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대중화시대 개막 앞두고 정부차원의 육성책 본격 가동

지난 10월26일 서울 세종로 정보통신부 대회의실에서는 본격적인 로봇 대중화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쏘아 올려졌다.

정부가 10대 신성장 동력의 하나로 육성해온 로봇 산업의 청사진이 ‘국민로봇사업’이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정통부는 이날 국민로봇사업 출범식에서 내년 10월부터 100만원 대의 가정용 로봇을 보급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주피터, 네토로, 로보이드로 명명된 3가지 국민로봇 모델을 공개했다.

이들 국민로봇은 각각 특수한 기능을 수행한다. 주피터는 음성인식 기능을 통해 영어 동화를 읽어주고, 네토로는 원격조종으로 집안 청소를, 로보이드는 뉴스와 이메일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국민로봇의 가장 큰 특징은 네트워크 기반의 지능형 로봇(URCㆍUbiquitous Robotic Companion)이라는 점이다. 사람의 두뇌에 해당하는 컴퓨터 장치를 내부에 장착하지 않고, 대신 외부에 서버 컴퓨터를 두고 초고속 통신망을 통해 로봇을 작동하도록 한 것이다.

정통부가 이런 방식을 택한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 인프라를 십분 활용함과 동시에 로봇 가격을 크게 낮춤으로써 대중화를 앞당길 수 있다는 실질적 계산에서 비롯됐다.

정통부는 국민로봇사업을 발판으로 보급형 로봇 시장이 내년에 6,000여대 규모로 형성된 뒤 2011년까지는 300만대 규모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울러 국민로봇사업이 같은 기간 동안 4조1,000억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1조5,000억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21세기 산업에 광범위한 파급효과

국민로봇사업이 갖는 의의는 국내 로봇 시장의 발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더욱 중요한 점은 20세기를 주도한 자동차 산업의 뒤를 이어 21세기 산업계에 가장 광범위한 파급효과를 미칠 것으로 관측되는 세계 지능형 서비스 로봇 시장에 먼저 깃발을 꽂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세계 로봇 시장의 무게 중심은 산업용 로봇에서 서비스 로봇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일찌감치 간파한 일본,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은 관련 기술과 제품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로봇 기술에서 가장 앞선 일본은 정부와 산업계가 공동으로 로봇을 실생활에 도입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다.

문제는 기술 개발이 이뤄져도 상용화로 연결되지 못해 본격적인 시장이 열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까닭에 로봇 산업을 단숨에 활성화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만 만들 수 있다면 세계 시장 제패의 유리한 고지를 장악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한국공학한림원의 ‘로봇산업의 육성방안’에 따르면, 세계 로봇 시장 규모는 올해부터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 2020년에는 535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자원부는 이보다 훨씬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는데, 2003년 마련한 ‘RT 산업의 중장기 발전 비전’에서 2020년 시장 규모가 무려 1조4,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처럼 두 기관의 전망이 크게 엇갈린 것은 완제품, 부품, 기술 등 로봇 관련 산업의 범위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른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조사기관이 로봇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그 중에서도 가정용 로봇의 수요가 가장 큰 폭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한다는 사실이다.

“현재 로봇 산업은 큰 전환기에 들어선 것이 분명하다. 청소 로봇을 중심으로 일부에서는 시장도 만들어지고 있다. 조만간 안내, 경비 등 다양한 서비스 로봇 시장도 형성될 것이다.

지금은 로봇 산업의 국가 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 하는 게 가장 큰 과제다. 그 중에서도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산업자원부 지능형 로봇사업단을 이끌고 있는 이호길 단장의 말이다. 그는 향후 한국이 로봇 시장에서 승부를 걸 분야로 주저 없이 서비스 로봇 분야를 지목하고, 특히 일본, 미국과 차별화한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서비스 로봇의 제조 기술에서 가장 앞서 있고, 미국은 인공지능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점을 감안해 발전 전략의 묘안을 찾아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보통신부가 내년 100만원대 국민로봇을 출시하기로 하고 10월 26일 정통부 대회의실에서 IT산업과 로봇산업을 융합한 네트워크로봇을 선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교육 컨텐츠 제공 및 홈 모니터링용 고급형 로봇 주피터, 뉴스,날씨,청소,음악 등 엔터테인먼트용 보급형 로봇 네트로. 앞의 작은 로봇은 메일, 구연동화, 영어학습 기능용 감성형 로봇 로보이드, 손용석 기자

세계 지능형 로봇 '3대 강국'

그렇다고 한국의 로봇 기술력이 이들 국가에 많이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2000년대 들어 잇달아 선을 보인 아미-아미엣(KAIST 양현승 교수팀), 휴보(KAIST 오준호 교수팀) 마루-아라(KIST 유범재 박사팀) 등 지능형 로봇은 3대 로봇 강국이라는 명성을 한국에 안겨준 역작들이다.

