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텃밭서 무공해 농산물 재배, 식탁 위의 녹색혁명 실현

[커버 스토리] "불안에 떠느니 직접 키워 먹지요"
유기농 텃밭서 무공해 농산물 재배, 식탁 위의 녹색혁명 실현

경기 고양시 일산구 백석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원용조(52)씨는 자신이 직접 정성스레 길러낸 무공해 채소를 매일 가족의 식탁에 올린다.

그가 가족의 식단을 이처럼 손수 챙긴 것은 4년 전 운동 동호회 친구 3명과 함께 텃밭 400평을 구입해 가꾸면서부터 시작됐다.

“채식 바람이 한창 불고 덩달아 유기농 식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때였지요. 무공해라고 선전하며 비싸게 파는 채소들에 자연스레 눈길이 갔는데, 한편으로는 정말 무공해일까 하는 의심이 들더군요. 중국산이다 뭐다 하면서 뉴스에서 먹거리 문제를 떠들어대는 통에 불안하기도 했고요.”

이렇게 첫 걸음을 뗀 원씨의 유기농 텃밭 가꾸기는 그러나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시골 출신(경북 영천)이지만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었던 그는 경험이 있는 친구에게 하나 둘씩 배워 가면서 텃밭을 일궈 나갔다.

처음엔 사실 ‘주말 농장을 하나 갖는다’는 다소 낭만적인 생각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주말에만 잠시 돌봐서는 안 되는 게 농사일이라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특히 유기농은 농약과 화학 비료 대신 자연 퇴비를 사용하기 때문에 조금만 신경을 덜 써도 농사를 망치기 일쑤다. 이미 몇 번의 시행착오도 겪었다.

배추에 벌레가 끼어 먹을 수 없게 된 적도 있었고, 고추가 병든 적도 있었다. 콩을 심었는데 가을에 하나도 열리지 않았을 때는 마음까지 다 아팠다. 농부의 마음, 그 자체였다.

무농약 무비료 원칙 고수

아닌 게 아니라 원씨는 무농약, 무비료의 원칙을 지키면서 거의 농부가 다 됐다. 날씨에 민감해진 것도 그 때문이다. 비가 많이 오거나 햇볕이 너무 따가우면 사무실에서 일하는 도중에도 텃밭이 눈에 어른거린다.

그래서 틈만 나면 차로 20분 가량 걸리는 텃밭에 수시로 달려가 호박이며 오이, 깻잎, 상추, 고추, 배추 등 10가지가 넘는 ‘자식’들을 돌보는 데 여념이 없다. 곡식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원씨의 노력 덕택에 가족의 식탁은 90% 이상이 직접 키운 무공해 농산물로 채워진다. 식탁 위의 녹색 혁명을 실현한 원씨는 ‘가족 건강 지킴이’라는 자부심도 대단하다.

“무공해 채소를 먹다 보니 식단도 크게 바뀌었습니다. 육식에서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하게 돼 건강도 절로 챙기게 됐죠.”

직접 텃밭을 가꾸면서 얻은 것은 건강뿐만이 아니다. 씨앗을 뿌려 열매가 자라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바로 그 재미 때문에 4년 동안 종류를 늘려가며 무공해 농산물을 수확하게 됐다. 손수 재배한 무공해 채소를 이웃들과 함께 나눠 먹으며 정을 돈독히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다.

원씨의 부인과 열한 살짜리 아들도 주말이면 함께 텃밭에 간다. 부인은 남편 덕에 장을 보는 수고를 덜었고, 아들은 탁 트인 시골 텃밭에서 직접 씨를 뿌리고 열매도 따는 등 자연체험 학습을 할 수 있어 교육적인 효과도 크다.

“제가 키우고 재배한 채소를 먹다 보니 친환경 제품이라 써 있는 것들이 더욱 믿어지지 않아요. 왜냐하면 농사일이 직업인 사람들은 기술이 있기 때문에 비료 없이 한다고 하지만, 제가 직접 해 보니 화학 비료나 농약 없이 작물을 키운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란 것을 깨달았거든요. 그러니 내 눈으로 확인해 보지 않는 이상 친환경 제품을 쉽게 믿을 수가 없어요.”

원씨는 앞으로 텃밭에 알타리 무까지 심어 김장 김치는 자신이 직접 키운 것으로 담가 먹을 계획도 갖고 있다. 최근의 중국산 납김치 파동과도 무관치 않다. 먹거리와 관련된 논란이 끊이지 않는 터라 원씨의 유기농 재배 목록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안심하고 먹으며 친환경 실천

서울 강남에 사는 주부 정미화(48)씨도 작은 텃밭 하나를 가꾸고 있다. 건강 관리를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청계산(서울 서초구와 경기 과천 경계에 있는 산)으로 등산을 다니다 친구 한 명과 함께 의기투합해 그 곳에 텃밭을 마련한 게 3년 전이다.

처음엔 상추, 고추 등 비교적 손쉽고 간단한 채소를 재미 삼아 키웠지만 한 해 두 해 종류가 늘어나더니 지금은 배추까지 재배하고 있다.

정씨가 등산을 構?내려오면서 자신의 텃밭에서 난 무공해 채소를 한아름 갖고 돌아오는 날은 어김없이 쌈밥 정식이 식탁에 올려진다.

“마트에서 돈 주고 사서 먹는 것보다 무공해 채소를 직접 키워 가족과 함께 먹는 데서 보람을 느끼죠. 유기농, 친환경 제품도 많지만 직접 키운 농산물로 건강 밥상을 차리는 사람을 따라올 수 있나요.”

아이들은 정씨가 차린 식단을 가리켜 ‘저 푸른 초원 위에’나 ‘풀밭’이라고 장난스레 말하기도 하지만 속마음은 다르다. 어머니가 직접 재배하고 손수 만드는 토속적인 음식 맛에 길들여지다 보니 인스턴트 식품이나 학교 급식을 먹을 때는 오히려 거북한 경우도 있다.

정씨는 요구르트와 청국장을 집에서 만들어 먹을 정도로 가족의 건강에 관심이 많다. 어쩌다 장을 봐야 할 때는 반드시 식품 매장의 친환경 농산물 코너를 들른다.

김치도 유기농 배추를 사서 직접 담가 먹고 웬만하면 음식을 만들 때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 이런 실천은 정씨와 가족의 건강을 챙기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고3 수험생을 둔 정씨는 몇 년 뒤 시골의 농가와 땅을 사서 주말 농장을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다. “자식도 다 키우고 여유가 생기면 꼭 그렇게 할 거에요. 농작물이 커가는 재미는 자식 키우는 거랑 같아요. 그런 재미를 느끼면서 자연과 친하게 살고 싶어요.”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10-19 15:16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