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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골프와 정치] 한국정치, "굿샷"에 홀려 벙커에 빠지다
"골프로 통한다" 필드로 정치무대 중심이동…구설수 잇달아



1989년 10월 안양CC에서 골프회동을 갖고 5공 청산에 합의한 당시 통일민주당 김영삼총재(오른쪽)와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총재가 김 총재의 드라이브 티샷 뒤 함께 웃고있다. 한국일보자료사진



이해찬 국무총리의 3ㆍ1절 골프파문을 계기로 ‘골프정치’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과거 요정 등 고급음식점, 계파보스 사무실 등을 대신해 골프장을 매개로 한 골프정치가 대세를 형성한 까닭이다.

그동안 정계개편이나 대선 등 큰 정치적 분수령에선 골프정치가 성행했다. 1988년 3당 합당, 96년 DJP(김대중ㆍ김종필) 연합도 그 출발은 골프장이었다.

골프를 치는 정치인들은 “골프는 정치의 연장선”이라고 말한다. 골프가 얽히고설킨 정치적 난제를 푸는 윤활유일 뿐 아니라 인맥을 넓히는 고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골프장이 정치무대의 중심이 되면서 골프와 정치는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반면 골프정치가 과도하게 흐르면서 부작용도 뒤따른다. 골프에 빠진 한국정치의 이면들을 들여다 봤다.

한국정치에서 골프정치의 싹이 튼 것은 한국전쟁 직후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1954년, 6ㆍ25로 폐허가 된 서울 성동구 군자리(지금의 어린이대공원 자리)에 서울 컨트리구락부(서울CC)를 건설하면서부터다.

당시 이 대통령은 휴일이면 미군 장교들이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가서 골프를 즐긴다는 사실을 알고 달러의 국외 유출을 막고 무엇보다 유사시 국내 복귀가 더뎌 국토방위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을 차단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 실세였던 이기붕 자유당 중앙위원회 의장, 이순용 중앙청 외자관리청장, 이병철 삼성물산 대표, 박두병 동양맥주 사장 등이 골프장 회원권을 갖게 되면서 일부 유력 정치인과 경제인 사이에 골프정치가 이뤄졌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 때인 3, 4 공화국에서는 박 대통령이 골프를 즐겨하지 않는데다 당시는 요정정치가 일반적이어서 골프정치는 일부에 국한됐다.

전두환ㆍ노태우 정권 때는 두 사람이 본래 테니스를 즐겼으나 집권 후엔 자주 골프장을 찾아 골프정치가 이어졌다. 특히 노태우 전 대통령은 민정당 대표 재직시 측근 이춘구, 정동성, 김윤환, 이한동 의원 등 여당 중진들과 골프장을 찾아 현안을 논의하곤 했다.

본격적인 골프정치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요정, 룸살롱 등의 밀실정치가 ‘필드정치’로 옮겨가면서 활발해졌다. 그 중심에는 JP가 있었다.

89년 10월. 통일민주당 총재이던 YS와 신민주공화당총재인 JP는 경기도 안양CC(현 안양베네스트)에서 27홀을 도는 골프회동을 갖고 3당 공조를 통한 5공화국 청산에 합의를 했다.

당시 YS와 황병태 특보, JP와 김용환 정책위의장이 한조를 이뤘다.

오랜만에 골프채를 잡은 YS는 드라이브 티샷을 하다 중심을 잃었는데 이 장면이 다음날 신문에 일제히 게재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연이어 골프 회동을 했고, 4번째 골프회동이 열린 90년 1월6일 민주-공화 양당 통합을 전격 발표했다. 그리고 2주 뒤인 1월22일 여당인 민자당을 포함한 3당 대통합으로 이어졌다.

국내 정치사에서 골프회동이 만들어 낸 첫 ‘결실’로 본격적인 골프정치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이 회동으로 YS는 평생의 숙원이던 대통령이 될 수 있었고, JP는 꺼져가는 정치 인생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었다.

