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로봇개발의 선구자들

우리 나라는 대전의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중심으로 1990년대 초부터 로봇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 기술을 보유한 일본을 위협하고 있는 한국 최초의 2족 직립보행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Hubo)’가 나오기까지, 한국의 로봇을 키운 과학자들을 알아본다.

국내 로봇역사에 작지만 큰 족적

재활로봇으로 유명한 KAIST 변증남(63) 교수는 국내 지능 로봇 연구에 불을 밝힌 인물이다.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에서 전자공학 분야 자동 제어로 학위를 받은 변 교수는 77년부터 KAIST에서 자동 제어 연구에 매진해 이듬해 국내 첫 실험용 산업 로봇, ‘머니퓰레이터(manipulatorㆍ매직핸드)’를 선보였다. 국내 로봇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후 변 교수는 한국 ‘로봇학계의 아버지’답게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국내서는 처음으로 로봇 제어 부문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오상록(48) 박사를 비롯,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 조용조(45) 지능로봇사업단장 등 국내 로봇 연구계를 움직이는 거물급 인사들을 배출했다.

변 교수 자신은 현재 인간로봇상호작용연구센터를 운영하면서 국제퍼지시스템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가 최근 개발한 재활로봇은 전동휠체어와 보행이 불편한 장애인들에게 12가지 작업을 도와줄 수 있는 일종의 지능형 로봇이다.

‘카레스II’로 명명된 이 로봇은 휠체어를 탄 사용자가 명령하면 식사보조와 면도, 물건 집기, 전원 끄고 켜기, 문 여닫기 등 12가지 작업을 대신해 준다.

변 교수의 연구실을 거친 오상록 박사와, 조용조 박사가 국내 로봇사에 남긴 족적도 작지 않다. 오 박사의 경우 KAIST에서 석ㆍ박사 과정을 마친 후 16년 동안 KIST에서 로봇에만 매달린 대표적인 국내파 로봇 전문가다.

94년부터 진행된 차세대 로봇 기술 개발에서 20회 이상 로봇 관련 연구의 책임자와 30건이 넘는 연구를 수행했다. 특히 99년에는 과학기술부로부터 국가지정연구실로 지정 받아 생체모방기술을 적용한 로봇을 연구해 2001년에 인간친화형 홈 로봇 개발에 성공했다.

조 단장도 KAIST가 배출한 1세대 로봇 전문가다. 95년부터 98년까지 KIST-2000 프로젝트인 ‘휴먼 로봇 시스템 중앙제어기 개발’ 총책, 이후에는 ‘지능형 로봇 제어구조 개발’ 연구의 책임자 등을 지냈다.

2001년 일본 기계기술연구소 객원 연구원 시절에는 원격조작 로봇과 관련한 연구 논문으로 이 분야에서 유명한 저널 SCI에 등재되기도 했다.

변증남 교수가 국내 로봇사의 첫 장을 썼다면, 그 이후의 몇 페이지를 장식한 사람은 KAIST 전자전산학과 양현승(53) 교수다.

한국과학기술원 변증남 교수. 국내 인공지능 로봇연구에 볼을 지폈다.

휴먼 로봇의 개척자로 불릴 만큼 국내 지능형 로봇의 권위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한국 최초의 2족 직립보행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Hubo)’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공전의 히트를 친 휴먼 로봇 ‘아미(AMI)’가 바로 양 교수의 작품이다.

2001년에 선보인 아미는 우선 모양이 사람과 비슷한데다가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감정표출이 가능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양 교수는 이보다 10년 앞선 91년에는 국내 최초의 지능형 이동로봇인 ‘CAIR-1’을 만들었고, 엑스포가 열린 93년에는 지능형 엔터테인먼트 로봇인 꿈돌이와 꿈순이를 개발했다.

로봇축구 '세계 최강 한국' 일궈내

김종환(53)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인공기능의 로봇 축구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창안해 한국을 로봇축구 종주국에 올려 놓았다.

로봇 시스템을 창안한 지 2년 만인 97년에는 세계로봇축구연맹(FIRA)을 창설했다. 로봇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일본에 비할 상황이 아니었지만, 이를 통해 로봇 문화를 확산시키고 한국의 로봇 수준을 세계에 알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에는 바퀴로 굴러다니는 로봇 축구에서 벗어나 2족 보행 로봇 축구를 시도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이후 개인용 컴퓨터에 센스를 부착, 인터넷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마이 봇(My Bot)를 99년에 개발했고, 이듬해에는 인간형 로봇 ‘한사람’을 개발하는 등 지시에 따라 움직이던 로봇의 지능화에 주력했다.

또 지난 해에는 PC상에서 사람을 인식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로봇인 유비 봇(Ubi Bot)을 내놓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유비쿼터스 로봇의 하나인 ‘리티(Rity)’는 기계로 만들어진 일반 로봇과는 달리 네트워크 상에서 떠돌아다니면서 주인이 내리는 명령을 인식해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봇이다.

황우석 교수 등 생명공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자랑하고 있는 한국답게 이 기계뭉치 로봇에 비슷한 개념을 도입한 이도 김 교수다.

한국과학기술원 김종환 교수가 창안한 인공지능 로봇축구 시스템으로 한국은 로봇축구 최강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사진은 2003년 로봇축구 월드컵 경기 모습. 서울경제 자료 사진

로봇의 인공 염색체를 개발한 것으로 생물의 종(種)에 해당한다. 기계의 로봇 안에 생명체를 불어 넣는 작업이 가시화한 것이다. 또 인공 생명체의 유전자 교류 등과 관련한 국제 표준화 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휴보(Hubo)’를 개발해 한국 로봇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사람은 KAIST 기계공학과 오준호(51) 교수다.

오 교수는 98년 국내 최초로 100% 탄수섬유 재질로 된 3축 관절형 로봇 개발에 성공한 것에 이어 4족 보행로봇과 곡예로봇 등 다양한 보행 로봇을 성공시켜, 독보적 위치를 굳혀 가고 있다.

특히 2002년 말 개발된 휴머노이드 로봇, ‘KHR-1’은 같은 해 일본 쓰쿠바 ‘휴머노이드 2002’에 소개돼 큰 갈채를 받았다. 이후에는 전ㆍ후방은 물론 측면 보행까지 가능하고 손으로 물건을 쥘 수 있을 정도의 손가락 관절을 가진 ‘KHR-2’를 세상에 내 놓았다. ‘휴보’라는 이름이 붙기 시작한 것은 ‘KHR-3’부터다.

이 외에도 휴먼로봇과 관련, 시각ㆍ모션 센스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정명진(56)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같은 학과에서 생물학적 지식에 기반한 지능형 인공 생명 로봇에 대한 연구를 추진 중인 이주장(58) 교수, 인간과 로봇간의 상호 작용 등을 연구하고 있는 KAIST 기계공학과 권동수(49) 교수 등이 한국 로봇학계의 다음 성과를 준비 중에 있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