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의 유통혁명' e마켓

대학생 조정안(28)씨는 잘 나가는 청년 사장이다. e마켓(온라인 장터) ‘옥션’에서 한 달 평균 1억원 어치의 화장품을 팔아치우며 판매왕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아버지가 20여년 간 화장품 업체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화장품은 여자가 판매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깼다. 한 달에 2만여 개의 화장품을 팔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e마켓 시장의 선두주자 옥션의 파워셀러들. 왼쪽부터 신소영(구두), 서종수(남성의류)·박수미(여성의류), 심윤섭·윤정(잡화)자매, 백소영·이인재(여성의류) 씨.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수영, 골프 연습장, 친한 언니들과의 점심과 수다’가 일상의 모든 것이었던 40대의 주부 신소영씨는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진 뒤 생존을 위해 e마켓에 뛰어들었다.

그때가 2003년 1월.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생계 전선에 나섰다가 이제는 어엿한 사장이 됐다. 평소 구두를 좋아해 ‘신멜다’로 불렸던 신씨는 여성 구두 판매로 매월 5,000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중소 게임업체에 다니는 최철용(32)씨도 e마켓 진출로 투잡스 열풍에 합류했다. e마켓 관련 서적을 우연히 본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호기심에 동대문시장에서 아동용 모자 3개를 구입해 e마켓에 올렸던 것이 이제는 또 하나의 주업이 됐다. 고객에게 감사 카드를 보내고 배송을 책임져주는 꼼꼼한 아내의 내조 덕에 단골 고객을 끌어 모아 월 100만원의 수익을 낸다.

5조원대 시장, 해마다 고속성장 거듭

오프라인ㆍ홈쇼핑ㆍ인터넷 쇼핑몰에 이어 ‘제4의 유통혁명’으로 꼽히는 e마켓 플레이스는 그야말로 열려 있는 가능성의 시장이다.

불황의 기나긴 터널 속에서도 눈부신 고속성장을 기록하는 분야가 e마켓이다. e마켓은 최근 가파른 시장 성장세를 반영하듯 연 1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대박 상인이 줄잡아 1,000여 명에 달하고 있어 ‘나도 사장’을 꿈꾸는 창업 희망자들이 몰려 들고 있다.

e마켓은 회원으로 가입하면 누구나 상품을 사고 팔 수 있는 형식의 ‘인터넷 좌판’이다. 옥션(www.auction.co.kr), G마켓(www.gmarket.co.kr) 다음온켓(www.onket.co.kr), GS이스토어(www.gsestore.co.kr) 등에 입점할 수 있다. 목돈을 투자해 오프라인에 가게를 차릴 필요도 없고, 주부건 학생이건 노인이건 누구나 창업을 할 수 있다.

어떤 물품이든 사고 팔 수 있어 중고 신발부터 심지어 ‘순결’이나 데이트나 노동력을 판매하는 사람까지 상품 판매 리스트에 올라온다.

파워셀러를 꿈꾸며 현장을 누비는 판매자들. 생산현장에서 상품을 확인하고 구매자의 의견을 직접듣는 것도 중요하다. (사진 옥션제공)








이러한 개방성이 e마켓의 최대 강점이다. 전문가들은 “진입 장벽이 낮고, 기초 투자비용이 적어 창업 희망자들의 도전이 끊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1998년 국내 최초로 e마켓의 개념을 국내에 도입한 옥션에서는 일찍부터 매출과 고객 불만율 등을 기준으로 판매자의 등급을 구분해왔다.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인 만큼 정확한 집계는 어렵지만, 최고 등급인 ‘파워셀러’(월 매출 200만원 이상, 고객 불만율 7% 이하)만도 수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업체측은 보고 있다.

G마켓은 ‘파워딜러’(상품 거래 당 1점을 부여 받는 신용점수의 누적 합계 400점 이상, 최근 1개월 신용점수 10점 이상)를 선정하는데 전체 상인의 약 10%에 이른다. e마켓을 통해 성공 사업가로 등극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e마켓 입점이 곧 창업 성공의 지름길은 아니다. 고만고만한 소규모 상인들이 하루가 다르게 입점하다 보니, 상인들끼리의 경쟁은 치열하다.

독창적인 아이템이라도 일단 e마켓에 올리면 순식간에 카피되어 일반화되고, 가격 출혈 경쟁에 휘말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옥션 서민석 팀장은 “잠도 안 자고 새벽 4, 5시부터 컴퓨터 앞에 앉는 파워셀러가 많을 정도로 경쟁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전한다.