2002년 대선에서 DJP 연대가 이뤄진 과정에서도 골프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선을 1년 앞둔 96년 12월 자민련 총재인 JP가 광주를 방문, 김인곤 전 의원 등 DJ 측근들과 5팀으로 어울린 골프회동을 가져 DJP 연대의 물꼬를 튼 것. 골프공조로 불렸던 이 회동 직후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노원구청장 재선거에서 첫 선거공조를 한 것을 시작으로 대선후보 단일화에 성공, 끝내 집권했다.

국민의 정부시절 골프정치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다. DJ 정부가 골프에 관대한 입장을 취한 데다 ‘박세리 효과’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여야를 불문하고 주요 정치인들의 회동이 골프장에서 이뤄졌다.

동교동계의 대부인 권노갑씨는 DJ를 대신해서 외부인사 영입 및 협상창구 역할을 하면서 골프정치를 이끌었다. 권씨는 민주당 고문 시절 당시 대선후보로 거론된 노무현ㆍ이인제ㆍ정몽준 의원과 각각 ‘탐색 라운딩’을 갖기도 했다.

그래서 권씨가 누구와 골프를 치느냐 하는 것은 당시 정치권의 초미 관심사였다.

골프정치가 유행하면서 야밤의 밀실정치가 줄어든 반면 정치권의 도를 넘는 골프 회동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2000년 집중호우로 물난리가 난 용인지역에서 JP와 일부 의원들이 수중 골프를 쳐 국민의 비난을 받은 것은 단적인 예다.

이듬해인 2001년 5월에는 JP, 민주당 김중권 대표와 권노갑 전최고위원, 민국당 김윤환 대표, 김상현 전의원 등이 여3당 공조를 자축하는 골프 회동을 가졌다가 농담조로 ‘1,000만원 내기 골프’와 ‘1,000만원대의 혼마 골프채’를 얘기한 게 구설수에 올랐다.

특히 한국전쟁 50주년을 맞은 6월25일, JP가 일부 의원들과 필드에 나간 것과 제헌절인 7월17일에는 JP와 김용환 의원이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고 골프 회동을 가진 것에 대해 여론의 비난이 쏟아졌다.

. 참여정부 들어서도 골프정치는 계속됐다. 더욱이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참모진들이 집권 초부터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골프를 즐기면서 정치권에 ‘골프 자유화’ 분위기가 퍼졌다.

한 386 초선은 “참여정부 초만해도 골프가 귀족 운동으로 여겨 멀리했으나 골프를 못 치면 의원 모임에 낄 수도 없어 1년 전부터 골프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51)이 소유하고 있는 충주시 시그너스골프장은 골프정치의 주요 무대였다. 2003년 8월, 이 골프장에선 정동영 의장, 김한길 원내대표와 인도ㆍ뉴질랜드 등 9개국 대사 등이 한 차례 라운딩을 한 뒤 만찬을 가졌다.

그해 11월에는 강 회장이 노 대통령 부부를 골프장에 초청해 부부동반 골프모임을 하기도 했다.

강 회장은 호남 출신으로 정 의장을 비롯해 김 원내대표, 임종석 의원 등 우리당 여러 의원들과 가깝게 지냈다. 특히 임 의원은 강 회장의 한양대 후배여서 몇차례 함께 라운딩하기도 했다.

그밖에 노 대통령의 386 측근인 안희정씨를 비롯한 여권 인사들이 시그너스 골프장을 자주 찾았다.

정가 일각에선 올 초 우리당 원내대표 경선과 2ㆍ18 전당대회에서 정동영-김한길, 정동영-임종석 연대가 이뤄진 배경을 두고 ‘골프정치가 한몫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김 원내대표는 경선을 앞두고 주말마다 의원들과 골프회동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골프정치는 야당도 예외가 아니다. 대표 선출이나 원내대표 경선 때면 골프를 치는 후보자들은 골프를 최대한 활용한다. 한나라당의 한 영남권 중진은 출마할 때면 골프장부터 예약한다는 소문이 있다.

한때 한나라당에서는 의원들이 선거운동을 이유로 종종 필드를 찾아 지도부가 금족령을 내리기까지 했다.

이처럼 골프정치가 만연하다 보니 구설수도 적지 않다. 김원기 국회의장은 지난해 6월 비무장지대 GP에서 총기사고가 일어난 날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소속 의원들과 함께 경기도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회동을 가진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파문이 일었다.

