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공급 조화 정부차원서 해결해야"

[커버 스토리] 한국 유기농의 산 증인 안종근씨 인터뷰
"수요·공급 조화 정부차원서 해결해야"

절기답지 않은 뙤약볕이 내리쬐던 지난 12일 정오 무렵,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일대에 널따랗게 펼쳐진 비닐하우스 단지를 찾았다. 서울 및 수도권 주민의 상수원 노릇을 하는 팔당호 인근에 자리잡은 이 곳에는 유기농업을 하는 농가들이 제법 밀집해 있다.

이 마을에서 1980년대 중반 무렵부터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어온 안종근(한국유기농업협회 이사)씨는 한국 유기농의 산 증인이나 마찬가지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빨갱이’ 소리를 들었죠. 식량 증산이 농가의 목표였던 당시에는 농사 짓기도 힘들고 생산량도 적은 유기농을 한다는 게 이상하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안씨는 도시에서 다른 일을 하다가 마흔 살에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처음에 일반 관행 농법으로 밭을 일구던 그가 유기농으로 전환하게 된 것은 농약의 폐해를 직접 절감하고 나서부터다. “어느 날인가 갑자기 몸이 안 좋다는 것을 느꼈어요. 왜 그럴까 걱정도 많이 했는데 나중에 그 이유가 농약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죠.”

안씨에 따르면 다른 유기농가들도 그와 비슷한 계기로 유기농을 시작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오랫동안 우리 농촌의 관행이었던 농법이 건강에 아주 해롭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는 유기농으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농업인 스스로 농약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환경도 살리고 소비자에게도 좋은 것이 유기농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대다수 유기농업인들은 이런 철학을 갖고 있죠.”

안씨는 돈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그저 생활에 구김살이 없는 정도로만 벌면 된다는 것이다. 유기농산물이 일반농산물이나 다른 친환경농산물에 비해 비싼 까닭에 유기농가들은 돈을 많이 벌 것이라는 일반적인 통념에 대해서도 오해라고 말한다. “매출이 많은 것은 사실이죠. 그러나 인건비로 많이 나가기 때문에 손에 쥐는 것은 그냥 먹고 살 정돕니다.”

한국유기농업협회의 한 관계자도 “시골에는 노인들밖에 없기 때문에 농사를 지으려면 사람을 사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관행적인 재배를 하는 경우 제초제 ‘한 방’이면 잡초를 다 없앨 수 있지만 유기농가에선 일꾼들로 하여금 일일이 풀을 매게 합니다. 천연물질 등으로 만든 친환경 농자재도 일반 농약 등에 비해 5~6배 비싼 실정입니다”라고 말했다.

안씨는 현재의 친환경농산물 시장의 구조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정부가 농가들로 하여금 친환경농업으로 전환하도록 해 공급 기반은 커지고 있으나 수요가 안 따라준다는 것이다. 이는 공급 과잉에 따른 친환경농가의 부실로 이어질 수도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유기농 초보 농가들 중에는 판로 확보를 못해 공들여 재배한 제품을 일반농산물로 내다파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가격을 제대로 못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또 간혹 불거지고 있는 가짜 친환경농산물 사건에 대해서도 불편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대부분 농가가 양심과 철학에 따라 제품을 내놓고 있는 터에, 그런 논란이 빚어지면 당장 출하량이 줄어드는 등 큰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한국유기농업협회 관계자도 “대부분 유기농업인들은 열정을 갖고 일을 하는데 일부 비양심적인 사람들 때문에 가짜로 매도될 때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하소연했다.

안씨는 “채소 재배를 하는 유기농은 놀아도 밭에서 놀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시라도 보살핌의 끈을 놓으면 작황이 나빠지고 수확이 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상추, 쑥갓, 청경채, 파 등 그의 손길이 닿는 작물들이 초록 빛깔을 잃지 않는 것은 그 같은 노력 때문이다.

이제 겨우 성장기에 접어든 한국의 친환경농업. 그 농업이 푸르고 곧게 자라 성숙한 열매를 맺기까지는 모두의 관심이 절대 필요한 것이다.

친환경농산물 구분법

정부와 민간 인증기관의 친환경 인증은 현재 유기농산물, 전환기 유기농산물, 무농약 농산물, 저농약 농산물 등 4단계로 구분되어 있다.

유기농산물은 3년 이상 농약과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토양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의미한다. 전환기 유기농산물은 그 기간이 1년 이상이다. 무농약 농산물은 농약을 권장 사용량의 3분의 1 이하로 사용하여 재배한 농산물이고, 저농약 농산물은 농약 사용량이 2분의 1 이하인 경우다.

정부는 4가지나 되는 친환경 인증 기준이 소비자들의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지적에 따라 유기농산물과 전환기 유기농산물을 조만간 하나로 합친다는 계획이다.

전체 친환경농산물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은 채소류(약 43%)이고, 과실류(약 33%), 곡류(약 10%), 기타(12%) 등의 순이다. 인증 단계 별로는 저농약 농산물(약 56%)이 가장 많고, 무농약 농산물(약 36%)과 유기농산물(전환기 포함해 약 8%)이 다음을 잇는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10-19 15:36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