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특유의 감성으로 한국경제 도약 이끌어

[커버 스토리] 감성적 리더십, 꽃을 피우다
여성특유의 감성으로 한국경제 도약 이끌어

가발, 신발, 섬유 산업 등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 경제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한 주요 견인차였다.

그 시절 이들 산업이 수출 역군으로 발돋움하는 데는 밤낮없이 공장에서 일손을 움직인 여성 인력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저임금에 열악한 근로 조건, 성차별과 여권(女權) 경시 풍조 속에 그들은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공순이’라는 모멸적인 호칭까지 감내해야 했다.

한국 경제는 양지(陽地)로 서서히 나아갔지만, 여성 인력은 오랫동안 그렇게 음지(陰地)에 갇혀 있었다.

여성경제활동 참가율 50%육박

한국 경제에서 여성들이 ‘인재’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것은 사실상 대졸 이상 고학력자들이 쏟아지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부터다.

이에 따라 생산직, 비서직 등 단순 업무에 국한됐던 여성의 취업 영역이 사무관리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대기업들이 대졸 여성 공채를 본격화한 것도 이 무렵이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조사에 따르면 1990년 대졸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53.1%였다. 이 비율은 지속적으로 높아져 1997년에는 61.1%에 이르렀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의 여파가 닥치면서 상승세가 한풀 꺾인 대졸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한 동안 50%대에 처졌다가 2004년에 다시 60%대로 복귀했다. 전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1990년 47%에서 2004년 49.8%로 큰 변화가 없었다.

여성 인력의 지속적인 유입은 기업 인사 문화를 적잖이 바꿔 놓았다. 우선 남성 일색이던 조직에 여성들이 가세하면서 사무실의 성비(性比)가 크게 변했다.

취업 전문기관 인크루트가 2003년 105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들 기업의 전체 직원 중 여성의 비율은 평균 26%에 달했다. 승진 기간을 남녀 동일하게 적용하는 기업도 전체의 78.1%를 기록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자신의 분야를 개척해온 여성 직장인 상당수는 소속 회사에서 과장급 이상 중간 관리자로 성장했다. 업종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차장ㆍ부장급 여성 관리자도 드물지 않다.

하지만 ‘기업의 별’로 불리는 임원 승진은 아직까지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인크루트 조사에서 여성 직원이 임원이 될 가능성은 고작 0.0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조사 대상 기업의 84%는 여성 임원이 아예 없었다.

조사 기관이나 방법에 따라 다소 차이는 나지만 국내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이 아직 낮은 것만큼은 사실이다.

2004년 세계여성지도자회의(Global Summit of Women)에서 발표된 ‘맥킨지 보고서’는 국내 민간 부문의 임원급 관리직 여성 비율이 4.9%라고 밝힌 바 있다.

더욱이 100대 기업 중 80개 기업에서는 그 비율이 2% 선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비해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천’이 선정하는 5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15%를 상회한다.

하지만 최근 여성 인력의 가치를 인식한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강한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여성의 승진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상한선, 이른바 ‘글래스 실링’(glass ceilingㆍ유리 천장)을 스스로 깨뜨리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별로 뜬 여성임원들

이런 변화를 이끌어낸 주역은 오로지 실력 하나로 남성들을 제치고 직업 세계에서 우뚝 선 스타급 여성 임원들이다.

이들 가운데 단연 첫 손가락에 꼽히는 인물은 연예인 뺨칠 만큼 유명세를 치른 윤송이 SK텔레콤 상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수석 졸업, 한국 역대 최연소 박사, 세계 50대 여성 기업인(‘월스트리트’ 선정)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그는 재계 최연소 여성 임원의 타이틀도 가졌다.

윤 상무는 최근 인공지능을 휴대전화에 접목시킨 ‘1㎜ 서비스’를 개발하는 등 국내 정보통신 업계의 차세대 총아로 주목받고 있다.

이밖에 LG전자의 WCDMA 휴대폰 개발 주역인 류혜정 상무, 삼성SDS의 최고정보책임자(CIO)인 장연아 상무, 삼성SDI 2차전지 개발팀의 김유미 상무보 등도 소속 회사뿐 아니라 재웰옙뵈邰?瓚鉗??한 몸에 받는 여성 임원들이다.

이들의 활약은 단지 개인의 성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향후 경제계의 여성 파워를 확대 재생산하는 구심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기업체 여성 임원들이 ‘샐러리맨 신화’를 써 나가고 있다면 여성 기업인들은 ‘CEO 신화’를 창조하고 있다.

199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여성이 기업을 이끌어나가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간혹 회장 직함을 가진 재벌가의 딸이나 며느리가 눈에 띄기는 했지만, 이런 경우에도 회사 경영은 주로 전문경영인이 떠맡았다.

그러나 온실에서 과감히 뛰쳐나와 자신의 힘으로 사업을 개척한 재벌가 여성들도 있었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이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창업주인 남편 채몽인 회장이 갑작스럽게 타계한 1970년대 초부터 경영 일선에 나선 그는 매출 40억원대의 회사를 30여년 만에 매출 1조8,000억원대 규모의 어엿한 그룹으로 키워내는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지난 5월 한국경영사학회는 장 회장의 경영 능력과 기업가 정신 등을 분석한 ‘애경그룹 회장 장영신 연구’라는 연구총서를 내놓았다. 애경그룹을 성장시켜 온 장 회장의 리더십이 경영학자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은 것이다.

재계에 새 바람 일으킨 여성 CEO

장 회장 외에도 현재 대기업을 직접 꾸려나가는 재벌가 여성들은 적지 않다. 특히 삼성에서 계열 분리한 뒤 거대 유통그룹을 건설한 이명희 신세계 회장, 해외 엔터테인먼트 사업 확장에 발군의 활약을 보인 이미경 CJ엔터테인먼트 부회장, 금강산 관광 등 대북 사업을 주도하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은 재계에 새 바람을 몰고 온 여성 기업인으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다.

















고 김수근 대성그룹 회장의 막내딸인 김성주 성주인터내셔널 사장도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재벌가의 후광을 벗어나 독립적으로 사업을 펼쳐온 김 사장은 1997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세계경제포럼)의 ‘차세대 지도자 100인’에 선정되는 등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는 기업인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자수성가형 여성 기업인들도 크게 늘고 있다. 이들의 본거지는 주로 정보통신ㆍ벤처 업계다.

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와 벤처 붐이 국내 경제 구조를 크게 뒤흔들면서 형성된 창업 시장은 아이디어, 실력, 야망을 가진 여성 인재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줬다.

현재 전체 벤처기업에서 차지하는 여성 벤처의 비율은 5% 안팎에 그치고 있지만, 생존력은 남성 벤처보다 훨씬 나은 것으로 나타난다.

안정적인 재무 운용을 하기 때문이다.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우량 벤처도 적지 않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감수성, 유연성, 창의성 등 여성 특유의 감성적 리더십이 급변하는 21세기 경제 환경에서 남성 기업인들에 비해 오히려 우월한 경영자적 덕목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또한 저출산ㆍ고령화에 따른 노동 인력 감소를 극복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 여성 인력의 보다 적극적인 활용을 꼽기도 한다. 바야흐로 여성이 경제를 주무르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10-06 13:32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