이호길 단장은 “서비스 로봇에 적용되는 시스템ㆍ운영 기술과 통신ㆍ소프트웨어 등의 기술력은 일본과 거의 대등한 수준이다. 연구자들의 수적인 측면에서 열세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정예부대가 있다”고 말했다.

휴보를 만든 오준호 교수 역시 “로봇의 환경 인식 기술과 인공 지능 분야 등에서 국내 연구자들은 미국, 일본 등과 큰 틀에서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부품 분야의 기술 수준은 아직 취약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솔직한 평가다. 국내 로봇 산업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아 관련 업체들의 저변이 두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8일 서울 세종로 정보통신부 1층 유비쿼터스 드림 전시관 재개관 행사에서 나온 우리 지능형 로봇 마루(왼쪽)와 아라가 걷기 등 여러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런 문제는 결국 업계가 해결해 나가야 할 몫인데, 다행인 것은 최근 몇 년 사이 로봇 산업에 뛰어드는 업체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에는 로봇 완제품을 제조 판매하거나 시판을 목표로 내건 업체들이 120여 개에 이른다.

그 중에 유진로보틱스, 한울로보틱스 등 일부 중소 벤처기업들은 경쟁력을 가진 로봇 제품을 잇달아 내놓아 시장의 호평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콤, KT 등 대표적인 가전ㆍ정보통신 업체들이 로봇 산업에 높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어 앞날은 더욱 밝은 셈이다.

이런 분위기 덕분인지 2001년 ‘제로’였던 서비스 로봇 시장은 지난해 100억원 대로 싹을 틔웠고 올해는 300억원 대까지 커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이호길 단장은 “로봇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이제 충분히 무르익었다. 앞으로 정말 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시장 형성에 업계와 정부가 함께 나서는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우리 곁에 다가온 로봇

로보킹, 아이로비 (왼쪽부터)












현재 국내에는 알게 모르게 다양한 로봇이 출시돼 있다. 일반인들도 서서히 익숙해져 가는 청소로봇은 로봇 시장의 대표적인 제품이다.

LG전자의 ‘로보킹’과 유진로보틱스의 ‘아이클레보’가 잘 알려진 브랜드다. 한울로보틱스도 ‘오토로’라는 브랜드로 청소로봇을 곧 출시할 계획이다.

여가 생활을 즐기도록 도와주는 엔터테인먼트 로봇도 제법 나와 있다. 초소형 로봇 새인 뉴로스의 ‘사이버드’, 춤추고 달리며 말도 하는 로보쓰리의 ‘R3-M’, 인물 스케치 등 그림을 그리는 다진시스템의 ‘페인트 로봇1’, 애완 동물 기능을 하는 다사테크의 ‘다토’ 등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로봇 제품들이다.

유아, 어린이 교육에 한 몫 하는 교육용 로봇도 눈길을 끈다. 마이크로로보트의 ‘마이로봇’, 이지로보틱스의 ‘이코’, 로보티즈의 ‘바이올로이드’, 유진로보틱스의 ‘아이로비’ 등이 그것들이다.

도담시스템스가 만든 지능형 경계 로봇 ‘aEgis’와 유진로보틱스의 위험작업 로봇 ‘롭해즈’는 군사용으로 주목 받고 있다. 정부는 군사용 로봇의 활용 가치를 인식해 업계와 공동으로 ‘견마형 전투 로봇’을 개발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밖에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심해 작업용 로봇, 원자력 발전소용 로봇, 의료용 로봇 등 공공서비스 로봇도 상용화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앞으로는 고령화 사회를 맞아 간병, 재활 보조 등의 기능을 하는 로봇의 등장도 점쳐진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