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하오" 중화상권 '부활' 기지개

인천시 중구 송학동 응봉산 정상의 자유공원에 오르면 인천항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맥아더 장군 동상도 이 곳에서 창연히 펼쳐진 서해 바다를 49년째 응시하고 있다.

여기서 산책로를 따라 조금 내려오면 붉고 화려한 외관의 중국풍 건물들이 밀집해 있는 이국적인 동네를 만나게 된다. 바로 한국 최초의 차이나타운이 자리한 선린동이다.

인천항 개항(1883년) 이후 청나라 조계(租界)가 설정되면서 만들어진 차이나타운은 1910년경 약 3,000명의 화교가 정착해 상업, 무역 등 경제 활동에 종사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일제 강점기 동안에도 꿋꿋하게 버티던 선린동 차이나타운은 그러나 한국전쟁의 참화를 겪으며 큰 타격을 입었다.

게다가 한국 정부의 노골적인 화교 차별 정책으로 거주자들이 하나 둘 둥지를 떠나면서 1950년대 이후 줄곧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화교 숫자가 500명에 겨우 턱걸이를 할 정도였다. 이 곳에서 20년 넘게 살았다는 한 화교 상인은 “예전에는 사람들이 오기를 꺼려할 만큼 인천시에서도 손꼽히는 ‘달동네’로 전락했었다”고 회고했다.

2000년 이후 상권 부활에 탄력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인천 중구청이 지역 정비 및 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선린동은 크게 변모하고 있다.

신축 건물이 속속 들어서고 거리가 깨끗하게 단장되면서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특히 지난해 10월 자장면 탄생 100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이면서 나라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수은주가 영하 10도 아래까지 내려간 5일 정오 무렵. 외출이 꺼려질 정도로 추운 날씨 탓인지 차이나타운은 약간은 썰렁한 모양새로 다가왔다. 길거리에는 삼삼오오 오가는 행인들이 이따금 눈에 띌 뿐이었다.

그러나 차이나타운 화교상가연합회 범연강(48) 회장이 운영하는 중국음식점 ‘태림봉’ 안은 분위기가 달랐다. 점심 식사를 하러 온 손님들로 온기가 가득했던 것.

나중에야 알아챘지만 인근의 다른 음식점 앞에도 식사를 하러 온 고객들의 차량이 제법 많이 주차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중국 위해시에서 기증한 '패루'

범 회장은 “관광객들은 대체로 주말, 공휴일에 많이 몰려들지만 평일에도 식사하러 오는 인근 직장인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 집이 장사가 잘 되면 다 잘 되고 한 집이 장사가 안 되면 다 안 되는 게 이 동네 특징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화교가 음식점이라는 같은 업종을 하면서도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사이 좋게 지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천 중구청에 따르면 요즘 차이나타운을 찾는 방문객과 관광객 수는 개발 사업이 본격 추진되기 시작한 2000년 이전에 비해 놀랄 만큼 급증했다.

과거 평일 200여명, 주말ㆍ공휴일 500여명 남짓하던 숫자가 2005년에는 각각 3,000여명과 1만여명 수준으로 크게 늘어난 것이다.

단순히 지역 정비만으로 끝난 게 아니라 차이나타운 일대가 갖는 역사적 상징성을 감안한 문화ㆍ관광 인프라 구축 노력을 병행한 것이 큰 몫을 했다.

이런 차원에서 한ㆍ중 문화관 건립, 청ㆍ일 조계지 쉼터 조성, 중국풍 건축물 리모델링, 삼국지 벽화 설치, 사이버 차이나타운(www.ichinatown.or.kr) 운영 사업 등이 이뤄졌다.

이처럼 차이나타운 개발 사업이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내면서 상권 부활도 탄력을 받고 있다. 특히 음식점, 잡화점 등 중국 관련 업체가 14개소에서 47개소로 늘어난 데 힘입어 전체 사업체 숫자는 70여개에서 120여개로 증가했다.

