공기업 종사자와 공무원이 각각 27%와 20.4%로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전체 응답자의 절반 가까운 미혼 여성이 ‘철밥통’이라는 공직계를 선호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전통적인 선호 직업인 의료계(12.5%), 법조계(6.9%)에 비해 압도적으로 앞선다. 일반 회사원(11.4%)과 개인사업(10.6%), 교육계(7.6%)는 10%안팎에서 미혼 여성들에게 고르게 지지를 받았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건에서도 직업은 역시 최우선 고려 대상이었다. ‘성격’(38.7%)과 함께 ‘직업’(37.6%)을 선택 기준으로 꼽은 여성들이 상당수다. 이어 소득(14.2%)과 학력(5%), 외모(0.1%) 순이었다.

‘이혼남과의 결혼’에 대한 의견을 묻는 설문에는 전체 응답자의 47%가 ‘조건만 좋으면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물론 ‘이혼남과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답한 53%보다는 약간 낮다. 그러나 이혼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사회의 인식에도 불구하고 ‘조건이 좋다면 가능하다‘는 대답 또한 기대치보다 훨씬 높아 현실을 중시하는 세태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선우’ 분당센터의 정혜숙 팀장은 “고학력 전문직 여성일수록 조건에 대해 더 까다로우며, 낮은 조건의 미혼 남성보다는 조건 좋은 재혼 남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배우자가 사회 생활을 반대한다면 그만둔다”고 응답한 여성도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미혼 여성 회원 10명 중 6명이 이같이 답했다.

성 역할의 고정 관념을 깬다는 뜻의 신조어인 콘트라섹슈얼(Contra Sexual)까지 등장하는 세태에 비추어 보면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이화여대 함인희 (사회학)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는 유엔 회원국 중에서 결혼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한다”며 “결혼 시기가 늦추어지고 있는 추세지만 여전히 미혼 여성들이 결혼에 대해 느끼는 압박감이 상당하기 때문에, 결혼 시장에서 선택되기 위한 일시적 전략으로 남성의 가치관을 적극 수용하는 태도를 보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함 교수는 또 “결혼은 사회 구조적인 상황에 직결되기 때문에 사회가 불안정할 때는 안정성의 확보가 최우선 조건”이라며 “지나치게 조건 중심으로 흐르는 결혼 문화는 부부 관계의 가치 등 근본적인 물음을 도외시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일과 가정 사이에서 고달픈 삶

◇ 가사 및 취업, 여권 의식 = 미혼 여성 10?중 6명이 결혼 뒤 가장 부담이 될 것 같은 가사활동으로 ‘자녀 양육’을 꼽았다.

응답자의 62%가 ‘자녀 양육’ 이라고 답해 가장 많았고, ‘시댁 경조사 준비’(28%), ‘식사 준비’(7%), ‘집안 청소’(2%)의 순이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이러한 가사 부담이 여성 취업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점이었다. 여성들이 취업의 장애 요인으로 꼽은 항목은 ‘가사병행 부담’이 51%로 절반을 넘어섰다.

다음으로는 사회적 선입견(27%), 능력 부족(14%), 정보 부족(8%)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가사 병행 부담(자녀 양육 문제 등)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좇는 여성들의 삶이 고달플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시사한다.

취업 과정에서 성 차별을 경험한 여성도 30%가 넘었다. ‘취업 등을 위한 면접 과정에서 성 차별적이라고 생각되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를 묻는 설문에는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32%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미혼 여성들은 가사 노동에 대한 사회의 평가에도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주부의 가사 노동은 정당한 평가를 받는가’라는 설문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한 응답자가 42%나 됐고, ‘약간 그렇지 않다’(31%), ‘보통이다’(16%)라고 답한 경우도 많았다. ‘정당한 평가를 받는다’고 답한 여성은 11%에 불과했다.

이처럼 여성들의 삶은 아직도 성 차별의 굴레에 매여 있는데, 의식은 이와 대조적으로 매우 급진적이었다.

‘부모성 함께 쓰기’에 대한 찬반 조사를 실시한 결과, 찬성 의사를 가진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찬성한다’는 응답자는 39%였으며, ‘반대한다’는 의견은 22%에 그쳤다. ‘여성의 정치 참여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는 87%의 여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우 필요하다’고 답한 응답자가 68%, ‘약간 필요하다’고 답한 여성도 19%나 됐다.

함인희 교수는 “결혼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권리 의식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진보적인 양면성을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인터뷰 선우 이웅진 대표

"결혼은 현실, 안정에 큰 비중"

“지난 10년간 결혼 문화에서 가장 달라진 것은 과거 정말 인기가 없던 공무원이 최고의 배우자감으로 떠오른 것입니다.

결혼을 통한 신분 상승보다 현실의 안정성에 중심을 두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는 결과입니다.”

1997년 결혼정보회사 ‘선우’를 세워 3,000쌍이 넘는 커플들로 하여금 부부의 인연을 맺게 한 이웅진 대표. 그는 “최근의 결혼 문화는 여유와 안정에 가장 큰 비중이 실리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맞벌이 여성의 증가를 두드러진 변화 중 하나라고 꼽았다. 그러나 “결혼하면 생계는 남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식의 수동적 사고 방식을 보이는 경우도 아직은 있다”며 “결혼 적령기에 이른 여성의 상당수가 현실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다”고 말했다.

‘독신주의는 결혼에 실패한 사람들의 변명이다’, ‘화려한 싱글은 없다’ 등 톡톡 튀는 발언으로도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던 이 대표는 “이성을 만날 기회가 많아지다 보니 간혹 사람과의 만남에 대한 존귀함을 잊는 경우가 많다”며 “조건 대신 건강한 만남을 지향하는 결혼관을 심어주기 위해 체계적인 결혼 학습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이어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만혼과 독신 풍조는 ‘결혼은 연애의 무덤’이라는 식의 그릇된 사회적 의식화와 집값 등 막대한 결혼 비용이 초래한 결과”라며 “독신 미화적인 시각을 바로잡고 결혼의 비용을 사회에서 일부 지원하는 등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5-10-06 11:11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