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거주 외국인 대부분이 저개발국 출신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주민등록법상 합법적인 체류자) 인구는 2004년말 기준으로 46만9,183명이다. 이 가운데 미국ㆍ유럽ㆍ일본 등 선진국 출신은 전체의 10%대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 아시아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는 90년대 초반부터 아시아 개발도상국 출신들이 코리안드림을 찾아 한국으로 쏟아져 들어온 게 가장 큰 배경이다.

외국인 노동자,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의 급증으로 지난 10년 간 외국인 인구는 연평균 약 18%씩 증가했다.

이들 외국인들은 고유한 문화를 토대로 한국내에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으며 특정 지역에 정착하고 있다.

그 중에 중국 국적 외국인은 전체의 42.4%로 압도적 다수를 이루고 있으며 주로 구로구 가리봉동, 영등포구 대림동, 금천구 가산동 등에 거주한다.

가리봉동 일대는 서울의 조선족 거리

지난 5일 오후, 가리봉시장 골목인 ‘옌볜거리’의 음식점 동북삼성반점에서 만난 김상식(37)씨는 옌지(延吉)출신으로 3년 전에 입국했다.

부인과 딸을 고향에 두고 온 김씨는 구로동의 기계공구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회사 사정이 악화돼 실직을 우려했다.

그는 “많은 돈을 주고 들어왔는데 돈벌지 못하면 큰 일 난다”면서 “올해는 경제가 나아지느냐”며 되물었다. 한편으론 신정이 지나면서 강화된 불법체류자 단속을 경계하기도 했다.

반면 옌볜거리 입구에서 가까운 상점에서 갖가지 중국물품을 판매하고 있는 김채린씨(58)는 한결 여유가 있었다. 지린(吉林) 출신인 김씨는 가게 근처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딸이 4년전 한국인과 결혼해 국내로 초청 받은 케이스.

1년간 가게를 운영하며 한국과 조선족 사정을 속속들이 알게 됐다는 김씨는 “동포들은 한국(인)을 믿고 정도 들었는데 단속하고 무시하고 차별하고 그러니 돈만 벌어 중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이 깊다”면서 한국 정부와 한국인들에 대해 합리적인 정책과 따뜻한 시선을 주문했다.

김씨는 “1년전부터 게임장, 성인 오락실이 많이 들어서 동포들 돈을 빼앗아 가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실제 옌볜거리에는 대형 게임장과 성인오락실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손님을 유혹하고 있다. 한 게임장은 초저녁인데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중국말과 이북 사투리가 대부분 조선족임을 직감케 한다.

이곳에서 만난 장수길(38)씨는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 룽징(龍井)에서 2년 전 입국했다.

장씨는 안산의 공장에서 일해 어느 정도 돈을 모았지만 지금은 빈털터리다. “큰 돈을 잡아 빨리 고향에 가려는 욕심에 빚까지 지게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게임에 미쳐 동포 여성과 이혼한 경우나 돈을 잃고 울분을 참지 못해 싸움하다 불법체류자임이 발각돼 추방된 경우 등 게임장, 성인오락실로 인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게 장씨의 설명이다.

광희동은 러시아·몽골 문자로 도배

광희동의 거리풍경. 중국어와 러시아어가 거리를 뒤덮고 있다.

서울 중구 광희동 일대는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촌으로 자리잡고 있다. 골목길 어디를 가도 러시아의 알파벳 격인 키릴 문자가 보인다.

러시아를 비롯해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의 보따리상들이 90년대 중반부터 동대문일대의 의류상을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이들을 위한 마을이 형성됐다.

이곳에서 중앙아시아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마리사(50)씨는 고려인 3세로 4년 전 우즈베키스탄에서 남편을 따라 입국했다.

“손님 대부분이 러시아ㆍ중앙아시아 사람이죠. 동대문 의류상가를 찾는 상인이나 근처 공장에서 일하는 고려인들이 주로 와요.”