지난해 6월에는 한나라당 곽성문 의원이 같은 당 지역구출신 의원 8명과 대구상공회의소장 등 지역경제인과 골프회동 뒤 저녁식사 자리에서 맥주병을 던지는 등 `난장판'을 벌여 비난을 받았다.

골프 마니아인 이해찬 총리는 가장 활발하게 골프정치를 활용했지만 중독성을 띤 행보로 자주 구설수에 올랐다.

2004년 6월 군부대 오발사고 희생자 조문 전에 골프모임을 가져 논란을 불러일으킨 데 이어 지난해 식목일에는 강원도 일대에서 대형 산불이 번지고 있는 가운데 골프를 쳤다가 비난 여론이 일자 국회에서 "근신하겠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이 총리는 그로부터 두 달여 만인 지난해 7월 초 남부지방에 집중호우 피해가 났을 때 제주도에서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등과 라운딩을 해 물의를 빚었다.

이어 12월에는 봉황 문양이 새겨진 골프공 세트 선물로 물의을 빚더니, 최근에는 법조브로커 윤상림씨와 수 차례 골프를 친 사실이 드러나 또한번 구설에 올랐다.

이 총리는 3ㆍ1절 날 철도파업이라는 비상상황을 맞아 부산까지 내려와 문제 있는 기업인들과 라운딩을 한 사실이 밝혀져 취임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요즘 “정치는 골프로 통한다”고 할 정도로 골프정치가 정착돼 있다. 국회의원 297명 중 70%가 골프를 치는 것으로 조사됐을 정도로 골프와 정치는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럴수록 골프 정치가 의정활동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정도를 지켜가기를 국민들은 바란다.

늦깎이 골퍼 이해찬 총리

늦게 배운 골프…물불 안가렸다

이해찬 국무총리는 45세 넘어서 골프를 처음 시작한 늦깎이 골퍼다. 이 총리는 1980년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운동권 출신’ 이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88년 당시 김대중(DJ) 총재가 이끈 평민당에 재야 영입 케이스로 정계에 입문해 13대 때 처음 국회에 진출한 뒤 내리 5선을 했다.

이 총리가 골프와 인연을 맺은 것은 3선 때인 97년이다. 당시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씨와 더불어 드물게 골프를 치던 이훈평 전 의원이 “이 의원도 3선이니 골프 세계를 알아야 한다”며 권유한 것이 입문 계기가 됐다.

이 전 의원은 곧바로 이 총리를 국회의사당에서 가까운 염창동의 한 골프연습장으로 데리고 가 등록을 시켰다. 그리고 등록 이튿날부터 새벽 6시면 전화해 골프 연습장에 데리고 나가 두 달여 동안 맹훈련을 시키고 머리를 얹어주었다(첫 필드 출전).

이 총리는 이 때 거의 매일 골프연습장과 필드에서 살았다. 남몰래 서울 대방동 해군 골프연습장에서 피나는 훈련을 쌓기도 했다

이 총리는 98년 권씨가 8ㆍ15 특사로 나오면서 범동교동계 인사들과 어울렸다. 거의 매주 권노갑ㆍ김영배ㆍ안동선 의원과 팀을 이뤄 내기 골프를 친 것.

이 총리는 참여정부의 실세 총리가 되면서 물불을 안 가리는 골프 행보도 잦아졌다. 피나는 훈련 덕에 80대 초반의 수준급 실력을 갖췄으며 승부욕이 강해 90대 수준의 노무현 대통령과 내기 골프를 할 때도 양보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총리는 2003년 안개가 짙은 날 라운딩을 한 적이 있다. 홀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기적 같은 버디를 한 뒤 이 총리는 “앞으로 3년간 운이 좋을 것이다”며 좋아했다고 한다. 예언대로 이 총리는 승승장구, 실세총리이자 차기 대선주자 중의 한 사람으로까지 평가됐다.

올해 2006년은 이 총리가 말한 ‘3년’이 마무리 되는 시점이다. 이 총리의 ‘위기’가 예언 때문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


입력시간 : 2006-03-14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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