특히 파워 셀러(딜러)들이 대거 포진해있는 의류 분야의 경우 워낙 유행이 급변하다 보니 단기간에 주목 받기도 하지만 금방 고객들로부터 외면당할 위험도 있다.

e마켓에서 이같이 대박을 터트리는 파워 셀러(딜러)들의 주 연령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인터넷 세대. 대략 40~50%를 점한다.

옥션의 이우승씨, 자동차용품 및 액세서리 부문의 파워셀러다.

그러나 꼭 인터넷을 잘 알아야 대박을 터트리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를 전혀 다루지 못하는 소위 컴맹이고 노령이라도 좋은 상품 아이템이 있고 노력이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

용산에서 ‘나진 상가’를 운영하는 50대의 장종시 사장이 대표적인 사례. 지난 4월 오프라인 상인들의 인터넷 점포 개설을 지원해주는 용산 ‘옥션 판매자 지원센터’가 개설되자 출근하다시피 하루도 빼놓지 않고 교육을 받아 한 달 뒤 인터넷에 가게를 열었다.

이어폰 등 전자제품 관련 잡화를 판매하는 그는 입점 후 불과 두 달 만에 매출 200만원 이상을 올리는 파워셀러로 떠올랐다.

'신용' 무기로 파워셀러에 도전

흔히 가격 경쟁력을 최고로 내세우지만, 싼 가격보다 ‘신용’을 무기로 파워셀러 대열에 들어선 e마켓 상인들도 적지 않다. 화장품을 판매하는 조정안씨도 그렇다.

“고객의 신뢰를 목숨과 같이 귀하게 여긴다”는 그는 “상품에 별 문제가 없어도 고객이 불만을 토로하면 손해를 감수하고 환불도 해준다”고 귀띔한다.

월 매출 1억원을 웃도는 거래에도 그가 소중히 관리하는 온라인 상호인 ID‘perion777’에 대한 고객 불만은 한 건도 없는 까닭이다.

특화한 전문 지식을 내세워 e마켓에서 ‘블루오션’을 여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9월 G마켓에 입점한 ‘메디 앤 케어’는 약사, 의사, 한의사로 이루어진 전문가들이 건강 기능성 식품이나 다이어트 식품 구매가 망설여지는 고객들을 위해 상담을 해주고 있다.

“약국도 앉아서 고객을 기다리는 시대는 지났다”고 판단해 새로운 돌파구로 G마켓에 점포를 냈다는 약사 김미숙씨는 “한의원 원장인 며느리와 사촌 동생인 정형외과 전문의와 함께 건강 상담 서비스를 진행하여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며 “어떤 약을 먹어야 할지 모르는 고객들의 상담을 진행하면서 월 매출이 20, 30% 가량씩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상품이나 가격, 홍보와 더불어 특히 철저한 고객 관리도 대박 상인으로 자리잡기 위한 절대적 중요 요소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높은 수익을 올리는 파워셀러(딜러)일수록 단골 고객 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 초기 단골 고객이 적을 때는 열심히 관리하다가도 점점 고객이 많아지면 일일이 챙기기도 번거롭다 보니 자칫 고객 서비스에 소홀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G마켓에서 판매자 교육을 맡고 있는 사업본부 강경순 과장은 “인터넷 시장에서의 고객은 매회 달라진다고 생각하여 당장의 판매에만 힘쓰기보다는 기존 고객 관리에 철저해야 장기적인 대박 상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G마켓 류광진 사업본부장

"e마켓은 판매·구매자 모두 만족하는 장터"

“MD(상품구매자)에 의해 선택된 소수의 상품만 거래되는 홈쇼핑 등의 다른 시장과 달리 e마켓은 많은 상품을 판매자와 소비자가 직거래할 수 있기 때문에 인터넷 시장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G마켓의 경우 하루 방문자 수와 거래 상품은 각각 170만 명, 230만 개에 달합니다.”

지난해 대비 500%의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는 G마켓의 류광진 사업본부장은 “e마켓은 고객은 저렴하게 상품을 살 수 있고 판매자는 별도의 시설 투자비 없이 판매 수수료만 내면 돼 모두의 만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인터넷 시장의 총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류 본부장은 “기존 인터넷 시장에서 거래될 수 없다고 생각한 물품들까지 속속 올라오고 있는데, 상품 아이템과 서비스가 점점 업그레이드 되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G마켓은 인터넷 창업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도 무상으로 실시하고 있다고 류 본부장은 설명한다. 그는 “하루 40명의 창업 희망자들이 판매자 교육을 받고 있다”며 “판매자들에게 상품 등록비나 교육비 등을 일체 받지 않고 소액 창업주들의 판매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류 본부장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후원 쇼핑이나 스타가 직접 사용하는 아이템을 판매하는 스타숍 등 문화가 있는 쇼핑 문화를 강화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