김씨에 따르면 4년 전에 비해 러시아인이 대폭 준 반면 몽골과 우즈베키스탄 출신 외국인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김씨 가게 건너편 골목에 있는 카페 ‘사마르칸트’와 음식점 ‘마이 프렌드’는 우즈베키스탄 외국인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사마르칸트의 주인 마던(49)씨는 1년 전 가족과 함께 입국해 국내에 있는 자국민들에게 우즈베키스탄 음식은 물론 고국 소식을 전하고 자국어로 더빙한 영화 테이프를 틀어주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몽골인은 중앙아시아촌의 새 주인으로 자리잡을 만큼 인구 수가 급증하고 있다. 광희동의 ‘몽골 타워’로 불리는 10층짜리 건물은 지난 2001년 중고자동차 수출업체인 ‘블루 몽골리아’를 시작으로 하나둘 업체들이 입주해 현재는 몽골인들의 구심처로 통한다.

한국의 호프집과 게임장이 있는 1ㆍ2층을 지나면 3층부터는 몽골 건물과 다름없다. 40여개의 사무실 중 네댓 곳을 빼고는 대부분 몽골 사람들이 운영하는 무역상ㆍ환전소ㆍ여행사ㆍ잡화점ㆍ미용실이다. 한국 사람들이 경영하는 나머지 사무실도 몽골 시장을 겨냥한 업체들이다.

미용실에서 일하는 울지체첵(36ㆍ여)씨는 “몽골 남자들의 머리 모양은 한국 스타일과는 달라 단골 고객들이 많다”면서 “여자 고객들은 머리 손질하며 몽골 소식을 주고받는다”고 말했다.

몽골 물품을 취급하는 앙크바이야(32ㆍ여)씨는 4년 전 한국에서 일하다 귀국한 뒤 2년 전 다시 한국에 나와 전문 무역상을 꿈꾸고 있다.

“몽골에선 한국을 ‘솔롱고스(solongos·무지개)’로 부를 정도로 선망의 대상”이라며 “한국에서 대학도 다녀 두 나라 무역에서 큰 일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광희동 환전센터에서 신문을 보고 있는 몽골인.

이슬람권 사람들의 중심지 이태원

용산의 미8군 기지와 이국적인 도시로 알려진 용산구 이태원동은 얼마 전부터 이슬람을 신봉하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북아프리카 출신 노동자들의 신흥 거주지가 되고 있다.

한국 이슬람교의 총본산인 이슬람 중앙성원이 자리잡고 있고 영어가 통하기 때문이다.

이들 이슬람 신자들은 매주 금요일이면 400~500명이 모여 예배 행사를 갖는다. 주말에는 수도권의 각국 이슬람 신자들이 모여들어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음식점과 잡화를 파는 가게들이 늘고 있다.

중앙성원 바로 앞의 터키음식점 ‘살람’의 주인 정진수(40)씨는 고교 2학년 때 이슬람에 심취해 파키스탄과 터키에서 10여년을 공부하고 귀국, 이슬람 문화를 알리고 신자들을 위해 7년 전 대중적인 음식점을 열었다.

주방장이자 독실한 이슬람 신자인 터키인 알리초아(47)씨는 정씨의 취지에 공감, 가족을 터키에 둔 채 6년 전 한국에 와 ‘살람’을 함께 열었다.

이태원동에서 이슬람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파키스탄인 압둘라만(33)씨는 종교를 매개로 한국 여성과 결혼한 케이스. 그는 “수도권 파키스탄인이 단골이지만 한국인 신자들도 자주 찾는다”면서 “2~3년 전에 비해 한국인들의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줄어들었지만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경기도 파주의 가구 공장에서 일한다는 방글라데시인 하산 미아(34)씨는 “난 좋은 사장을 만나 돈을 모으고 있지만 일부 한국인 사장 중에는 불법체류의 약점을 이용해 월급을 떼먹거나 심지어 폭행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태원 이슬람 사원 앞에서 만난 이슬람권 국가 소년이 활짝 웃고 있다.

나이지리아 출신 엠마누엘씨(35)는 이태원동에 작은 사무실을 내고 한국 중고차 무역을 하고 있다. 그는 “한국생활 3년째로 향수병이 도질 때가 있지만 돈벌이가 괜찮아 참을만하다”면서 “한국 친구들이 생긴 게 큰 행운”이라고 말했다.

