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쥬~르.”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사는 김정은(45) 주부는 방배중학교 앞을 걷다 기욤 카리오(35) 서울프랑스학교 교장을 보자 반갑게 인사를 했다.

작년 추석때 서초 구청이 마련한 ‘추석맞이 떡만들기’ 행사에서 얼굴을 익혔기 때문이다.

카리오 교장도 “안녕 하세요. Happy New Year”라고 화답하며 학교로 향했다. 거리에는 바게트빵을 들거나 장바구니를 옆에 든 금발의 주부들이 보이고 학교 담을 타고 프랑스 학생들의 조잘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새해 초인 5일 오전, ‘서울 안의 작은 프랑스’로 불리는 서초구 반포4동 서래마을(프랑스마을)의 풍경이다.

여기서 한강을 건너 용산구 이촌동에 들어서면 ‘리틀 도쿄’에 비유되는 일본인 집단 거주지가 나온다.

서대문구 연남동 일대와 인천 중구 선린동에는 중국인들의 차이나타운이 형성돼 있고 동대문ㆍ중구 일대에는 러시아ㆍ중앙아시아인들의 진출해 신흥촌을 이뤘다.

아시아ㆍ아프리카 무슬림은 용산구 이태원동 주변에, 중국 조선족은 구로구 가리봉동 등에 그들만의 터전을 마련했고 경기도 안산을 비롯해 전국에는 외국 노동자들이 30만~40만 명에 이른다.

1990년대 이후 외국인 급격한 증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4년말 기준으로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주민등록법상 합법적인 체류자) 인구는 46만 9,183명. 우리나라 전체 인구 4,905만2,988명의 0.96%에 달한다.

통계청 관계자는 “인구조사에서 빠진 인구나 불법체류자까지 포함하면 2006년 현재 국내 외국인 인구는 75만명 가까이 돼 전체인구의 약 1.6%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외국인 1% 시대’의 ‘글로벌소사이어티(Global Society)’로 변한 것은 90년대 이후부터다.

그 이전에는 인천의 차이나타운, 일본인 마을이 들어선 용산구 이촌동, 용산 미8군 기지가 있는 이태원동, 외국대사관이 몰려 있는 한남동 등 일부 지역에만 소수 외국인이 밀집해 있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외국인 마을은 1883년 인천항 개항 당시 청나라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면서 형성된 인천 중구의 차이나타운이다.

한때 2만여명이 거주할 정도로 번성하기도 했지만 한국전쟁때 폐허가 됐다가 복원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고 70년 대에는 재산권 행사가 불가능해지면서 거주자가 1,000명을 밑돌았다.

그러나 92년 한중수교 후 인천시 등의 투자와 최근 세계 화상(華商)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옛 영광을 찾는 중이다.

용산구 이촌1동의 일본인 마을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외국인 마을에 속한다.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직후부터 일본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현재는 도로변 강촌아파트와 한가람아파트 등을 중심으로 5,000여명의 일본인이 모여 살고 있다. 대부분 일본 상사 주재원이나 교수, 사업가와 그 가족들로 보통 3~5년 간 머물며 한국인과 결혼해 정착한 일본인들도 상당하다.

한남동은 60년대부터 외국 공관들이 들어서기 시작해 70년대에 절정을 이뤄 외국인 마을이 만들어졌다. 특히 독일인학교를 중심으로 400여명의 독일인들이 모여 살고 있는 게 눈에 띈다.

이태원동은 용산 미8군기지에 근무하는 군인과 군속 등의 생활근거지가 되면서 ‘서울 속 미국’으로 상징돼 왔다.

최근에는 미군 기지 이전 계획(2007년까지 경기 평택ㆍ오산으로)에 따라 차츰 인구가 줄어드는 대신 이곳 이슬람사원(중앙성원)을 찾는 인도ㆍ파키스탄ㆍ방글라데시 등의 노동자들이 몰리면서 신흥 외국인촌을 형성하고 있다.

서울 반포동의 프랑스마을은 지난 85년 당시 한남동에 있던 프랑스학교가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자녀 교육을 중시하는 프랑스인들도 거주지를 학교 근처로 옮기며 형성됐다.

프랑스인은 130세대 530여명으로 한국에 살고 있는 전체 프랑스인 1,500여명의 40%에 해당한다. 이들 대부분은 프랑스 고속철(TGV) 관련 종사자나 르노 삼성, 세계 최대 화장품 기업 로레알 등 한국에 투자한 프랑스 회사 직원과 가족이다.

국내 외국인 인구는 90년대 들어 ‘코리안드림’을 찾아 입국한 범아시아권과 아프리카 출신 이주민들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90년대 초반 전체 인구의 0.15%에 불과하던 등록 외국인은 최근까지 10년 간 외국 노동자들이 연평균 18%씩 증가함에 따라 100명 당 1명 꼴이 됐다.

국적별로는 2004년말 기준으로 중국 국적 보유자가 42.4%로 압도적으로 높았고 베트남(6.9%), 필리핀(6.5%) 등이 뒤를 이었다.

아시아권 개발도상국 출신이 대부분인 반면 미국ㆍ유럽ㆍ일본 등 선진국 출신은 전체의 10%대에 머물렀다.

이들 가운데 조선족과 중국인은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영등포구 대림동, 금천구 가산동 일대의 ‘옌볜거리’‘중국인촌’에 거주하고 있으며 몽골,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온 외국인은 서울 중구 광희동 일대의 ‘중앙아시아촌’을 형성하고 있다.

네팔인들은 서울 창신동과 숭인동에 밀집해 있다.

우리사회의 한 축 이루는 집단

전국 곳곳에 외국인 마을이 생기고 외국인이 전체 인구의 1%대에 이르면서 국내 외국인은 국가ㆍ사회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됐다.

다양한 외국 문화가 우리사회에 이런저런 형태로 뿌리를 내리게 됐고 국내 산업 특히 3D업종 분야는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가동이 불가능할 정도가 된 지 오래다.

전문가들은 인구의 1%라는 규모는 한 사회의 구성집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규모라고 말한다. 그래서 ‘외국인 1%시대’에 외국인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정정훈 변호사는 “프랑스도 각종 사회통합정책을 벌였지만 실패하면서 소요사태로 귀결됐다”면서 “사회 각계 각층에서 사회통합의 제반 여건을 형성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벌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계경제의 양극화와 문화의 다양성 추구에 따라 외국인의 국내 유입은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국가 인지도가 높아지고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반면 내국인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외국인 관련 범죄가 증가할 수 있다.

외국인에 대한 편견과 제도적인 미비점으로 외국인들의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당하는 일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북대 설동훈 교수(사회학)는 “21세기 다민족 다문화 시대에는 외국인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부 하갑래 고용정책심의관은 “이젠 외국인 노동자가 국내 산업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만큼 그들을 경제성장의 동반자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4년여의 한국생활을 마치고 오는 6월 프랑스로 돌아가는 카리오 교장은 ‘똘레랑스(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는 관용)’라는 미덕을 중시한다.

전환기의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에도 그런 미덕이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