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내 역학관계 맞물리며 갈수록 복잡

이해찬 국무총리의 3ㆍ1절 골프파문은 열린우리당내 역학구조와 당(黨)ㆍ청(靑) 관계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당 내부는 정동영(DY) 의장 체제가 출범했음에도 2ㆍ18 전당대회서 노출됐던 계파간 갈등이 재연, 여전히 불안한 구조임을 나타냈다. DY계로 분류되는 당권파가 이 총리의 대국민 사과를 ‘사실상의 사퇴의사’로 해석하고 이 총리의 ‘(사퇴)결단’을 은근히 기대한 반면, 재야파인 김근태(GT)계 및 친노(親盧) 그룹은 ‘이해찬 구하기’에 나선 것.

정 의장은 5일 기자간담회서 “정치인과 모든 공직자는 물을 가득채운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가는 심정으로 국민을 섬기고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해 이 총리의 처신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김한길 원내대표는 한걸음 더 나아가 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청와대가 '이해찬 유임론' 을 밀어붙이려는 움직임과 관련, “이 총리 거취 문제에 대해 여당이 무력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DY계는 ‘실세 총리’로 불렸던 이 총리가 물러나면 유력한 대권주자인 정 의장 체제의 안정성이 한층 공고화될 것이라는 계산이다. 무엇보다 5ㆍ31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DY체제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만큼 선거에‘악재’가 되고 있는 이 총리 문제를 빨리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GT계 및 친노그룹은 DY계의 독주를 견제하고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이 총리 체제가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야파의 맏형격인 장영달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일관된 국정운영을 위해 총리를 바꿀 때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친노 직계인 이광재 기획위원장은 "분권형 국정운영의 기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며 이 총리 사퇴에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당청관계는 정 의장이 2ㆍ18 전당대회서 뿐만 아니라 노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에서 ‘공동운명체’를 강조했지만 이 총리 문제에 대한 시각차에서 나타났듯 공염불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청와대 비서실 관계자는 “당이 국정운영보다는 눈앞의 지방선거만을 의식하는 것 같다”면서 “정 의장측이 대권에 너무 민감한 게 아니냐”고 꼬집었다.

이 총리 문제는 3ㆍ1절 골프 파문에서 비롯된 ‘거취’가 쟁점이 됐지만 사실 당내 계파간, 당청간 갈등의 뿌리는 훨씬 깊고 구조적이다. 이 총리 파문은 2년 전인 2004년 5월 원내대표 경선서 나타난 DY계-GT계-청와대 3자간 대립구조와 유사한 양상을 띠었다.

당시 DY계는 천정배 법무장관을 밀었고 GT계와 청와대는 이 총리를 지원했다. 이 총리는 당내 최대 세력인 DY계가 천 장관을 내세워 출마를 포기하려 했으나 GT계가 밀고 노 대통령의 측근으로부터 “노심(盧心)이 이 총리에 있다”는 말을 전해듣고 용기를 내 출마했다.

친노그룹도 선거를 1주일 가량 앞두고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이 총리 지원 방안을 모색했다.

당시 모임에는 노 대통령의 후원회장을 지낸 이기명씨,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염동연 우리당 사무총장, 서갑원ㆍ백원우 의원 등 친노그룹 핵심인사들이 참석했다. 노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린 이광재 의원은 연락이 잘못돼 불참했다.

그런데 지지 후보를 놓고 참석자들 간에 이견을 보였다. 염 총장이 천정배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밝힌 반면, 이 전 수석은 당ㆍ청 간 원만한 관계와 당이 노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이해찬 후보에 우호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당시 노 대통령은 당ㆍ청 간 조화를 위해 강성인 천정배 후보보다 이해찬 후보를 선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후원회장과 서갑원ㆍ백원우 의원은 당선자도 이 전 수석에 동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입장차는 5월 11일 원내대표 선출 과정에 그대로 반영돼 염 총장은 천정배 후보를 밀었고, 이광재 의원을 비롯해 서갑원ㆍ백원우 의원은 이해찬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천 후보는 10여 표차로 간발의 승리를 거둬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이 총리에 대한 생각은 각별해 그 해 6월 그를 총리에 파격적으로 임명했다. 반면 정동영 의장과 김근태 최고위원은 각각 이 총리 밑의 통일부 장관과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해 세 사람에 대한 노심의 속내를 은연 중 드러냈다.

나아가 노 대통령이 이 총리를 ‘실세 총리’로 힘을 실어 준 이면에는 차기 대권 주자에 대한 고려도 작용했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3ㆍ1절 골프파문에 대한 당 안팎의 여론이 워낙 악화돼 노 대통령이 계속 이해찬 카드를 쥐고 있기는 어려울 듯하다. 당장 5ㆍ31 지방선거가 영향을 받는데다 레임덕(권력 누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노 대통령과 이 총리의 ‘18년 인연’이 쉽게 바뀌지도 않을 전망이다. 이 총리가 당에 복귀할 경우 그의 역할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정가에서는 이 총리가 DY계-GT계-친노 그룹으로 대별되는 당내 역학구도에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DYㆍGT에 버금가는 친노그룹의 죄장 역할을 하며 독자세력화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해찬 파문은 노 대통령이 아프리카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14일 즈음 정리될 예정이다. 노 대통령의 선택과 이 총리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