숭인동·창신동은 작은 히말라야

서울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 주변인 숭인동과 창신동 일대에는 네팔인 200여명이 모여 사는 네팔촌이 있다. 이곳의 네팔인들은 주로 무역업이나 음식점을 경영한다.

네팔 전문 음식점인 ‘나마스테’는 네팔 남성과 한국 여성 부부가 운영하고 있으며 정통 커리를 맛볼 수 있다.

거주민의 70% 이상이 외국 국적자인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의 ‘국경없는 마을’ 은 또다른 차원에서 주목된다.

국내에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늘어나면서 특정 국가나 민족별로 집단거주지를 형성하면서 불거질 수 있는 문제와 이에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대 윤인진 교수(사회학)는 “한민족과는 혈통과 문화가 다르지만 여러가지 방식으로 한국사회발전에 기여하는 외국 출신의 사회구성원들이 증가하고 있다”면서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인 외국인력의 수급과 활용, 사회적응과 통합을 촉진할 수 있는 종합적인 정책과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

그런 점에서 ‘국경없는 마을’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인들과 함께 공존하는 다문화 공동체를 형성하는 대표적인 지역공동체로 외국인 인구의 증가로 점차 다민족,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내외국인이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인터뷰] 고려인 3세 김예브게니 김마리사씨 부부

"한국은 제2의 고향"

중앙아시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고향 음식을 맛보고 싶을 때 꼭 들르는 곳이 있다.

서울 중구 광희동 광희빌딩 뒷편 중앙아시아촌의 ‘크라이 노드노이’. 카자흐스탄어로 ‘고향집’이라는 뜻의 이 음식점은 고려인 3세인 김마리사(50ㆍ여)씨가 운영한다.

김씨는 4년 전 중고차 무역상인 남편(김 예브게니ㆍ54)을 따라 입국했다가 외국인 투자자 자격으로 지금의 식당을 열었다.

두 부부는 모두 러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우즈베키스탄 출신이다. 본래 이들의 조부모는 극동러시아 연해주에서 살았으나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우즈베기스탄으로 옮겨가 그곳에서 뿌리를 내렸다.

4일 식당에 들렀을 때 김씨 부부 외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왔다는 친척과 막노동을 한다는 고려인 3세 최모씨(40)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김치와 밥은 한국인 그대로인데 러시아 빵과 양고기를 곁들이는 게 특이하다. 최씨는 “2년 전 우즈베키스탄에서 왔다”면서 “고향에 부인과 자식 둘을 두고 왔는데 일거리가 줄어 걱정이다”고 했다.

가끔씩 식당에 들러 김씨 부부와 얘기도 하고 홀 레프(빵)와 양고기를 넣은 만두 ‘삼사’등을 먹으며 마음을 달랜다고 한다.

김마리사씨는 “요즘 경기가 어려우니까 손님도 뜸하다”며 불경기가 고려인들에게도 미쳐 매상이 줄었다고 푸념했다.

4년 전만해도 한국에 들어온 고려인들이 행사때마다, 그리고 식사에 관계없이 식당을 찾아와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했는데 몇해 전부터 명절 때나 모이는 정도라고 한다.

그래도 토요일이면 수도권 일대 공장에서 일하던 고려인들이 몰려와 한바탕 흥청대 매상이 오른다며 기운을 냈다.

김씨는 중앙아시아촌에서 합법 투자자 1호로 꼽히는데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한국에선 외국인이 점포 운영 허가를 받기가 어렵기 때문에 편법으로 장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김씨는 구청, 세무서, 출입구관리사무소, 영사관을 수십 차례 오간 끝에 2003년 합법적인 식당 영업허가를 받았다.

정부에 대해 건의할 게 있느냐고 묻자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정책과 제도를 완화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아울러 동포에 대한 배려도 주문했다.

김씨는 “블라디보스토크에 딸과 사위, 손주가 있는데 한국이 고향처럼 됐다”며 “사는 데까지 이곳에서 살 생각”이라고 말했다.

남편인 김예브게니씨도 김씨의 말에 웃음으로 동조를 나타냈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