힘겨운 한국 생활을 접고 미국, 대만 등지로 떠났던 화교들 가운데 돌아올 의사를 밝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범연강 회장은 “외국에서 성공한 지인들 중 일부가 요즘 국내 정착 여건과 투자 환경 등을 문의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밝혔다.

이방인 취급 국내정서 사라져야

하지만 아직 국내의 법적, 제도적 환경이 해외 화교들의 눈높이를 충족할 만큼 완벽하지는 않다는 게 화교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김대중 정부 시절 영주권 부여, 부동산 보유 한도 폐지 등 상당한 제도 개선이 이뤄졌지만 풀어야 할 숙제는 적잖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또한 김치, 깍두기를 먹고 자라 스스로 한국인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화교들을 여전히 이방인으로 취급하는 국내 정서도 깨져야 할 장벽이라는 지적이다.

한국 화교들의 궁극적인 꿈은 차이나타운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차이나타운을 가져보는 것이다.

일본, 동남아, 미국 등지의 차이나타운이 해당 국가 화교 사회의 자존심이자 관광산업의 한 축을 맡고 있다면, 선린동 차이나타운은 엄밀히 봤을 때 고작 ‘먹자 골목’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범 회장은 “한국인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오는 관광객들에게 볼 거리, 놀 거리, 먹을 거리, 쉴 거리가 제대로 제공돼야 차이나타운도 비로소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화교들이 보다 간편하고 쉽게 투자할 수 있도록 중앙 정부 차원의 환경 조성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21세기형 첨단 차이나타운 일산에 들어선다

국내 자본과 화교 자본이 서로 손을 맞잡은 새로운 개념의 차이나타운이 2007년이면 등장한다. 장소는 경기 고양시 일산 한국국제전시장(킨텍스) 일대. 지난해 10월 첫 삽을 뜬 후 공사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일산 차이나타운은 화교를 배척하는 나라라는 한국의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내고 양자의 미래 동반자적 관계를 만들어 나가자는 데 뜻을 함께한 국내 지도층 인사들과 화교들이 1999년부터 합심해 추진해온 프로젝트다.

당초 국내 인사들은 인천 선린동을 후보지로 주목했으나 세계적인 신(新) 차이나타운의 특성에 맞지 않는다는 화교 투자자들의 지적을 받아들여 결국 일산을 최종 낙점했다. 수도인 서울과 지척 거리인 데다 공항으로의 접근이 용이하고 추가 개발 여지도 넓은 점이 크게 고려됐다는 후문이다.

일산 차이나타운 건설 공사는 2단계로 진행된다. 내년 3월 마무리 예정인 1단계에서는 킨텍스 지원시설 부지 2만1,000평에 쇼핑몰과 연구ㆍ교육시설을 함께 갖춘 연 건평 17만평 규모의 초현대식 타운이 지어진다.

먼저 지상 3층, 지하 2층의 쇼핑몰 ‘파크 애비뉴’는 아시아 최대 쇼핑몰로 떠오른 중국 상하이의 ‘신천지’와 비슷한 동-서양 퓨전(fusion)의 건축 양식이 적용된다. 지하층에서는 중국 서민들이 사는 거리 모습이 재현되고 용춤이나 경극 등 문화 공연도 수시로 열릴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연구ㆍ교육시설인 ‘칭화 윈도우’에는 중국 칭화(淸華)대학의 부설 기관인 ‘칭화 신과학기술센터’와 ‘칭화대학 계속교육원’의 첫 해외 분원이 들어선다. ‘칭화 윈도우’는 한ㆍ중간 산업과 기술 교류, 인재 양성의 요람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1단계 공사가 끝난 다음 2단계에서는 특급호텔, 문화교류센터, 무역센터 등이 차례로 들어서게 된다. 총 사업비 7,000억원이 투입되는 일산 차이나타운은 2011년쯤 완전한 위용을 드러낼 예정이다.

사업 시행사인 서울차이나타운개발 측은 “화교와 한국인, 서양인 등이 모두 함께 어우러지고 쇼핑ㆍ교육ㆍ주거ㆍ비즈니스 등이 원스톱으로 해결되는 21세기형 차이나타운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